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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신상담(臥薪嘗膽, 吳越同舟)과 오자서
이 재 익 (2015.2. 소답자한 71호 에서)
때는 중국 춘추시대(BC 770~BC 403) 말기. 주周나라가 천자의 나라로 형식적으로는 중국 전체를 대표하는 나라 이지만 춘추시대에 접에 들면서 주 왕실의 세력은 약화되어 직할지만 겨우 다스릴 정도이고, 지방에서는 유력한 제후들이 분할 점령하여 왕을 칭하고 나라의 형태를 갖춘 군웅활거 시기였다. 주왕실의 권위가 떨어지고 실력과 인망을 갖춘 제후가 패자라 하여,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내세워 각 제후국간의 이해관계와 분쟁을 조정하였다. 춘추시대 제후회의에서 뽑힌 가장 강력한 제후를 패자覇者라고 말한다.
ㅇ 춘추 5패자의 변천은 제의 환공→ 진의 문공→ 초의 장왕→ 오의 부차→ 월의 구천순이다. 춘추시대 마지막 패권을 다투던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 사이에 끼인 인재가 오자서이다. 오와 월은 양자강 이남의 남방에 위치한 나라였다. 오는 양자강 유역에 월은 그보다 더 남쪽인 가장 남방에 위치하였다. '오월동주吳越同舟' 란 원수가 한배를 탔다는 의미다.
* 월왕 구천을 마지막 패자로 춘추시대는 끝나고 전국시대(BC 403~BC 221)로 접어 드는데, 전국시대는 패자시대의 형식적 질서마저도 무너지고 약육강식의 하극상 시대를 맞게 되었다. 각 제후국은 부국강병책을 펴 서로 경쟁하는 시대를 맞게 되었다. 유력한 진, 초, 연, 제, 한, 위, 조 등 전국 7웅시대로 정리가 된다. 결국 전국시대는 진시황의 진나라가 다른 6국을 멸하고 통일을 이루어 통일제국시대로 넘어 간다. 오자서가 초나라에서 망명하여 송, 정나라를 거쳐서 오나라에 정착하기까지 숱한 위기를 겪었다. 위기를 극복한 한 토막을 시를 읊은 시의 감명이 특별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시 ] 어쩔 수 없는 일
문 덕 수
옛날 초楚나라에 오자서伍子胥라는 노인이 있었다. 곡절이 있어서 초나라에서 충성을 하다가 거기에서 탈출할 때 국경 수비병인 봉인封人에게 잡혔다. 나를 쫓아 잡으려고 하는 것은 내가 나라의 보물을 훔쳐서 달아났기 때문이다. 쫓기는 몸이라 당황하여 그 보물을 그만 잃어버렸다. 잡히면 경비병 네가 빼앗아 입에 넣어 삼켜버렸다고 말하겠다. 그 말을 그대로 곧이들은 봉인은 겁이 덜컥 나 부들부들 온몸이 떨렸다. 오자서는 그 틈을 타서 달아나 버렸다. ----------------------- <<문학예술>> 2013 여름호 / <<좋은시 2014>> (삶과 꿈), 116p * 원문에는 줄바꾸기도 없이 붙여 써 놓은 것인데, 시각적 효과를 위해서 임의로 줄을 바꾸고 띄워서 옮겨 썼다.
◆ 오자서(伍子胥)
⊙ 개요
ㅇ 초나라 평왕 태자 건의 태부(수석 스승)는 오사, 소부(보조 스승)는 비무기였다. 비무기의 간계로 진나라에서 맞이한 태자 신부감이 대단한 미인이자 평왕에게 바치고 태자를 모함하였다. 태자는 망명하고 오사와 큰아들 오상은 비무기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오사의 작은 아들 오자서는 오나라로 탈출하였다. 오자서는 오왕 합려를 움직여 초를 쳤다. 오자서는 초의 평왕 무덤을 파헤쳐 시체에 3백번 채찍질하자 오자서의 친구 신포서는 사람을 보내어 오자서가 심하다고 나무랐다. 오자서는 일모도원(日暮途遠 ; 날은 저물고 할 일은 많다)이란 고사성어를 남겼다. 신포서는 진으로 달아나 이레를 통곡하자 진이 도와서 초를 구원하였다.
1) 월왕 구천 → 오 합려를 격파 (합려 전사, 손자 부차에게 유언) 2) 오왕 부차(장작위의 잠 = 와신) → 월왕 구천을 격파 (구천은 회계의 굴욕을 당함) 3) 월왕 구천(쓴 쓸개맛 = 상담) → 오왕 부차를 격파(부차 자결, 오 멸망) 오자서가 오왕 부차에게 월왕 구천을 죽이라고 하였으나 듣지 않고 구천을 용서하였다. 구천은 미녀 서시를 오왕에게 보내고, 오나라 간신 백비에게 뇌물을 주어 오자서를 참소하자 오자서는 자결을 강요당하였다. 오자서 : “반드시 나의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서 오왕 부차의 관을 만들 수 있게 하라. 그리고 나의 눈을 빼내 오나라의 동쪽 문에 걸어두어 월나라 도적들이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보게 하라.” 하면서 죽었다. 후에 오왕 부차는 월왕 구천에게 패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내 오자서를 볼 면목이 없구나 ” 드디어 월왕 구천은 춘추시대 최후의 패자가 되었다.
⊙ 초 평왕의 태자 건의 소부 비무기의 흉계
초 평왕이 진 애공의 누이 맹영을 며느리로 데리고 와 가로챘다. 평왕과 태자 건의 사이를 갈라 놓으려는 태자의 소부 비무기의 흉계 때문이었다. 비무기는 태자를 멀리 변방에 나가 있게 하고 태자가 반란을 꾀한다고 평왕을 충동질하였다. 평왕은 맹영이 낳은 진을 태자로 바꾸고 싶었다. 태자를 잡으러 보내니 태자는 송으로 도망을 가고 태부 오사는 잡혀왔다. 비무기는 태사인 오사의 두 아들까지 제거해 후환을 없애고자 오사에게 아들을 부르는 편지를 쓰도록 강요했다. 큰 아들 상은 와서 아버지 오사와 함께 처형되었고, 작은 아들은 오운은 지혜로와서 오지 않고 태자 건을 모시러 송으로 망명했다. 이 오운의 자가 자서이다, 그래서 오자서로 더 잘 알려졌다.
⊙ 오자서 오나라로 가다.
송에서 오래 있을 형편이 못되어 태자 건을 모시고 오자서는 정나라로 갔다. 태자 건은 진나라의 꼬임에 빠져 정나라를 배신하는 음모를 꾸미다가 발각되어 죽고 오자서는 태자 건의 아들 공자 승을 데리고 오나라로 도망을 하였다. 소관의 국경 관문이 너무 엄하게 오자서를 잡으려고 지키므로 머뭇거렸다. 편작(소문난 명의) 제자 동고공의 의협적인 도움으로 그의 토굴에서 몸을 피하고, 동고공 노인의 친구가 대신 오자서 행세를 해줘서 오자서를 잡았다는 소동이 일어나고 그 사이에 오자서는 빠져나갔다. 5리도 못가서 다시 아는 한 병졸을 만났으나 그 병졸은 보고하지 않아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났다. 한 고깃배 영감의 도움으로 강을 건너 무사히 오에 도착하였다. 신세를 갚으려고 물어도 물에 빠지는 흉내를 하며 "당신은 갈대밭 나는 고기잡이 영감" 으로만 부르기로 하자 하였다. 뒷날 정나라가 위급해지자 영감의 아들이 나타나 오자서에게 부탁하여 정나라를 구했다. 율양에서 빨래터의 한 노처녀게서 밥을 얻어 먹었는데,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자 여인은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강물에 빠져 죽었다. "뒷날 이 못에 천금을 갚으리라" 하고 오자서는 떠났다. 처녀의 어머니가 나타나 돈을 건져 간 것으로 보아 헤엄쳐 나와 살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 오왕 합려
오자서는 오나라 공자 광의 사람이 되었다. 초에서는 평왕이 죽고 맹영 소생 소왕이 즉위하였다. 오왕 왕료에게 초를 치도록 부추기고 심복들이 초를 치러 간 사이에 왕료를 공자 광의 집으로 초청하여 생선구이 밑에 칼을 숨겨 전저로 하여금 왕료를 죽이도록 하였다. 전저도 죽었다. 공자 광이 마침내 임금이 되니 이가 오왕 합려이다. 왕료의 아들 경기가 국경 근처에 웅거하고 있어늘 불안했다.
⊙ 요리가 경기를 죽이다.
요리는 초구흔 이라는 용사를 많은 사람 앞에서 모욕을 준 적이 있다. 초구흔이 요리를 죽이려고 밤에 찾아 왔다. 그를 말로서 설복하니 부끄러워진 초구흔이 스스로 죽었다. 요리는 합려와 약속된 데로 거짓 죄를 짓고 한쪽 팔을 짤리는 형을 받고 도망하여 처자까지 죽음을 당하도록 하고서야 경기에게 접근하였다. 오자서와 내통한 것처럼 꾸며 경기를 유인하여 배 위에서 방심하는 사이에 경기를 창으로 찔러 죽였다, 경기는 죽기 직전에 " 이 사람이 천하의 용사다. 어찌하여 하루 사이에 천하의 용사 둘이 죽 을 수 있다는 말이냐. 부디 죽이지 말고 오나라로 돌아가 그의 충절을 표창받게 하라.! " 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그러나 요리는 "이름을 남기기 위해 처자를 죽인 내가 어찌 부귀를 탐하겠는가" 하고 스스로 목을 쳐서 죽었다. 당시 풍조가 얼마나 생명을 가볍게 여겼는가? 오나라 병법가 손무(손자)는 궁녀들을 두 편으로 갈라 전쟁 훈련을 시켰다. 두 편의 대장인 후궁까지 목을 베어 군율을 세웠다. 손무 오자서는 마침내 오왕 합려를 도와 초의 서울 영도를 함락시켰다. 비빈들을 능욕하고 초평왕의 무덤을 호수 밑에서 찾아 내어, 수은으로 사서 염하여 썩지 않은 시신에 목을 쳐 원수를 갚았다. 오왕 합려는 천하의 패자가 되었다.
◆ 와신상담(臥薪嘗膽)
⊙ 오왕 부차의 와신
오나라 왕 합려가 월나라를 치다가 엄지발가락 부상을 입고 돌아 오는 도중에 죽었다. 손자인 부차가 왕이 되어 내관 열명을 뜰에 세워두고 자신이 지나갈 때 마다 "부차야 너는 할아버지를 죽인 월나라 원수를 잊었느냐?" 라고 큰 소리로 외치게 하고 자신은 장작더미 위에서 잠을 잤다.(와신) 삼년상을 치른 후 부차는 월왕 구천을 쳐서 승리하여 원수를 갚았다. 포위 되어 궁지에 몰린 월은 태재 백비에게 미녀와 뇌물을 주어 멸망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월왕 구천 내외는 오나라의 인질이 되어 갖은 수모를 당하였다. 부차는 백비의 말만 듣고 오자서의 말은 듣지 않았다. 구천을 돌집에 가두고 말 관리 일을 시켰다. 부차가 멀리서 바라보니 구천과 부인, 범려가 군신 부부 사이의 예절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오자서는 구천을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천은 오자서로 인해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불안이 계속되었다. 구천은 범려가 시키는대로 부차가 병이나자 문병하고 부차의 똥맛을 본 후에 쾌차 할 것이라고 위문하였다. 부차가 쾌차하자 감동하여 구천을 월나라로 돌려보냈다. 부차는 쓸개를 수없이 핥으며 절치부심 힘을 길렀다.(구천의 상담) 20년 후 월왕 구천은 드디어 오를 멸하였고 부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월왕 구천의 상담
구천은 인구 증가 정책을 썼다. 다음은 근검절약정책을 썼다. 왕후도 길쌈을 했다. 7년동안 세금을 걷지 않았다. 사치품은 오에 보내 사치를 조장하고 좋은 재목을 보내 화려한 집을 짓게하여 국고를 낭비하고 백성을 부역에 시달리게 하였다. 서시와 정단이라는 미인을 부차에게 보내고, 오의 간신과 손잡아 충신을 멀리하게 하였다. 10년만에 월은 인구가 배로 늘고 부강해졌다.
부차는 오자서의 반대를 물리치고 해마다 중원을 침범하였다. 오자서의 직간으로 월의 실정도 탐지했지만 그 때마다 백비가 무마시켰다. 오자서는 백비의 모함으로 부차의 노여움을 싸서 자살하였다. 부차가 대군을 이끌고 제나라 진나라와 싸우러 간 사이에 월나라가 오를 쳐서 서울을 함락시키니 부차의 태자가 자결하였다. 부차군이 돌아 왔으나 역시 패하였다. 화친하고 월군은 돌아갔지만 5년 후에 마침내 오를 멸망시켰다. 오 사신이 7번이나 화친을 위해 애를 썼지만 범려와 문종이 끝내 반대하고 듣지 않아서 부차는 스스로 자결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충신 오자서를 자결하게 하였으니 나 또한 스스로 죽어 마땅하다. 내가 죽어 오자서를 볼 낯이 없으니 내가 죽거든 두꺼운 비단 세폭으로 내 얼굴을 가려달라." 구천은 오나라의 간신 백비도 죽이며 "내 이로서 오자서의 원수를 대신 갚아주노라" 하였다. 나라를 팔아 영광을 누리려는 무리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월왕 구천이 제후들을 서주에 모아 호령하니 주는 구천을 동방의 백주로 명하였다. 오나라 땅을 초, 노, 송에게도 조금씩 나눠줘 환심을 샀다. 구천은 오의 왕궁으로 가서 잔치를 벌렸으나 즐거운 빛이 아니었다. 오늘이 있게한 것은 자기가 아니라 범려와 문종이었던 것이다. 범려는 금은 보화를 싣고 문종에게 글을 남기며 떠나서 은둔하였다. "월왕은 목이 길고 까마귀 부리라서 욕된 것은 잘 참으나 남의 공을 시기하는 성격이다. 그러므로 어려움을 같이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다. 자네도 지금 빨리 떠나지 않으면 화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종이 결단을 내지 못하고 엉거주춤 하는 사이에 과연 얼마 뒤 문종은 구천의 시기로 죄없이 자결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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