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계(㵢溪) 유호인(兪好仁)1445년(세종 27)~1494년(성종 25)
㵢谿集卷之七 / 文 / 祝六神
祝六神。商之飆獰以吹。娥之守▒小兒。練時日來招提。招提絶邃攀且隮。具湯盤訟自新。呵斥穢惡招精神。
咨爾守靈宅蓮葉。朱錦衣裳佩羅玉。呼吸五華葆丹珠。神兮綏止冀登蘇。
咨爾結華守華蓋。黃雲爲帶尊已恭。千呼萬息運而通。神兮制止辟外凶。
咨爾龍煙木爲居。芒芒震方握發舒。駕魂馭魄飮日丹。神兮燕止和且安。
咨爾育嬰守玄闕。裾以龍華明日月。調漱百液攝天根。神兮鎭止守對門。
咨爾魂停棲土宮。舍臺嵬峨壯九重。濟洩六精盎尺宅。神兮閑止要脈脈。
咨爾龍曜擴電光。虎旆龍旂凌八荒。英威衝冠揚火鈴。神兮雄止助義精。
重爲告曰。閭闔雲杳一朶。沆瀣餘宿果。口銜靈芝▒五星。手擎牙簡朝太淸。左呼靑鳥歌黃竹。右揖浮丘折若木。炎迅汗漫窮大幕。超忽萬物立於獨。
咨爾六神。急急如律令。
........................
娥之守▒小兒->娥之守困小兒
*속동문선 제18권 / 잡서(雜書)
축육신(祝六神)
유호인(兪好仁)
육신(六神)에게 빈다. 가을 바람 쌀쌀히 부는데 아(娥)의 수(守)는 어린아이를 곤하게 한다.
원문이미지 困 원문교감필요
........................
口銜靈芝▒五星->口銜靈芝攝五星
**속동문선 제18권 / 잡서(雜書)
축육신(祝六神)
유호인(兪好仁)
입으로 영지(靈芝)를 머금고 오성(五星)을 끼고,
원문이미지 攝 원문교감필요
........................
속동문선 제18권 / 잡서(雜書) / 축육신(祝六神) / 유호인(兪好仁)
祝六神。商之飆獰以吹。娥之守▒小兒。練時日來招提。招提絶邃攀且隮。具湯盤訟自新。呵斥穢惡招精神。
咨爾守靈宅蓮葉。朱錦衣裳佩羅玉。呼吸五華葆丹珠。神兮綏止冀登蘇。
咨爾結華守華蓋。黃雲爲帶尊已恭。千呼萬息運而通。神兮制止辟外凶。
咨爾龍煙木爲居。芒芒震方握發舒。駕魂馭魄飮日丹。神兮燕止和且安。
咨爾育嬰守玄闕。裾以龍華明日月。調漱百液攝天根。神兮鎭止守對門。
咨爾魂停棲土宮。舍臺嵬峨壯九重。濟洩六精盎尺宅。神兮閑止要脈脈。
咨爾龍曜擴電光。虎旆龍旂凌八荒。英威衝冠揚火鈴。神兮雄止助義精。
重爲告曰。閭闔雲杳一朶。沆瀣餘宿果。口銜靈芝▒五星。手擎牙簡朝太淸。左呼靑鳥歌黃竹。右揖浮丘折若木。炎迅汗漫窮大幕。超忽萬物立於獨。
咨爾六神。急急如律令。
육신(六神)에게 빈다. 가을 바람 쌀쌀히 부는데 아(娥)의 수(守)는 어린아이를 곤하게 한다. 날짜를 가려서 승방[招提]을 찾으니 승방이 동떨어져 더디 잡고 올라가네. 탕반(湯盤)을 갖추어 자신을 깨끗이 하며, 추악한 것 물리치고 새 정신 부르노라.
수령(守靈)은 연잎[蓮葉]에 집을 짓고, 붉은 비단 의복 입고 나옥(羅玉)을 차고 오화(五華 오장(五臟)의 정화(精華))를 호흡하며 단주(丹珠)를 안보하니, 신이여, 편안히 휴식하길 바라노라.
호화(皓華)는 화개(華蓋)를 지키며 황운(黃雲)으로 띠를 매고 존엄해서 태연하네. 천호(千呼)ㆍ만식(萬息) 운행하여 서로 통하니, 신이여, 제지하여 흉한 것은 물리치소서.
용연(龍煙)은 목(木)을 집으로 삼고 망망한 동방에서 발서(發舒)를 쥐었네. 혼백(魂魄)을 제어하고 일단(日丹)을 마시니, 신이여, 즐겁고도 화평하리.
육영(育嬰)이여, 현궐(玄闕)을 지키니, 용화(龍華)로써 옷깃에 일월이 빛나도다. 온갖 진액 고루 맡아 천근(天根)을 통할하니, 신이여, 진정하여 대문(對門)을 지키소서.
혼정(魂停)은 토궁(土宮)을 지키니, 집이 높고 높아 대궐보다 웅장하다. 육정(六精)을 발설(發洩)하여 척택(尺宅)을 윤나게 하니, 신이여, 한가히 앉아 맥맥히 보시라.
용요(龍曜)는 번개 빛을 번쩍이며, 용(龍)ㆍ호(虎)의 깃발로 온 누리를 휩쓰네. 위력이 치솟으며 불방울[火鈴]을 흔드니, 신이여, 웅장하여 의정(義精)을 돕는도다.
거듭 고하기를, “창합(閶闔 천상(天上)의 궁궐)에 한 송이 구름이 아득하고, 항해(沆瀣 맑은 이슬)는 숙과(宿果)가 □□ 남았도다. 입으로 영지(靈芝)를 머금고 오성(五星)을 끼고, 손으로 아간(牙簡)을 받들고 태청(太淸)에 조회하며, 왼편으론 청조(靑鳥)를 불러 황죽가(黃竹歌)를 노래하고, 바른 편으론 부구(浮丘)에게 읍(揖)하며 약목(若木)을 꺾고, 빠른 걸음 느린 걸음으로 대막(大幕)을 다 더듬어, 만물로 뛰어나 우뚝 홀로 섰네. 육신(六神)이여, 어서 법령과 같이 할지어다.” 하였다.
[주-D001] 탕반(湯盤) : 탕(湯) 임금이 목욕하던 반(盤)이다. 《대학(大學)》에, “탕 임금의 목욕반[浴盤]의 명(銘)에, ‘날로 새롭게 하고 나날이 새롭게 하며, 또 날로 새롭게 한다.’ 하였다.” 하였다. 후에 와서 욕반(浴盤)을 탕반이라 하였다.
[주-D002] 수령(守靈) : 심신(心神)의 자(字)이다. 《황정경(黃庭經)》에, “심신의 이름은 단원(丹元)이요, 자는 수령(守靈)이다[心神丹元守靈].” 하였다.
[주-D003] 호화(皓華) : 폐신(肺神)의 이름이다. 《황정경》에, “폐신의 이름은 호화(皓華)요, 자는 허성(虛成)이다[肺神皓華字虛成].” 하였다.
[주-D004] 화개(華蓋) : 눈썹의 호이다. 《황정경》에, “눈썹의 호는 화개(華蓋)로서 명주(明珠 눈)를 덮었다[眉號華蓋覆明珠].” 하였다.
[주-D005] 육영(育嬰) : 신신(腎神)의 자(字)이다. 《황정경》에, “신신의 이름은 현영(玄嬰)이요, 자는 육영(育嬰)이다[腎神玄寘字育嬰].” 하였다.
[주-D006] 현궐(玄闕) : 유궐(幽闕)과 같은 말인데, 신(腎)의 집이란 말이다. 《황정경》에, “앞에는 유궐(幽闕)이 있고, 뒤에는 명문(命門)이 있다[前有幽闕後門].” 하였다.
[주-D007] 천근(天根) : 신경(腎徑)을 말한다.
[주-D008] 혼정(魂停) : 비신(脾神)의 자(字)이다. 《황정경》에, “비신의 이름은 상재(常在)이요, 자(字)는 혼정(魂停)이다[脾神常在字魂停].” 하였다.
[주-D009] 용요(龍曜) : 담신(膽神)의 이름이다. 《황정경》에, “담신의 이름은 용요(龍曜)요, 자(字)는 위명(威明)이다[膽神龍曜字威明].” 하였다.ⓒ 한국고전번역원 | 양주동 (역) | 1969
............................
海東雜錄[三] 權鼈 / 本朝[三] / 兪好仁
高靈人。字克己。號㵢溪。受業於佔畢齋門下。我成廟朝登第。爲詩淸厲雅健。大爲成廟所重。常令繕寫所著以進。嘗爲掌令。以親老守陜川而卒。有集行于世。爲親乞養。由修撰除山陰。由校理除義城。最後以掌令又乞歸養。上使之輦母來京。病不能致。御札下銓曹曰。好仁事親日短。可除其隣晉州。銓曹辭以不可無故徑遞以毀成憲。乃待陜川之闕除之。上令錄進所著詩文。輒褒美。賜母食物。人皆榮之。我成廟好文。寵奬儒林。一時文章魁傑之士。彪炳玉署。好仁以親老乞外。嘗進詩稿。有北望君臣隔南來母子同之句。上從容賞詠曰。好仁身雖在外。心不忘君矣。談寂記 上入仙宮。四望無極。瀛海爲樽罍。三山爲飣餖。下視人世。蠛蠓紛紛。殊有康節洛陽懷古之感。松道錄 開城東有大井。凝澄數尺。往往井中狂泡沸騰而上。神魚出沒。歷歷可數。世傳以銀盂所掘之井。高麗懿祖作帝建娶龍女。初到開城山麓。以銀盂掘地。水湧出深二尺許。因以爲井。凡祈禱皆祀之。同上 鳳鳴山有玄正二陵。並峙一岡。其始營皇堂也。以金鳧銀鴈之物爲飾。制作極一時之妙。雖驪山之役。無以加此。同上 天磨聖居兩山。蒼翠挺拔。截入霄漢。或若龍虎。或若劍芒。爭奇露怪不可殫數。同上 安東地瘠民貧。然風俗力於農桑。節用儉嗇。以至備荒之務。無不周密。他邑無及。今用誰知盤中飧粒粒皆辛苦十字爲韻。作十歌。祖述民間憂思勤苦之狀。庶擬豳風七月之義。本集 㵢溪閱三國史。兼採雜錄。作東都雜咏二十五首。同上
㵢溪祝六神。一曰守靈。二曰結華。三曰龍烟。四曰育嬰。五曰魂庭。六曰龍曜。守靈心神魂庭脾補。出黃庭經。同上
金孟性坐事謫高陽。克己往高陽待善源。有詩云。天遣謫仙元不謫。不妨揮斥恣天游。如何流水桃花句。枉被金君苦掉頭。詩格 崔致遠隱居伽倻山。一朝遺冠屨於林間。莫知所歸。寺僧寫眞留于讀書堂。㵢溪有詩云。林間冠屨去茫茫。誰識儒仙本不亡。流水籠山吟已遠。風雲空護讀書堂。本集 茅茨雨脚漏床床。與約獰風作黨狂。四壁詩書收不得。從敎一半濕扁傍。同上 臨海殿前纔一聲。祥風宇內妖氛淸。畢竟君臣入醉鄕。鮑石亭前風雨忙。縱使佳名息萬波。吁嗟笛兮奈爾何。萬波息笛 査査丹鵲白鷄祥。徐伐輪來異姓王。莫道一千瓜瓞遠。可憐匏運早凄涼。鵲昔氏鷄金氏。東都 朴淵淵中有石。半出伏如曝龜。史傳高麗文宗嘗登其上。風浪忽起。有掀簸之狀。李靈幹投文鞭龍。風浪遂息。㵢溪有詩。南箕好風捲碧落。一段界破天下白。松都錄 登永安城。南臨雲海。則鯨牙雪浪。日夕浩洶。珠樓蜃闕。變熊不常。同上 雕欒鏤楶結瑤構瓊者。俱已埋沒於荊榛草露。已爲狐兔之鄕。同上 自羅代至國朝。詩之名家非一。而平者失於野。豪者失於縟。卒至委靡而不回。㵢溪詩集序 瞻彼淸涼山。山中多橡木。今年似去年。離離實可拾。擧家負戴歸。舂屑甕中積。凶年豈殺我。猶可代粟粒。花山十詠
해동잡록 3 본조(本朝) / 유호인(兪好仁)
○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극기(克己)요 호는 뇌계(㵢溪)로 점필재(佔畢齋) 문하에서 공부를 하였다. 성종[成廟] 때 급제하였다. 시를 지으면 맑고 고우며 단아하고 건실하여 매우 성종에게 중망을 받아 저술한 것을 등사하여 바치게 하였다. 일찍이 장령이 되었다가 어버이가 늙음으로 인하여 합천(陜川) 수령으로 갔다가 거기서 죽었다. 문집이 세상에 전한다. 어버이를 위하여 봉양하기를 주청하여 수찬에서 산음(山陰) 수령을 제수 받고, 교리에서 의성(義城) 수령을 제수받고, 최후로는 장령으로서 또한 돌아가 부모 봉양하기를 주청하였다. 임금께서는 그의 어머니를 수레에 태워서 서울에 오게 하였으나 병으로 오지 못하게 되니, 임금은 어찰(御札)을 이조에 보내어 이르기를, “호인(好仁)은 어버이 섬길 날이 짧으니 그 이웃인 진주(晉州) 수령을 제수하라.” 하였다. 이조에서는 까닭없이 바로 갈면 기존의 법과 어긋나므로 불가하다고 아뢰니, 이에 합천(陜川)의 수령이 비게 됨을 기다려서 이를 제수하였다. 임금께서, 지은 시문을 기록해서 올리게 하여 곧 칭찬하고 그의 어머니에게 먹을 것을 내리시니, 사람마다 영광스럽게 여겼다. 성종께서는 글을 좋아하시어 유림을 사랑하고 권장하시어서 한때 문장으로 으뜸이요, 걸출한 선비들로 홍문관을 빛나게 하였는데, 호인이 늙은 어버이를 봉양한다는 것으로써 외직을 주청하여 나가게 되었다. 일찍이 올린 시고(詩稿)에,
북쪽을 바라보니 임금과 신하는 격해있고 / 北望君臣隔
남쪽으로 내려오니 어미와 자식이 함께로다 / 南來母子同
하는 구절이 있었다. 임금께서 조용히 칭찬하며 읊조리기를, “호인은 몸은 비록 외지에 있으나 마음으로는 임금을 잊지 않고 있구나.” 하였다. 《용천담적기》
○ “위로 선궁(仙宮)에 들어가 사방을 바라보니 끝이 없었고, 동해 바다는 술동이가 되고 삼신산(三神山)은 차려놓은 안주 같도다. 아래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니 눈에 놀이 분분한 것이 특히 강절(康節 송 나라의 소옹(邵雍))의 낙양(洛陽)을 회고한 느낌이 있도다.” 하였다. 《송도록(松都錄)》
○ 개성(開城) 동쪽에 큰 우물이 있는데 맑고 맑은 물이 여러 자 되는데 이따금 우물 속에서 물 끓듯 물거품이 끓어 오르고 신어(神魚)가 나왔다 들어갔다 함을 역력히 셀 수가 있었다. 세상에 전하기는 은바리로써 판 우물이니, 고려(高麗)의 의조(懿祖) 작제건(作帝建)이 용녀(龍女)에게 장가들고 처음으로 개성(開城) 산골 기슭에 이르러 은바리로 땅을 파니 물이 솟아나와 길이가 두 자 가량 되어 이로써 우물이 되었는데 모든 기도(祈禱)할 적에는 모두 제사지냈다. 동상
○ 봉명산(鳳鳴山)에 현릉(玄陵)과 정릉(正陵) 두 능이 있는데 다같이 한 멧부리에 높이 있었다. 처음에 황당(皇堂)을 지을 적에 금 오리와 은 기러기 등으로 장식하여 그 제작이 한때의 묘한 극치를 이루었으니 비록 여산(驪山)의 역사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함은 없을 것이다. 동상
○ 천마(天磨)와 성거(聖居) 두 산에는 푸르고 푸른 것이 솟아나서 하늘을 뚫고 들어갔는데, 혹은 용과 범 같기도 하고 혹은 칼끝 같기도 하여 기이함을 경쟁하듯 괴이한 것을 나타냄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동상
○ 안동(安東) 땅은 척박하고 백성은 가난하지만, 풍속이 농사와 누에 기르는데 힘써서 검소하고 준절(撙節)하며 일용을 아껴 흉년에 대비하기를 힘쓰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주밀하지 않음이 없고, 다른 고을에서는 그에 따를 바 없었다. 이제 ‘소반 위의 밥은 낱낱이 다 신고로 이루어졌음을 뉘라서 알겠는가[誰知盤中餐粒粒皆辛苦].’ 라는 10자를 써서 운자도 하며, 10편의 노래를 지어 백성들이 걱정 근심하며 고생하는 상황을 대강 진술하였는데, 거의 빈풍칠월(豳風七月 《시경》 중 국풍(國風)의 편명(篇名))의 뜻을 모방하였다. 본집(本集)
○ 뇌계(㵢溪)는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열람하고 겸하여 잡록(雜錄)까지도 채취하여 〈동도 잡영 25수(東都雜詠二十五首)〉를 지었다. 동상
○ 뇌계는 육신(六神)을 축(祝)했는데 첫째는 수령(守靈)이요, 둘째는 결화(結華)요, 셋째는 용연(龍烟)이요, 넷째는 육영(育嬰)이요, 다섯째는 혼정(魂庭)이요, 여섯째는 용요(龍曜)인데, 수령ㆍ심신ㆍ혼정ㆍ비보(脾補)는 《황정경(黃庭經)》에 나타난다. 동상
○ 김맹성(金孟性)이 사건에 연좌되어 고양(高陽)으로 귀양갔는데, 극기(克己)가 고양에 가서 선원(善源 맹성(孟性)의 자(字))을 대접한 시가 있는데,
하늘이 이적선(李謫仙 이백(李白))을 내려보낸 것은 원래가 귀양이 아니었으니 / 天遣謫仙元不謫
마음대로 휘두르며 한껏 노는 데 해로울 것 없었네 / 不妨揮斥恣天游
어찌하여 흐르는 물에 복숭아꽃의 글귀가 / 如何流水桃花句
부질없이 김군을 괴롭히는 듯 머리를 흔들게 하는가 / 枉被金君苦掉頭
하였다. 시격(詩格)
○ 최치원(崔致遠)이 가야산(伽倻山)에 숨어 살다가 하루 아침에 갓과 신을 숲 속에 버리고 돌아간 곳을 알지 못했다. 절 중이 화상을 그려서 글 읽던 집에 두었었다. 뇌계(㵢溪)는 시를 지어 말하기를,
숲사이에 갓과 신을 두고 간 곳이 아득하고 아득한데 / 林間冠屨去茫茫
뉘라서 유선(최치원(崔致遠)을 지칭함)은 본래 없어지지 않음을 알랴 / 誰識儒仙本不亡
흐르는 물소리 산을 덮었다고 읊은 것 오래 되었는데 / 流水籠山吟已遠
바람과 구름이 빈 독서당을 지키도다 / 風雲空護讀書堂
하였다. 본집(本集)
띠로 덮은 지붕 빗발이 새서 앙상한데 / 茅茨雨脚漏床床
모진 바람 약속이나 한 듯 짝을 지어 미치게 구네 / 與約獰風作黨狂
네 벽에 쓰인 글을 거두어 들일 수 없어 / 四壁詩書收不得
한 반은 한 쪽 옆에 젖는대로 버려 두었네 / 從敎一半濕扁傍
동상
임해전(신라의 대궐) 앞에서 겨우 한 소리가 나더니 / 臨海殿前纔一聲
상서로운 바람에 절 안의 요망한 분위기가 맑아졌다 / 祥風宇內妖氛淸
필경에는 임금과 신하가 취향(술 취하여 정신 잃은 지경)에 들어가니 / 畢竟君臣入醉鄕
포석정 앞뜰에는 바람과 비가 분망하였다 / 鮑石亭前風雨忙
비록 좋은 이름으로 만파(萬波)를 고요하게 하였다 하나 / 縱使佳名息萬波
슬프구나. 젓대소리 네 어찌하랴 / 吁嗟笛兮奈爾何
〈만파식적(萬波息笛)〉
아득한 붉은 까치와 흰 닭의 상서여! / 査査丹鵲白鷄祥
서라벌이 실어와서 다른 성씨가 되게 하였다 / 徐伐輪來異姓王
천년이나 오이 넝쿨 뻗 듯 뻗어서 멀다고 이르지 마소 / 莫道一千瓜瓞遠
가련한 포석정의 운도 벌써 처량하기 만하네 / 可憐匏運早凄凉
하였는데, 작(鵲)은 석(昔)씨를 말하고 계(鷄)는 김(金)씨를 말한다. 동도(東都)
○ 박연(朴淵)의 못 가운데 돌이 있는데 반은 나와서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것 같다. 《사기》에 전하기를, “고려(高麗) 문종(文宗)이 일찍이 그 위에 올라가니, 바람과 물결이 문득 일어나며 키[箕]질하는 상태가 나타났다. 이영간(李靈幹 고려 문종(文宗) 때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있었다)이 글을 던져 용을 매질하니, 바람과 물결이 드디어 잠잠해졌다.” 하였다. 뇌계(㵢溪)의 시에,
남기의 좋은 바람 푸른 하늘을 말았는데 / 南箕好風捲碧落
한 단계로 경계 지어 천하의 흰 것을 깨뜨렸다 / 一段界破天下白
하였다. 《송도록(松都錄)
○ 영안성(永安城)에 올라 남쪽으로 운해(雲海)에 임하니, 고래의 어금니와 눈 같은 물결이 밤낮으로 넓고 흉흉한데, 구슬 누대와 신기루의 대궐이 변화무쌍하였다. 동상
○ 조각한 난간과 아로새긴 동자기둥을 옥구슬로 매고 옥으로 얽은 것이 모두 이미 가시덤불 잡목 숲의 이슬에 매몰되고, 이미 여우와 토끼들이 사는 곳으로 되어 버렸다. 동상
○ 신라(新羅)시대로부터 국조(國朝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시로 이름난 사람은 한둘이 아니지만 평범한 자는 야(野)한 것에 빠졌고, 뛰어난 자는 화려한 것에 빠져서 마침내 시들고 약해져서 돌이키지 못하였다. 〈뇌계시집서(㵢溪詩集序)〉
저 청량산을 바라보니 / 瞻彼淸凉山
산 가운데 도토리나무가 많기도 하다 / 山中多橡木
금년도 작년과 같아 / 今年似去年
주렁주렁 달린 열매 주울 만하네 / 離離實可拾
온 집안이 지고 이고 돌아와서 / 擧家負戴歸
방아에 찧어 항아리 속에 쌓아두니 / 舂屑甕中積
흉년인들 어이 나를 죽일 수 있을건가 / 凶年豈殺我
오히려 넉넉히 조와 쌀낱을 대용하리라 / 猶可代粟粒
〈화산10영(花山十詠)〉
[주-D001] 여산(驪山)의 역사 : 여산(驪山)은 진(秦) 나라 서울 함양(咸陽) 동쪽에 있는 산인데 진시황이 자기 묘지로 정하고 미리 공사를 개시하였는데, 전국의 죄수 72만 명을 궁형(宮刑)시켜 전부 그 여산공사에 사역하였으나 끝내지 못하고 나라가 망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윤혁동 (역) |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