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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하다면 … 해야 합니다
2008년 4월 6일 / 대예배 / 출 14:10-20
본문을 일컬어 ‘홍해의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홍해를 극적으로 건넜다고 하는 이 사건은 불가능을 가능케 한 기적이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인간이 불가능을 가능케 할 수 있습니까? 살다 보면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들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방법만 있다면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텐데, 인간의 능력 밖인 일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인간은 죽음의 문제도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능에 도전합니다. 과학이나 의학 분야에서 지금까지 불가능이라고 여겨왔던 일들에 대하여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유난히 불가능에 도전하는 분들이 많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정상적인 믿음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만일 그러한 도전이 없다면 그는 신앙인이 아니라고까지 합니다. 과연 기독교인들이 허망한 짓을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들 자신은 정말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바울이 말한 대로 그들에게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빌 4:11 / … 나는 가진 것이 많든 적든 즐겁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12) 가난을 이겨낼 줄도 알고 부유를 누릴 줄도 압니다. 배가 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궁핍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만족하는 법을 몸에 익혔습니다. 13) 내게 힘을 주고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나는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을 다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불가능이 가능한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어드리는 것입니다.
창 18:10-14 / 그 손님들 중에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였다. “내년 이맘때쯤에 내가 다시 이 집으로 찾아올 것이오. 그때쯤 되면 그대의 부인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오.” 그때 사라는 아브라함의 뒤 천막 문간에 서서 이렇게 오가는 말을 들었다.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나이가 너무 많이 들어 늙었고 사라는 달거리가 끊긴 지 오래되었다. 12) 그래서 사라는 속으로 웃으면서 ‘내가 이리도 늙었고 내 남편도 저렇게 나이 많이 먹었는데 잠자리를 같이 한다고 무슨 낙이 있겠나?’ 하고 중얼거렸다. 13) 그러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아니, 사라가 나의 말을 듣고 비웃기만 하는구나. 그러고는 ‘내가 이렇게 늙었는데 어떻게 자식을 낳으랴?’ 하는구나. 14) 아니, 그래 나 여호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느냐? 내가 조금 전에도 말하였다만 내년 이맘때쯤이면 내가 반드시 이 집에 다시 찾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사라가 분명히 아들을 낳을 것이다.”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이 말씀을 믿습니까? 싫던 좋던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하여 망해갈 때에 예레미야와 하나님 사이에 있었던 말씀입니다.
렘 32:14-15, 24-27, 37-44 / 온 세상의 주인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양피지를 위아래 두 부분으로 접어서 똑같이 작성하고, 윗부분은 봉인하고 아랫부분은 말기만 한 이 두 계약서를 받아서 옹기그릇에 담아 오랫동안 보관하여라. 15)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에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다시 집과 밭과 포도원을 살 것이다. 이것은 나 여호와의 말이다.” 24-27 / 갈대아 군인들이 바로 지금 이 도성의 성벽을 타고 넘어올 사다리들을 대놓았습니다. 예루살렘이 당장 함락되고 말겠습니다. 밖으로는 원수의 온갖 무기가 성벽을 타고 넘어오며 안으로는 굶주림과 전염병이 가득 차서 이 도성의 멸망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이 도성을 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모든 일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루살렘이 이 꼴인 것은 주께서도 지금 친히 보아서 아십니다. 25) 나의 주 하나님, 예루살렘은 이미 바벨론 군인들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는 데 주께서는 제게 ‘돈을 주고 밭을 사며 증인들까지 세워서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26) [주님의 응답] 내가 이렇게 간절히 호소하자 여호와께서 곧 응답해 주셨다. 27) ‘나는 온 세상의 주인으로서 모든 사람을 다스리고 움직이는 하나님이다. 그런 내게 무슨 일이든지 불가능한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 37-44) 내가 지금은 무서운 분노를 내뿜으면서 그 도성의 주민들을 내쫓아 세계만방으로 흩어 놓지만 나는 그들을 다시 그 모든 나라에서 불러다가 모아 놓겠다. 나는 그들을 다시 이곳으로 인도하여 그들이 이 땅에서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도록 하겠다. 38) 그래서 그들이 다시 내 백성이 되도록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 39) 그때에는 내가 그들의 생각과 행실을 변화시켜 한 가지 목표 곧 `그들이 언제 어디서나 나를 두려운 마음으로 섬겨 그들과 그들 자손이 언제까지나 복을 받아 잘사는 인생'을 향하여 일생을 살게 하겠다. 40) 그뿐만이 아니라 그때에는 내가 그들과 영원히 폐지되지 않을 계약을 체결하고 그 계약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여 내가 그들에게서 떠나지도 않고 그들을 내가 내쫓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그들에게 복되고 아름다운 일들을 베풀어 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직접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언제나 나를 두려워하는 생활 태도로 살게 하여 그들이 다시는 내게서 멀리 떠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41) 그때에는 그들에게 복을 많이 주는 것이 나의 기쁨이 될 것이다. 나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그들을 영영 이 땅에 살도록 심어 놓겠다. 42) 내가 유다 백성에게 이토록 무서운 재앙을 내리지만 앞으로 정반대의 방향에서 내가 이미 약속한 복도 그들에게 모두 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온 세상의 주인으로서 하는 말이다. 43) 이 나라와 이 도성에 대하여 너만이 아니라 모든 유다 사람이 망하였다고 말한다. 이 도성은 이제 완전히 바벨론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버렸으며, 이 나라는 사람과 짐승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황막한 땅으로 변하였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바로 이 땅에서 사람들이 다시 밭을 사고 평화롭게 사는 날이 올 것이다. 44) 이 절망적인 나라에서 사람들은 곧 다시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고 증인들을 불러다가 서명을 시키며 풍속대로 봉인해 둘 것이다. 이 나라의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모든 땅을 다시 살 것이다. 예루살렘과 그 주변이나 유다의 성읍들 안에서만이 아니라 아나돗과 같은 북방의 베냐민 지역에서도 토지 거래가 활발해지고 더 나아가 산지나 언덕이나 남녘의 초원지대를 가릴 것 없이 유다 어디에서든지 토지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내가 유다 백성의 국운을 전환시켜 다시 평화로운 번영의 시대를 맞도록 할 작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온 세상의 주인으로서 약속하는 말이다.'
막 9:23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하실 수 있다면이 무슨 말이냐? 만일 네가 믿기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질 것이다.'
말씀으로 생각을 바꾸고, 말씀으로 말을 바꾸고, 말씀으로 기도를 바꾸어 보십시오. 말씀을 매일 묵상하고, 말씀으로 삶을 가득 채우십시오.
출애굽 사건의 주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출 12:51 / 바로 그날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군대로 조직을 편성하여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셨다. 13:3 / …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너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이날, 누룩을 넣은 떡을 먹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13:9 / … 여호와께서 강한 손을 휘두르셔서 너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지 않았느냐? 13:14 / 훗날 너희 자녀들이 너희에게 이러한 예식이 무슨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냐고 묻거든 너희는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주어라. `여호와께서 당신의 강한 손을 휘두르셔서 우리가 노예생활을 하며 말할 수 없이 고생하던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이끌어 내셨다. 13:16 / 이러한 이야기를 너희는 너희 손에 새건 표나 미간에 붙이고 다니는 표지처럼 잊어서는 안 된다. 여호와께서 강한 손을 휘두르셔서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지 않으셨느냐?'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 땅에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는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딤후 4:18 / 주께서는 언제나 모든 악에서 나를 건져주시고 하늘나라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 영원토록 영광이 함께 하소서. 아멘.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특징은 끝까지 인도하시는 것 입니다. 중간에 그만 두는 일이 없습니다. 영원한 천국까지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확실하고 안전하게 인도하십니다. 인도하시는 목적지가 확실하고 가는 길이 완전합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출 14:10 / 바로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진을 친 곳에 가까이 다가갔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라보니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을 바짝 쫓아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겁에 질린 이스라엘 사람들은 살려 달라고 여호와께 울부짖었다.
시 50:15 / 불행이 닥치거든 나를 부르거라. 나 너희를 건지리라. 하여 너희는 내게 영광을 돌릴 수 있으리라.
부르짖으면 환난에서 건져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 안에 ‘부르짖어, 부르짖음’이라는 구절이 145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부르짖음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시 28:2 / 주님의 거룩한 성소를 향하여 두 손 번쩍 쳐들고 살려 달라 부르짖을 제, 부디 이것을 생각해 주소서. 시 34:6 / 어디 하나 기댈 곳 없는 이들 부르짖으니 여호와께서 그 기도 들어주시고 고난 속에서 건져 주시네.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고통, 걱정, 근심, 환난을 물리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고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시다. 그러나 그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2. 잠잠히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떨며 당황하고 있습니다. 뒤에는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 오고 있습니다. 앞에는 그들이 도저히 건널 수 없는 홍해가 가로 막고 있습니다.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갈수도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명령을 받드는 모세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출 14:13-14 / 그러자 모세가 대답하였다. “겁먹지 말고 가만히 서서 바라보기만 하여라.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보기만 하여라. 너희가 두 눈으로 보고 있는 이 애굽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몸소 싸우실 것이다. 너희는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여라.”
그러나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가만히 서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우성치지 말고, 몸부림치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유혹해도 아예 대꾸조차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연히 내가 말씀을 안다고 하여 쓸데없는 변론은 아예 하지도 맙시다.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경기에서도 나를 격려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를 조롱하고 저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좋은 선수들은 사람들의 말에 이렇게 저렇게 반응하지도 않고 오직 경기에만 열중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싸움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싸워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싸워 주시는 것 입니다. 젊은 날의 모세는 자기의 힘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해 보겠다고 아우성쳤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40년간이나 단단히 연단을 받습니다. 내가 해서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소리치고 서둘러서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힘쓰고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다리면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출 14:30 / 그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 사람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주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닷가에 즐비한 애굽 사람들의 시체를 보았다.
▶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때때로 종교적 활동을 일시 중단하고 위로부터 임하시는 성령님의 감동을 받기 위해 마음의 집을 정리해야 합니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현재 우리에게는 성령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침묵과 자기 성찰의 기간을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살피고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의 세례를 받기 위한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큰 유익을 얻을 것입니다. 경이로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잠시 침묵의 시간을 보낸다면 몇 년 동안 연구한 것보다 더 많은 영적 진보를 이룰 것입니다. 침묵의 시간은 짧을 지라도 그것이 주는 영적 유익은 영구한 것입니다.
■ 어떤 수도사에게 여인이 찾아와 하소연합니다. “남편과의 다툼 때문에 살 수가 없습니다.” 수도사는 물이 담긴 병을 하나 줍니다. “남편과 다투기 직전 이 물 한 모금을 입안에 물고 삼키지 마세요. 그러면 문제가 해결될 겁니다. 이 물은 신비한 물입니다.” 여인은 남편이 시비를 걸때마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자 가정이 조용해지고 부부가 화목하게 됐습니다. 여인이 수도사를 찾아와 고마움을 전하며 그 물이 참으로 ‘신기한 물’이라고 감탄했습니다. 수도사가 말했습니다. “그 물은 평범한 물입니다. 다만 침묵이 신비로울 뿐입니다.”
▶ 침묵에 대하여 조금 더 보십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 성을 도는 동안 흥미 있는 한 가지 명령을 추가하셨습니다. 무엇입니까? 수 6:10을 봅시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곧 행진하는 동안에 침묵을 명하신 것입니다. 왜 이런 침묵의 명령이 필요했을까요? 두 가지 가능한 추측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① 우선 침묵이 명해지지 않았다면 백성들 사이에 얼마나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번져 갔을까요? “야, 우리가 돌아서 여길 돌고 있냐? 이렇게 돈다고 글쎄 이 성이 무너지겠나?” 틀림없이 이런 부정적인 메시지는 쉽게 동조자를 얻었을 것입니다. ② 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침묵의 시간에 약속의 말씀을 묵상하며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소원하신 까닭이었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진지하게 영성을 추구한 모든 신앙의 선배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신앙훈련의 하나가 바로 이 침묵의 훈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런 진지한 침묵 속에서 우리는 침묵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라 맥로린이라는 분은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는 패스워드가 바로 침묵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시대 영성 운동의 스승인 리챠드 포스터는 그의 책 ‘기도’에서 어느 믿음의 할머니의 명언을 이렇게 인용합니다. “침묵의 한 복판에는 매우 고요하고 매우 평화로우며 매우 침착한 주님이 계시다.”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침묵의 행진으로 우리가 주님과 동행함으로 인생의 여리고를 깨뜨릴 것을 기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충분히 침묵했을 때 주께서 우리에게 ‘소리를 치라’고 말씀하실 때 그 소리야말로 믿음의 소리일 것을 그는 아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내는 소리들은 과연 믿음의 소리일까요? 아니면 의미 없는 헛된 소리들일까요? 그렇다면 이제 침묵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의 임재를 경험하십시오. 그리고 주께서 명하실 때 믿음의 소리를 선포하십시오.
※ 구원의 말씀을 들은 우리 역시 온 세상에 알려야 할 빚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복음을 증거해야 할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침묵은 실로 죄가 됩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지옥의 고통 속에서 자기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해 달라고 하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부자는 간청했습니다. (눅 16:27, 28)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3.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도전 정신은 앞으로 전진(前進)하는 것 입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아브라함이나 바울처럼 도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언제나 전진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 코, 입, 귀, 손, 발, … . 여러분! 코가 어떻게 생겼습니까? 옆으로 나왔습니까? 아니면 뒤로 쑥 들어갔습니까? 앞으로 튀어나왔습니다. 귀도 앞의 소리를 듣도록 앞을 향하여 열려져 있습니다. 말은 언제나 앞을 보고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눈은 머리 뒤통수에 달리지 아니하고 앞에 있으므로 목표를 향해 달리거나 혹은 앞이나 위를 바라보도록 만드셨습니다.
■ (Lena Maria 인간승리) 레나 마리아는 1968년 스웨덴의 중남부 하보 마을에서 두 팔이 없고 한 쪽 다리가 짧은 중증 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병원에서 보호소에 맡길 것을 권유했지만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녀의 부모는 하나님이 주신 아이로 확신하고 그녀를 정상아와 똑같이 신앙으로 양육합니다. 지금 레나는 수영과 십자수, 요리와 피아노, 운전, 성가대지휘에 이르기까지 하나 밖에 없는 오른 발로 못하는 게 없습니다. 3살 때부터 수영을 시작해서 스웨덴 대표로 세계 장애자 수영선수권 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을 따기도 했고, 어렸을 때부터 교회성가대에서 활동했고, 고등학교에서 음악전공을 시작하여 스톡홀름 음악대학 현대음악과를 졸업했습니다. 1988년 스웨덴 국영 TV에서 '목표를 향해'라는 레나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이후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스웨덴 국왕의 장학금으로 미국에서 가스펠을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1991년 일본 굴지의 방송 TV 아사히에서 다큐멘토리가 방영된 것을 계기로 1992년 이후 일본에서는 매년 레나의 콘서트가 열리고 있습니다. 레나의 수기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는 한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일본 등 9개국 언어로 출판되어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특히 기독교인구가 적은 일본에서 그녀의 책과 콘서트는 복음전도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지금 프로 가스펠싱어로 전세계를 다니며 자신을 인도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은혜로운 찬양과 간증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언론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천상의 노래’라고 격찬하지만, 레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 때문에 가능했다.”며 항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그녀는 날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으며,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가장 기쁘다고 고백합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의 장애를 '장애'로 여긴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장애가 믿음과 더불어 오늘날 자신을 있게 했다고 고백합니다. 단지 다른 사람과 사는 방법이 다를 뿐 장애는 더 이상 그녀를 제한하지 못합니다. 1995년 비욘 클링밸과 결혼하여 스웨덴의 낫카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그녀의 CD 앨범 「My Life」,「Amazing Grace」,「Because He Lives」등이 사랑 받고 있습니다.
아직도 전진하지 못하고 과거로 돌아가는 사람이 계십니까? 지금이라도 목표를 향해 방향을 바꾸어 전진하십시다.
히 10:35-39 /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믿음은 뒤로 물러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지 않고 믿음으로 전진하는 인생, 이것이 믿음입니다. 미식축구나 럭비에는 후퇴가 없습니다. 1미터라도 전진하기 위해서 사력(死力)을 다합니다. 상대편에서 태클을 걸어도 죽자 살자 앞으로 전진합니다. 여러 명이 에워싸고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히 10장의 정신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이런 도전정신이 없습니다. 항상 입만 열면 “할 수 없어요, 못해요, 안돼요, 어려워요,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해요?”라고 말하는데, 이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실패를 거듭했을지라도 “다시 해 보겠습니다. 오, 하나님 도우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일어나십시다. 의인은 결코 한 번도 넘어져 본 일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실패를 자주하라는 말은 아니지만 실패했을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사람입시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상황은 매우 절박했습니다. 모세 역시 자신으로서는 어찌해 볼 방법이 없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희망이란 0%입니다.
그런데 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 한마디에 손을 내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21절을 보면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라고 했습니다. 그냥 믿고 순종한 것뿐입니다.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6절을 보면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고 했고, 27절을 보면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 밀매 새벽에 비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라고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손을 내밀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손을 내미는 모세의 순종을 보게 됩니다. 만일 그때 모세가 “과연 그대로 될까? 안될 건데. 말도 되지 않는데, 힘들 거야. 괜한 짓거리지.”라며 시큰둥해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홍해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지 못했을 것입니다.
▶ 우리 앞에도 홍해가 가로 놓여 있습니다. 내 힘으로 풀지 못하는 문제, 해결할 수 없는 사건, 심각한 고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절망, 질병, 아픔 등 모두가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홍해입니다.
홍해 앞에서의 절망과 위기 앞에서 있던 이스라엘을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① “이젠 죽었다. 이젠 끝장이다. 어찌해야 할지 도무지 방법이 없다”라며 절망하면서, 하나님과 남을 원망하고, 소리치고 덤비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포기를 자청한 사람들이고 두 손 털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은 홍해를 건널 수 없습니다. ②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 때문에 원망하고 대들었던 사람들도 홍해를 건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이 없다면 믿음이 있는 사람과 어울리고 섞여야 합니다. 내가 덕이 없다면 덕 있는 사람과 교제하고 만나야 합니다. 내가 외롭다면 외로움을 이기고 복을 찾은 사람과 사귀어야 합니다. 내가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풀고 해결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친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변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앞에 가로놓인 홍해 같은 불가능해 보이는 고통, 절망, 아픔, 좌절을 극복하려면 하나님을 믿고 힘써 부르짖어야 합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홍해에 길을 내시고 건너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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