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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명단 : 경택수, 유영남, 조동안
바람 부는대로 가겠습니다. 시간대로 갑니다.
무조건 새벽에 동서울 터미널로 갑니다. 충주든 봉화든 안동이든 땡긴는 대로 가겠습니다.
우리는 자유인이 될겁니다. 일상의 먼지를 털듯 여름 신록의 낙원으로 갈겁니다.
그리고 돌아와 신선한 의지로 도심의 생활을 즐기겠습니다.
출발시간이 다가옴에 마음의 준비도 바빠집니다. 타이어는 2.1로 할까 1.95로 할까 고민하고
행복한 고민에 가슴은 뜨거워집니다.
청량산 청량사를 들리고 어느해 인가 덥게만 느껴지던 부석사의 아늑한 언덕과
고색한 목조건물의 회칠 벗겨진 나무냄새를 맡아보고 싶습니다.
터널을 열심히 뚫던 영양쪽이던가 기억을 더듬고, 겁이 나서 하산했던 우구치리도
다시 한번 가고 싶습니다. 봉화의 오지도, 하늘만 빠꼼한 승부역,
마을주민의 입장료 징수에 되돌아 왔던 김삿갓 묘지도 가고 싶습니다.
태백의 너와집... 욕심은 한정이 없습니다.
[조령관문]
<투어 후기>
8월12일 토요일 배낭은 될수록 무게를 줄이려고 노력했다.
타이어는 1.95로 정했다. 경택수, 유영남, 나 이렇게 3명은 기대를 잔뜩하고
동서울터미널에서 7시40분 수안보행 버스로 정했다.
수안보를 목적지로 정한 것은 충청북도와 경북의 경계지역이기도 했지만 목적은 조령관문을
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느 관광지 보다는 한가하고 오염이 덜된 것은 수안보가 온천지라
여름에 관광객이 없는 탓도 있으리라
적당한 경사도의 길을 따라 영남의 선비들의 과거길을
따라 올라갔다. 영남에서 한양길은 3개의고개(추풍령,죽령,조령)가 있는데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은 미끌어 진다 해서영남선비들은 전부 조령을 넘었다고 한다.
조령3관문에서 왕건 촬영장까지 잘 정돈 된 계곡을 따라 시원한 풍광의 다운힐이었다.
이 내리막에서 빵구가 두번 나긴 했어도 자전거를 탈 만한 코스였다.
왕건 촬영장은 인간들이 너무 많아 사진만 찍고 바로 철수, 입구에서 이곳 특산물인 묵조밥을
먹었는데 묵과 조로 만든 밥으로 나물이 곁들여진 산채밥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사실 여기서 부터가 코스를 어떻게 정해야 될지 고민 스러웠다.
일단은 점촌까지 가기로 했는데 21km정도 되는 거리였으나 점심에 막걸리를 먹은 탓에 땡볕에
아스팔트 주행은 엄청 뜨겁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특히 막걸리를 꽤 많이 마신 유영남은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경택수형님은 더위를 타시는 편이라무척이나 힘든 코스 였던 것 같다.
점촌에 도착해서 수퍼에서 큰수박 반통을 샀는데 나하고 경택수형님하고 그 큰수박을 다먹어치웠다 내가 생각해도 엄청도 먹었다. 점촌에서 봉화까지는 대략 90km정도 거리라
봉화의 은어축제의 은어회 욕심에 버스를 타고 봉화까지 가기로 했다.
봉화에 도착할 즈음에 소낙비가 쏟아지고 터미널에 내려서 비를 맞으며 축제장소인 내성천 다리밑에 도착했으나 우리들의 실망은 컸다.
세느강을 흉내낸 한강개발이나 각 지방자치에서 한강개발 흉내 내는 것은 어느곳이나 공히 같아서
운치도 없는 콘크리트 하천에 사람만 북적되는 새마을 먹자장터 분위기였다.
비는 쏟아지고 숙소를 정하려고 여관에 들어서면 방이 없다고 내쳤다.
글세 축제기간이라 그런가, 아니면 불륜남녀 만 받을려고 그러는가?
조그마한 봉화에서는 비를 피할 숙소를 구할 수가없었다. 경택수형님과 유영남은 숙소보다도
우선 은어회에 소주한잔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맛과 향이 뛰어나고 임금님진상품이었으니
오죽하랴. 비도 피할겸 행사장 은어횟집에 들어가 소주를 들이키니
두사람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숙소를 찾는 방법은 민박이 있는 오전약수밖에 없었다.
비는 그치고 이미 해는 져서 깜깜한 밤중이다. 야간주행은 예상 했던바라 경택수형님의 라이트 하나로 18km의 야간투어를 했다.
꽤고지가 높은 곳에 오전약수가 위치해 있는 터라 계속 언덕을 올라야 했다. 라이트 때문에 앞장선 경형님의 자전거는 자꾸속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경북 물야면 소재지에서 5km정도 올라가다 오전댐을 지나 오전약수탕이 나온다.
선달산과 옥석산 아래 깊은계곡에 위치해 있어 모기도 없고 시원했다.
물맛은 철분이 함유된 톡쏘는 맛이었는데 별 느낌은 없었다. 철분함유의 약수는
삼봉약수가 제일인 것 같다. 오전약수 또한 마땅한 숙소가 없었으나 운이 좋아 내가 어릴때
달동네 살던 집과 비슷한 앞이 탁뜨이고 공기가 좋은 민박집을 구할 수가 있었다.
사람들은 특히나 40대가 넘은 사람들도 화장실을 수세식만 고집한다. 어릴때 푸세식으로 살아왔으면서도 오지에 와서도 수세식이나 욕실을 고집한다. 이럴때 노천에서 미역을 감는 것도 괜찮고
이가 시리도록 찬물로 목간을 하는것도 제맛 일텐데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물야면 고암 숯불갈비집에서 아침을 먹고 우리는 바로 부석사로 향했다.
새벽이라 산등성이에 안개가 걸려 한폭의동양화를 보는 듯 했다. 너무도 아름다운 농촌의 풍경이라
상쾌한 아침공기에 페달이 너무도 가벼워 부석사에 가파른 언덕을 지나 대웅전까지
거침없이 올라갔다.
그유명한 무량수전 아닌가? 부석사의 유래는 의상대사가 절을 창건할 당시 도적떼가 많았는데 의상을 사모하던 여인이 용이 되었다가 바위가 되어 공중에 떠서 도적을 내쫒으니
공중에 뜬돌 즉 "부석" 부석사 라고 한다. 무량수전 왼편에 부석이라는 바위가 있으니 거기서 사진 한장을 찍고 그엄청한 언덕을 내리쏘니 관광객들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린다.
부석사입구 기념품가게 주인인 듯한 노인에게 길을 물으니 아주 자세하게 태백과 소백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부석사는 흔히들 소백산에 있는 것으로 아는데 태백산에 부석사라고
노인은 강조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갈라지기 직전인 마구령과 태백과 소백의 경계선인 고치령을 넘기로 했다.
[김삿갓 묘비]
마구령을 넘으면 김삿갓묘지가 가까워 지리라.
기대와 흥분이 가슴 가득했다. 고개는 아주 가파른 언덕이고 경사가 심한 곳은 콘크리이트
포장이 되어 있었다. 아주 심한곳은 체력안배를 위해 걸어 올라갔다.
한시간 정도 올라가니 마구령 정상이 나왔다.해발820m 고도는 높지않으나
조용하고 영주땅이 한눈에 들어왔다.
남대리쪽 하산길은 스릴 넘치는 다운힐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마을 가까이 언덕에서 내려다 보는
골짜기는 너무도 신비로와 탄성이 나왔다.바로 여기다. 내가 찾고자 했던 오지가 여기구나.
아직도 오염되지 않은 것이 고마웠다.
이곳 지명이 남대리인데 경북영주시 소재지에 속하는
마을로 경북의 고치령 마락리와 마구령 남대리는 유일한 한강수계에 속하는 막내격 마을이라고 한다. 낙동강과 한강의 분수령 밑에 마을인 것이다
또한 서쪽으로는 충북의 의풍이요 북으로는 강원도 영월군으로 삼도의 경계라 할 수 있는 신기한 마을이기도 했다. 정말 자전거 타기 좋은 비포장 내리막길이 계속되었다.
좌측으로 맑은 내가 흐르는데 바로 남대천이라. 양양의 연어가 회귀하는 남대천과 이름이 같다.
물속에 풍덩 들어 가고픈 유혹을 참으며 경북과 충북의 경계를 넘으니
충북단양군 영춘면 의풍리에 접어 들었다.
충북땅도 잠시 4km쯤 가니 바로 강원도 영월땅 와석리가 나왔다. 와석리 가기전 의풍에서 영춘까지 도로공사가 한창이었다. 이곳도 오염되는 것은 시간문제 일 것이다
충북과 강원도로 넘어가는 길이 이미 도로 공사중이었고 김삿갓묘지가 있는
와석리에 들어서는 순간 야영객들의 소음이 들어왔다.
이제는 인간들 등살에 쓰레기냄새와 화장실냄새로 가득찼다.
영월행 노선버스 엔진소음도 만만찮아 맛없는 된장찌개는 더욱이 맛이 없었다
네다리 소나무 소반에 죽이 한그릇/
하늘과 구름이 함께 떠도는데
주인장 제발 무안해 하지마오/
나는 물속의 청산을 사랑한다오
죽장에 삿갓쓰고 방랑삼천리
발닿는 곳마다 기행과 해학과 파격의 시로 세상을 풍자했던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 1807-1863)
영월읍에서 26km 떨어진 이곳은 정감록에 평생 난을 격지않는 전국 10승지 가운데 하나라고 하던데 이제는 오지는 아닌것 같다.
우리는 남대리를 잊지못해 강원도를 벗어나 경북으로 넘어갔다.
한낮의 더위를 남대리 냇물에서 수영을 즐겼다.
우리는 고치령을 넘기로 했다. 다시 충북땅을 넘어 영주시 부석면 마락리로 향했다.
마락리는 바로 고치령 밑에 마을인데 고개가 하도 험해서 말에 짐을 싣고 가다 떨어졌다 해서 말 "마"자에 떨어질 "낙" 마락리라 한다.
앞에서 얘기 했지만 고치령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경계지점이라 백두대간 종주코스이기도 하다.
당연히 고개중턱에서 백두대간 종주팀을 만나서 미싯가루를 얻어 먹었다. 마구령은 7.5km, 고치령은 15km 고치령은 마구령의 꼭 두배의 거리였다.
그런데 오르내리는 시간은 거의 비슷했다. 오르막에서 1시간,내리막에서 25분정도 걸렸다
거리상으로는 마구령이 고치령의 반밖에 안되지만 시간은 비슷하게 걸렸다는 것은 마구령이 고치령 보다 경사가 급하다.
마구령은 김삿갓이 객사했을때 그의 아들이 죽은 김삿갓을 업고 넘은 고개 아닌가!
신이 나는 고치령 내리막이다. 정신없이 20여분을 타고 내려왔다.
처음 목적은 봉화까지 가서 욕심을 더 내면 청량산에서 민박을 생각 했었다. 그러나 지쳐있는 경형님 입장에서는육십을 바라보는 연세에 30도가 넘는 기온에 고치령을 넘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계획을 수정하여 둘째날인 오늘 아침을 먹었던 물야면 고암숯불 갈비집으로 향했다.
그집 주인 양반이 고등학교 때 사이클선수 였다고 한다. 사정얘기를 하고 하룻밤 신세지기로 했다.
사실 음식점에서 민박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자려고 하니 영업이 끝날 때까지 시끄럽고(새벽2시까지) 고기냄새가 꽉베인 방도 그렇고 창문을 열면
정화조공사를 엉터리로 해서 바로 정화조 냄새(메탄까스)가 코를 찔렀다.
베게도 없이 잠을 자야 했다. 밖에는 신선한 공기인데 방안은 괴로운 공기였다.
우린 아침 일찍 식사를 하고 6시에 출발했다. 청량산을 향해 고개 두개를 넘으면서 걱정이 앞섰다.
이렇게 계속 고개면 어찌갈 것인가? 나야 괜찮지만, 다행이도 내리막이 시작되더니 계속 내리막 또 내리막 신나는 일이다.
봉화에서 918번 국도를 타고 내려오니 태백산에서 흘러내린 물이합수 제법 큰하천을 이루었다.
낙동강상류로 기암괴석이 있긴 했는데 어째 썰렁하다.
청량산은 봉화읍에서 동남쪽으로 29km 떨어진 곳이다.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옛부터 소금강이라 전해지는 명산이라 했으나 그리 큰느낌은 주지 못했다.
초입 부터 경사가센 아스팔트 도로로 시작하므로써 인위적인 맛으로 인해 별로였다.
청량사를 힘들게 둘러메고 올라가니 역시나 맛이 없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없다고 딱히 들어 맞는 말이다.
청량사에서 들은 얘기는 "어이 아재 아재 자전거 갖고 내려가소.
매번 여행을 다니다 보면 절에서의 자전거 대접은 말이 아니다.
우리는 청량산 불티재 정상에서 태백산맥의 겹겹히 펼쳐지는 산중에 산을 볼 수 있었다.
멀리 보이는 큰산이 틀림없이 1218m의 일월산 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아직 갈곳도 많다.
지도상으로는 비포장으로 되어 있는 안동쪽 길도 아주 말끔히 포장되어 있었다.
포장도로도 다운힐의 묘미가 있다.
우린 방향을 좌로 바꾸어 태백쪽 재산으로 달리고 있었다.
양옆은 전부 수박밭이었다. 여기는 흔히들 풍토가 다르다고 하듯이 정말 바람결과 땅색깔이 다르다. 봉화쪽 농촌이 비슷하듯이 포근하고 은은하며 따뜻하다.
재산면에서 점심을 먹고 그때까지도 태백으로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좌로는 봉화요
직진은 태백이라. 태양은 뜨겁고,
태백은 바딱선 언덕이라 망설임 없이 태백방향 언덕을 치고 올라 갔다. 이게 죽이는 언덕이다.
엉덩이는 뜨끈 뜨끈하고 육수가 비오듯 한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임기역까지 왔다.
이미 이때는 태백은 포기한 상태였다. 이제 서울 올라갈 생각 만 가득하다.
춘양에 가야만 버스를 탈 수 있어 방향을 돌렸다.계획에 승부역을 갈려고 했으나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춘양가는 길에 우린 복수박을 먹었는데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전부 탄성을 올리며 2통을 먹었다.그야 말로 설탕맛이었다.
봉화 복수박은 비를 맞으면 안 되므로 노지에서 재배하면 안된다고 한다.
일년에 800t 정도 생산하는데 서울까지 올라 갈 물량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복수박 덕분에 힘이나서 춘양까지 갈 수 있었다.
[청량산]
춘양은 춘양목의 집산지로서 나라의 귀중한 건물자재로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춘양은 내가 예전에 우구치 고개 가기전에 마을로 기억이 난다.
사실난 우구치리의 험한 산골의 오지의 기억을 지울 수가 없다.
다시 오겠다고 했었는데 이번에 기회였으나 다음으로 미룰 수 밖에 없다.
낙동강의 지류인 춘양의 운곡천에서 서울로 향하기전 땀에 쩔은몸을 씻었다.
사실 이곳도 정감록의 10승지로 꼽는 곳이었는데 운곡천은 많이 더러워져 있었다.
이번투어는 발닿는대로 간다고 했다. 계획없이 여건에 따라 물흐르듯이 간다고 했었다.
어느덧 2박3일의 투어는 끝나고 있었다.
숙소를 찾다 어떻게 오전약수를 가게되다 보니
고구려와 백제의 먼지도 안 닿는 부석사를 들리면서 소백산맥과태백산맥을 넘나들게 되었다.
8월12일 63km 주행, 8월13일 61km 주행,8월14일 69km 주행 총주행거리 193km,
하루 평균 64km의 주행거리로 봤을때 짧은거리라고 할 수 있다.
날씨가 워낙 덥고 여러가지 여건상 많은거리는 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짧은거리이므로 심도가 있게 다닌 것도 아니다.
한여름의 장거리 투어는 될수록 피하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아직도 갈곳은 많지만 매번 투어를 하면서 원하는 것만큼 간 적은 없다.
항상 미흡한 마음이지만 그러므로서 또 갈 곳이있지 않나 생각한다.
가을엔 전라도지방 여행을 생각해 본다.
특히 선암사의 뒷간은 꼭 가고 싶다. "대,소변을 미련없이 버리듯 번뇌망상도 미련없이 버리자".
이렇게 써 있다고 하더라.
나는 울릉도 죽도의 외양간 냄새를 잊지 못한다.
수도권 축사의냄새는 악취의 썩는 냄새지만 자연의 외양간 냄새는 정말 달콤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어릴적 향수의 냄새다. 우린 남대리에서 고향냄새를 맡고 왔다.
그리고 우린 훌훌 벗어던지고 도시의 찌든때를 씻고 왔다. 그약발은 조금은 오래갈것이다.
<2000년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