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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랑길13구간 (태안,서산, 홍성, 보령)(몽산포해수욕장 ~깊은골버스정류장: 65코스. 64코스. 63코스.
62코스, 61코스 )
◈ 일 자/기상: 2025.10.24 ~25 /맑음 ( 8도~18도:보령)
◈ 위 치: 태안, 서산, 홍성, 보령
◈ 누구와: 나홀로
◈ 경로: 몽산포항-몽산포해변- 청포대해수욕장 - 태안관광안내소 - 간월호 철새탐조대 - 궁리출장소- 속동전망대- 남당항 -
천북굴단지- 부령방조제- 충성수영성 보령LNG터미널 -깊은골버스정류장 (64.3 ㎞), 접속1.6키로
* 65코스: 몽산포해변- 청포대해수욕장 - 태안관광안내소 (15.3㎞)5시간30
* 64코스: 태안관광안내소 - 간월호 철새탐조대 - 궁리출장소 (13.2㎞ ) 4시간30분
* 63코스: 궁리출장소 -속동전망대- 남당항 - 천북굴단지(11.2㎞) 4시간
* 62코스: 천북굴단지 -보령방조제- 충청수영성 (오천항)(15.9㎞)5시간
* 61코스: 충청수영성 (오천항)- 보령LNG터미널 -깊은골버스정류장(8.7 ㎞)3시간
◈ 거리: 62.66 ㎞ 총답사: 658.4㎞
◈ 시간: 17시간33분
◈ 교통
- 갈때 : 백석터미널(10시10분) → 태안(13시40분: 약3시간30분 소요)
* 태안터미널(13시40분도착: 간단히 식사후 출발)→몽산포해수욕장(택시: 11㎞,17.000원)
* 대중교통: 태안터미널 → 몽산포 해수욕장 : 자주 있음(남면가는버스)
- 올때: 깊은골버스정류장 → 대천역(택시12㎞,17.500 원/16분)
대천(09시03분) -용산역(11시43분) → 용산역(경의선) → 대곡 → 백석역
서해랑13구간 1의 사진 이어 계속
20시58분... 궁리항....26.5키로미터
궁리항 대크길
궁리항
21시06분... 64코스시점, 63코스 종점(궁리항)....27.5키로미터 지점
궁리항 등대
홍성 스카이 타워
펜센에서 노래소리가...
홍성스카이 타워 모습(속등전망대)
홍성 스카이 타워(속등 전망대)(상하 사진)
상황교
속등해안 공원
속등 해안공원
어사교
천수만(상하사진)
어사리 마을(상하사진)
천수만
어사리 전망대
어사리축제장
태안경찰서 어사리대행신고소
어사리선착장 수산 작판장
남당 노을 전망대
노을전망대
노을전망대
남당 무지개 도로 표식
전망대에서 본 노을 전망대
22시55분...남당항....34키로미터
23시05분...남당항....34.5키로미터
**남당항
광활하게 펼쳐진 천수만과 어우러진 수산물의 보고로 대하, 우럭, 새조개, 꽃게, 새우 등 사시사철 싱싱한 수산물이 있고, 주변에는 많은 횟집이 산재해 있어 홍성은 몰라도 남당항이 있는 남당리는 알 정도로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다.
특히 천수만 최고 별미안 새조개가 유명해 미식가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잔잔한 은빛 수면으로 석양이 아름다우며, 괭이갈매기 등 철새 도래지인 AB지구와 대나무가 많이 자생한다고 하는 죽도와 멀리 안면도가 보여 해안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매년 가을에는 대하 축제와 겨울철 별미인 새조개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당항 가두리 양식장
남당항 가두리 양식장
홍성교
수룡항포구
수룡항
홍성보령 방조제
**홍성방조제는 홍성과 보령을 이어주는 방조제로 이곳을 통해 3월까지도 맛볼 수 있는 보령 천북의 굴을 먹기 위해 건너가기도 하는 곳이다. 홍성군 홍성방조제에는 수룡항포구가 있고 홍성·보령 방조제 준공 기념탑이 있다. 준공 기념탑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보면 서쪽 바다에는 안면도가 수평선 위에 거대한 섬처럼 떠 있다. 또한, 준공탑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홍성방조제와 죽도, 남당항 등 서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준공탑옆에 있는 풍력발전기도 또 다른 장관을 연출한다. 홍성방조제 수룡항포구 쪽으로 내려가면 좀 더 가까이서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홍성방조제에서 보령 쪽으로 넘어오면 천북굴단지와 바로 연결된다. 서해랑길 63코스에 속하는 이곳은 남당항, 속동전망대와 연결되는 서해안 도보 여행 코스이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구룡포구
홍성에서 보령 시로 넘어감
황해 모습
홍성호 모습
천북 굴단지
천북 굴단지
23시59분.. 63코스 시점, 62코스 종점...39키로미터지점
천북 선착장
예쁜 산길이...
사정 해변
천북굴단지1.2키로미터, 하파동 1.3키로미터 이정목
해안 출렁다리
예쁜 산길과 바다길이 연달아 이어지고...
천북 굴의 유래
길없는 해변길을 따라...
해안길을 따라 계속 진행...
요런해안 길없는 길을 따라...
여기는 해안바닥에 포장...
학성리 공룡 발자국 터....
사조리 선착장...
예쁜 집이...
또 길없는 바다가 가장 자리를 따라...
이곳은 바다가장자리에 포장이...
멋진 바다가...
우포동일대를 지나고...
집개 새우양식장
집개 새우양식장
불을 켜놓은 우사(소들이 스트레스 받아 계속 울고 있내요)
사호1리 버스정류장
사호교
정미소 앞 탈곡된 배들이....
하만4리버스 정류장
하만3리 버스 정류장
보령방조제
**오천 보령방조제
충남 보령시 천북면 하만리 ~ 오천면 소성리
충남 보령시 오천면과 천북면을 가로질러 막은 소규모 방조제로,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방조제를 막기 전 오천권의 대표적인 감성돔 원투 낚시터였던 만큼 간혹 대형 감성돔이 낚이기도 한다.
우럭과 학공치·숭어·망둥어 등이 중들물~만조 무렵에 잘 낚인다.
사리 때는 종종 수문을 여는데, 이때는 입질이 끊긴다.
가을철엔 삼치 떼가 몰려 이를 노리는 꾼들이 많다.
방조제 중간 지점의 물량장에 주차를 하거나 천북 방면 방조제 초입의 대형 주차장을 이용해도 된다.
오천항 인근에 횟집과 식당들이 많아 이용에 불편이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
보령교
오천항
충정 수영
지금은 다 허물어져 흔적만 남은 수영성 성곽(주간모습)
지금은 다 허물어져 흔적만 남은 수영성 성곽(야간모습)
산죽 터널
오천교회
오천수영관아 안내 간판
**오천수영관아 ; [ 鰲川水營官衙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
조선시대 충청도 수영청(水營廳)이었던 오천현(鰲川縣) 관아 건물의 일부로 장교청(將校廳), 진휼청(賑恤廳), 공해관(控海館) 3동(棟)만 남아 있다.
장교청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건물로 1833년(순조 33)에 세워졌으며 1986년까지 오천면 청사(廳舍)로 사용하였다.
오른쪽에 온돌방이 있으며 왼쪽에 대청을 두고 우물마루를 깔았다.
무출목(無出目) 이익공계의 공포를 구성하였으며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진휼청은 수영청에서 빈민을 구제하려고 곡식을 빌려주고 거두어들인 청사 건물이다.
오천성(鰲川城) 서문(西門) 옆에 있으며 민가로 사용되어왔다.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대청과 안방, 툇마루, 부엌, 건넌방을 두었다. 가구(架構)는 1고주(高柱) 5량(樑) 집으로 내부에는 모두 우물천장을 하였고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공해관은 관청의 내삼문(內三門)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초익공 건물이며 지붕은 솟을지붕 형식이다.
성 안에는 수군사들의 치적비와 공덕비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보전
오천항(상하사진)
**오천항 ; [ 鰲川港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있는 어항(漁港)이다.
충청남도의 천수만(淺水灣)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어항이다.
방파제 등 별도의 피항시설이 필요없을 만큼 자연적 조건이 좋다.
수심이 깊으며, 원산도와 안면도 등 섬들이 자연적으로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주어종은 선어류, 소라, 개조개, 홍합, 키조개이다. 특히 키조개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특산물이고 매 해 4~5월 키조개 축제가 열린다.
오천항은 역사적으로는 조선시대 초부터 충청수군절도사영이 설치된 군항이었으며 백제 시대부터 화이포라는 항구로 이용되었다. 항구 입구에 위치한 충청수영성(사적 제 501호) 에서 오천항을 조망할 수 있으며,
인근의 관광지로는 오천항 뿐 아니라 천수만 일대가 내려다 보이는 오천항 전망대가 있다.
보령교를 지나 40번 국도가 인근을 지난다.
[네이버 지식백과)
보령충청 수영장
05시37분...61코스 종점, 62코스 시점(안내간판이 없내요), ...54.5키로미터 지점
오천 파출소
오천항 입구
이곳 슈퍼에서 음료수 사먹고 30분간 휴식
오천 마을 모습...
오천항 일대 바다
밤까시 버스 정류장
갈매못 순교성지
주간사진 몇장 퍼옴(이른 아침 시간이라 출입불가)
**순교성지 갈매못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던 갈매못은 병인박해 때에 군문효수를 당했던 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 위앵 민 마르티노 신부, 오메크로 오 베드로 신부와 황석두 루가 회장, 그리고 장주기 요셉 회장과 그밖의 수많은 무명 순교자의 피로 물든(1866년 3월 30일 성금요일) 처형장이었다.
대원군이 이 자리를 처형장으로 택한 것은 명성황후의 국혼이 예정된 시기로서 수도에서 200리 이상 떨어진 곳에서 형을 집행해야 탈이 없으리라는 무당의 예언도 있었고,
러시아와 프랑스 함대가 침략을 시도한 서해의 외연도가 아스라히 바라다보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인근의 오천성은 좌수영 및 우수영과 함께 영향력있었던 충청수영이 있던 곳으로서 다른 지방과 다르게 전국의 죄인들이 여기까지 와서 처형당하기도 했던 역사가 있지 않았나 하는 의견도 있다.
치명터 임이 확인된 1927년부터 이곳이 성지로 관리되기 시작했고, 1975년에 순교비가, 1999년 경당이 완공되어 순례자들을 맞고 있다.
전래적으로 무서운 곳으로 알려져 마을 사람들이 누구도 이 근처에 가지 말도록 해왔던 이곳은 길도 없어 인근 오천성에서 배를 타고 오던 곳이었으나 성지로 개발되어 지금은 경당 앞 천수만 변 도로를 통해 수많은 순례 단체가 줄을 이어 방문하고 있다.
단체 순례자들은 언제나 편리한 시간에 미사 봉헌을 예약할 수 있으며,
매주 일요일 11시 30분에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여러분이 계신 곳을 성지로 만드십시요. 제가 성지 순례를 여러분 댁으로 가겠습니다."하는 신부님의 설교는 순례자를 감동시킨다. 서해의 섬들과 천수만이 바라다보이는 이곳은 순교 성인들의 피를 연상시키는 듯, 낙조가 의미심장하고 아름답다.
[네이버 지식백)
다섯분의 순교 성직자님의 사진과 업적등이 명시되어 있다
순교 터
천주교 순교지
성당으로 들어 가는쪽에 5명 순교자 님들의 동상이 있다
미사 보는 곳의 야외 성당
성당내부
성당에서 내려오는 길에서 본 지나온 골자기의 십자가
골자기 십자가 있는곳이 다섯순교자님들이 장깃대에 머리를 메달아 놓았던 곳이란다
예수님과 천수만
정문으로 나오니 우리팀원들 한분도 눈에 안 보인다,, 해서 뭘 자세히 볼수가 없다,
여남 조선소...천수만
영보2리 버스 정류장
진골 버스 정류장
보령 LNG 터미널 입구
띠아골 버스 정류장
수준점도 있고/ 안내간판은 어디에?
영보교
수청동 버스 정류장
보령화학본부 굴뚝이 ...
**이지함
이지함(李之菡, 1517~1578)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이다. 자는 형중(馨仲)이고, 호는 토정(土亭)이며,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본관은 한산(韓山)으로, 아버지는 치(穉, 1477~1530)이고, 어머니는 광산 김씨(光山金氏)로 판관 김맹권(金孟權)의 딸이다.
보령에서 태어나서 주로 이 일대에서 활동하였고 뒤에 종실(宗室)인 이정랑(李呈琅)의 딸과 결혼하여 한때 처가인 충주 주변에 산 적도 있으며, 서울의 마포 강변에서 살기도 했다.
어려서는 형 지번(之蕃)에게 배웠으며, 나중에는 서경덕(徐敬德)의 제자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화기의 정국에서 과거를 포기하고, 전국을 유랑하며 많은 기행과 관련된 일화를 남겼다.
1573년(선조 6) 최영경·정인홍·조목·김천일 등과 함께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종6품직을 제수받았으며,
이듬해 포천현감으로 임명되었다. 이 때 어업과 광업의 이익을 국가경영에 활용할 것을 주장하고 다른 현에 소속된 어장과 염전을 임시로 포천현에 소속시켜 백성을 구휼토록 하자고 건의하는 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병을 핑계로 사직하였다.
1578년 아산현감에 임명되어 걸인청(乞人廳)을 만드는 등 백성들의 구호에 힘썼으며, 과도한 군역 부담을 줄일 것을 건의하는 소를 올리기도 했다.
1713년(숙종 39)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한편 이지함이 마치 세상살이에는 전혀 뜻이 없는 것처럼 유랑하는 기인의 삶을 살았던 것 역시 그의 집안이 겪었던 몇 가지 일이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의 가문이 누렸던 화려한 영광은 이지함 대에는 이미 조금씩 빛이 바래고 있었다.
그의 조부와 부친은 겨우 지방의 수령에 머물렀다.
여기에 사화기의 어수선한 정국 동향은 정통 사림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한산 이씨 집안에까지 그 여파가 미쳤다.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종조부 파(坡)가 폐비 사건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그의 아버지가 진도로 유배되고, 그의 형 지번은 윤원형에게 쫓겨나 단양의 구담(龜潭)에 은거하였다.
1548년 절친한 친구였던 안명세(安名世)가 을사사화 때의 일로 희생되기도 하였다. 1549년 종실로서 이지함의 장인이었던 이정랑이 역모에 연루되어 죽자, 그는 정치적 입신을 완전히 단념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를 피하라[避知音說]」·「도잠의 귀거래사를 본떠」[次陶靖節歸去來辭] 등에서 이후 국외자로 자처했던 이지함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
중략
[네이버 지식백과
이지암선생님 묘
앞쪽 1기의 묘가 토정 선생의 묘 인가보다
오포3리 마을회관
오포리(깊은골)
07시56분..60코스 종점, 61코스 시점(이곳에도 안내 간판이 없내요)...62..66키로미터
이곳에서 답사종료 하고 택시콜해서 대천역으로 이동 09시03분용산행 기차타고 서울로복귀 경의선 3호선타고 집으로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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