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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게임에서 매치플레이는 타수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홀에서 이기면 1 UP, 지게 되면 1 DOWN으로 계산한다.
비긴 홀은 테니스 게임처럼 LOVE 라 한다.
만약 15홀이 끝난 뒤 3홀을 남기고 내가 4 UP이면 나머지 3홀을 상대가 다 이긴다 해도 내가 1 UP이므로 나머지 홀의 승패와 관계없이 15홀에서 게임이 끝나는 것이다.
만약 18홀까지 승부가 나지 않으면 써든데스 게임으로 18홀을 다시 하여야 한다.
오늘의 오마대전에서는 18홀이 끝났을 때 만약 러브상태로 끝나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면 18홀부터 백 카운트하여 먼저 UP이 된 사람이 우승하기로 하였다.
마크사모가 오늘 승리하면 2승이므로 결승전을 치루지 않고 그대로 게임이 종료되므로 결승전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마크사모는 오늘로 승부를 가리려는 듯 첫 홀부터 강력한 롱 드라이브 샷을 구사하였다. 그녀의 세컨샷은 70미터밖에 남지 않았다.
오사장도 이에 질세라 가공할 만한 파워로 드라이버를 날려 동반자인 나와 꽃사슴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마크사모의 샌드웻지 세컨샷은 정말 일품이었다. 핀의 위치가 그린 뒤쪽 구중심처에 위치해 있어서 공략하기가 수월치 않았지만 그녀는 공을 핀 근처에 떨어뜨린 후 강력한 백스핀으로 홀까지 끌어오는 신비의 샷으로 기를 죽였다. 그녀의 공은 오르막 버디 퍼팅 1미터를 남기고 있었다.
오사장도 이에 질세라 P/S로 강력한 백스핀을 구사하였다. 그의 공은 마크의 공만큼 백스핀이 강하지 않아 핀을 지나 내리막 2미터를 남겼다.
나는 얼른 오사장에게 달려 갔다.
“오사장 사부님의 말씀 잊지 않았겠지. 얼른가서 마크의 공을 집으라고. 그래서 마크가 숏퍼팅을 할 수 없도록 하시게나.”
“여보게 무싸. 아무리 사부님 말씀이 그러하시더라도 이 상황에서 어찌 그런 말을 하는가. 저공을 집어주면 그녀는 기브 버디이고 나는 어려운 내리막 버디퍼팅을 해야 하는데 그냥 져주자는 얘긴가?”
“그렇지. 사부님께서 [반드시 이기려고 하면 질것이요, 반드시 지려고 하면 이길것이다] 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일단 사부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시게”
“허참! 알았네 내 그리하겠네.”
오사장은 그린에 오르자 마자 마크사모의 공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퍼터를 들고 걸어오는 마크사모에게 공을 건넨다.
“아니 오사장님 지금 기브를 주시는 것입니까”
“네 물론입니다”
“이 정도 거리를 기브를 주시면 그냥 져주겠다는 말씀 아니신가요.”
“매치 플레이니 기브는 저의 소관 아닌가요. 기브를 받으십시오.”
마크는 의외라는 듯 공을 건네 받으며 오사장의 내리막 버디퍼팅을 지켜본다.
“오사장님께서 아무리 기브를 남발 하신다해도 저는 그리 못하니 마크하시고 퍼팅하시지요.”
오사장은 오늘의 이 게임이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사부님께서 뭔가 깊은 뜻이 있으셔서 하신 말씀이니 무조건 따라보기로 했다.
평소 저 정도 거리에서 오사장이 버디퍼팅을 할 때면 요리재고 조리재고 시간을 물 쓰듯 하다가 초 긴장 상태에서 동반자들까지 얼어 붙게 만든 뒤 버디퍼팅을 하는 데, 그 공은 홀에 3센치 못 미치거나 홀을 핥고 나오곤 하였다.
그러나 오늘은 상황이 틀렸다. 마크사모는 이미 오케이 버디이고 오사장은 어려운 내리막 2미터 버디퍼팅이니 이 홀은 진거나 다름 없었다. 오사장은 홀을 힐끗 보더니 이내 가볍게 공을 굴렸다
. “나이스 버디!”
도우미 언니가 큰 소리로 외친다. 오사장은 무슨 연습 퍼팅하듯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퍼팅을 했는데 무슨 조화인지 공은 홀을 찾아 들었다.
“아니 오사장님 퍼팅 연습만 하셨나요. 저의 버디퍼팅을 기브 주시더니 그 어려운 퍼팅을 가볍게 넣으시는 걸 보면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아요.”
“마크사모님 칭찬이 과하십니다. 어쩌다 운이 좋아 하나 들어 간 것입니다. 그리고 마크사모님의 공은 오르막 1미터도 채 안되고 퍼팅라인도 곧 바르니 못 넣으실 리가 있나요. 그러니 기브를 드린 것 뿐입니다.”
하이고 아찔했다. 매치플레이에서 한 홀을 매우 크다. 그 1 UP 의 차이가 그대로 18홀까지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사장이 겉으로는 저리 태연한 척하지만 아마도 간이 콩알만해 졌을 터인데.
2홀 파3로 가면서 나는 오사장에게 물었다.
“자네 아까 퍼팅할 때 그냥 장난하듯 퍼팅 하던데 어떻게 된건가?” “사실 그랬지. 난 1홀은 내가 졌다고 생각했네.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졌고 그냥 붙일 요량으로 툭 굴렸을 뿐이네. 허허 그런데 그 공이 홀로 빨려 들어 가는 게 아닌가 말야.”
“아하 바로 그것일세.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必勝卽敗 必敗卽勝]이 바로 그 뜻일세. 자네는 계속 마크가 숏 퍼팅을 못하도록 오케이 기브를 주게나. 그리고 자네는 마음을 비우고 가볍게 져준다는 마음으로 쉽게 쉽게 치도록 하시게나.”
2홀 파3에서 마크는 고수답게 가볍게 그린에 올렸다. 오사장도 부드러운 스윙으로 핀을 향해 쐈다.
마크의 공은 핀을 지나쳐 내리막 7미터를 남겼고 오사장은 오르막 3미터를 남겼다.
마크는 가볍게 홀을 향해 공을 굴렸다. 너무 경사를 의식한 탓일까 공은 구르다가 맥 없이 멈춰 다시 내리막 1미터를 남겼다. 오사장은 날쌔게 그 공을 집어 마크에게 던져주며 기브를 준다.
“아니 오사장님 그건 어려운 내리막 퍼팅인데 그걸 기브 주시다니 왜 그러십니까. 저야 주시면 고맙지만..”
“천만의 말씀 마크사모님께서 그 정도 퍼팅을 놓칠리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버디 퍼팅인데요.”
오사장은 정말 여유가 생겼나보다. 저렇게 인심 팍팍쓰는 건 그와 골프를 친 역사이래 처음이었다.
그는 오르막 3미터 버디퍼팅을 연습 퍼팅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툭 밀어댄다. 그의 눈은 공이 있던 자리를 그대로 응시하고 있었다. 다음 순간 공은 [땡그랑] 소리를 내며 홀 속에 떨어졌다.
“오사장님 줄 버디 축하합니다. 아니 설악산에 도 닦으러 들어 가셨다더니 정말 뭔가 비법을 터득하신 모양이군요.”
“하이고 어인 말씀을 그냥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두 홀이 끝난 후 오사장이 1 UP으로 한 홀을 이기고 있는 가운데 3홀로 걸어가며 나는 오사장에게 물었다.
“자네 쌍 버디를 하고도 흥분하지 않네 그려. 옛날 같으면 큰 소리로 한 얘기 또하고, 또 한 얘기 또 하며 보기에 트리플까지 한 동반자들 가슴을 갈갈이 찢어 놓더니만 오늘은 사람이 달라졌네 그려.”
“그러게 말야. 사실 나도 이번 홀에서는 그 공이 들어 갈 것이라고는 생각을 안 했다네. 그냥 안 들어가도 비기는 것이니 거리만 맞춰 연습 퍼팅하듯 툭 쳤을 뿐인데 그게 들어 갈 줄이야.”
마크 사모는 3홀,4홀… 홀을 거듭하며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환상적인 드라이브 샷은 어디 가고 자꾸 감겨서 언덕위로 꽂혔다.
어려운 슬라이스 라이에서의 세컨 샷은 그린을 빗나갔고 어푸로치 샷을 1.5미터나 2미터에 붙이는 데 그쳤다. 그때마다 오사장은 공을 집어 오케이 기브를 주었다.
오사장은 가볍게 홀을 공략했고 그는 쉽게 쉽게 파를 잡아냈다. 그가 롱 퍼팅을 80센치에 붙여도 마크는 오케이 기브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오사장은 그때마다 깔끔하게 숏 퍼팅으로 파를 잡아냈다.
15번홀까지 이르자 오사장이 2 UP인 상태로 전세는 완전히 오사장에게 기울었다. 마크사모가 얼굴이 울그락 푸르락 하며 한마디 한다.
“오사장님! 제발 숏 퍼팅 좀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오사장님이 공을 집어서 주어 버리니 14홀을 숏 퍼팅을 한번도 못해봤어요. 숏 퍼팅을 안하니 뭔가 빠진 거 같고 꺼림 직한 게 웬지 이상해요. 이건 저의 골프 스타일이 아니예요.”
“아 그러십니까. 하지만 그건 저의 고유 권한이니 궤념치 마십시오. 매치 플레이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
혼돈에 빠진 마크사모는 이성을 찾기에는 이미 때가 지난 듯 싶었다. 바위 같던 그녀의 마음이 저렇게 어이없는 곳에서 무너질 수 있다니 골프는 참말로 알다가도 모를 스포츠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녀는 숏 퍼팅을 마무리 하면서 자신에게는 확신을, 상대에게는 위압감을 주어 왔던 것 같다.
숏 퍼팅 마무리가 그녀의 승리감의 원천이었는데 그걸 송두리째 빼앗아 버렸으니 그녀가 카오스에 빠질 만도 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상대를 갈구고 자신의 멋진 샷을 상대에게 자랑하며 뽐내던 오사장은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져줄 생각으로 가볍게 가볍게 한홀 한홀 한샷 한샷 무리없는 게임 운영을 하니 게임이 잘 풀려가고 있었다.
이제 두 홀을 비기고 나면 한 홀을 남기고 오사장이 2 UP이 되어 승부가 끝나 버리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발안의 16번 홀은 아주 짧은 파3 아일랜드 홀로 보통 피칭이면 충분하였다. 앞 바람이 있어서 오사장은 9번을 빼 들고 쓰리쿼터로 펀치 샷으로 공을 낮게 쏘았다. 공은 그린의 프린지를 맞고 핀대를 향해 툴툴툴 굴러간다.
오사장이 5미터 버디퍼팅 기회를 맞은 것을 보자 마크사모는 피칭으로 강력한 백스핀 샷을 구사하였다. 하늘로 치솟은 공은 바람에 밀려 간신히 물을 건너 러프에 떨어졌다. 앞 바람에서 강력한 샷은 오히려 스핀이 많이 걸려 거리가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을 마크사모는 착각했던 것이다.
마크사모의 어프로치 샷은 핀대를 향해 곧장 굴러 갔다 핀대를 맞고 옆으로 튀어 1미터에 멈췄다.
승리에 찬 오사장은 오케이 기브를 주려고 마크의 공을 집으려 걸어 갔다.
“잠깐만요. 오사장님 제발 퍼팅 한번만 하게 해주세요.”
“기브 드리려고 하는데 왜 그러십니까. 알았습니다. 그러죠.”
오사장은 5미터 버디퍼팅을 붙인다는 생각으로 주욱 밀었다. 공은 홀을 지나 60센치에 멈췄다. 이때 잽싸게 마크 사모가 걸어와 오사장의 공을 집어 기브를 준다.
“오케이 기브입니다, 오사장님!”
마크는 1미터 퍼팅을 이리보고 저리 살핀다. 감격스러운 퍼팅이었다. 오늘 처음 해보는 숏 퍼팅이었다. 사실 이 정도 거리는 마크에게 있어서 99%의 확률이 있는 쉬운 퍼팅이다. 그런데 그녀는 이리 살피고 저리 살핀다.
그리고 조용히 퍼팅을 하는데, 이게 웬일인가.
그녀는 퍼터로 뒷 땅을 긁고 말았다. 그녀의 공은 홀 앞 5센치에 서 버리고 만 것이다.
“사모님 그건 오케이 기브 드린다고 했더니…….이를 어쩌나 ”
오사장이 남이 실수로 못 넣은 것을 저렇게 안타까워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오사장은 저런 경우 쾌재를 부르며 계산도 빨리해서 지갑을 털어가던 그런 [오놀부]였는데……
전의를 상실한 마크사모가 말문을 열었다.
“오사장님 오늘은 제가 졌습니다. 2홀을 남기고 사장님께서 3 UP이시니 남은 홀을 제가 이긴다 해도, 제가 지게 되니 이 홀로서 게임은 끝났습니다.”
“아 그렇군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마크 사모님. 오늘은 제가 운이 좋았고 사모님께서 잘 안 되시는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오사장님. 오늘 저는 처음부터 오사장님을 이기려고 무리한 샷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오사장님께서 숏퍼팅이 약하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모두 마크를 했습니다. 오사장님께서 숏 퍼팅 미스를 하시기만을 고대하면서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제가 골프에서도 졌고, 멘탈에서도 졌습니다. 오사장님은 저에게 후하리만큼 오케이 기브를 주셨지만 결국 저는 악착 같이 이기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정말 한 수 잘 배웠습니다. 저도 산에 들어가 마음을 닦고 수양 좀 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마크는 여걸이었다. 짧은 순간에 자신을 돌아볼 줄 알다니. 그녀는 오늘의 패인이 자신의 욕심에 있었음을 벌써 깨달은 것이었다.
“그럼 이제 두 홀이 남았는데 어떻게 하실까요. 기왕 나왔으니 마저 마무리하고 가시지요.”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승부는 이 홀로 끝이 났으니, 저는 먼저 저 오솔길을 따라 클럽하우스로 가겠습니다. 생각도 좀 하면서요. 여러분들은 마저 마무리하고 오십시오”
마크사모는 축 늘어진 어깨로 걸음을 옮겼다.
“여보게 무싸. 자네하고 꽃사슴하고는 스토록 플레이니 끝내고 오게나. 나는 마크사모와 먼저 가겠네.”
“그러게나 벚꽃 흩날리는 오솔길에 둘이서 데이트라도 하며 가시게나.”
꽃비가 내리는 발안CC에 그들의 뒷모습은 처절한 승부사가 아닌 어느새 연인의 모습으로 투영되고 있었다.
나와 꽃사슴이 18홀을 마치고 퍼터를 도우미 언니에게 건넬 무렵 오사장과 마크가 다정한 모습으로 시계탑 아래서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가만히 스코어를 계산해보니 16번 홀까지 오사장이 1언더, 마크사모가 2오바였다. 나와 꽃사슴은 간신히 79, 80으로 마무리했다. 나의 판단으로 오사장도 마크사모도 사실은 너무도 잘 친 게임이었다.
그런데 오사장이 기록한 1언더는 그가 최근 2년사이에 기록한 스코어 중에서는 최고의 스코어였다.
그리고 그의 오늘의 샷은 정말 특별한 것도 무리한 것도 없는 그저 그런 평이한 샷 이었던 반면, 스코어는 아마추어로서 경이로운 1언더를 기록한 것이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水滴穿石)라고 하더니 마크의 욕심이 슬금슬금 바위 같던 마크의 마음을 흔들었구나.
우리는 오사장이 미리 예약해 두었던 시골밥상 집에서 근사한 저녁에 동동주로 하루의 피로를 잊으며 다음 결승전을 기약하였다.
“오사장님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 주시겠습니까?”
“말씀 하십시오.”
“다음 결승전은 하리수 매치 플레이이므로 오늘 우리는 서로 골프채를 바꾸어 가지고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채로 한달간 연습한 뒤 결승전에서 하리수 매치플레이를 하기로 되어 있지요.”
“네 그렇지요.” “저도 수덕사에 제가 모시는 사부님이 계신데 가서 수양 좀 하고 올까 합니다. 그래서 일생일대의 운명을 결정짓는 결승전이니 만큼 좀더 준비할 수 있도록 우리의 결승전을 두 달 후인 6월 중순경에 하였으면 하고 부탁 말씀 드립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정확한 날짜는 부킹되는 대로 알려드리지요.”
시골 밥상 집 처마 밑으로 둥근 초저녁 달이 차오른다.
동동주에 얼큰하게 취한 마크사모의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 달빛에 물드는데………………………..
[제15부]수덕사의 여승 편이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