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1.
어떤 회사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우리 사장과 회사 직원 대여섯이 함께였다. 내가 나설 자리가 아니여서 아무 말 없이 미팅에 참가하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한참 후에 그 회사의 대표이사를 다시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 대표이사가 하는 말이, 일전에 미팅에서 나를 우리 사장의 '사모(와이프)'로 알았다는 것이다. 내가 사장 곁에 앉아 있지도 않았고, 무슨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오인했을까 의아했지만, 대놓고 이유를 케묻기도 뭐하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상황2.
'스승'으로 오래 섬겼던 분의 신간이 나왔다고해서 엊그제 사서 읽어보는데, 십중팔구 나로 짐작되는 한 여성제자에 대한 소회가 참말이지 길게도 적혀 있었다. 결론적으로, 스승을 향한 충실성과 스승으로부터의 인정을 공적으로 풀어내는데에 실패한 사람이라는 평가였다. 사적으로 내가 보인 열심과 재능이, 공동체 모두에게 호혜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내가 기이하게 운신했고, 이는 여성이 오랜 세월 남성과의 관계에서 노예나 다를 바 없는 관계를 맺었고, 공적인 장이 아닌 사적인 장에서 스스로의 입지를 세워야 했던 운명/상처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심오한 해설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상황3.
대학교 4학년 때 어찌저찌하여 한국 대학생 대표로 뽑혀서 주한미대사와 온라인 미팅을 한 적이 있었다. 중요한 행사였던지 그 미팅을 녹화해서 나중에 볼 수 있도록 해 두어서, 미팅 이후에 녹화본을 보게 되었다. 내가 공적인 장에서의 내 모습(이라고 쓰고 '꼴'이라고 읽는다)을 처음으로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는 자리였는데, 다른 대학생 대표들과는 너무도 확연할 정도로 미팅에서 보이는 내 모습이 달랐다. 한마디로 매우 삐딱했다. 말투나 톤이 그랬다는 게 아니라, 매우 예의없어 보이는 자세로(그러니까, 허리를 곧추세우지 않고 약간 삐딱하게, 아침마당 같은 프로그램을 거실에서 보는 자세로), 마치 내가 주한미대사를 오래 알고지낸 사람처럼 미팅 내내 이상하게 '풀어진'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이 세 가지 에피소드의 배경은 각각 멀리 떨어져 있다(40대, 30대, 20대). 그리고 이제서야 이 세 가지 정황의 인과가 명확히 보이게 되었다.
나는, 한마디로, 권위들(대부분의 권위는 '남성'으로 대변된다)과의 관계에 대해서 겁대가리가 없는 인간이며, 이런 나의 태도가 발생시킨 많은 경험들이 현재의 나의 외면과 내부를 구성하기 이르렀음을 발견하였다. 겁대가리가 없기 때문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 권위들에게,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힘'있는 남성들에게 나를 완전히 드러내어 보이고, 이해관계가 들어맞거나 취미/지향이 비슷하다면 앞뒤 가릴 것 없이 그 권위들의 삶 속으로 스스럼 없이 파고들곤 하였던 것이다.
늘 열심인 인간인 동시에, 내가 바라고 원하는 바를 명확히 표현하며 권위들이 지닌 능력을 도드라지게 상찬하고 인정하였기에, 권위들은 대부분 관계의 초창기에는 나에게 매우 호의적이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다보면, (나는 어찌되었든 생물학적으로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 권위들은 자신들의 지근거리에서 눈에 띄게 드러나는 나의 스스럼없는 행동이나 언변에 자신들의 평판이 훼손될 것을 몹시 염려했고, 그 결과, 나는 어떤 식으로든 권위들(또는 그의 똘마니들)에 의해 '정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남성 후배/제자를 긴 호흡으로 길러주듯 나를 길게 신뢰해 주는 선생을 만나본 적이 없었고, 그것이 나에게는 늘 큰 상처였다.
내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회사를 그나마 길게 다닐 수 있는 것도,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사장이 우리 엄마의 이부(異父) 동생이기 때문임도 이번 '신간사태'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일반적인 회사였다면, 나는 또 어떤 프레임에 갇혀서 분명 마녀사냥을 당했을 것이다(사장의 정부/첩이나 다름없는 꽃뱀류의 비서라는 등의 소문). 허나, 사장과 내 관계의 실체를 모르는 이들에 의해 이상한 소문이 난다한들 외삼촌과 질녀가 눈이 맞을 일은 막장드라마가 아닌 한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도 나도 서로의 관계의 변질가능성에 대해 무관심할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는 '사적인 감정/욕망으로 남성 권위를 타락시키기 위해 온갖 열심을 부려대는 마녀'로 해석되는 팔자인 것으로, 옛 스승의 신간을 찬찬히 읽어내며 내 팔자의 어떠함을 명확히 인지하게 되었다. 내가 알고 싶은 세상을 향해서라면 그리고 그 세상을 위해 통과해야 할 인간들이 있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내 욕망으로 인해 치뤄야 할 대가이었음을 이제는 겸허히 받아들인다. 이제는 나도 나이를 먹을대로 먹어, 예전만큼 저돌적일 힘도 없고, 불나방처럼 나를 던져볼 대상이나 이념/신념도 사그라들고 말았으니, 이 '힘빠짐' 혹은 '맥풀림'이 나로 하여금 나의 팔자와 '나'라는 인과에 대하여 밝히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해 주고 있다. 슬프지만 감사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공님의 조언을 따라, 내 모든 구루들에게 사과를 해 볼 뿐, 무엇을 더 해볼 수 있겠는가: "그래요, 다 제 잘못입니다. 내가 나쁜 년이었어요.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죄송합니다."
p.s: <울타리>에 처음 들어설 때도, 나는 이런 나의 '팔자'에 대한 근심을 소공님께 가능한 솔직히 말씀드렸더랬다. <울타리>에서 내가 또 마녀 노릇을 한다라고 지목/해석되면 어떡하냐는, 너무도 황당하게 들렸을 나의 염려에 소공님은 수화기 너머로 잠시 생각을 하시더니, "여기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또 어떻습니까? 그냥 해보는 거에요"라고 하셨고, 나는, 소공님의 이 말씀에서 삼생을 넘어서는 깊은 안도감을 그 즉시 얻었다. 어찌보면, 소공님의 이 말씀("그러면 또 어떻습니까?")이야말로 내 모든 생각을 출렁하게 만드는 토템이었는지도, 나만의 '말후구'로 그 순간 자리매김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기회를 빌어, 소공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