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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엎드려서
7. 큰소리로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8. 그것은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악한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거라" 하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니, 그는 "군대입니다. 우리의 수가 많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하였다.
10. 그러고는, 자기들을 그 지역에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11. 마침 그 곳 산기슭에 놓아 기르는 큰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귀신들이 예수께 "우리를 돼지들에게로 보내셔서, 그것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13. 예수께서 허락하시니, 악한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거의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바다 쪽으로 비탈을 내리달아, 바다에 빠져 죽었다.(막5:6-13)
6 When he saw Jesus from a distance, he ran and fell on his knees in front of him. 7 He shouted at the top of his voice, “What do you want with me, Jesus, Son of the Most High God? In God’s name don’t torture me!” 8 For Jesus had said to him, “Come out of this man, you impure spirit!”
9 Then Jesus asked him, “What is your name?”
“My name is Legion,” he replied, “for we are many.” 10 And he begged Jesus again and again not to send them out of the area.
11 A large herd of pigs was feeding on the nearby hillside. 12 The demons begged Jesus, “Send us among the pigs; allow us to go into them.” 13 He gave them permission, and the impure spirits came out and went into the pigs. The herd, about two thousand in number, rushed down the steep bank into the lake and were drowned.
*예수님 관광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어두운 밤, 배 타고 떠난 것입니다.
거기서 그 때에 제자들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것입니다.
저 사람이 누구냐!
어떻게 바람과 바다도 꼼짝 못 하는가!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막4:41)
이 여행은 예수님 가까이서 예수님을 구경하는 일입니다.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 주님은 무척 피곤하셨던 모양입니다.
배는 뒤집히게 생겼는데 거기서 주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미친 파도가 제자들에게는 위기였지만 예수님께는 자장가였습니다.
제자들은 나 살리라고 주님을 깨운 것입니다.
주님은 벌떡 일어나셔서 단 한 마디 하셨습니다.
그 말씀 한 마디에 천지가 잔잔해진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입을 모아 외쳤던 것입니다.
저 사람이 누구냐!
저 사람 앞에서는 바람과 바다도 꼼짝을 못 하는가!
처음에 그 상황을 만났을 때는 예수님께서 여행 날짜와 여행 코스를 잘못 잡은 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미친 바다 어두운 밤에 제대로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신 관광
배가 뒤집힐 듯이 흔들렸습니다.
제자들이 쪽박을 들고 서로 욕질을 해댔습니다.
야! 이 놈아, 제대로 물 안 퍼!
시늉만 할래!
그 뿐 아닙니다.
멱살 잡을 뻔 했습니다.
그 쪽박이 그래도 유용할 줄로 알았습니다.
베드로의 바다 경험과 지식이 한 몫 할 줄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그 알량한 베드로의 경험과 지식도 쪽박과 함께 깨지고 말았습니다.
미친 바다에서 자신을 제대로 구경한 것입니다.
물론 순풍 앞에서는 지식도 쪽박도 제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때에 잘한 일 딱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깨운 일입니다.
예수님을 좀 더 빨리 깨웠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서서 내가 해보겠다는 통에 쪽박만 깨진 것입니다.
*미친 것들
예수님과의 그 여행에서 먼저 만난 것은 미친바람입니다.
이번에는 미친 사람입니다.
미친바람을 만났을 때 제자들은 쪽박을 들고 설쳤습니다.
그러다가 쪽박만 깨졌습니다.
이 마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귀신을 쇠고랑으로 묶어두려 한 것입니다.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막5:3,4)
발악을 하던 귀신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오시자 이상한 일을 한 것입니다.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엎드려서
6 When he saw Jesus from a distance, he ran and fell on his knees in front of him.
멀리서 예수님께 먼저 달려온 것은 귀신이었습니다.
온갖 미친 짓을 다하던 귀신이 공손히 예수님께 절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다보면 반드시 미친바람을 만난 다음 미친 사람을 만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들은 미친 바다도 미친 사람도 결국은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존재
7. 큰소리로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7 He shouted at the top of his voice, “What do you want with me, Jesus, Son of the Most High God? In God’s name don’t torture me!”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쇠고랑으로 그것을 묶어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것이 박살나는 것을 보는 일입니다.
그것이 그래도 제법 구실을 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쪽박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그런 귀신에게 위협을 느낀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입니다.
귀신은 공포에 예수님께 달려가서 굴복한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귀신을 위협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것을 부르신 적도 없습니다.
다만 예수께서 배에서 내리셔서 이 마을에 오셨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귀신은 공포에 쌓인 것입니다.
귀신은 예수님의 존재에 위험을 느낀 것입니다.
축귀의 능력이 아닙니다.
방언이나 예언이 아닙니다.
배에서 내리시는 그 분의 존재 자체에 위협을 느낀 것입니다.
그러면 분명해진 것이 있습니다.
우리 역시 안전을 원한다면 주님을 내 안에 모시는 존재가 되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귀신을 이기는 일이 종교 기술적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랑과 정의의 내용성이 없는 자들이 자꾸만 예수 이름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예수와 바울을 모르는 자들이 말입니다.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행19:13-16)
그렇게 귀신이 스스로 위협을 느끼도록 주님을 우리 안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위협하던 존재가 우리 앞에서 제 위기를 고백할 것입니다.
그는 살기 위해서 제 팔을 자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인 중에 바보 같은 짓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주 열심히 엉뚱한 짓을 하다가 생명을 잃는 사람들입니다.
방언하고 예언하고 귀신 쫓는 일에 골몰하다가 지옥간 사람들입니다.
8. 그것은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악한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거라" 하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8 For Jesus had said to him, “Come out of this man, you impure spirit!”
혹은 그 돼지 떼들이 모조리 물에 빠져서 죽든지 말든지!
그래서 예수님은 그 귀신을 향해 그 사람으로부터 나가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나갔다는 것은 그 사람이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귀신이 사람을 죽이는 방식은 사람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1. 그 마을의 경제를 보장하고 사람의 생명을 죽일 것입니다.
2. 귀신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도에 지나치게 할 것입니다.
그 이상을 뛰어넘는 요구는 피조물인 인간의 도를 넘는 요구입니다.
귀신들은 사람 안에 사는 것이 중요하고 예수께서는 그 귀신을 사람 안에서 쫓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귀신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스스로 달려와서 무릎을 꿇는 수밖에 달리 길이 없었습니다.
이 사람으로 하여금 무덤에 제 집을 마련하고 쇠고랑을 박살을 내게 하는 이가 누구인가?
그들은 틀림없이 미친 사람을 보면 그 사람 내부에 태엽이 고장났다고 할 것입니다.
귀신의 짓이라고 하면 신앙인들을 아주 미개인 취급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을 믿는 우리는 다른 영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십니다.
그런데 희죽거리며 무덤을 제 처소로 삼은 이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군대 귀신이었습니다.
하지만 군대귀신이 들어가자 그의 윤리의식이고 인품이고 다 무용지물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는 교수 기숙사를 떠나서 무덤을 제 집으로 삼게 된 것입니다.
9. 예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니, 그는 "군대입니다. 우리의 수가 많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하였다.
9 Then Jesus asked him, “What is your name?”
“My name is Legion,” he replied, “for we are many.”
싹쓸이 귀신, 모조리 내 것 귀신을 만들려는 양의 귀신입니다.
그는 제 소유를 저장하기 위해 다섯 창고를 지으려합니다.
그 분은 바로 그 일을 위해서 모든 것을 빼앗기시며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그는 "군대입니다. 우리의 수가 많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하였다.
“My name(단수) is Legion,” he replied, “for we(복수) are many.”
10. 그러고는, 자기들을 그 지역에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10 And he begged Jesus again and again not to send them out of the area.
지금 귀신의 고백은 한 가지 사실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처소도 제 원하는 곳을 예수님의 허락을 받아야했습니다.
2,000마리의 돼지 떼(2,000마리 x 30만원 / 마리 = 6억)가 중요한 사람들의 아버지는 군대 귀신입니다.
미친 사람의 회복이 더 중요한 사람들의 아버지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백성을 찾아 그 마을을 나서신 것입니다.
귀신의 거주지는 경제를 위해서 비인간을 용납하는 곳입니다.
11. 마침 그 곳 산기슭에 놓아 기르는 큰 돼지 떼가 있었다.
11 A large herd of pigs was feeding on the nearby hillside.
그는 그것으로 이 마을에 경제적 재앙을 일으킬 것입니다.
12. 귀신들이 예수께 "우리를 돼지들에게로 보내셔서, 그것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12 The demons begged Jesus, “Send us among the pigs; allow us to go into them.”
귀신은 계속하여 활동할 자신의 공간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돼지의 몰살에 온통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들, 돈 귀신에 사로잡힌 이 마을 사람들은 군대 귀신에게 둘도 없는 후원자들이었습니다.
13. 예수께서 허락하시니, 악한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거의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바다 쪽으로 비탈을 내리달아, 바다에 빠져 죽었다.(막5:6-13)
귀신이 이런 제안을 하자 예수님께서 주저 없이 동의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재앙이 터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이방 땅의 더러운 동물 돼지이니 뭐니 합니다.
이방 땅의 재산은 망해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예수님입니까?
그 곳이 유대 땅이었다면 예수께서는 소떼가 물에 빠져죽게 하셨을 것입니다.
죄인들은 누구나 돼지 재앙이 없는 축귀를 이상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일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적 상징입니다.
예수님조차 겟세마네에서 하나님 나라와 세상을 양립시키시려는 유혹으로 고민하셨던 것입니다.
결국 그 마을에 온 재산이 바다에 다 수장되자 한 생명이 살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가장 헷갈리게 하는 것이 독재자들의 경제 공로입니다.
경제발전을 위해서 여공들은 아기 못나도 좋고, 눈멀어도 좋고, 벨트에 손이 감겨도 되고.......
그 분은 무덤을 오가던 미친 한 사람이 회복되는 일에 관심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 생명과 재물의 두 가치를 양립시키려는 귀신 장난질에 속지 않은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2,000마리의 돼지 떼가 바다로 뛰어들자 한 사람이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자 만백성이 살아났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즉각 반응한 것입니다.
신앙이란 갈등상황이 없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배타시고 미친 바다를 피해가신 것이 아닙니다.
미친 바다를 지나시더니 미친 사람을 찾아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미친 것과 정상인 것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의 말씀이 떨어지자 발악하던 파괴력이 잠잠해진 것입니다.
태풍과 귀신은 자신이야말로 something 이라고 주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