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우」는 ‘장마비’ 또는 ‘궂은 비’라는 뜻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문집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제5권에 실린 5언 율시의 한시다. 전반부에서는 집 안팎의 퇴락한 모습 묘사를 통해 궁핍한 시골 생활을 보여주고, 후반부에서는 생활고에 괴로워하는 탄식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탄식의 진정한 원인은 장마 때문이 아닌 맑은 날에도 탄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통해 농민들의 고달픈 현실을 암시하고 있다. 주 내용은 농촌과 농민들의 궁핍한 삶이다.
다산의 다방면에 걸친 사상과 업적 중에서도 문학사상과 관련해서는 시 정신(詩精神)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시정신의 연원은 시(詩)로써 수기군자(修己君子)의 인격을 도야하고 정서를 함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산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인민의 삶이 담긴 현실을 사실적으로 파악하여 이를 순정문학(醇正文學: 唐·宋의 古文을 존중하는 정통문학)으로 순화하려 하였다. 그러나 다산의 시정신은 단순히 여기에 머물지 않은, 곧 수기(修己)를 위한 정서 함양이라는 소승적 시 정신에서 ‘현실폭로에 따른 치인(治人)을 위한 시 정신’으로 옮겨졌음을 볼 수 있다.
현대어 풀이 궁벽하게 사노라니 찾는 사람도 드물어 날마다 의관이 필요 없다네 썩은 지붕에서는 노래기가 떨어지고 황폐한 밭에는 팥꽃이 남아 있네 병이 많으니 잠마저 줄었고 글 짓는 일로 시름을 달래 보네 궂은 비 온다고 해서 어찌 괴로워할 것인가 맑은 날에도 혼자서 탄식할 뿐인 것을
작품해설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의 문집 『여유당전서』 제5권에 실려 있는 5언 율시의 한시로, 제명의 뜻은 ‘장마비’ 또는 ‘궂은비’로 항간에 많이 알려진 시이다. 오랜 유배생활에서 다산은 궂은 비나 장마비를 읊은 시가 상당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고우탄(苦雨歎): 장마비를 한탄함」, 「고우시미원(苦雨示美元): 궂은비를 읊어서 미원에게 보이다」, 「대우용전운(對雨用前韻): 비를 대해 전운으로 읊다」, 「구우발민(久雨撥悶): 오랜 비에 근심을 토로하다」 등을 들 수 있다.
「고우탄」에서는 「괴롭고 괴롭게도 자꾸만 비가 내려(苦雨苦雨雨故來)」라고 하여, 궁벽한 시골에서 병마에 시달리는 가운데 지겹도록 그치지 않는 장마비에 괴로워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특히 임진년(壬辰年: 1832년)에 쓴 「구우발민」에서는 나랏일에 대한 걱정과 장마비에 쓰러지고 썩어가는 농작물과 농사일을 걱정하는 모습을 애절하게 쓰고 있다.
「구우」는 전문 8행 4연으로 이루어진 5언 율시의 정형시로, 개인적인 궁핍한 일상사를 통해 도탄에 빠진 농촌의 현실, 나아가 사회와 나랏일을 걱정하는 모습으로 확산시켜 가는 모습을 보이는 작품이다.
비가 오거나 오지 않거나 작가로 하여금 괴로움과 탄식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표현상 일차적으로는 생활고(生活苦)이다. 그러나 이 생활고는 작가 개인에 한정된 일이 아니라 이웃과 마을 전체에 해당하는 일이며, 나라 전체에 해당하는 일이라고 깨닫는 것에서 이 작품의 주제가 암시되고 있다하겠다.
곧 ‘장마비’는 표면상의 이유이고 핑계일 뿐이며, 실제 이유는 백성들을 수탈해가는 잘못된 관료들의 현실 때문이라는 것이다. 작가가 괴로워하는 것은 이러한 잘못된 제도의 개혁에 대한 열망과 의지이다. 그러기 위해서 전반부에서 먼저 농촌과 농민들의 고달픈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후반부에서는 그러한 현실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정의 내용을 글을 지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