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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 테이블, 저 거리, 저 사람들, 나의 담뱃갑을 어떻게 보는가를 써야만 한다. 왜냐하면 변한 것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 변화의 범위와 성질을 정확하게 결정지을 필요가 있다. p. 11
* 그 모든 것이 물체에 관한 변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그것이 내가 확실히 알고 싶은 점이다. p. 13
* 지난 몇 주일 동안에 무슨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 그것은 아무 곳에도 근거를 두지 않은 추상적 변화이다. 내가 변한 것일까? 내가 변하지 않았다면 이 방이, 이 도시가, 이 자연이 변한 것이다. 그 중의 어느 쪽인가를 가려내야 한다.
변한 것은 나인 것 같다. 그것이 가장 손쉬운 해결이다. 그것은 또한 가장 불쾌한 해결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국은 내가 그 갑작스런 변동에 지배되고 있다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사실인즉, 나는 생각을 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자질구레한 변형(變形)이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의 내부에서 축적되어 그 어느 날, 정말 혁명 같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p. 16
* 나의 정열은 사라져버렸다. 그 정열은 몇 년 동안 나를 뒤덮어 휘몰아왔던 것이다. 이제 나 자신이 텅 빈 것 같다. p. 18
* 나는 혼자서, 철저히 혼자서 살고 있다. 절대로 아무에게나 말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받지 않고,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p. 20
* 지금은 누구의 생각도 하지 않는다. 말마디를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말은 내 마음속에서 다소간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붙잡으려 하지 않고 가만히 놓아둔다. 나의 사고는 대개의 경우, 말에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안개처럼 머물러 있다. p. 21
* 사람이 혼자 살고 있을 때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른다. ……고독한 사람은 사건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 사람들이 훌쩍 나타나서는 지껄이다가 가버리는 것이 보인다. ……카페에서는 아무도 믿을 것 같지 않은 일을 혼자 사는 사람은 틀림없이 보게 된다. ……외로운 사나이는 웃고 싶은 일이 드물다. p. 21-22
* 다시 발길을 돌릴 수 없을 만큼 나는 고독의 길을 너무 먼 곳까지 와버렸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p. 23
* ……그가 머릿속에 게나 새우가 가지고 있는 고독한 생각을 품고 있다……. p. 24
* 무릇 물체들, 그것들이 사람을 '만져'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사용하고, 그것을 정리하고, 그 틈에서 살고 있다. 그것들은 유용하다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나를 만지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다. 마치 그것들이 살아 있는 짐승들인 것처럼 그 물체들과 접촉을 갖는 게 나는 두렵다. 이제 생각이 난다. 지난날 내가 바닷가에서 그 조약돌을 손에 들고 있었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이제 잘 생각이 난다. 그것은 시큼한 일종의 구토증이었다. 그 얼마나 불쾌한 것이었던가! 그것은 그 조약돌 탓이었다. 확실하다. 그것은 조약돌에서 손아귀로 옮겨졌다. 그렇다. 그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손아귀에 담긴 일종의 구토증. p. 28
* 오후 3시, 3시다. 이 시간은 무엇을 하려고 해도 항상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시각이다. 오후의 어정쩡한 시간. p. 33
* 벽에 흰 구멍이 있다. 거울이다. p. 37
* 별로 하는 일이 없는 날이면, 가끔 나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 얼굴에서 나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다. 남의 얼굴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내 얼굴에는 그것이 없다. p. 37
* 사람이 자기의 얼굴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게 아닐까? 아니면, 내가 나의 얼굴을 알 수 없는 것은 내가 고독한 사람이기 때문일까? 남과 교제하고 있는 사람들은 거울 속에서 사람들 눈에 띄는 자기의 모습을 찾아내는 것을 배운다. p. 40
* 나는 그것을 느끼고 있다. 고약한 그 구토를. 그리고 이번에는 새롭다. 나는 그것을 카페에서 느꼈다. ... 마들렌이 둥실둥실 걸어와서 나의 외투를 벗겼다. 그 여자는 머리를 뒤로 모아서 땋고 귀걸이를 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여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귀 쪽으로 한없이 흘러내려간 커다란 볼을 바라보았다. 광대뼈 밑의 파여진 곳에, 그 초라한 살에 싫증이 난 듯 보이는 두 개의 빨간 점이 상당한 거리를 두고 찍혀 있었다. 볼이 귀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마들렌은 웃고 있었다.
"무엇을 드시겠어요, 앙투앙 씨?"
그때 '구토'가 치밀었다. 나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내 둘레에 여러 가지 색채가 천천히 도는 것을 나는 보고 있었다. 나는 토하고 싶었다. 그렇다. 그때부터 '구토'가 나를 떠나지 않는다. 그것이 나를 붙들고 있다. ... (카페 주인 여자의) 사촌 아돌프는 눈이 없다. 그의 부풀어서 솟구쳐 올라간 속눈썹이 꼭 눈의 흰자위 위에 걸려 있다. 그는 잠자는 모습으로 미소한다. 가끔 그는 꿈을 꾸고 있는 개처럼 대채기를 하고, 소리를 지르고 발딱거린다.
그의 푸른 무명 셔츠는 초콜릿색 벽 위에 즐겁게 아로새겨져 있다. 그것도 역시 '구토'를 느끼게 한다. 차라리 그것이 바로 '구토'이다. '구토'는 나의 내부에 있지 않다. 나는 '거기에서', 벽 위나 멜빵에서, 그리고 온갖 내 주위에서 그 '구토'를 느낀다. 그것은 카페와 일체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그 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p. 41-4
* ‘구토’는 나의 내부에 있지 않다. 나는 ‘거기에서’, 벽 위나 멜빵에서, 그리고 온갖 내 주위에서 그 ‘구토’를 느낀다. p. 43
* 나는 바다를 건넜다. 많은 도시들을 뒤에 두고 떠났다. 또 강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숲속 깊숙이 들어갔다. 그리고는 늘 다른 도시로 향했다. 나에게는 여자가 많았다. 여러 놈들과 싸움도 했다. 그러나 결코 뒤로 물러나지 못했다. 레코드 판이 거꾸로 돌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나를 어디로 이끌어 갔던가? 지금 이 순간, 이 의자 위, 음악이 쩡쩡 울리는 이 광명의 거품 속이다. 50p
* 현재를 가지고 갖가지 추억을 만들어 낸다. 현재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다가 현재 속으로 빠져 버린다. 과거와 합세하려 하나 허사이다. 나는 현재에서 도피할 수가 없다. 68-9p
* 비록 내가 죽을 뻔했든, 재산을 잃었든, 친구를 잃었든간에 나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같은 환경에서 다시 살아보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p. 77
* 만약 ‘내 자신의 삶’이 멜로디의 소재가 되었다면 무슨 절정엔들 도달하지 못하겠는가. p. 77
* 인간이 살고 있을 때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배경이 바뀌고, 여러 사람이 들어왔다가 나가고…. 그뿐이다. 결코, 출발이라는 게 없다. 나날이 아무런 운율도, 이유도 없이 나날에 덮친다. 그것은 끊임없고 단조로운 덧셈이다. p. 79
* ‘1922년 가을의 어느 아름다운 저녁때였다. 나는 그 당시 마롬의 공증인의 서기를 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은 시초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결말부터 시작하고 있다. 결말이 눈에는 안 보이지만 거기에 있으며, 그 말에다가 시초로서의 장엄함과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p. 80
* 아침에 나는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집을 나와서 습관대로 거리를 다녔다.『외제니 그랑데』를 가지고 나왔다. 그러다가 공원의 쇠울타리를 밀었을 때 갑자기 나는 그 무엇이 나에게 신호를 한 것처럼 느꼈다. 공원에는 인기척이 없고,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공원은 여느 때와는 달라서 나에게 미소를 짓고 있는 듯했다. 나는 잠시 동안 울타리에 기대어 있다가 문득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경쾌한 미소와도 같이 일요일은 나무들 위에, 잔디밭 위에 있었다. 쉽게 묘사될 수 없는 노릇이어서 ‘여기는 공원이다. 겨울날 일요일 아침’이라고 빨리 말해 봤어야 했다. p. 82
* 진짜 귀부인들은 물건값 같은 것을 알지 못하고 엄청나게 어리석은 짓을 잘한다. p. 91
* 엘도라도 영화관의 종소리가 맑은 공기를 뚫고 울려오고 있었다. 대낮의 이 소리는 일요일의 정다운 소리이다. 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초록색 벽을 따라 줄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즐거운 어둠 속에서의 시간, 휴식과 방심의 시간, 물밑에서 반짝이는 하얀 조각돌 같은 스크린이 그들을 위하여 말하고 꿈꿀 것인 그 시간을 열심히 기다리고 있다. 헛된 욕망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그 무엇이 오그라든 채로 남게 될 것이다. 즐거운 일요일이 망쳐지지나 않을까? 그들은 너무나 걱정하고 있다. 곧 매번 일요일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실망할 것이었다. 영화가 시시할지도 모르고, 옆에 앉은 사람이 파이프 담배를 피울지도 모를 일이고, 제 무릎 사이에 가래침을 뱉을 수도 있는 노릇이며, 그렇지 않으면 뤼시앵이 아주 불쾌할지도 모르고, 한마디도 친절한 말을 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는 공교롭게도, 하필이면 오늘 모처럼 영화를 보러 왔는데 늑간신경통이 도질지도 모른다. 잠시 후 매주 일요일과 마찬가지로 말없는 조그마한 분노가 어두운 관람석에서 증대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p. 99-100
* 문학을 경계해야 한다. 말을 고르지 않고 붓 가는 대로 써야 한다. p. 109
* 층계를 내려가고 있을 때 주인 여자가 나를 불렀다.
"편지가 와 있어요."
...안니의 소식을 모른 지 5년째이다. 편지는 파리의 전 주소로 갔나 보다. 2월 1일 도장이 찍혀 있었다. 116p
* 그 편지를 받은 후로 일이 안 된다. 118p
* 의사, 신부, 법관, 그리고 장교들은 마치 그들이 인간을 만들기나 한 것처럼 인간을 알고 있다. p. 130
* 오늘의 세계가 내일의 세계와 비슷한 것은 게으르기 때문인 것 같다. 오늘이야말로 변화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모든 것’, ‘모든 것’이 일어날 수 있었다. p. 147
* 나는 더 이상 로르봉에 대한 책을 쓰지 않고 있다. 마지막이다. 더 이상 그것을 쓸 수가 없다. ...
"나 자신의 과거조차도 기억할 힘이 없었던 내가 타인의 과거를 구제할 수 있기를 바랄 수 있을까?" p. 178-79
* 생각하는 것을 단념할 수 있다면…! p. 186
* 나는 걱정거리가 없다. 연금 생활하는 사람처럼 돈은 있으나 윗사람도 없고, 아내와 자식도 없다. 나는 존재한다. 그뿐이다. p. 198)
* 독서광이 조심스럽게 말한다.
"우리는 여기에 있고 우리라는 귀중한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먹거나 마시고 있지만, 존재하는 데는 어떠한 이유도 전혀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p. 209
* 나는 떠나가고 싶다. 어디든지 정말 '나의 자리'라고 할 수 있는 그 속에 나를 집어넣을 수 있는 그런 곳으로 가고 싶다. ...... 그러나 내 자리는 아무 데도 없다. 나는 여분의 존재이다. p. 228
* 인간들을 사랑해야 한다. 인간들은 훌륭하다. 나는 토하고 싶다. ㅡ갑자기 왔다. '구토'이다. p. 228
* 나는 이름붙일 수 없는 ‘사물들’의 한복판에 있다. 혼자서 말없이, 아무 방비 없는 나를 사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밑에서, 뒤에서, 위에서 나를 에워싸고 있다. 사물들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강요하지 않는다. 거기에 있을 뿐이다. p. 235
* 어휘가 사라지자 그것과 함께 사물의 의의며, 그것들의 사용법이며, 또 그 사물의 표면에 사람이 그려놓은 가냘픈 기호가 사라졌다. p. 237
* 만약에 존재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누가 나에게 물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외부로부터 와서 사물의 성질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한 채로 부가되는 공허한 형체일뿐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젠 달라져버린 것이다. 갑자기 그것은 거기에 있었다. 대낮처럼 분명했다. 존재가 갑자기 탈을 벗은 것이다. p. 238
* 존재는 하나의 흐느적거림이다. p. 239
* ‘나 역시 여분의 존재였다.’ ……그 여분의 존재를 최소한 하나라도 말소시키기 위해서 자살이나 할까 막연히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나의 죽음 자체가 여분이었을 것이다. 나의 시체도, 그 미소하는 정원 깊숙이, 이 조약돌 위, 풀 사이에 흐를 피도 여분이다. 그리고 썩은 육체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땅속에서도 여분의 것이며, 또 깨끗이 씻기고, 껍질이 벗겨지고, 이빨처럼 깨끗하고 청결한 나의 뼈도 여분의 것이었으리라. 나는 영원히 여분의 존재였다. p. 240
* '부조리'라는 말이 지금 나의 펜 아래에서 태어난다. 조금 전에, 공원에 있었을 때 나는 그 말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 말을 찾지도 않았다. 말이 필요 없었다. 나는 말없이 사물을 가지고 사물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부조리, 그것은 나의 머릿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관념도 아니고, 어렴풋한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발밑에서 죽은 기다란 뱀, 저 나무의 뱀이었다. 뱀이랄까, 손톱이랄까. 또는 매의 발톱이랄까, 아무 상관은 없다. 그리고 전혀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고, 나는 존재의 열쇠를, 저 구토의 열쇠를, 그리고 나 자신의 생활의 열쇠를 발견했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내가 이어서 파악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은 이 근본적인 부조리로 귀착한다. p. 241
* 존재란 단순히 '거기에 있다'는 것뿐이다. p. 245
* 나는 결심했다. 나는 더 이상 책을 쓰지 않을 것이므로 부빌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 파리에 가서 살아야겠다. 금요일 5시 차를 타야겠다. 토요일에는 안니를 만날 것이다. 253p
* 아마 10년 후에나 다시 볼 수 있으리라.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른다. 나는 단지 안니와 헤어진다는 사실 때문에 기가 죽은 것은 아니다. 나의 고독을 되찾는다는 사실이 두렵다. p. 286
* 내 주위의 모든 물체들은 나와 같은 존재, 즉 일종의 비참한 고통으로 만들어져 있다. p. 323
* 무슨 일을 내가 해볼 수 있을 것인가... 한 권의 소설, 그 소설을 읽고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그것을 쓴 사람은 앙투안 로캉탱이다. 그는 카페에 번들번들 드나들던 머리칼이 붉은 놈이었다."라고... 329-30p
(이상에서 - -p의 형식은 추가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