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카는 한국이 원조다”(엔카의 전설 ‘다카기 이치로’)
박상진(철학박사,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명예교수)
[국악신문] 조선 세종 31년(1449)에 세종이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양하여 지은 노래를 실은 책.으로 전해지는 책은 국보 제320호로 정식 명칭은 ‘월인천강지곡 권상(月印千江之曲卷上)’이다.
뉴욕의 유엔본부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기증한 ‘월인천강지곡’의 활자본, 그리고 그것을 인쇄한 활자들을 복원한 조형물이 그 위용을 드러내며 전시되어 있다. 이것은 1991년 9월에 유엔에 가입한 기념물이다. <월인천강지곡>의 고본(古本)을 복사 확대한 복제품인데, 사람 키만큼 높은 유리 상자에 보관되어 있어 한눈에 띈다. 더구나 한글 활자로 된 것이기에 한국의 고유어인 한글의 독창성을 당당하게 전시하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 전시물은, 최초의 한글 활자본인 월인천강지곡을 1000년 동안 보존된다는 특별한 한지에 복원하고, 당시의 활자를 재주조하여 조형물로 전시한 것이다. 월인천강지곡은 1447년에 쓰였으니 한국의 금속활자가 1440년경의 구텐베르크(Gutenberg)의 금속활자보다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한국이 막강한 한자 문화의 지배권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한글을 창제한 나라임을 만천하에 자연스럽게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월인천강지곡은 불경에 나오는 말로서 ‘월인천강(月印千江)’의 뜻은 하나의 달이 똑같은 모양으로 천(千)의 강물에 비친다는 뜻이다.
역사는 때론 소수에 의해 움직인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나라 전체의 이미지를 좋게도 나쁘게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창조는 개인의 힘이지만 그것의 결과는 국력이 된다. 최근에 살아있는 자기계발서로 평가받고 있고, 대통령이 한국 외교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극찬하며 미래문화특사로 임명된 BTS(방탄소년단), 그리고 싸이에 이어 미국의 저스틴 비버를 뛰어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튜브 구독자 수를 보유한 블랙핑크 등은 한류인 K-POP으로써 K-문화의 새로운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일제 강점기였던 100년 전 한국의 대중음악의 현실은 어떠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가요를 1926년 윤심덕이 불러 히트시킨 ‘사의 찬미’라고 하지만 그보다 앞선 1923년 무렵에 많은 국민들이 따라 불렀던 ‘이 풍진 세월’이라는 주장도 있다. 가사는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은 무엇이냐”로 시작하는 노래로서 원래 제목은 '희망가'이다. '사의 찬미'는 이바노비치의 왈츠곡 ‘도나우강의 잔물결’에서 곡을 흉내냈다고 하는데, 이 풍진 세월도 원작자는 영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한국인 스스로 창조적으로 작곡된 곡이 1926년경에 작곡된 전수린의 '고요한 장안'인데, 이 곡은 한국에서는 실제로 극 중에 막간 가수의 노래로 불려지고 있었던 노래이다. 전수린은 1907년 개성에서 출생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호수돈 여학교의 교장인 ‘루추부인’으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고, 어린 나이에 동요를 작곡하기 시작하였다. 15세 때 송도고보를 중퇴한 전수린은 서울로 올라가 연악회(硏樂會)를 주도하고 있던 홍난파와 함께 활동하게 된다. 전수린은 한국 작곡가 최초로 ‘빅타 레코드사’에 전속되어 1932년에 '황성옛터'와 '고요한 장안'을 일본에서 발표하여 일약 유명한 작곡가가 된다.
[국악신문] 당시 10만장이 팔린 음반 <사의 찬미(死の讃美)>, 1926년에 발표된 번안 가요. 윤심덕 작사, 이바노비치 작곡, 윤심덕 노래의 곡이다.
한편, 엔카의 대부로 불리게 된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고가 마사오 작곡의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酒は 淚か溜息か)'는 1931년에 발표되었는데, 1932년에 표절시비에 휘말리게 된다. 한국의 전수린 작곡의 '원정'(한국에서는 '고요한 장안'으로 발표)을 표절했다는 것이다. '원정'이 발표됐을 때 일본 박문관(博文館)에서 출판하는 잡지 '신청년'에서 고가 마사오의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가 전수린의 '고요한 장안(원정)'을 표절했다고 하는 기사(이호섭 글 참조)가 실렸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사실을 일본의 음악평론가 ‘모리(森一也)’는, 당시 ‘고가마사오’가 조선에 살고 있었을 때 들었던 ‘전수린’의 멜로디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일본 엔카를 대표하는 원로 가수이자 일본엔카협회 이사장인 다카기 이치로는 제이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엔카의 원조는 한국이라는 것을 밝힌 바 있다. 다카기 이치로는 "일본 엔카의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의 피가 섞여 있으며 엔카 멜로디 원조는 한국입니다.”라고 언급하면서 고가 마사오가 유년시절 한국에 살면서 교육을 받았고, 한국의 전통문화를 가까이 했음을 강조하며 엔카의 멜로디는 한국의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다카기 이치로는 10대부터 일본 민요를 배우기 시작해 엔카 가수 한길을 고집한 45년 베테랑 엔카 가수이다. 1963년 데뷔하여 300곡 이상의 곡을 발표했고, 아내 쓰야마 요코와 듀엣으로 부른 '신주쿠소다치'는 160만장의 음반이 팔리며 엔카의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일본 엔카를 지키기 위해 1997년 일본엔카가요협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다카기 이치로는, "엔카는 메이지 시대부터 바이올린 연주에 맞춰 그날의 뉴스, 사건을 전달하는 형태로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때의 엔카는 연가(演歌)가 아닌 염가(艶歌)였죠, 염(艶)자는 일본어로 섹시하고, 빛나고, 성숙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깊이 있는 음악이라는 것이죠, 그것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연출’이라는 의미의 연가가 되었습니다.
일본 엔카의 원점이 되고 있는 천재 작곡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씨는 일본 후쿠오카 출신이지만 한국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일본에 건너와 탄생시킨 엔카의 멜로디는 한국의 것이었죠, 그러니까 엔카의 원조는 한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