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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언 형제의 12번째 장편영화로 코맥 매카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우연히 돈 가방을 주운 르웰린 모스와 그를 추적하는 살인마 안톤 쉬거, 그리고 사건을 맡은 보안관 에드 톰 벨의 이야기를 다룬다. 코언 형제의 전작들과는 다른 변화를 보여주는 수작이다.
1. 영화사적 의미와 특징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언 형제의 12번째 장편영화이다. 이 영화는 데뷔작인 〈블러드 심플〉(1984) 이후 코언 형제가 보여줬던 작품 세계와 맥락을 같이하면서도 전작들과는 차이점들을 보여준다. 영화는 코맥 매카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코언 형제가 창작 시나리오가 아닌 소설 원작을 각색한 경우는 이 작품이 처음이다. 코언 형제는 각색이라기보다는 편집에 가까웠다고 본인들 스스로가 얘기하듯이 플롯과 캐릭터를 새로 개발하기보다는 대사 하나까지 원작에 충실하려고 했다.
또한 이 영화는 음악이 거의 없다. 칼슨 웰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장면이나 르웰린이 밤에 사건 현장으로 다시 가는 장면 등에 음악이 있긴 하지만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음악 대신 영화 초반 사막에서의 바람 소리가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수갑 떨어지는 소리, 흔들리는 자동차 키 소리, 산소통의 격발 소리 등등이 고요한 적막을 깨우며 긴장감을 발생시킨다. 전작인 〈레이디킬러〉(2004)나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2000) 등 음악을 많이 사용했던 작품들에 비추어보면 상당히 다른 시도임을 알 수 있다.
대사 또한 코언 형제의 앞선 전작들에 비해 많지 않다. 영화 초반 에드 톰 벨의 내레이션이 조금 나오긴 하지만 전체적인 내레이션이 절제되어 있으며 코언 형제 특유의 위트와 풍자도 많이 상쇄되어 있다.
코언 형제는 이전의 영화들에서 미국이라는 공간을 벗어난 적이 없다. 2006년에 참여한 옴니버스영화 〈사랑해, 파리〉에서도 무대만 파리였을 뿐 불어에 적응하지 못하는 스티브 부세미의 근원은 미국이었다. 2000년 이후 주로 닫힌 공간을 중심으로 보여준 것에 비해 텍사스의 사막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블러드 심플〉이나 〈파고〉처럼 다시 열린 공간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공간은 열려 있지만 황량한 사막은 따뜻하지 않다.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준 따뜻하고 긍정적인 낙관과 유머는 더이상 사막의 황량함 속에 모습을 감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확실히 전작들과 다른 점을 보여주며 이전과는 또 다른 코언 형제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그리고 흥행에서도 2010년 〈더 브레이브〉에서 기록이 다시 깨지긴 하지만 코언 형제의 이전 작품 중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다.
2. 캐스팅 과정
시나리오 과정부터 특정 배우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해왔던 것과 달리 원작을 각색한 이 영화의 경우 그전까지 만나지 못한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코언 형제는 말한다. 가장 먼저 캐스팅된 배우는 에드 톰 벨 역의 토미 리 존스였다. 원작이 벨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데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 벨 역의 캐스팅은 중요했다.
코언 형제는 토미 리 존스가 텍사스에서 태어난 토박이라서 기질 면에서 적합하고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보안관을 해온 역할인 만큼 서부의 공간에서 벨이 느끼는 편안함을 잘 보여줄 것이라고 판단했다.
코언 형제는 토미 리 존스가 자신을 늙었다는 이유로 캐스팅했다고 말하는 걸 좋아했다며 당시 환갑을 앞둔 나이에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배우가 정말 드물었다면서 토미 리 존스에 대한 신뢰를 나타냈다. 두 번째 캐스팅은 안톤 쉬거 역의 하비에르 바르뎀이었다. 소설에서 안톤은 어디 출신인지 알 수 없도록 묘사되어 있었는데, 바르뎀은 스페인 출신의 배우였다.
거물급의 연기파 두 배우가 캐스팅되고 나서 주연 중 나머지 한명인 르웰린 모스 역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코언 형제는 모스가 액션의 중심으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경계에 있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조시 브롤린 이전의 배우들은 다 탐탁지 않았고 결국 그가 캐스팅되었다. 르웰린의 부인인 칼라 진 모스 역엔 스코틀랜드 출신의 켈리 맥도널드가 캐스팅되었다. 오디션을 보고 싶어 하는 스코틀랜드 출신을 코언 형제는 내키지 않은 마음에서 만났지만 그녀는 얼마 뒤 곧 완벽한 텍사스 사투리를 구사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녀가 캐스팅되었다.
원작에서 중요시되는 공간과 텍사스의 분위기, 그 공기를 잡아내고 싶었던 코언 형제는 이렇게 캐스팅 과정부터 출신 지역까지 신경을 써가며 캐릭터를 구축해 나간다. 하비에르 바르뎀도 텍사스 사투리를 배우기 위해 따로 코치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한 결과로 하비에르 바르뎀은 아카데미상을 비롯해 각종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거머쥔다.
3. 제작 과정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출판되기도 전에 영화의 프로듀서인 스콧 루딘이 코언 형제에게 책을 보내줬고 이미 코맥 매카시의 다른 소설들을 읽고 열광한 상태였던 코언 형제는 환호했다. 코언 형제는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원작의 주제에 흥미를 느꼈고 한명이 책을 잡고 한명이 타이핑을 할 정도로 코맥 매카시의 고유한 목소리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원작이 피가 낭자한 소설이고 따라서 영화도 코언 형제의 영화 중에서 가장 폭력적인 영화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소설의 배경과 거의 같은 지역에서 촬영했으며 영화의 엔딩도 소설을 그대로 따른다.
각색하면서 코언 형제는 코맥 매카시를 만난 적은 없다고 한다. 이후에 촬영을 하면서 촬영장 근처에 살고 있던 매카시가 한두 차례 촬영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시나리오가 완성된 뒤 코언 형제와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스태프들이 투입됐다. 코언 형제는 같은 스태프들과 많은 작품을 해왔기 때문에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 음악감독 카터 버웰 등은 코언 형제 사단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 스태프들 덕분에 공간 자체가 또 다른 인물인 황량한 텍사스를 스크린 속에 잘 녹여냈다.
코맥 매카시가 인상적으로 보았다는 르웰린을 향해 개가 달려드는 장면은 조시 브롤린이 오렌지 빛깔의 장난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촬영했다고 한다. 그 개는 오렌지빛 장난감을 보여주면 침을 흘리면서 흥분하도록 훈련된 개였는데 그 개가 바지에 있는 그 장난감을 쫓아 강물에 뛰어들었고 조시 브롤린은 나중에 강물에서 나오자마자 장난감을 집어던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두고두고 회자되는 안톤 쉬거의 헤어스타일은 토미 리 존스가 코언 형제에게 건넨 책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 책에는 1970년대 사창가에서 찍은 사진들이 있었고 그중에 뉴멕시코 사창가의 한 손님의 사진이 있었다. 하비에르 바르뎀은 그 남자의 옷차림을 보고 있었는데 코언 형제는 그의 머리 스타일을 봤다. 그 스타일은 코언 형제와 많은 작품을 함께했던 헤어디자이너 폴 르블랑에 의해 구체화됐고 그렇게 하비에르 바르뎀은 그 머리 스타일로 3개월 내내 생활해야만 했다.
4. 원작과 영화, 영화의 주제
1933년생인 코맥 매카시는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다가 1965년 〈과수원지기〉를 썼고 이 작품이 그해 포크너상을 수상하면서 혜성처럼 등장한 작가이다. 그 뒤 텍사스 엘패소로 이주한 그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지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발표한다. 흔히 국경 3부작이라고 불리는 〈올 더 프리티 호시즈〉(1992), 〈크로싱〉(1994), 〈시티즈 오브 플레인〉(1998)은 이 시기의 대표작들이다.
2005년에 발표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국경 3부작의 배경이었던 텍사스 서부로 다시 돌아왔지만 국경 3부작에 비하면 훨씬 더 절망적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후속작인 〈더 로드〉(2007)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보다 더 절망적인 작품이다.
코맥 매카시의 작품들은 공간과 배경이 인물만큼 중요하게 작용한다. 원작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코언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이러한 원작의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성향을 이어받는다. 은퇴를 앞둔 늙은 보안관 벨은 나이가 들면 신의 뜻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막상 그때가 된 벨은 여전히 신의 뜻을 알 수가 없다. 노인의 연금을 노린 부부는 노인을 죽여 자신의 마당에다 파묻고 벨이 직접 체포해 전기의자로 보낸 소년은 아무나 죽일 생각에 14살 소녀를 죽였다고 한다. 그 소년은 지옥에 갈 걸 알지만 감옥에서 풀려나면 또 범행을 저지를 거라고 한다.
노인이 되어서도 벨은 인간과 이 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으며 연륜이 든 노인이 되어서도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사회는 없다.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는 어쩔 수 없이 골라야 하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 두면만 존재하는 나라이다. 영화는 이처럼 인간과 사회에 대한 묵직한 성찰을 우리에게 던진다. (실제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노인들은 괜한 오지랍을 부리다 위기에 처한다. 대부분 쓸데없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내뱉는다. 물론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해질지 별로 생각하지않고 행하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요즘 세대 갈등속에 노인들이 젊은이들과 종종 언쟁을 벌이는 것 가운데 하나도 이런 상황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영화중에서 은퇴한 보안관이 친구인 벨에게 던지는 말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다가오는 현실을 막을 수는 없어.모두가 널 기다려 주지는 않아.그건 교만이지")
에드 톰 벨(토미 리 존스) : 할아버지도 보안관이었고 아버지도 보안관이었으며 그도 25살 때부터 보안관을 맡아 이제 곧 은퇴를 앞두고 있는 늙은 보안관이다. 경력이 말해주듯 사건을 꿰뚫어보는 식견과 경험으로 사건을 조사해나간다.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해 털끝만큼의 감정이나 동요도 없는 살인마다. 산소통을 들고 다니며 총 대신 그것으로 사람을 죽이고 자물쇠도 연다. 그가 하는 유일한 배려는 사람을 죽이기 전 앞면과 뒷면을 맞힌 사람은 살려주는 동전 맞히기를 하는 것이다.
르웰린 모스(조시 브롤린) : 마약거래 도중 총격전이 일어난 사건 현장을 우연히 발견하고 200만달러가 든 돈 가방을 갖게 된다. 죽어가는 사람이 물을 달라는 것을 지나칠 정도로 상황 파악이 빠르고 냉정하지만 그 사람에게 물을 주지 않았던 것에 대한 죄책감과 양심도 있다. 바보 같은 짓인 줄 알면서도 그 사람에게 물을 주러 갔다가 결국 쫓기고 죽음을 맞이한다.
칼슨 웰즈(우디 해럴슨) : 안톤 쉬거를 쫓는 또 다른 살인청부업자. 아무런 감정도 없는 안톤보단 병원에 입원한 르웰린을 찾아가서 거래도 할 줄 아는 직업적인 살인청부업자다. 큰 사건을 벌일 기대감을 주지만 곧 허무하게 죽는다.
칼라 진 모스(켈리 맥도널드) : 르웰린 모스의 부인. 남편의 지시대로 친정으로 몸을 피하지만 남편을 염려해, 자신을 찾아온 벨에게 협조한다. 하지만 결국 남편도 잃고 어머니도 잃는다.
- 벨 : “그 녀석들 자연사처럼 들리는데. 그놈들 세계에서는 그게 자연스러운 죽음이잖아.”
- 웬델 : “그렇군요.”
- 벨 : “이건 뭐 완전히 전쟁이잖아. 사람들이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지난주에 캘리포니아에선 어느 부부가 잡혔는데 노인들에게 방을 빌려주고 죽여 마당에다 파묻고. 사회보장 연금을 가로채서 쓰고. 처음엔 고문도 했을 거라네. 왜들 이러는지 난 모르겠어. 아마 자기들 TV가 고장 나서 그랬을지도 몰라. 이런 일이 계속됐대. 한 남자가 개목걸이만을 찬 채 도망치는 걸 보고서야 이웃들이 신고를 했대. 자네는 이런 일을 일부러 하려고 해도 못할 거야. 한번 시도하려면 해봐. 그러나 이건 실제로 일어난 일이야. 자네도 알다시피. 뒷마당에 무덤을 파고 있어도 이웃들이 신경도 안 쓰는 세상이라니.”
- 웬델 : (웃음)
- 벨 : (웬델을 보며) “괜찮아. 언젠간 나도 웃게 되겠지. 자네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깐.”
벨에게 부보안관인 웬델이 관련된 살인 사건을 보고하며 가볼 거냐고 묻자 신문을 보던 벨이 갈 필요 없다며 신문에 난 기사를 웬델에게 얘기해주는 장면이다. 평생을 범죄자 잡는 일을 해온 벨이 앞으로 그만큼의 일을 해야 할 젊은 보안관에게 그들이 속한 사회의 모습을 신문 기사를 통해 얘기해주는 장면이다. 영화는 살인마와 도망자의 추적을 중심으로 보여주지만 군데군데 이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심어놓는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늙은 보안관 벨이 직접 얘기하는 장면이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5)
• 2008년 아카데미 작품상, 각색상, 감독상, 남우조연상(하비에르 바르뎀)
• 2008년 영국 아카데미 감독상, 남우조연상(하비에르 바르뎀), 촬영상(로저 디킨스)
• 2008년 런던비평가협회 작품상, 영국여우조연상(켈리 맥도널드)
• 2009년 일본 아카데미 우수외국작품상
〈파고〉(1996, 조엘 코엔) : 돈이 궁해진 남성이 건달들에게 자신의 아내를 납치하도록 한 뒤 벌어지는 비극을 그린 코언 형제의 영화. 끔찍한 장면들과 블랙 유머가 섞여 있는 코언 형제 특유의 스타일이나 돈 가방을 추적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유사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세계영화작품사전 : 스릴러 영화, 김태훈, 김영진)
첫댓글 리우군의 다락방...우리 모두는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어쩌면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가 사는 사회는 질서정연해 보이지만 조그만 더 들어가보면 무질서의 연속인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가를, 그리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 우리를 강타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던지고 있다. 내것이 아닌 것을 내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아닌지,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정의라며 타인을 얕잡아 보는 오만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현실을 도외시하고 외면한 채 오로지 과거에만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관객들이 생각하게 하는 여지를 곳곳에서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