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필름
김채영
그들의 매장
식구가 둘이나 늘었다. 어느 늦은 가을날이었다. 아무리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라 하지만 나는 매우 질색을 했다. 누구에게 가져다주라고 소리를 치며 딸에게 몰아붙였다. 딸은 그날 남자 친구와 기분 좋게 데이트를 하고 선물을 받은 처지여서, 제방에서 키우겠다고 말대꾸를 하며 방문을 쾅! 닫았다. 나는 그들의 존재만으로 분통이 골머리가 지근거리는데 딸의 얼굴에는 활기가 찾다. 애기들아, 엄마 빨리 올게. 이러면서 외출을 했다.
딸의 방을 들여다보았다. 지우개보다 작은 꼬마거북이 두 마리가 어항에서 나 잡아봐라 하는 듯 빠르게 헤엄치며 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거북이를 최대한 축소시킨 것처럼 똑같이 닮아있었다. 나는 파충류를 끔찍이 싫어했다. 퀴퀴한 낯선 냄새가 이질적으로 공기층에 스며든 것 같았다. 딸은 꼬마거북이를 며칠에 한번 목욕시켰고 , 맑은 물로 어항을 갈아주었다. 내가 트집을 잡을 이유를 잃었다. 딸은 외출도 줄이고 꼬마거북이와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거북이에게 좋은 사료를 시켰고 영양제도 사다 먹였다.
겨울이 깊어가자, 파랗게 질린 딸애가 거실로 나왔다. 아침에 목욕시킬 때 멀쩡하던 거북이 한 마리가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었다. 눈물을 찔끔거리며 제 아빠에게 매장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앞서 한 마리보다 약해 죽은 거북이에게 비실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게 후회가 된다며 예쁜 천에 꼭꼭 싸서 화단으로 내려갔다. 제 아빠는 꽃삽을 들고 앞서 내려가고, 울먹이며 거북이의 시신을 품에 안은 딸은 뒤따라갔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홀로된 거북이에게 짝을 지어주고 싶다는 열망에 빠졌다. 허나 꼬마거북이가 금방 죽었는데 의리상 그들에게 두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재혼의 택일까지 계산해두었다.
두 달이 가까워지자 남은 꼬마거북이마저 돌연하게 사망했다. 따라서 팔팔 거리는 건강한 여자 거북이를 어항에 합사시키는 상상을 하던 딸의 작은 소망이 산산 조각이 났다. 정주고 사랑주고 꿈도 주며 여러 달을 키웠는데, 거북이들의 연이은 사망은 딸에게 충격과 커다란 슬픔을 주었다. 전에 그랬듯이 천으로 싼 꼬마거북이를 거기에 맞는 곽으로 관삼아 넣고 지난번 죽었던 거북이 옆에 묻었다. 오동나무와 목련나무 사이에 나무로 만든 조그만 십자가를 꽂아주었다. 그로서 신성한 장례식은 끝이 났다. 봄이 되면 그들의 매장은 거름이 되어 나무를 예쁘게 키워주겠지.
관심이 없었던 나는 꼬마거북이가 왜 죽었지 하는 의문이 꼬리를 이었다. 단 한번이라도 내가 목욕을 시키거나 사료를 준적이 없으니. 더구나 그들에게 뭐가 필요한지 몇 도의 물로 목욕을 시키는지 지식도 없었다. 어쩐지 그들이 자연사한 것 같지 않은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 내가 분명하게 말해줄 부분이 있었건만 딸이 꼬마거북이를 키우는 데 자신감을 보여주었기에 안심했었다.
그들의 매장이 몇 년 지난 뒤 나는 딸에게 은근하게 물어보았다. 목욕을 시킬 때 너무 뜨거운 물로 씻기지 않았는지 등등을. 딸은 겨울이라서 추울까봐 뜨거운 물로 씻기고 가끔 냄새가 나지 않도록 칫솔까지 써서 박박 닦아주었다고 했다. 딸의 부지런한 사랑은 이해하지만, 조그만 거북이들에게 목욕은 고문이었을 것이다. 거북이들의 입장에서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고 죽는 날까지 화상에 의한 억울한 매장이었을 것이었다. 일련의 사건으로 지나친 사랑은 고문이라는 것을 딸은 뉘우쳤을 것도 같았다.
고전적 주막
겨울이면, 특히 눈이 오는 밤이면, 톱밥에 성냥을 그어댄 듯한 따스한 기억이 떠오른다. 십 수 년 전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그날 가로등에 투사된 눈길의 반짝임은 은사를 뿌린 비단길처럼 고왔다. 그들과 사계절을 함께 보냈지만 유난하게 그 겨울의 기억이 선명한 것은 추운 날 입김으로 서로의 손을 불어주던 훈기 덕분일 것 같다. 문학모임에 들어가 행사도 하고 글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유독 두 남자 후배와의 시간이 다붓했고 진실했다. 함께 지낸 시간만큼 정도 깊이 들었다.
그들에게는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겨울이면 가까운 곳에서 먼 곳까지 특별하게 맛이 있는 순대국밥 집을 찾아다니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먼저 맛을 보고 만족하면 나를 데려갔다. 다소 허술하지만 순대국밥을 좋아하는 매니아들만 드나든다는 그런 곳과, 맛 집이라면 할머니가 혼자 사는 외딴 집을 택시타고 발품 팔아서 그들은 꼭 가야 했다. 그에 대한 집착과 유별난 맹신은 대전 시내의 내로라하는 순대국밥 집과 자신들이 찾아낸 국밥집을 섞어 지도로 대대손손 남길 정도로 결기가 대단했다. 내가 보기엔 별 차이가 없었다.
한번은 그들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동네에 신기하고 맛있는 음식점이 있다고 나오라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뒷골목은 주택가였다. 내가 사는 동네기에 술집이나 음식점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작은 시장은 이미 철시했다. 그들은 하얀 어둠 속에 까만 실루엣을 보여주었다. A는 손을 번쩍 들고 나를 맞이했다.
“누님, 여기야! 여기. 아주 기가 막힌 곳이지.”
A는 친누나처럼 나를 무척 따랐고, B는 A의 베프이며 같은 모임이니까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A는 어느 가정집으로 나를 안내했고. B는 안에 있는 것 같다. 거실의 유리문을 열자 왁자한 소리와 함께 상당한 괴리에 빠졌다. 간판이나 번지수도 걸리지 않은 그 집은 거실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님들이 대화를 나누며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데, 주방에서 옥 장판을 깔고 누운 세분의 할머니들은 뭔가. 옛날 밍크담요 사이로 빨간 엑스란 내의가 보였다. 마치 자기들 방인 것처럼 도란도란 얘기에 빠졌다. 얼핏 손님과 할머니들 사이로 이질감이 보였으나 착각이었다. 서로 눈치를 보거나 관심도 없었다.
“누나, 나는 이런 집이 좋아. 옛날 우리 집 같고 할머니들이 참, 당당하잖아. 여기는 막걸리 값보다 조금 더 받고 안주들은 모두 무료야. 그리고 안주들은 매일매일 할머니 마음대로 바뀌지. 여긴 단골들만 와. 손님이 쏠쏠하게 온다니까.”
그러고 보니 대문안쪽으로 숱한 항아리들이 옹기종기 눈을 맞고 있던 게 생각났다. 김치찌개에 돼지고기 기름기가 살짝 배어들어 자글자글 끓고 있었다. 방풍 장아찌, 굴비무침, 버섯무침, 도라지 고추장 장아찌 등 반찬수가 10가지도 넘었다. 나도 호기심을 거두고 외가 생각을 했다. 언제나 찌개나 국 하나만 끓이면 잔칫집 같던 밑반찬. 외숙모가 돌아가셨으니 골목 밥집에서 그 정취를 되찾게 했다. 창밖으로 눈송이가 꽃처럼 활짝 피어 낙화하고 있었다. 갑자기 안방에 불이 켜지면서 난닝구와 쫄바지 차림의 할아버지가 나와 주방의 할머니를 향해 뭐라고 버럭거렸다. 쫄바지가 다소 민망했지만 손님들은 여기저기 그 재미에 킥킥거렸다.
“영감, 써빙해주실라고 그래요? 안 그래도 여기 일할 형님들 많아요. 들어가소”
“아이, 씨부엉! 이 여편네가 누구 약 올리나? 안방 보일러 고치라고 한지가, 내가 어디 가서 얼어 죽기를 바래? 돈에 미쳐 장사하느라고 작은 방까지 내주고 서방 얼려 죽였다는 소리 듣고 살래?”
“하루만 참으소. 전기장판 뜨시게 켜시고요. 낼은 꼭 보일러 고칠 거예요.”
안방의 불이 꺼지자 손님들이 어허허, 웃었다. 거실 바닥을 치면서 웃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A와 B는 반찬이 입에 착착 붙는다며 만족해했다. 할머니들의 손맛과 나물과 장아찌가 주는 고전적인 담백함이 어우러져 있었다. 막걸리가 떨어지자 주인 할머니는 동태찌개와 게장, 부추부침 등의 빈 그릇을 빼고 한상을 다시 채웠다. 중년 남녀 손님들이 빠지자 젊은 청년들이 몰려왔다. 서로 인사를 하면서 안부를 묻는 것을 보니 단골인 것 같다. 고전적 주막은 활기차고 인정이 넘치는 곳이었다. 나는 그 후에도 그들과의 동맹에 대한 믿음으로 확신에 차 있었다. 눈이 무릎까지 쌓여도 고전적 주막을 찾아가길 기대했었다. 허나 서로가 바빴던지 한 동안 그들과 만나지 못했다. 궁금하던 찰나 A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홀어머니 사시는 시골과 가까운 곳으로 전근을 갔다고 쓸쓸하게 말했다. 그 씁쓸함이 내 가슴까지 전해졌다. 우리는 어떤 기약이나 약속을 하지 않았다. B와도 데면데면해졌다. 그게 인연의 마지막이었다.
이제는 겨울에도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다. 나는 황무한 창밖을 내다보다가 고전적인 주막 풍경을 옮겨놓았다. 술자리에서 서로가 깡촌 출신이라고 우기던 A와 B가 보이고 나의 웃는 모습도 보인다. 장독대와 마당은 영원처럼 눈이 소복소복 쌓여갔다.
김채영
대전 출생, 수필가. 1990년 여성동아 논픽션 대상,
1996년 현대그룹 문학상 대상, 1996년 청구문학상 수필부문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