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 정신을 상징하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4가지 우상
프란시스 베이컨은 영국의 경험론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신기관>에서 세상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범하고 있는 4가지의 오류들을 <4가지 우상>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우상이란 사실상 종교적인 용어이다. 진정한 신이 아닌 것을 '신'으로 여기고 숭배하는 것을 '우상'이라고 한다. 즉 신이 아닌 그 어떤 것을 절대적으로 소중하게 여기거나 최고의 가치로 여길 때, 종교인들은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하는 것이다. 베이컨은 이러한 '우상의 개념'을 일반인들의 '진리'에 대한 태도 혹은 자세에 적용하여 말하고 있다.
그 4가지 우상은 다음과 같다.
1. 종족의 우상: 종족의 관점으로 다른 사물이나 문화를 바라보는 오류.
하나의 사태에 대해서 중립적이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이 아닌, 이미 형성되어 있는 어느 특정한 선입견 즉, 종족의 견해를 토대로 특정한 관점에서 판단하고 평가하는 오류이다. 흔히 ‘자기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통속적인 속담도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가령 현대의 도시인들은 맨발로 걷고 생식을 하는 원시인들을 야만이라고 평가하지만 자신들이 그렇게 할 때는 ‘친환경’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치인들 중에는 자신의 정치적인 신념을 위해 ‘당’을 떠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도 자신이 할 때는 ‘정치적 소신’이라고 하고 남이 할 때는 ‘배신’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종족의 우상에는 ‘자신의 종족’이 가진 문화를 가장 탁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해당한다. 일본인은 자신들의 기모노가 가장 아름다운 옷이라고 하고 한국인은 한복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할 때, 종족의 우상을 범하게 된다. 이 외에도 동물학자들이 어떤 특정한 동물들을 ‘유해 동물’이라고 규정하거나, ‘과학만이 가장 참된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자들도 일종의 종족의 우상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2. 동굴의 우상: 한 개인이 자신이 지니고 있는 개성이나 기질 혹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거나 가장 탁월한 것이라고 믿고 있는 오류이다. 가령, 베토벤의 음악을 통해서 클래식을 처음 접하는 한 학생이 ‘베토벤’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이고 그의 음악이 가장 탁월한 것이라고 생각할 때 범하는 오류이다. ‘남대문을 직접 본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이 남대문에 대해서 싸우면 오히려 남대문을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이 이긴다. 이 경우 ‘대문’이라는 것에 대한 그의 확고한 선입견이 그에게 ‘억견’을 주장하게 한 것이다. 종족의 우상이 ‘자기중심주의’에 의한 오류라고 한다면 ‘동굴의 우상’은 ‘무지’에 의한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알 수 없는 모든 것을 무조건 비하하거나 비-진리라고 규정해버리는 오류이다. 모든 종교는 일종의 ‘아편’이라고 주장한 마르크스의 주장도 사실은 일종의 동굴의 우상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진정으로 초월적인 것에 대한 체험과 앎을 가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이 보다 ‘현대적인 것’일수록 보다 좋은 것이라고 언연 중에 생각하는 것도 사실은 ‘동굴의 우상’에 해당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3. 시장의 우상: 시장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오류를 일상의 삶에 상징적으로 적용하여 부르는 오류이다. 가령 시장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 거의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소문에 의존하여 물건을 사게 된다. 동일한 물건을 파는 두 가개이지만 한 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구경하고 다른 곳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면 새로 온 손님은 당연히 사람이 많이 몰려 있는 곳에서 물건을 고르게 된다. 이러한 것은 현대인들이 전형적인 습성이다. 스스로 보고 체험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를 통한 데이터, 사람들이 선호하는 광고들, 주변사람들의 입소문, 조회 수, 댓글회수 등 이러한 것들을 토대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한 사람을 판단할 때 자기가 스스로 그 사람에 대해서 경험하고 체험하지 않고 타인의 견해나 소문에 의존하게 될 때는 매번 시장의 우상을 범하는 것이다. 이 경우는 일종의 ‘주체성의 부족’, ‘정신적인 개으름’으로 인한 오류라고 할 수가 있다.
4. 극장의 우상: 동일한 말도 ‘인기 배우’가 할 때는 그럴듯하고 멋진 말처럼 보이지만, 하찮은 사람이 말할 때는 푸념이나 넞두리 같이 판단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가령 장동건 같은 멋진 배우가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고 말하면 참으로 인생의 진리를 말해주는 것으로 들리지만, 시골 할머니가 “죽지 못해서 산다!”고 하면, 마치 인생을 한탄하는 ‘푸념’처럼 들리는 것이다. 이는 사실이나 진실 혹은 진리를 중시하지 않고 어떤 사람이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서 그 가치를 판단하고자 하는 오류이다. 아무리 좋은 책을 출간하여도 신문사에서는 그 책의 정신이나 내용을 보지 않고, 그 사람이 대학교수인가, 시간강사인가, 유명 교수인가, 무명교수인가를 보고 기사화 하거나 무시해 버린다. 또 일반인들은 어떤 특정한 인기강사나, 특정한 언론 매체나 자신이 신봉하는 것을 무조건 진리라고 믿어 버리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하찮은 것, 무가치 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모두 극장의 우상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권위에 의존하는 오류’라고 볼 수 있다. 권위에 의존하는 모든 오류는 사실 비굴함에서 온다. 당당하게 살고자, 가진 것이 없고 내세울 것이 없지만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당당하게 살고자 한다면 이러한 오류는 범하지 않을 것이다.
이상의 4가지 우상을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만 해도 우리 사회는 참으로 살만한 사회가 될 것 같다. 특히 철학을 하는 사람들이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든 선생님들이 이러한 오류를 범하지만 않아도 학생들은 보다 건전하고 자율적이며 훌륭한 시민정신을 가지고 살 것이며, 한국사회의 미래는 희망이 있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