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은 누구나 한번쯤 가본다. 시골에서 친척이 왔을 때 마음 편하게 둘러보기도 하고, 아이들과 모처럼 마음먹고 가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궁에들러 보면 거의 같은 모형의 기와집들이 크기만 좀 다를 뿐 멀뚱이 서있을 뿐이다. 같이 간 사람들하고 그냥 걸어다니다가 설명한번 보고 전각한번 쳐다보다 돌아오고 만다.
지난 5월부터 제가 경복궁 안내를 시작한 이유를 굳이 밝히자면 이런 처지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지만, 가장 큰 계기로는 작년에 운현궁을 찾았을 때 일때문이기도 하다.
운현궁은 알다시피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살던 집으로 그가 그 유명한 쇄국정책을 펴낸 장소이기도 하다. 궁궐의 정의를 보자면 왕과 그의 가족들이 살면서 왕이 법을 펴내고 정치를 해야하는 곳으로 담으로 둘러 싸여 있으며, 보초를 서는 망루가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자면 운현궁은 엄밀히 말해 정궁(정식궁)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런 규모가 작은 궁을 70이 다된 노인이 처음보다 몇개 남지 않는 전각(건물)속에 들어가거나, 그 앞에서 재미난 역사이야기를 곁들여가면서 얘기한다.
궁전각들이 관리 잘되는 기와집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던 전각들이 갑자기 역사속에서 기어나와 나를 감싸더니 기와장 한개 한개 그리고 문양들까지 내 귀에 대고 소곤소곤거리는 것 같았다. 마치 과거와 현재의 내가 혼연일체를 이루는 것 같았다.
학창시절을 통털어 역사라면 조선왕조 족보나 줄줄이 외운게 다인 나로서는 새롭게 다가오는 과거가 신기했다. 나도 기회가 닿으면 공부를 해서 궁궐을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나이가 저만큼 들어서도 가능한 일은 저 일도 있겠다 싶었다. 그 당시에는 늙어서 일없는 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었다. 그래서 한국청년연합회에서 궁궐 길라잡이를 모집한다는 기사글을 보고는 한치도 요리 조리 재보지 않고, 장장60시간 강의를 두달간 1주일에 세번(토요일 오후 답사포함)을 저녁7시반부터 밤 9시반까지 종로5가로 나가는 교육을 마다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11시 내지는 11시반. 규제도, 비용(?)도 마다하지 않았다.결석 3번하면 자동 탈락, 교육비 거금 5만량...
아래책들은 공부하면서 보던 책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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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궁궐전반을 다루는 책으로는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궁궐기행
-우리 궁궐이야기/홍순민지음/청년사
국내최초 '궁궐박사'인 홍순민씨가 직접 강의할 때 쓰는 교재로 당대 궁궐의 어도(왕의 길)을 밟는 발걸음에 동반자이고 싶어 이 책을 펴냈다는 저자의 바램을 담느라 그런지 한눈에 쏙 들어오지 않는 구구절절함이 배어있다. 1부에서는 궁궐 멀리서 보기로 궁궐의 공간,지리적 배치,구조, 역사와 답사를 하는 뜻을 2부에서는 조선의 궁으로 서울에 있는 5대궁을 가까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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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야기가 있는 경복궁 나들이
-강경선,김재홍, 양달섭, 윤종배, 이인석지음/역사넷
제목만큼 이야기위주로 내용이 꾸며져 있어 궁궐초보자(?)가 읽으면 적당한 책이다. 이 책은 나로서는 가이드 자원봉사때 들어주는 관객들(?)에게 더 친근하게 궁궐이 다가갈 수 있도록 위책보다도 더 자주 들여다본다. 아무래도 딱딱한 이론을 말해주는 것보다는 이야기로 먼저 설을 푼다음 이론을 섞는 차례로 안내를 하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지은이들이 모두 현재 한분만 빼고는 고등학교 교사여서 그런지 간혹 궁궐견학 온 고등학생들이 이 책을 보는 모습이 눈에 띈다.
참고로
*궁궐 안내는 유료안내이외에 나와 같이 정기 교육을 받고 나서 무료로 자원봉사를 하는 궁궐 길라잡이가 일요일오후에, 궁궐 길잡이가 토요일오후에 있다.
시간은 오후1시반, 3시반이나, 봉사요원이 많을 경우 정기 안내시간이외에도 중간 중간에 수시로 안내한다. 정기교육을 받고는 6개월간은 의무안내기간으로 반드시 한달에 한번 내지는 두번 안내를 해야한다. 혹시 안내받기를 원하거나, 교육받기를 원하는 회원님들을 위해 알려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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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차차 부자의 고궁답사기1,2
-아들 차준용, 아빠 차승목/미래M&B
궁궐건축시 전각 단장에 필요한 문양이나 단청을 표지에 두 父子가 돋보기로 그것들을 살피는 것처럼 꼼꼼하게 실제 문양이나 단청들이 책중간중간에 끼여있고,꼼꼼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내용이 글 중간중간에 끼여 있어 마치 내가 던질만한 질문과 답을 대리로 구하는 방식이어서 용어자체부터가 어려운 옛건축언어들이 쉽게 이해된다. 아들이 특히 숭신 초등학교 6학년때 펴내서 초등학교 필독 내지는 권장도서목록에 단골로 등장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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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궁궐을 공부하면서 보던 책들을 소개해야지 하는 마음이 늘 있었는데 이제야 그 숙제를 마친 느낌이다. 속편히 자야지... ...
경복궁을 정해서 안내를 맡은 이유는 조선의 법궁으로서 가장 규모가 커 외울 것도 많지만, 이런 분량에 익숙해지면 다른 궁을 안내하고 싶어 移宮할 때 편하겠다 싶어서였다. 현재로서는 이궁할 마음은 없다. 경복궁도자세히 알려면 몇년 더 걸리니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