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5년부터 1960년대까지 세계 경제는 역사상 다시 보기 힘든 호황을 누렸다. 장기호황을 유발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선진국 소비자들이 미국이 경험한 소비의 시대를 모방한 데 있었다. 그러나 영광의 시대는 그렇게 길지 않았다. 무엇보다 미국의 압도적인 경쟁력이 서서히 약화되고 나아가 독일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이 달러를 비축하면서부터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 세계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통화의 공급이 필요하다. 물론 이를 위해 미국이 달러를 계속 찍어내면된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이 자기 금고에 충분한 금이 없는데도 돈을 찍어내는 데 있다는 것이다.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면서 원칙적으로 미국이 보유한 금이 줄어들어야 하는데 미국의 통화공급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면서 오히려 늘어났다.)
* 이때 문제를 제기한 것이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었다. 드골은 달러의 압도적 우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미국 달러에 종속되어 있는 것에 강한 반감을 가졌고, 지속적으로 달러를 금으로 교환할 것을 요구했다.
1968년 5월 혁명으로 드골대통령이 물러나며 금교환요구는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이번엔 민간의 금투기가 문제 되었다. 이로 인해 금 1온스의 가격이 1971년초 44달러까지 상승하자 프랑스뿐 아니라 벨기에마저 미국에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금과 달러의 공식 교환비율이 35달러였으므로 금으로 바꿔 팔기만 하면 1온스당 9달러의 이익이 생기는 셈이었다.)
* 당시 미국이 할수 있는 선택은 두가지였다. 첫째 금과 달러 교환비율을 재조정하는 것이었고, 둘때 금본위제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 결국 1971년 8.15 닉슨대통령이 금과 달러의 교환을 정지함으로써 새로운 금융질서가 수립되었다. 이를 닉슨쇼크라 하며 금에 대한 교환의무가 없는 화폐를 불태환화폐라 지칭한다. 화폐발생이 금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은 세계 경제의 기본을 바꿔놓은 사건이라 할수 있다. 이후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인플레이션이었다. 금의 공급과 상관없이 통화공급이 가능해짐에 따라, 경제 전체에 강력한 인플레 기대가 부각되었다 1923년 독일처럼 인플레가 부각될것이라 예상한 사람들이 일제히 화폐를 버리고 실물자산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이때 가장 선호된 실물자산이 바로 금과 은이었다.)
* 금가격의 상승이 끝없이 이어질 거라 믿었던 사람들은 이후 20년간 기나긴 가격하락을 겪어야 했다, 금본위제가 깨지는 순간 웅크리고 있던 중앙은행들이 자기 할일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금본위제를 폐지하며 세계경제는 인플레라는 대가를 지불한 대신 경기안정이라는 이익을 취했다고 볼수 있다 [볼커 인플레를 잡다]
* 1980년대 초 미국은 인플레라는 거대한 용의 분노가 10년째 지속되고 있었고 달러는 금가격에 비해 거의 90% 하락함으로써 미국경제는 물론 달러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때 미국연준 신임총재 볼커는 인플레를 인정시키는 것이 정책의 최우선 목표라고 판단하고 정책금리를 20%까지 끌어올렸다. 금리가 역사상 최고수준까지 올라감에 따라 기업들은 투자를 철회했고, 소비자들은 은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당시 물가 상승율이 14%대인데 은행 예금금리가 20%니 실질금리로 계산해도 무려 6%의 고금리였다. (강력한 불황으로 부채에 시달리던 많은 농가가 반발하고 항의했지만 결국 인플레는 꺾였다. 소비자물가는 1980.4월 14.6%에 이르렀지만, 1983년 7월에는 2.36%까지 떨어졌다 이후 정책금리를 인하하기 시작, 1983년 3월에는 3.6%까지 떨어졌다)
* 돈을 풀면 경기가 좋아지고 돈줄을 죄면 경기가 나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해 시중에 통화 공급을 늘리면 인플레 기대가 높아지며 소비와 투자가 촉진되고 반대로 금리를 인상해 소비보다 저축을 유도하면 인플레 기대가 약화되고 불경기가 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