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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②:001 옥황상제님께서 1917년 아침에 초패왕(楚覇王) 항적(項籍)의 고향인 강동지방 절강성 회계의 여관에 머무시니 이날 새벽에 구천상제님께서 명하시기를『이제 나의 도수에 따른 그대의 대중화 보은(報恩) 공사가 끝났으니 본가로 돌아가서 다시 나의 명교에 따라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도통의 연맥(連脈)과 인계(人界)의 인연을 다지도록 하라.
이 곧 득도이니라.』하시니라.
②:002 이어『이 글은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건질 주문이니 잘 기억하라.』하시며 다음의 두 주문을 외어주시므로 암기하시고 즉일 돌아오시니라.
『기도주(祈禱呪)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지기금지 원위대강(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至氣今至 願爲大降』
『태을주(太乙呪)
훔치 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 도래 훔리함리 사바아(太乙天上元君 훔리치耶 都來 훔리喊리 娑婆아』
②:003 10여일 후에 본댁에 돌아오셔서 공부를 속행하시며 근 2개월간 외출도 않으시고 경건한 마음으로 구천상제의 명을 기다리시니라.
②:004 이해 2월 6일 새벽에 공부하시던 중 구천상제님의 계시를 받드시고 즉일로 여동생 봉귀와 사촌동생 길룡을 거느리시고 노고산에서 3일간 목욕재계 하시며 많은 음식을 장만하셔서 계시에 따른 득도치성(得道致誠)을 올리시니 이날이 도기 9년, 1917년 2월 10일 양력 4월 1일 계유(癸酉)이고 시각은 계축시(癸丑時)니라.
②:005 이튿날 축시(새벽 1시30분 부터 3시30분 사이) 기도시 구천상제님께서 나타나셔서 계시하시기를『그대가 이제 득도하므로써 인계(人界)에서의 나의 도통을 다졌으니 기쁘도다.』하시니라.
②:006 이어 다음의 주문을 외어주시니라.
『운장주(雲長呪)
천하영웅 관운장 의막처 근청천지 팔위제장 육정육갑 육병육을 소솔제장 일별병영 사귀 음음 급급 여율령 사바아(天下英雄 關雲長 依幕處 謹請天地 八位諸將 六丁六甲 六丙六乙 所率諸將 一別兵營 邪鬼 唵唵 急急 如律令 娑婆아』
『칠성주(七星呪)
칠성여래대제군 북두구신 증천대신 상조금궐 하부곤륜 조리강기 통제건곤 대괴탐랑 문곡거문
녹존염정 무곡파군 조보우필 고상옥황 자미제군 대주천제 세입미진 하재불멸 하복부진 원황정기 내합아신 천강소지 주야상륜 속거소인 호도구령 원견존의 영보장생 삼태허정 육순곡생 생아양아 호아형아 허신형 괴작관행 필보표 존제 급급 여율령(七星如來大帝君 北斗九辰 中天大神 上朝金闕 下覆崑崙 調理綱紀 統制乾坤 大魁貪狼 文曲巨門 祿存廉貞 武曲破軍 左輔右弼 高上玉皇 紫微帝君 大周天際 細入微塵 何災不滅 何福不臻 元皇正氣 來合我身 天강所指 晝夜常輪 俗居小人 好道求靈 願見尊儀 永保長生 三台虛精 六淳曲生 生我養我 護我形我 虛身形 魁작관행 필보표 尊帝 急急 如律令)』
『오주(五呪)
시천주 가가장세 일월일월 만사지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복록성경신 수명성경신 지기금지 원위대강 명덕관음 팔음팔양 지기금지 원위대강 명덕관음 팔음팔양 지기금지 원위대강 삼계해마 대제신위 원진천존 관성제군(侍天主 家家長世 日月日月 萬事知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福祿誠敬信 壽命誠敬信 至氣今至 願爲大降 明德觀音 八陰八陽 至氣今至 願爲大降 明德觀音 八陰八陽 至氣今至 願僞大降 三界解魔 大帝神位 願 天尊 關聖帝君)』
②:007 상제님께서 여동생과 길룡을 거느리시고 노고산에서 공부에 정진하시더니 공부 7일만에 길룡이 문득 개안하여 정신을 집중하면 혜안이열려 과거,현재,미래를 통찰할 수 있고 신통력이 생겨 하려는 일은 다 할 수 있다하며 기뻐하니라.
상제님께서 시험으로 그 법신을 본댁에 보내셔서 왕대부인이 냉수에 급체하심을 치유하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이것이 개안임에 틀림없으나 대도의 도통은 아니니 기뻐하지 말라.
신통력은 함부로 사용하면 화를 자초하느니 오직 수도에만 전념하라.』하시니라.
②:008 3월 초에 상제님께서 본가에 계실 때 용인사람 오석, 김혁이 찾아와 뵈니라.
그는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구국독립 운동에 활약하는 분으로서 도장께 친분이 두터운 동지인데 독립군 자금모집책으로 자주 순회하면서 도장댁에는 매년 정초에 들르더니 금년에는 국내에 자금을 모집하러 다님으로 인하여 늦었다 하니라.
②:009 오석은 예년에는 도착 즉시 도장 또는 서산공과 밀실에서 군자금문제등 독립운동관계를 상의하였으나 이번에는 먼저 상제님께 정진 중이신 공부내용과 앞으로의 계획을 묻더니 다시 도장께 말씀드리기를『제가 지난해 섣달에 군자금 모집차 본국에 갔다가 정읍에서 이치복을 만나 교조(敎條) 증산선생의 교법을 들었나이다.
그의 말로는 지금 우리의 독립운동도 증산선생의 공사에 의한 천지도수에 따라야 성취될 수 있으며 국가인민도 그 교법이라야 광구될 수 있다고 하였나이다.
그런데 지금 자제분의 공부내용도 그와 흡사하오니 혼자 그러지 말도 입도 치성을 올리게 하심이 좋으리이다 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천명과 신교를 받들어 이미 득도하셨음을 알려주시니 오석도 경탄하니라.
②:010 이날 상제님께서 여동생과 길룡을 거느리시고 오석에게서 증산상제님의 내력을 비롯한 수행의 방법과 기도 치성의 절차등 설법을 들으시니라.
그 내용이 몸소 받드신 구천상제님의 계시와 같고 그뿐 아니라 계시로 알려주신 주문도 한 자도 틀린 것이 없음에 마음속으로만 홀로 기뻐하시고 여동생과 길룡은 상제님께서 그 동안 지도하신 교법이 오석의 설법과 일치함에 오석과 함께 감복하니라.
②:011 상제님께서 4월 28일 봉천명일(奉天命日)을 맞이하셔서 공부처에서 치성을 올리신 후에 다시 구천상제의 계시를 받드시니『이제 그대의 만주공부도수는 마쳤느니라.
속히 국내로 돌아와 나의 본소를 찾고 나의 삼천(三天) 중 천서(天書)와 천보(天寶)를 받도록 하라.
다만 진주(眞主)로서 난법난도자(亂法亂道者)를 경계하라.』하시므로 그날로 하산하셔서 도장께 알리신 다음 이달 말일에 여동생과 길룡을 거느리시고 환국길에 오르시니라.
이때 상제님의 보령은 23세시고 여동생과 길룡은 13세인데 행로의 편의를 위하여 여동생을 남자복장으로 변장시키시니라.
②:012 출발 전일 상제님께서 그곳 노고산의 관왕묘에 참예하시더니 다음날 아침에 묘를 지키는 사람이 와서 문앞에 엎드려 말씀드리기를『대인께서 다녀가신 후에 관성제군의 존상에 수염이 없어졌사온데 이는 필시 대인의 도력에 의함인가 하옵니다.
만일 존상에 누가 있사오면 소인은 죄를 면할 수 없사오니 굽어 살펴 주옵소서.』하고 애원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네 소원을 들었으니 돌아가 살펴보라.』하시므로 돌아가보니 옛모습 그대로라 하도 신기하여 사례하고자 다시 오니 상제님께서는 이미 떠나신 후니라.
②:013 국내로 돌아오시는 길을 안동까지는 마차편으로 하시고 압록강의 철교는 걸어서 건너시니 이때 국경인 철교에는 헌병의 경비가 삼엄하고 통행인은 누구라도 몸 수색을 당하였으나 일행은 그들의 눈에 뜨이지 않으시니라. 철교를 건너시며 상제님께서 혼자서 한국말도 중국말도 아닌 방언으로 누구와 대화하듯 하시므로 여동생이 이상히 여겨『오라버님 지금 하신 말씀이 어느 방언이며 또 누구와 대화하셨나이까?』하고 여쭈니『서양 신명들과 이야기 하자니 그리하였느니라.』하시니라.
②:014 상제님께서는 신의주에 도착하셔서 9년만에 고국 땅을 밟으시는 감회에 젖으시는데 길룡은 철교를 건너자 갑작이 앞이 캄캄하고 힘이 빠지며 개안과 신통력이 일시에 걷히고 평범한 소년의 상태로 다시 돌아오니라.
②:015 상제님께서 가을 건너신 후에 강변의 한 어선에서 오색이 영롱한 큰물 고기 한 마리를 골라 부르는 값을 다 주고 사셔서 놓아보내시니라.
물고기는 물로 들어갔다가 다시 솟아 올라 상제님께 네번 경배를 올리는 양으로 몸을 번득이고 광채를 발하면서 유유히 사라지니라.
여동생이『오라버님은 어찌하여 비싼 값으로 고기를 사서 물에 놓아 보내시나이까?』하고 여쭈니『고기나 사람이나 살려고 함이 본능이 아니냐.
이제 그 고기는 용왕의 명으로 나의 귀국을 영접하러 왔다가 나와 만나게 됨이니라.』하시니라.
②:016 신의주에서 하루를 묵으시고 철도편으로 다음날 한양에 도착하셔서 광화문의 여관에서 몇일간을 머무시며 서울의 풍물을 감상하시니라.
철도편으로 밀양 파서리의 외가에 도착하셔서 9년만에 만나신 외가친척들의 환대를 받으시고 몇일간 종남산 일대의 지형 지세를 관찰하시면서 공부하실 장소를 물색하시니라.
압록강에서 개안이 걷힌 이후 짜증이 가시지 않은 길룡을 창원 그의 외가에 데려다 주시고 회문리 옛 집에서 종친들과 오랫만의 정회를 나누신 후 구천상제님의 명에 의한 본소를 찾기 위하여 다시 여동생을 거느리시고 떠나시니라.
②:017 상제님께서는 본소를 찾으라는 구천상제님의 계시에 따라 지체없이 만주에 서 돌아오셨으나 쉽게 찾을줄 아신 본소에 대하여 더 이상의 자세한 계시가 없으시고 또 백방으로 탐문하셔도 알 수 없으시니라.
비록 오석으로부터 이치복과 차경석의 말은 들으셨으나 구천상제님의 계시는 그 사람을 찾으라는 것이 아니시므로 본소를 어디에 가야 찾을지 실로 난감해하시니라.
불볕더위의 고초를 겪으시며 탐문 길을 재촉하여 8월 중순에 연산의 어느 서당에 이르시니라.
②:018 서당의 훈장 김모(金某)는 상제의 품격과 기상이 비범하시고 문장이 탁월하심에 감복하여 초면이면서도 친한 벗처럼 환대하니라.
상제님께서 그에게 경과사(經過事)를 말씀하시며 증산상제님에 대해 물으셨으나 그는 순수한 유학자로서 상제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와 함께 그곳에서 옛부터 지금까지의 유학을 통달하여 치세(治世)의 경륜을 펴고자 권유하면서 더욱 극진히 공대하므로 몇일을 머무시다가 유학으로서는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건질 수 없음을 설명하시고 다시 길을 떠나시니라.
②:019 어느날 여관에 머무르시니 여주인이 상제를 흠모하여 환대하면서 교색을 지었으나 상제님께서는 근엄한 태도로 다만 증산상제에 대한 소식을 물으 시니라.
여주인은 공주읍 한모(韓某)에게서 들은 바 있다 하며 수십리되는 읍내의 한모를 데려와서 증산상제님의 소식을 아는대로 아뢰게 하니라.
②:020 한모는『저도 직접 뵙지는 못하고 전해 들은 바이오나 그 분은 호를 증산이라 할 뿐 이름과 거처도 잘 알리지 않고 정읍지방을 주유하셨으며 사람들이 강립(姜笠,강씨로서 삿갓 쓴 사람)이니 강풍(姜風,강씨로서 허풍을 떠는 사람)이니 또는 방외일민(方外逸民,속세의 테 밖에서 벗어나 지내는 사람)
이니 하였나이다.
풍운조화를 자유자재로 하는 신인이라고도 하였으나 자신은 상제 또는 미륵불(彌勒佛)의 권화(權化)라고 하시다가 몇년전에 화선하셨나이다.』하므로 상제님께서는 국내로 돌아오신 후 처음 들은 구천상제님의 소식에 반가우셨으나 찾으시는 본소는 그도 모른다 하니라.
②:021 상제님께서는 더욱 용기를 내셔서 증산상제의 강세지지(降世之地)라는 정읍 객망리, 대각지지(大覺之地)라는 모악산의 대원사, 공사지지(公事之地)라는 김제의 금산사와 동곡 등 유적지를 두루 답사하시고 그 종도였다는 김형렬, 박공우 등을 탐방하시니라.
그러나 모두 정감이 통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 때마다 구천상제님의 말씀이 상기되셔서 경계심을 가다듬으시며 오직 본소를 찾으려는 일념으로 탐사만을 계속하시니라.
②:022 9월 초 어느날은 함열지방을 순행하시다가 너무 피로하시므로 큰 정자수 아래에서 잠시 휴식하시니라.
이때 홀연히 천상에서『본소는 다음에 찾고 지금은 우선 이곳 서해의 제1도(第一島)에 가서 근거지를 마련하고 공부하며 다음 일을 기다리라.』하고 계시하시므로 이는 분명 구천상제님의 도수리라 헤아리시고 서해에서 제일 큰 태안의 안면도로 향하시니라.
②:023 안면도에 도착하셔서 첫 포덕(布德)으로 입도시키신 이정률은 창기리에서 농사를 하며 섬안에서는 신망이 높은 사람으로서 상제님께 처음 뵈었을 때부터 그 기상과 도력에 감복하여 지성으로 모시니라.
상제님께서 그의 소개로 정당리 어락곡의 집을 사 수리하셔서 공부처로 정하시고 우일재(宇一齋)라 명명하신 다음 그 아들 상우를 입도시켜 시봉으로 명하시니라.
②:024 상제님께서 창원으로 사람을 보내셔서 길룡을 데려오시고 만주의 가족도 그곳에 함께 살도록 하시니라.
도장을 위시한 일부 가족은 이해 10월에 남은 가족은 다음해 봄에 모두 귀환하여 상제님의 말씀에 따라 입도치성을 올린 다음 우일재에서 공부하는 한편 농지를 마련하여 농사에 주력하게 하시니 생계도 안정되니라.
②:025 상제님께서 1918년 1월에 상우에게 포덕을 명하시니 그 사촌동생 상식과 이웃 주민 30여인이 입도하니라.
입도인들에게 우일재에서 기도주 또는 태을주를 수련하며 공부하게 하시니 7일이 되던 날 박봉운이 공부 중 갑작이 큰소리로『나는 뵈었노라. 진실로 뵈었노라. 옥황상제님께 뵈었노라.』하며 춤을 추기도 하고 크게 웃기도 하며 환희에 넘치니라.
②:026 같은 방에서 공부하던 도인들이 이상히 여겨 이를 제지하였으나 그의 힘이 너무 세어 당할 수도 없고 처음 보는 일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니라.
옆 방에서 공부하시던 상제님께서『봉운아!』하고 부르시니 봉운이 놀라며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가 이윽고 존전에 나아가 옥황상제님께 배례 올리옵나이다.』하며 법배를 올리는데 방법이 어긋나면 고쳐서 정식으로 4배를 올리니라 .
봉운이 정신을 가다듬고 말하기를『아무에게나 함부로 발설하지 못할 일이나 내가 천상에 계신 옥황상제님의 얼굴을 뵈었는데 바로 이 어른이 그 어른이시니 다시 함께 4배를 올리자.』하므로 모두 4배를 올리니라.
상제님께서는 『오직 천기니라.』하시고 모두에게 말을 조심하도록 하시니라.
②:027 봉운은 그 후에도 여러번 그러한 행동을 하더니 그때마다 상제님께서 부 르시면 즉시 중지하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치성을 올린 음식을 주시며 먹도록 명하시니 봉운은 그 많은 음식을 거의 다 먹으므로『네가 비록 옳게 보았어도 이는
허령(虛靈)이니 이를 거두노라.』하시며 봉운을 꿇어 앉이시고 담배가루 한 되를 마른 흙가루에 섞어주시며『이 담배와 흙을 이 자리에서 가려내라.』하시니라.
봉운이 온 종일 앉아서 얼굴도 들지 않고 가리더니 이로부터 허령기운이 걷히니라.
②:028 상제님께서 상식을 시봉으로 명하셔서 모든 심부름을 시키시며 귀여워 하시고 비슷한 나이인 길룡과 사이 좋게 지내도록 하시며 때로는 씨름도 하게 하시니라.
하루는 어린 염소 한 마리를 사주셔서 잘 기르도록 하시더니 그 후 염소가 크게 자라매 길룡과 상식을 타보게 하시고 뿔을 잡고 밀어 보게 하시니라.
그들이 아무리 밀어도 밀리지 않고 도리어 넘어짐을 보시고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염소도 소는 소니라.』하시니라.
②:029 이해 추석에 온 가족과 도인들이 우일재에 모여 명절치성을 올린 후 올해 농사가 풍작이라 하여 모두 기뻐함을 보시고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농사가 잘 된 것도 좋은 일이나 우리는 공부와 포덕에 힘을 쏟음이 본분이니라.』하시니라.
②:030 또 말씀하시기를『나는 본소 찾는 일이 먼저 해야 할 일이니 이 길로 전라도로 떠나니라.』하시고 이튿날 출발하시니 상우가 모시니라.
이는 그동안 정률을 전라도로 보내셔서 본소탐문을 명하셨던 바 돌아와서 『구천상제님께서는 이미 화천하셨으나 전라도 정읍지방에 가시면 자세한 내력을 알 수 있고 본소도 찾으실 듯 하나이다.』하고 보고한 까닭이니라.
②:031 상제님께서는 당초에 오석이 말한 치복과 경석은 구천상제님께서 경계하신 사람들이라 생각되어 찾지 않으시고 또 객망리나 동곡 등 유적지는 이미 그들 이 손상시킨 바 되었을 뿐 아니라 계시는 그 사람이나 지역을 말씀하심이 아니고 본소를 찾으라고만 하셨으니 이는 반드시 비밀스럽게 감춰진 곳이리라 확신하시며 때를 기다리시니라.
그러나 본소를 찾기 위하여는 부득이 구천상제님의 종도에게 수소문하지 않을 수 없으셔서 우선 원평의 김자현을 찾으시니 자현은 출타 중이고 아들 태진이 있어 영접하니라.
②:032 태진이 사뢰기를『부친이 증산선생님의 종도임은 사실이옵니다. 선생님 화천 후에 그 종도 치복,경석, 형렬 등이 각기 교단을 세웠으나 모두 혹세무민(惑世誣民)의 혐의로 일부는 관에 구금되고 부친 또한 부재 중이옵니다.
선생님께서는 미륵불 또는 상제로 자처하셨으나 그 종도들은 음양술객(陰陽術客)으로 밖에 나타내지 못하고 있으니 부친을 만나보신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이까?』하니라.
그날 밤에 집으로 돌아온 자현을 만나시니 그는 상제께 말씀드리기를『증산선생님께서 "도통은 너에게만 주리라" 하셨나이다.』하면서 자기만이 도통을 받을 것처럼 자만에 차있느니라.
상제님께서 본소에 대하여 물으셨으나 그는 들은 일조차 없다 하니라.
②:033 상제님께서 10여일을 원평에 머무르시며 사방으로 수소문하셨으나 모두 이와 같으므로 아직 본소를 찾을 때가 아니니 더욱 공부하면서 천명을 기다리기로 마음을 정하시고 우일재로 돌아오셔서 공부를 계속하시니라.
②:034 10월에 상제님께서 우일재 공부를 종료하신 다음 시종들을 거느리시고 다시 원평으로 가셔서 정률로 하여금 정읍군 감곡면 계룡리에 있는 황새마을 이병건의 집을 사도록 하셔서 공부하시며 천명을 기다리기로 하시고 이해 12월에 안면도의 가족과 도인 일부를 그곳으로 이사시키니라.
②:035 상제님께서 황새마을 공부처에서 수도하시며 포덕하시니 30여인이 입도 하니라.
이 소식을 들은 치복이 여러번 찾아와서『증산선생님께서 해인(海印)은 나에게 주신다 하셨으므로 그 교법과 공사가 모두 나를 위하여 하신 것이니 나의 제화교(濟化敎)를 믿고 수도하면 될 터인데 본소는 찾아서 무엇하리요?』하며 유인하였으나 거절하시니라.
②:036 이달 26일에 상제님께서 황새마을 공부처에서 여러 도인을 거느리고 공 부하시더니 신시(오후 3시30분에서 부터 5시30분사이)경에 돌아오시며 말씀하시기를『나는 오늘 초패왕(楚覇王)의 원척을 풀었노라.
이제 후천 해원도수의 이 공사로써 그 원척을 풀었으니 이로부터 인간세상의 모든 원척이 차츰 풀리어 상생(相生)의 새 판국이 열리리라.
천지간의 원척이 신명과 사람 사이에도 쌓여 있고 또 나라와 나라 사이 금수초목(禽獸草木)까지 없는 곳이 없어서 군생(群生)이 척신 망령에 시달림을 받으니 어찌 영일(寧日)이 있으리요.
그러나 이 해원도수에 따라 모두 해원 광구되어 장차 5만년 청화선경(淸華仙境)이 절로 이루게 하리라.』하시니라.
②:037 1919년 아침에 상제님께서 명절치성을 올리신 후 도인들에게 가르치시기를『내가 봉천명 한지도 어언 9년이 되었으나 아직 본소를 찾지 못하고 도의 체제도 갖추지 못하였으되 금년에는 정녕 이루리니 너희들은 구천상제님과 나의 도수를 믿고 더욱 열심히 할지니라.』하시니라.
②:038 1월 15일에 명절치성으로 철야하시고 공부를 계속하시던 중 구천상제님께서 계시하시기를『보라 때가 이르렀으니 이제 본소가 그대 눈앞에 다가왔도다. 3년간의 일념이 도수와 부합됨이니라.
이 본소는 무극(无極)의 대도(大道)로써 광구천하의 참법을 응원(應元) 보화(普化)할 만국(萬國) 본소니라.』 하시니라.
②:039 상제님께서 천안으로 눈보라 속에 한 여인이 찾아옴을 보시니라.
상우를 시종시키시고 문앞에 나가셔서『반가운 손이 오는도다.』하시고 먼 곳을 바라보시니 한 여인이 눈보라 속을 헤치고 달려와서 상제님께 공손히 경례하며『대인께서 만주 봉천에서 오셔서 증산선생님의 본소를 찾고자 하시옵나이까?』하고 사뢰니라.
상제님께서『그렇노라.』하시고 추위에 떠는 여인을 따뜻한 방으로 인도하시니라.
②:040 여인이 아뢰기를『저의 남편은 김기부이옵고 저는 박가이옵니다.
저희가 정읍 북면 화해리에 살면서 증산선생님 재세시에는 김승연과 함께 시봉하다가 화천하신 후에는 유족을 섬기고 있사옵니다.
유족은 권씨대모(權氏大母), 정씨사모(鄭氏師母), 순임낭자 세분이신데 객망리에 사시더니 선생님의 여동생인 선돌부인께서 몇년전에 화해리 마동(馬洞) 당신댁으로 합솔하게 하셔서 지금까지 사시옵니다.
그 집은 본래 선생님께옵서 화천 전년 가을에 사셔서 선돌부인에게 주신 집이옵니다.』하니라.
②:041 이어『부인께서는 지금 39세시오며 일찍이 고부 입석리의 박씨댁(朴氏宅)에 출가하셨으나 10년이 넘도록 자식이 없으셔서 남편 박창국이 소실을 두고 박대가 심하므로 선생님께서 그 집을 사주셨나이다.
화천 당년 1월15일에 선생님께서 그 집을 손수 수리하시고 도배까지 하셨으며 부인에게『이 곳이 나의 본소니라. 너는 이곳에 살다가 10년 후 이날 이 본소를 찾는 후천진인(後天眞人) 을미생에게 나의 도통을 전하라.』하는 요지로 하명하셨다 하옵이다』하니라.
②:042『부인께서는 현숙하신 성품으로 유명을 받들어 일심으로 10년을 고대하고 계시옵니다.
저희는 부인을 고모님으로 존대하며 시종들고 있사온데 오늘 아침 제사를 지낸 후에 고모님께서 저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처음으로 말씀하시고『오늘 새벽 구천상제님의 계시를 받들매 만주 봉천에서 오신 조모라는 청년 도사가 지금 원평 건너 황새마을에서 공부하며 본소를 찾으려 애쓴다 하시니 네가 가서 사실을 알아본 다음 너의 집에 모시고 내게 알리라.』하셔서 이렇게 찾아뵈었사오니 어서 가사이다.』하므로 상제님께서 박여인의 집으로 가시니라.
②:043 이에 앞서 1914년 봄에는 이곳에 황모(黃某)가 찾아와서 고모의 지도하에 2년간 공부를 하다 이루지 못하고 이어서 1916년 가을에는 박모(朴某)라는 수도인이 제자 송모(宋某)를 데리고 고모께 찾아와서『제가 들은 바에는 "후천 진인은 을미생이요 천문,천서는 마동출(馬洞出)이라" 하였는데 이곳 마동은 장차 천하만국사무소(天下萬國事務所)가 될 신령스러운 곳오니 이 사람에게 공부의 길을 열어주소서.』하고 부탁하니라.
고모께서는 송모에게 기대를 걸고 공부시켰으나 3년이 되도록 성취하지 못하므로 안타까와 하시니라.
②:044 이때 구천상제님께서 고모에게 계시하시기를『시유기시(時有其時)요 인 유기인(人有其人)인데 네 눈이 그리 어두우냐, 그 사람은 진인이 아니니 돌려 보내라.
이제 내 일의 성취자며 나와 일체인 진인인 을미생을 만나리라.』하시니라.
그러나 고모께서는 3년간 돌보아준 미련을 버리지 못하시고 주저하시니라.
②:045 몇일 후에 다시 그와 같은 계시가 있어 고모께서는 결의를 굳히셨으나 그가 더 있기를 애원하므로 고모께서도 인정상 박절하게 할 수 없어 고민하시는데 이번에는 구천상제께서 크게 꾸짖으시며『당장 돌려보내지 않으면 네가 독사의 피를 맨발로 밟게 하리라.』하시며 발바닥에 묻은 핏자국을 보이시니라.
고모께서 이때 갑작이 가슴에 통증이 나므로 살피시니 구천상제님의 발바닥에 묻었던 핏자국 모양과 같이 빨갛게 응혈되는지라 이에 결연히 송모를 추방하시니 통증과 응혈이 이내 풀리니라.
②:046 고모께서는 이런 일이 있었으므로 상제를 우선 박여인집에 모시게 하고 몇일간 동정을 살피면서 구천상제의 계시를 기다리시니라.
19일 밤에 다시 계시하시기를『무엇을 망설이느냐. 나의 공사를 성취시킬 진법의 참주인이니 날 본듯이 맞으라.』하시며 그 얼굴까지 보여주시므로 다음날 아침에 상제를 본소로 모셔서 상면하신 다음 가족들과 수인사하게 하시니 상제님께서는 미리 준비하신 비단을 예물로 드리시니라.
②:047 상제님을 맞으신 가족들은 계시에서 보신대로의 모습과 공손하고 근엄하신 말씀과 행동에 감복하여 못내 기뻐하시니라.
대모께서는『내 아들과 같은 천지의 진인을 살아서 대하니 여한이 없도다.』하시며 손을 잡고 감격해서 우시니라.
고모께서는 본소의 내력과 황모와 송모에 대한 경위등을 설명하신 다음『이제야 진인을 만났으니 기쁘기 한이 없으나 잠시라도 송,황의 일로 인하여 진인을 의심하였으니 송구하기 그지 없습니다.
더구나 현무경과 주문책 등은 모두 그들에게 주었는데 돌려 받을 길이 없으니 어찌하면 좋으리요』하시며 안타까워 하시니라.
②:048 상제님께서 고모에게 말씀하시기를『너무 심려마옵소서. 구천상제님의 진품증표(眞品證標)는 저절로 진주인 나에게 전해지게 될 것을 굳이 믿고 있나이다.』 하시니라.
이때 문득 옛날 진시황의 갱유분서(坑儒焚書)에도 칠서(漆書)가 벽중에서 보존 전래된 고사가 상기되셔서 구천상제께서 친히 도배하신 벽과 천정을 유심히 살피시니 상제께서 앉으신 바로 뒷 벽의 천정 아래에 시선이 닿으시자 형언할 수 없는 영감속에 한 곳이 섬광으로 번쩍이므로 일어나셔서 그곳을 두드리시니 비어 있는 소리가 나니라.
고모께서 도배를 뜯으시고 호미로 벽을 파시니 과연 그 속에 나무로 된 상자가 마련되어 있으니라.
상제님께서 상자의 문을 여시니 그 안에서 빛이 발산하고 집주위와 벽이 진동하며 천서(天書)인 현무경과 주문서가 숨겨져 있으니라.
②:049 천서를 발견하신 상제님께서는 물론 이를 본 유족들도 너무나 감격한 나 머지 어찌할 바를 몰라 묵묵히 서로 쳐다보기만 하니라.
상제님께서 천서를 향하여 4배를 올리시고 엎드려 심고하신 다음 정중히 천서를 내리셔서 대모와 고모에게 펴 보이시고 구천상제님께서 친히 쓰신 천서임을 확인하게 하시니 대모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며『이야말로 참 글이요, 천서로다.
내 일찍부터 증산이 내 아들이기보다 상제님이심을 깨닫고 현무경이 천서임을 믿었지마는 이렇게 숨겼을 줄 몰랐고 그대가 또 이렇게 전해 받게 될 줄을 몰랐도다.
그 상제님에 그 진주(眞主)로다.』하시니라.
②:050 고모께서도『오라버님께서 만 10년 전에 "이 집에 네가 살다가 진인에게 전하라. 이집이 본소니라" 하시고 어젯밤에는 "무엇을 망설이느냐" 하셔서 대인께서 진법의 진주이심을 확신하였으나 여러 사람이 마당과 방구들까지 파 보았어도 찾지 못한 손수 쓴 글인 천서를 이렇게 전해 받으시므로써 구천상제님의 도통을 계승하실 줄을 몰랐나이다.
그동안 황모와 송모가 가져간 위본(僞本) 현무경과 주문책을 진본으로 알고 걱정하였더니 이 천서로써 모든 걱정이 풀렸나이다.
과연 진인이라야 능히 구천상제님께서 친히 쓰신 천서를 지니실 구천의 도수를 깨달았사오며 나의 소임 또한 이로써 다함이라 생각하나이다.』하시며 천서를 비단보자기에 싸서 상제님께 드리니 이 날이 1월 20일 우수절(雨水節)이니라.
②:051 천서는 한지를 사방 9촌으로 접어서 철하고 구천상제님께서 친히 쓰신 책이니라.
현무경은 13장 26면에 문자와 부도(符圖)가 기록되어 있으니 주문서는 표지에『주문』이라 쓰여 있고 7장 13면에 11종의 주문이 기록되어 있으니 이는 이미 계시로 받으신 5종의 주문과 다음의 주문이니라.
『진법주(眞法呪)
구천 하감지위 옥황상제 하감지위 서가여래 하감지위 명부시왕 응감지위 오악산왕 응감지위 사해용왕 응감지위 사시토왕 응감지위 관성제군 응감지위 칠성대제 응감지위 직선조 하감지위 외선조 응감지위 밀직사자 내대지위 우직사자 내대지위 좌직사자 내대지위 명부사자 내대지위 천장길방하야 이사진인하시나니 물비소시하사 소원성취케 하옵소서
九天 下鑑之位 玉皇上帝 下鑑之位 釋迦如來 下鑑之位 冥府十王 應鑑之位 五岳山王 應鑑之位 四海龍王 應鑑之位 四時土王 應鑑之位 關聖帝君 應鑑之位 七星大帝 應鑑之位 直先祖 下鑑之位 外先祖 應鑑之位 密直使者 來待之位 右直使者 來待之位 左直使者 來待之位 冥府使者 來待之位 天藏吉方하야 以賜眞人하시나니 勿秘昭示하사 所願成就케 하옵소서』
『이십팔수주(二十八宿呪)
각항저방심미기 두우여허위실벽 규루위묘필자삼 정귀유성장익진 등우 마성오한 왕량 가복 진준 경감 두무 구순 부준 잠팽 견담 풍이 왕패 주우 임광좨준 이충 경단 만수 합연 비융 요기 유식 경순 장궁 마무 유융 제대신장 소솔제장 일반병영 음음 급급 여율령
角亢저房心尾箕 斗牛女虛危室壁 奎婁胃昴畢자參 井鬼柳星張翼軫 鄧禹 魔性吳漢 王梁 賈復 陳俊 耿감 杜茂 寇恂 傅俊 岑彭 堅담 馮異 王覇 朱祐 任光祭遵 李忠 景丹 萬脩 蓋延 비융 요期 劉植 耿純 臧宮 馬武 劉隆 諸大神將 所率諸將 一般兵營 唵唵 急急 如律令』
『이십사절주(二十四節呪)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장손무기 효공 두여회위징 방현령 고사렴 울지경덕 이정 소우 단지현 유홍기 굴돌통 은개산 시소장손순덕 장량 후군집 장공근 정지절 우세남 유정회 당검 이세적 진숙보 제대신장 즉통 천문지리 풍운조화 팔문둔갑 육정육갑 지혜용력 음음 급급 여율령
立春 雨水 驚蟄 春分 淸明 穀雨 立夏 小滿 芒種 夏至 小暑 大暑 立秋 處暑白露 秋分 寒露 霜降 立冬 小雪 大雪 冬至 小寒 大寒 長孫無忌 孝恭 杜如晦魏徵 房玄齡 高士廉 尉遲敬德 李靖 蕭瑀 段志玄 劉弘基 屈突通 殷開山 柴紹長孫順德 張亮 侯君集 張公謹 程知節 虞世南 劉政會 唐儉 李世勣 秦叔寶 諸大神將 卽通 天文地理 風雲造化 八門遁甲 六丁六甲 智慧勇力 唵唵 急急 如律令』
『도통주(道通呪)
천상원룡 감무태을성 두우군 신아신아 삼아삼아 이도통도덕으로 상통천문하고 하달지리하고 중찰인사케 하옵소서
天上元龍 坎武太乙星 斗牛君 神아神아 參아參아 以道通道德으로 上通天文하고 下達地理하고 中察人事케 하옵소서』
『개벽주(開闢呪)
천상옥경천존신장 천상옥경태을신장 옥경옥추수문장군 상하변국뇌성벽력장군 백마원수대장군 뇌성벽악장군 악귀잡귀금란장군 삼수삼계도원수 지신벽력대장군 천동지동음양벽력대장군 좌부관원수 우부마원수 천지조화풍운신장 응양오행기문신장 육정육갑둔갑신장 태극두파팔문신장 산상취소맹호장군 다솔신군백기장군 용반호거귀곡신장 천만악귀타수신장 이매망량휘치신장 법률사마진멸신장 풍도살수호천신장 오백년간일향신장 삼태칠성제대신장 이십팔수제위신장 계명장경이부신장 구신태백금령신장 이십사절제대신장 십이신제부신장 천지오방호령신장 상하팔위순찰신장 만리풍운전화신장 육정육갑소솔신장 구령삼정응원신장 만고역대영웅호걸제대신장 통합천사장 사십팔대장군 사만신장 팔만사천제대신장 감아미성 조아우일 대운대사 개개강림강림 시위아봉명신 대운대명 태일성철 상수불리 대도통 대위정 여천지합 여사시합 여음양합 여오행합 통천지 통만고 통오방 통사해 사해용신 역발산악 위진건곤천지 도통천지조화 무궁불식 진퇴유법 오봉구천상세군 칙속칙속 음음 급급 여율령
天上玉京天尊神將 天上玉京太乙神將 玉京玉樞守門將軍 上下變局雷聲霹靂將軍 白馬元帥大將軍 雷聲酸惡將軍 惡鬼雜鬼禁亂將軍 三首三界都元帥 地神霹靂大將軍 天動地動陰陽霹靂大將軍 左剖關元帥 右剖馬元帥 天地造化風雲神將 陰陽五行奇門神將 六丁六甲遁甲神將 太極斗破八門神將 山上吹嘯猛虎將軍 多率神軍百騎將軍 龍盤虎踞鬼哭神將 千萬惡鬼打首神將 이魅망량揮致神將 法律邪魔盡滅神將 風濤殺首呼天神將 五百年間一享神將 三台七星諸大神將 二十八宿諸位神將 啓明長庚二府神將 九辰太白禁令神將 二十四節諸大神將 十二辰諸剖神將 天地五方號令神將 上下八位巡察神將 萬里風雲轉化神將 六丁六甲所率神將 九靈三精應元神將 萬古歷代英雄豪傑諸大神將 統合天四將 四十八大將軍 四萬神將 八萬四千諸大神將 感我微誠 助我宇一 大運大事 改改降臨降臨 侍衛我奉命身 大運大命 太一聖哲 常隨不離 大道通 大位定 與天地合 與四時合 與陰陽合 與五行合 通天地 通萬古 通五方 通四海 四海應身 力拔山岳 威振乾坤天地 道通天地造化 無窮不息 進退有法 吾奉九天上世君 勅速勅速 唵唵 急急如律令』
『해마주(解魔呪)
삼계해마 대제신위 원진천존 관성제군(三界解魔 大帝神位 願 진天尊 關聖帝君)』
『신성주(神聖呪)
신성대제 태을현수 어아강설 범어영극(神聖大帝 太乙賢首 於我降說 範於靈極)』
②:052 상제님께서 천서를 받으시고 대모와 고모에게 말씀하시기를『내가 이제 진법의 진주임이 천의(天意)로 밝혀졌으니 이 방 또한 상제님께서 나에게 주신 본소며 공부처입니다.
지금부터 천서를 받들고 이 방에서 공부하겠으니 도와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하시고 그 방을 공부실로 정하셔서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시고 백일공부를 하시니라.
②:053 이때 상우에게 명하시기를『너는 곧 황새마을로 가서 네가 본대로 이 소식을 전하되 나의 일은 모두 천기니 외부인에게는 누설하지 말도록 할 것이며 도인들을 격려하여 포덕에 더욱 힘쓰도록 하라.
이곳에는 누구의 출입도 금하되 너는 5일에 한 번씩 와서 경과를 보고하고 명령을 받아갈 것이며 상식을 이곳으로 보내어 나를 시봉하게 하라.』하시므로 상우가 명을 받들고 시행하니라.
②:054 상우가 본소와 천서의 소식을 알리고 상제의 명령을 전하니 가족과 도인들의 감격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으며 포덕이 날로 늘어나서 황새마을에는 도인들의 내왕으로 많은 사람으로 번잡하니라.
상우가 명령대로 5일만에 본소에 가서 상제님께 찾아 뵙고 황새마을의 경과와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고하니『너희들은 오직 공부와 포덕에만 전념하라.』하시고 더 말씀이 없으시니라.
②:055 2월 3일에 상우가 다시 본소에 가니 상제님께서 명하시기를『이번에 이날 전역에 걸친 독립만세운동은 이미 구천상제님께서 짜놓으신 도수에 의함이며 내가 이제 공부로써 결정함이니 도장과 숙부께 말씀드려 전 도인이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라.
또 너는 안면도에 가서 그곳 도인들에게 나의 소식과 명령을 전달하여 포덕에 더욱 힘쓰는 동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도록 하고 그곳에 남은 가족은 황새마을로 이사하되 재산은 정리하여 황새마을에 토지를 마련하도록 하라.』하시니라.
안면도 가족이 이사할 때 삼일운동을 제압하려는 일본경찰의 단속으로 무수한 고난을 겪었으나 낭패는 없으니라.
②:056 이때 도인들은 거국적으로 궐기한 독립만세운동에 가담 여부를 주저하던 차에 상우의 전령을 받고 사기 충천하여 일본경찰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적극 참여하니라.
혹은 지방에서 집단행사를 주관하기도 하고 혹은 중앙과의 연락을 취하기도하여 그 수가 만명이 넘었으나 다행히 일본경찰에게 피해를 입은 도인은 없으니라.
②:057 5월 초에 상제님께서 본소에서 백일공부를 마치시고 고모에게 말씀하시기를『내가 이번에 공부를 무사히 성취함은 부인의 공덕이옵니다.
나는 이번 공부로써 천서의 진리를 체득하온 바 이제 진주로서 구천의 도수에 따른 대도(大道)를 선포하여야 할 방책이 확립되었습니다.
부인께서는 앞으로도 상제님 유업을 받들던 성(誠)?경(敬)?신(信)으로써 도의일을 계속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황새마을로 이사하여 도인들과 더불어 생활하심이 좋으리이다.』하시니라.
고모께서도 동의하시고 그대로 시행하여 이때부터 평생토록 창도사업을 도우시니 고모의 도호는 선덕부인(宣德夫人)이시며 도중고모(道中姑母)로 존칭하니라.
②:058 상제님께서 황새마을로 돌아오셔서 도인들에게 명하시기를『내가 본소와 천서를 찾아 구천상제님의 도통을 받들어 잇고 백일공부를 마침으로써 상제님께서 짜놓으신 도수에 따른 나의 할 일이 확정되었으니 그대들은 내가 하는 일이 곧 상제님의 일임을 믿고 따를지니라.
상제님의 유족은 이곳에 거처를 마련하여 편히 모시도록 하라.
나는 다시 조용한 곳에 가서 공부하며 도수를 보려 하니 상우는 자주와서 명령을 받아가라.』하시고 청도리 구성산의 학선암에 공부하실 곳을 정하시니 조주일이 시봉하고 상우는 5일에 한번씩 찾아뵈니라.
②:059 윤 7월 그믐에 상제님께서 학선암에서 백일공부를 마치시고 돌아오시니 황새마을의 집은 많은 도인들로 비좁을 뿐만 아니라 동네의 가운데 있어서 공부하시기에 부적합하므로 감곡면 통사동의 조용한 이씨재실(李氏齋室)인 영모재(永慕齋)를 얻으셔서 가족 일부를 이사시키시고 공부하실 곳을 정하시니 상우와 주일 등이 시봉하였으며 재실주인 이준세도 입도하여 모시니라.
②:060 상제님께서 하시는 공부는 실내에서 홀로 수행(修行)하시며 시봉들이 문 밖에서 교대로 맡아 지키며 외부인의 접근을 일체 금하시므로 누구도 그 내용을 알 수 없으니라.
다만 이십사절후에는 많은 음식을 장만하게 하셔서 공부실에서 입절시각(入節時刻)을 기하여 치성을 올리시며 여러 도인을 참석시키시니라.
②:061 8월 초에 상우에게 명하시기를『오래지 않아서 들어오는 큰 도수에는 도의 심복이 될 천하장사 몇 사람이 있어야 하니 너는 도장께 가서 사람을 구하는 일을 여쭈어라.』하시므로 상우가 황새마을에 가서 그대로 여쭈니라.
도장께서는 왕년에 만주에서 독립운동하실 때의 동지들을 통하여 알아보신 끝에 함경도의 백두산 산중까지 가셔서 독립투사 최승오, 김계철을 데려오시니라.
②:062 최,김 양인은 힘이 세고 몸이 날랜 장사로서 산중에서 활약하더니 도장의 부탁으로 통사동에 와서 상제님께 뵈니라.
상제님께서는 10일을 매일 좋은 음식을 먹게만 시키실 뿐 할 일을 명하지 않으시므로 그들은 궁금도 하거니와 송구스러워 명령만을 기다리는데 솟아오르는 힘을 억제하지 못하여 두사람이 힘겨루기를 하면서 지내니라.
②:063 9월 18일 아침에 구천상제님 강세일 치성준비차 가족과 도인들이 통사동 공부처에 모이니 상제님께서 치성준비를 중지시키시고 도장을 위시한 전 가족을 공부실에 모이게 하셔서 공식적인 자리임을 밝히신 다음 말씀하시기를『이 말 씀은 천기에 속하여 부모 형제간이라도 함부로 말해서는 안되는 큰 일이므로 누설하면 아니 되는 일임을 명심하시고 들어주시기를 먼저 사뢰옵니다.
저는 15세에 봉천명하고 도강이서(渡江而西)하여 정진주지도수(定眞主之度數)하였사오며 그 후 만 10년의 공부로써 무극대도(无極大道)의 진주가 갖추어야 할 삼천중의 두가지는 이미 받들었사오니 이번에 천보만 받들면 되옵니다.
사사(私事)으로는 어른들께 죄송하오나 이러한 대운대사(大運大事)의 성취를 위한 공사에는 인간세계의 척분(戚分)에 얽매일 수 없사오니 이해하여 주시옵소서.』하시니라.
이때 참석한 전 가족은 대도(大道)의 지극히 중함을 다시 느끼고 엄숙히 심중에 맹세하니라.
②:064 가족들이 공부실에서 나간 후에 서산공을 위시하여 권태로, 권영문,이정두, 김사일, 박붕래와 두 장사를 들어오게 하시고 명하시기를『이제 두 장사가 기다리던 일을 할 때가 되었노라.
자세한 것은 해당되는 장소에 가서 지시할 것이로되 그대들이 내 명령에 몸을 던져 행동할 것을 다짐하느뇨?』하셔서 서약을 받으시니라.
이어 한잔의 술을 주시며『내가 지금 그대들의 도움을 얻고자 하는 일은 천지대도의 도수에 맞추어 천보를 받드는 일이니라.』하신 다음 일행을 거느리시고 통사동을 출발하시며 대화와 담배 피는 것을 금하시니라.
②:065 이날 술시경(저녁 7시30분에서9시30분)에 정읍 대흥리에 도착하셔서 보천교(普天敎) 도장 건너편 언덕 위 숲 속에 자리를 정하시니라.
이때 보천교에서는 보천교도 수백명이 모여 상제 강세일 치성준비로 넓은 도장 곳곳에 횃불을 밝혔으므로 주변이 대낮 같이 밝아 건물과 통행하는 길은 물론 교도들의 동태도 낱낱이 살필 수 있으니라.
②:066 상제님께서 보천교 도장을 가리키시며 일동에게 명하시기를『우리는 오늘밤 보천교의 치성이 끝난 후에 저들이 숨기고 있는 구천상제님의 둔궤(遁 櫃)를 통사동 공부처로 모셔가야 하느니라.』하시고 각자의 행동방법을 자세히 가르치시니라.
②:067 밤 12시가 지나 일동을 출발시키시니 승오가 연목크기의 소나무 한 그루를 뽑아 곤봉을 만들어 앞장서므로 상제께서『사람을 다치게 하여서는 절대로 아니 되느니라.』하시니라.
일행이 보천교 도장에 도착하여 본당까지 들어가는 동안 보천교도들이 각 방에 많이 있었으나 한 사람도 내다보지 않으니라.
②:068 상제님께서 각 방문 앞마다 교도들의 신발이 많음을 보시고 승오로 하여 금 곤봉으로 본당마루를 내리쳐서 교도들을 깨우게 하신 다음 우레같은 음성으로『천명에 의하여 천보를 모셔가니 순순히 응하라. 만약 거역하는 사람은 천벌을 받으리라.』하시니 교도들은 갑작스런 일에 겁이 나서 꼼짝도 못하니라.
상제님께서 각 방을 찾아보게 하셨으나 둔궤를 찾지 못하므로 친히 한 방에 들어가시니라.
②:069 상제님께서 그 방에 병풍으로 가려놓은 둔궤(遁櫃)와 약장(藥欌)을 발견 하시고 두 장사로 하여금 마루로 들어내게 하시고 승오에게 명하셔서 약장은 그대로 두고 둔궤만 지고 나가게 하신 다음 일행을 거느려 출발하시며 계철에게 대문을 지키고 서서 보천교도의 추적을 막게 하시니라.
②:070 이때 보천교도들은 치성을 마치시고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가 벼락같은소리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둔궤 가져간다!』하는 누구의 고함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문을 열어보니 어떤 사람이 둔궤를 지고 대문을 나가고 있으니라.
뛰쳐나와 뒤쫓았으나 또 한 사람이 대문을 지키고 서서 추적을 막음으로 더쫓지 못하고 그 사람들이 대문밖으로 나간 다음에야 일제히 일어나 벌떼같이 나서서 추적하니라.
②:071 승오는 둔궤를 지고 뛰어가면서 추격자들을 덤비는 대로 밀어내서 따돌렸으나 그 수가 너무 많아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우니라.
이때 계철이 승오를 도와서 산길로 들어가서 숲속에 둔궤를 안전히 두고 되돌아오니 일행의 행방은 찾을 길이 없고 온 들판이 추격하는 사람들이고 달빛과 함께 그들의 횃불이 밝아 더 지체 할 수 없으니라.
다시 산으로 가서 둔궤를 지고 걸음을 재촉하여 날이샐 무렵 통사동 공부처로 돌아오니라.
②:072 공부처에서는 도장을 위시하여 가족과 도인들이 밤을 세워 일행을 기다리더니 두 장사만 돌아와서 경과사를 말하되 상제님의 안부는 모른다 하니라.
도장께서 크게 걱정하시며 장사들에게『혹여 그 신상에 무슨 일이 생김은 아니냐?
둔궤는 있고 주인이 없으면 어찌 하느냐?』하시니라.
진시(오전 7시30분부터 9시 30분사이)경까지 돌아오시지 않으시므로 사람들을 거느리고 몸소 찾아 나서셔서 태인으로 가는 큰 길에 이르셨을때 서산공일행만 돌아오니라.
그들 역시 밤이 새도록 상제님을 찾다가 돌아오신 줄 알고 돌아오는 길이라 하므로 일행은 다시 합류하여 정읍방면으로 상제님을 찾아 나서니라.
②:073 이에 앞서 상제님께서는 계철을 승오에게 보내시고 길 옆에 서 계셨으나 추격자들은 알아보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가니라.
이에 환하게 보이는 산길로 가시는데 마침 산 기슭에 한 재실이 있으므로 그 곳으로 가시니 주인이 환대하니라.
그날 밤을 그곳에서 쉬신 후에 통사동으로 돌아오시다가 태인 근처에서 도장일행을 만나 함께 무사히 돌아오셔서『이 실로 구천상제님의 덕화요, 도인들의 정성이니라.』하시며 일행의 노고를 치하하시니라.
②:074 선덕부인께서 둔궤를 보고 감격하셔서 한 식경이나 우시다가『10년간의 삼천(三遷)끝에 진주에게 돌아왔으니 천행이로다.』하시고 둔궤의 내력을설명하시니라.
『이 둔궤는 구천상제님께서 화천 전년 4월에 동곡약방을 차리실 때 약장과 함께 만드셔서 "이 둔궤 속에 번개가 들어야 한다." 하시고, 또 "이는 나의 도지(道旨)와 도통(道統)을 숨겼으므로 둔궤라 하느니라." 하시며 약방에 비치하시고 공사를 보신 천보니라.
화천하신 후에 김수부가 간수하더니 고수부가 교단을 세울 때 옮겨갔는데 그가 떠나자 경석이 숨겼던 것이니라.
그 문에는 상제님께서 손수 자물쇠를 채우시고 그 열쇠를 숨기셨으므로 지금까지 누구도 열 수 없으니라.』
②:075 둔궤의 크기는 가로 4척, 높이 3척, 폭 1척5촌이며 5푼 두께의 오동목판으로 짜서 그 겉에는 옻칠을 하고 모양은 함과 같으나 장롱과 같이 문을 앞으로 열게 되어 있으니라.
선덕부인께서 그 문에 채워진 자물쇠가 한번도 열린 흔적이 없음을 확인하시고 기뻐하시니라.
②:076 이러한 설명을 들은 가족과 도인들은 그 신비함에 새삼 감탄하였으며 약장까지 모셔오지 못함을 서운히 생각하고 더욱이 장사들은 상제의 후한 대접을 받았으면서도 이 일을 아울러 완수하지 못한 자책으로 사죄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둔궤만으로도 족히 구천상제님의 도수를 받들 수 있 으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
만일 꼭 필요하다면 왜 그대로 두라 하였으랴?
그대들은 앞으로 한 번더 할 일이 있으니 그때에 실수가 없도록 하라.』하시니라.
②:077 상제님께서 공부실 상좌(上座)에 둔궤를 안치하시고 그 날 저녁에 대치성을 올리신 다음 가르치시기를『내가 그대들의 도움으로 천보를 잘 모시게 되었는바 이는 구천상제님께서 짜놓으신 삼천의 도수로서 내가 받들어 행하여야 할 큰 도수 중의 하나니라.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워도 해야 할 공사며 또 나 아니면 못할 일이니라.
만약 도수가 아니라면 모셔올 필요도 없지마는 다른 때 그들의 잠든 틈에 쉽게 모셔와도 될 일을 굳이 사람들이 많이 모인 때에 잠자는 사람들을 깨워 알리기까지 할 이유가 어디 있으리요.
그러므로 후일 오늘의 일에 대하여 시비를 일으키는 사람은 도수와 공사를 모르는 사람이니라.』하시고 이날부터 둔궤도수공부(遁櫃度數工夫)를 시작하시니라.
②:078 둔궤도수공부 1개월이 되던 날 상우와 두 장사에게 명하시기를『그대들은 오늘 둔궤를 경상도 함안군 대산면 용화산의 반구정으로 옮기되 소로를 통하여 가도록 하라.』하시며 그 행로와 반구정의 내력를 가르치시니라.
일행은 이날 둔궤를 혼수 짐처럼 꾸며 짐을 지고 통사동을 출발하여 임실, 장수를 거쳐 산청, 의령을 지나 반구정까지 소로를 통해 5일만에 도착하니 상제님께서는 주일, 태로 등을 거느리시고 먼저 도착해 계시니라.
②:079 반구정은 상제님의 13대조 휘 방(방) 호 두암공(斗巖公)이 임진왜란에 곽재우장군 등과 창녕의 화왕산성에서 의거하여 전공을 세우시고 정란 후 만년에 낙동강과 정암강이 합류하는 도흥진 옆 층암절벽 위에 지은 정사(精舍)로서 두암공이 시와 글을 즐기며 때로 곽재우, 장현광 등 오래 사귄 벗들과 함께 경(經)을 토론하고 시를 읊으시던 곳이며 공의 묘사재실(墓祀齋室,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마련한 집)이니라.
집의 뒤와 왼쪽, 오른쪽에는 용화산의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 싸고 수목이 울창하며 집 앞에는 절벽아래 낙동강이 흐르고 강 건너에는 남지에서 수산으로 이어지는 강변평야와 이를 둥글게 에워 싼 종남산, 화악산, 화왕산의 전망이 절경을 이룬 곳이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조용한 곳이니라.
②:080 상제님께서 반구정 공부실 상좌에 둔궤를 모시고 공부설석하신 다음 대 치성을 올리시니라.
두 장사에게 그동안의 수고를 치하하시며 위로금을 주시니 그들은『진인의 공사에 조금이라도 도와드림이 일생의 영광이옵고 보수를 바람은 아니옵나이다.』하고 여비만 받아가지고 떠나니라.
상제님께서『그대들의 공로는 후세에 길이 남으리라.』하시며 못내 아쉬워 하시니라.
②:081 이날부터 100일간을 낮에는 반구정 공부실에서 수도하시고 밤에는 절벽 아래에 있는 강변 백사장에서 검무공부(劒舞工夫,칼춤을 하면서 하는 공부)를 하시는데 그때마다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일어나니라.
상제님께서는 이 기간동안 추운 겨울의 강변에서 하루도 쉬지 않으시며 혹심한 고초를 겪으시니라.
②:082 상제님께서 100일공부를 마치시던 날『이제 둔궤도수를 잘 마쳤노라.』 하시며 시종들의 노고를 치하하신 다음 상우에게 명하시기를『이 둔궤문에 채워진 자물쇠를 열어야 하리니 열쇠를 만들도록 하라.』하시니라.
상우가 칠원읍에 가서 열쇠장수를 데려와 자물쇠에 맞추어 열쇠를 만들게 하여 열려고 하였으나 열리지 않으니라.
다시 여러 개를 만들어 몇일간 수십차례 시험하였으나 끝내 열리지 않음을 보시고『그만두고 돌려보내라.』하시니라.
②:083 이튿날은 도기 12년 1920년 2월 17일, 양력 4월 5일 청명절(淸明節)이니라.
상제님께서 입절시각인 사시(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사이)에 공부실에서 절후치성(節候致誠)을 올리신 후 둔궤 앞에 따로 법수(法水)를 상에 차려 올리고 시종들을 정렬 법좌하게 하신다음 친히 향을 피워 4배하시고 일동에게 태을주를 연송하게 하시니라.
이때 상제님께서 공부하실 때 쓰시는 주대를 열쇠구멍에 끼우시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어나며 천지가 진동하고 실내가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지며 자물쇠가 스스로 열리니라.
일동이 신기하게 생각할 때 상제님께서 둔궤의 문을 여시니 또 한번 천둥번개가 일고 궤 안에서 빛이 번쩍이니라.
②:084 상제님께서 둔궤의 문을 열어놓으시고 4배를 올리시므로 일동도 따라올리고 내부를 살피니 그 안에는 양피(羊皮,양으로 만들어진 가죽) 한 장과 반개(半開,반쯤 핀)한 국화 한 송이가 들어 있으니라.
내부의 정면 중앙에는『오강록(烏江錄)』, 그 좌측에『설문(舌門)』, 우측에『반구제수(半口齊水)』, 좌면에는『천문지리풍운조화(天文地理風雲造化)』,우면에는『팔문둔갑지혜용력(八門遁甲智慧勇力)』이라는 불로 태워서 새긴 글씨가 있고 정면의 문자 주위에는 주사(朱砂,광물의 한가지로 염료나 약재로 사용됨)로 24점이 선명하게 찍혀 있으니라.
②:085 상제님께서 둔궤 내부를 자세히 살펴보신 다음 말씀하시기를『과연 천보로다. 수운(수운 최제우)의 지난 1860년 4월 5일은 음력이로되 나의 금년 1920년 4월 5일은 양력이니 음양합덕(陰陽合德)이며, 태극도수(太極度數)가 분 명하도다.』하시며 감탄하시니라.
다시 문을 닫으신 다음 자물쇠를 채우셔서 전과 같이 두시며『이제 너희들이 본 바와 같이 내가 구천상제님의 도수를 음양합덕으로 하나하나 잘 풀어가고 있으니 흔쾌한 바니라.
다만, 너희들은 조심하여 천기를 누설하지 말지니라.』하시니라.
②:086 이해 3월 초에 통사동으로 돌아오셔서 다시 공부하시다가 상우에게 명하시기를『내가 금년에 마쳐야 할 큰 도수가 남아 있으니 이번에는 검무도수니라.
장단검(長短劒) 석자루가 필요하되 장검은 칼날이 5척이요, 중검은 3척, 단검은 반척이면 되느니라.
그러나 장검은 옛날 이충무공이 사용하던 칼을 빌어 써도 될 것이니 그 일은 도장께 말씀드려 충무공의 종손 이종옥에게 부탁하도록 여쭈고 만약 여의치 않으면 그 도본(圖本)을 떠서 석자루를 모두 새로이 만들어야 되느니라.』하시니라.
상우가 복우도장께 여쭈니 몸소 아산으로 가셔서 만주서 독립운동 당시 친분이 두터우신 종옥을 만나 사유를 말씀하였으나 일본경찰의 감시가 심하여 빌어오실 수 없으므로 그 도본을 떠오셔서 만들기로 하시니 상제님께서 그 방법을 상우에게 가르치시니라.
②:087 상우가 명을 받들고 안면도에 가서 도공 성기춘에게 도본을 주어 석자루를 만들도록 하니라.
기춘은 상우가 시키는대로 인부 세사람을 데리고 철재와 도구를 준비하여 밀양 운문산의 천황봉 아래에 인적이 없는 곳을 찾아서 비밀리에 대장간을 차리고 칼을 만들기 시작하니라.
상제님께서는 미리 신산공에게 총감독을 맡기시고 상우에게는 한양에 가서 만국지도 50장을 사다가 쇠를 달굴 때마다 한 장씩 풀무 불 속에 태우시게 하시더니 50일만인 5월 단오절에 칼 석자루가 완성되니라.
이를 반구정으로 옮겨 미리 오신 상제님께 올리니 기춘과 인부들에게 노고를 치하하시고 위로금을 주시니라.
②:088 상제님께서 반구정에서 대치성을 올리신 다음 그 날부터 지난 겨울과 같이 낮에는 공부실에서 수도하시고 밤에는 검무도수를 보시니라.
강변의 백사장에 단(壇)을 쌓게 하시고 사방에 등불을 밝히신 다음 칼 석자루를 휴대하시고 단위에서 검무를 하시니 전보다 더한 짙은 안개가 일어 앞을 분간할 수 없으므로 시종들은 도수를 보시는 내용은 알 수 없고 다만 짙은 안개속에서 칼 부딪치는 소리를 간간이 들을 뿐이니라.
②:089 100일간의 검무도수를 마치시고 8월 중순에 다시 통사동으로 돌아 오실때 칼은 가져오시고 둔궤는 그 곳에 두고 오시니라.
그 후에 주일이 상제님을 배신하고 몰래 반구정에 가서 둔궤를 가지고 진주모처(某處)로 도망하여 사술로 신도를 모으다가 1년만에 죽으니라.
상우가 이 소식을 듣고 상제님께 둔궤를 찾고자 여쭈니『둔궤는 이미 도수에 따라 쓰여 나의 일을 다 마쳤으니 그로써 족하고 둔궤라는 둔(遁)자는 또한 도망할 둔자로서 도망자의 소유가 됨은 필연이며 이제는 한낱 궤에 불과하니라.
또 주일뿐만 아니라 후일에도 이러한 배신 난법자(亂法者)가 나타나 세상을 현혹하는 일이 있으리라.』하시며 찾지 말게 하시니라.
②:090 이해 추석에 상제님께서 통사동 공부처에서 명절치성을 올리시고 상우에게 명하시기를『이번 도수에는 벽조목(霹棗木,벼락맞은 대추나무)이 있어야 하니 너는 도장께 구하여 주시도록 여쭈라.』하시니라.
상우가 명대로 하니 도장께서『그렇지 않아도 어젯밤 꿈에 밀양 어느 곳에 산다는 노인이 나타나서 "저의 집에 10년된 벽조목이 있사오니 쓰실 일이 있사오면 올리겠나이다" 하므로 이상히 여기던 차니라.』하시고 즉일 밀양으로 가셔서 수소문하신 끝에 밀양의 김동식으로 부터 구하여 오시니라.
이는 그의 부친이 생존시에 구하여 두고 유언하기를『이것은 평범한 사람이 함부로 쓸 것이 아니라 신인이라야 사용하리니 발설하지 말고 숨겨두었다가 후일 현몽(現夢)을 듣고 오시는 분에게 전하라.』하여 지금까지 10여년간 보관중이라 하며 값도 받지 않고 드림이니라.
②:091 상제님께서 조각공을 불러 비밀리에 벽조목을 네모진 형태로 깎고 면마다 다른 모양의 문자를 음각과 양각으로 새기게 하셔서 청홍색 비단주머니 속에 간수하시니라.
공부하실 때는 도장의 표면에 주사를 묻혀 백지에 찍어서 태우시고 밖으로 나가실 때는 그 비단주머니를 허리에 차시니라.
②:092 이해 9월 말경 상우에게 명하시기를『이번에는 단도수(壇度數)니라.
이 도수는 인적이 멀고 조용한 해변이라야 하니 너의 고향마을에 가서 적당한 장소를 구하라.』하시니라.
상우가 안면도에 가서 알아보니 창기리 동쪽 끝 5리쯤 되는 곳에 있는 철도(鐵島)가 가장 적합하므로 돌아와 아뢰니 가하다 하시고 상우,상식 등을 거느리고 출발하셔서 군산의 광천을 거쳐서 5일만에 안면도에 도착하시니라.
②:093 11월 3일 창기리 도인 김창규의 집에 머무시며 철도에는 하나 뿐인 박영호의 집에 공부처를 정하시고 집 앞의 밭에 가로,세로 6간의 정방형으로 높이 3척의 평탄한 흙으로 쌓은 단을 만들게 하시니라.
단위에 24방위를 설치하여 방위마다 13척의 긴 대나무를 3개씩 총 72개를 세우고 중앙에는 사방이 3간 높이 3척의 단을 쌓게 하시니라.
그 중심에 높이 21척의 대나무를 세우고 72개 장죽의 꼭대기를 노끈으로 연결시킨 다음 그 위에 기를 달게 하시니라.
기는 길이 1척5촌, 폭 1척의 흰 베에 주사(朱砂)로 중앙기에는 태극 그 밖에는 용과 호랑이 등의 모양을 그리시고 8괘, 12지(支), 28수(宿) 등의 문자를 쓰시니라.
②:094 단을 설치하는 것이 완료되자 공부실에서 대치성을 올리시고 그날부터 단도수를 보시니라.
낮에는 공부실에서 수도하시고 밤에는 단 위에서 반구정에서와 같이 검무도수를 보시는데 단위에 계실때는 상식에게 장죽마다 기를 달게 하시고 공부 후에는 거두게 하시니라.
공부하실 때는 타인의 접근을 엄히 금하셔서 시종하던 상우, 상식과 그 곳 도인 이수영, 김창규 등은 방문을 닫고 있었으므로 상제님께서 공부하시는 내용을 알 수 없고 다만 우뢰같으신 음성과 칼 부딪는 소리만 간간이
들리니라.
②:095 이때는 소한,대한(일년중 가장 추운 때)의 때이므로 눈이 많이 내렸으나 단 위에는 한 점도 쌓이지 않았으며 다른 땅은 모두 얼어도 단위의 흙은 얼지 않을 뿐 아니라 온화한 김이 피어오르되 질지 않으니라.
때로는 상제님의 후광(後光)이 더욱 세게 발함을 보고 시종들은 모두
신이하게 여겼으나 이 또한 누구에게도 누설하지 못하게 하시니라.
②:096 상우가 지난 봄에 둔궤의 내부를 살피고 그 신비에 감동한 이래 그 숨겨진 뜻의 알고자 골몰하더니 연말 어느날 상제님께 오강록과 설문의 뜻을 송구히 여쭈니『오강록은 나의 비결이고 설문은 너희 비결이니 더 묻지 말라.』하시니라.
다시 상우가 여쭈기를『양피는 미생(未生)의 뜻이옵고 24점은 4철의 뜻이오며 반구제수(半口齊水)는 선생님의 존함이 분명하오나 반개국(半開菊)의 뜻은 무엇이옵나이까? 가르쳐 주시옵소서.』하니『국화는 9월 5일에 반쯤 핀다는 뜻이니라.
그러나 이런 일에 몰두하면 수도에 방해되니 근신하고 말을 조심하라.』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