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돔의 긴 좌절, 황령산에 개발의 횃불을 밝힐 수 있을까? - ⑦
천신만고 끝에 완성한 스키돔 9개월 만에 부도
<지난 호 요약> 스키돔 추진을 약속했던 부산시장은 환경단체와 언론의 부정적인 반응에 신중 모드로 돌아섰다. 언론토론, 설문조사 등을 통해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된 것 같은데, 부산시는 1년 반이 지나도록 도시계획사업 기한만 연장하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허가 취소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부정적인 분위기가 누그러지면 사업허가가 나올 것 같았지만 사업자의 투자 비용은 나날이 늘어갔다. 결국 사업자는 2002년 12월 부산시의 허가를 강제하는 소송을 제기하여 1심인 행정심판에서 승소했지만….
사업자가 행정심판에서 승소하자 시장은 괘씸죄를 적용한 듯 스키돔 추진의 타당성 용역발주 등을 핑계로 다시 시간을 끌며 허가를 미루었다. 그 무렵 중대한 상황 변화가 일어났다. 2003년 10월 시장이 수뢰죄로 구속됐고 2004년 2월 초 구치소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구치소로 찾아온 부산시 간부들에게 시정의 중요사항들을 당부했는데 그중에는 스키돔의 조속한 추진도 들어있었다고 한다.
2004년 6월 보궐선거로 H 시장이 신임시장에 당선되자마자 바로 스키돔 사업허가를 내주었으니 사업 제안 이후 허가에만 4년 반이 걸렸던 셈이다. 허가를 내주고도 부산시 공무원들의 사업자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는 계속되었다. 이미 환경을 파괴하는 업체로 여론의 미운 털이 박힌 터라 부산시 공무원들은 관련 허가서류에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또한 공사 과정에서 시공업체와 갈등이 일어나고 주민들의 민원이 들어와도 방관만 할 뿐이었고, 사업자에게 기존 도로 확장과 우회도로 개설 등의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등 사업자로선 어렵고 힘든 분위기에서 공사를 추진해야 했다.
결국 본격적인 공사는 허가서류 제출 후 1년이 더 지나 시작되었고, 2년의 공사 끝에 2007년 8월에야 스키돔이 완성되어 영업을 시작했다. 황령산 중턱에 지어진 황금색의 스키돔 건물은 그런대로 멋있었다. 비록 150m의 짧은 거리지만 한여름에도 스키를 즐길 수 있었고, 특히 초보자와 어린 학생들은 손쉽게 스키를 배울 수 있었다. 스키돔은 눈을 볼 수 없는 부산에서 사계절 스키를 즐길 수 있는 관광 핫 플레이스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국내외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게다가 스키돔 내부에는 스키복 및 스키 장비 대여점, 목욕탕, 다양한 식당들과 카페가 있어 많은 일자리도 창출한 셈이었다.
그러나 구상으로부터 준공까지 7년 반이 걸린 사업은 당초 예상했던 공사비가 급증하고 외자유치 위약금, 누적된 경비와 이자 부담 등으로 인해 부도 위기를 잉태하고 있었다. 사업자는 그동안의 손실을 감안하여 스키돔 안의 각종 사업장을 대대적으로 선분양해 공사 및 운영자금을 충당했다. 다소 과장된 분양광고와 턱없이 비싼 분양가에도 불구하고 장밋빛 전망에 기댄 분양신청자들이 240명이나 몰려들었지만, 막상 완공 단계에 이르자 많은 수분양자들이 잔금 납부와 입점을 미루는 바람에 사업자의 자금 압박이 가중되었다.
결국 사업자는 월 7억에 이르는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영업 개시 9개월만에 부도를 맞았다. 사업체 대표인 H 사장마저 투자처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수분양자들의 원성을 뒤로 하고 2008년 5월 말 독일로 출국함으로써 스키돔 사태는 해결의 주체가 없는 최악의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분노한 분양피해자들은 시청에 몰려와 농성을 벌였고 이 일은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했다. 사실 H 사장은 자신의 투자금 130억을 날린 가장 큰 피해자였지만 허위 과장광고로 분양 피해자를 만들어낸 경제사범이 되어 지명수배를 당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만약 부산시에서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 허가를 내주고 적극적으로 행정 지원을 했더라면 스키돔은 부산 관광의 핫플레이스로 지금도 명성을 날릴 수 있지 않았을까? 설혹 부도가 나더라도 그렇게 심한 후유증은 없지 않았을까? 어차피 내줄 허가를 눈치 보며 신속하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 부산시장의 무능과 무책임이 이런 엄청난 피해를 가져온 것이다.
(계속)
/ 김영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