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 이야기 (17)
BTS의 ‘아리랑’에서 희망을 보다
BTS ‘아리랑’의 열기가 뜨겁다. BTS의 정규 5집 ‘ARIRANG’은 미국 빌보드 200에서 23주 연속 차트에 머물며 2026년 9월 5일자 기준 3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차트의 숫자보다 더 놀라운 것은 공연 현장의 모습이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BTS의 ‘아리랑’을 함께 부른다. 한국어로 된 ‘아리랑’을 수많은 외국인들이 열광적으로 ‘떼창’하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들은 과연 ‘아리랑’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우리는 왜 늘 ‘아리랑’을 비장한 분위기로 부를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리랑’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소위 ‘본조아리랑’이라 불리는 것이다. 1926년 단성사에서 개봉한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로 사용되면서 전국적으로 크게 유행한 신민요 계열 즉, 새로 만든 ‘아리랑’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영진이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는 장면과 함께 ‘아리랑’이 흐르면서 이 노래에는 자연스럽게 암울한 시대의 정서가 덧입혀졌다.
‘아리랑’은 본래 그렇게 비장하기만 한 노래가 아니다.
현재 전승되는 ‘아리랑’은 약 60여 종에 3,600여 변이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리랑’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양한 선율과 리듬, 가사로 불려 왔다. 이별과 슬픔만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 노동과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아낸 노래다. 대표적으로 ‘밀양아리랑’은 경쾌하고 힘찬 리듬을 가진 ‘아리랑’으로, 왜정기에는 광복군의 ‘항일운동가’ 또는 ‘군가’로도 불렸고 해방 이후에는 노동운동의 노래로도 애창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정기의 시대적 비극과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서, ‘아리랑’을 ‘한과 슬픔의 노래’로 이해하는 이미지가 강하게 형성되었다. 여기에 왜정기의 식민지교육과 관련한 악의적인 문화해석이 더해지면서 우리 음악 전체를 ‘한이 서린 음악’으로 바라보는 시각까지 확산되었다.
우리 음악은 어느 한 가지 정서로 설명할 수 없다. 우리 음악에는 ‘수제천’과 같은 장중한 궁중기악곡이 있는가 하면 엄숙한 제례음악도 있고, ‘군악’과 ‘취타악’처럼 힘차고 웅장한 음악도 있다. 한편 애잔한 ‘서도민요’가 있는가 하면, 밝고 경쾌한 ‘경기민요’도 있다.
“우리 소리에는 한(恨)이 서려 있다”는 말로 우리의 정서를 ‘한(恨)’으로 일반화한 해석은 명백히 악의적인 왜곡이었다. 그것은 왜정기에 민족정기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한국인의 정서를 악의적으로 폄훼하는 해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즉에 버렸어야 할, 그 스스로를 비관하는 표현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세태는 심각하게 굴욕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하루바삐 ‘자기비관’, ‘자기비하’의 굴욕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BTS의 아리랑에서 희망을 보았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함께 부르는 아리랑은 더 이상 패배와 좌절의 노래가 아니다. 그들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아리랑’은 밝고 힘차다. 서로 다른 언어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노래를 함께 부른다.
‘아리랑’은 더 이상 ‘한(恨)’에 머무는 노래여서는 안 된다.
정승욱 / 문학박사 · 알타이역사민속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