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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사람 노아를 묵상하면서 …
2015년 7월 26일 / 대예배 / 창세기 6:8-9, 22
우리는 오랫동안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고 있습니다. 인간의 불순종은 죄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말로 인해 사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있어야 했던 것은 인간의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도 하나님의 뜻에 따른 철저한 순종의 행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능력을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에덴에서 잃었던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 노아의 순종을 예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순종에 대해서 강조하시는지를 말입니다. 구약의 인물 가운데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인정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있는데, 노아와 다니엘 그리고 욥입니다(겔 14:14). 하나님께서 이들 세 사람을 의인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혹독한 시련과 고난을 겪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의 자세로 많은 사람들의 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모든 삶을 바친 믿음의 사람입니다. 말이 그렇지,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인간의 짧은 생각과 지혜로는 이해하기조차 어렵고, 순종하기도 매우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와 명령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여 거대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방주를 건조(建造)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약 120년은 되었을 것입니다(창 6:3).
창 6:8-9 / 하지만 노아만은 여호와를 흐뭇하게 해드렸다. 9) 노아의 이야기는 이렇다. 노아는 무척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보다 깨끗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하나님과 늘 함께 살았다.
히 11:7 / 노아도 하나님을 믿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장차 일어날 일을 경고해 주셨을 때 홍수의 조짐 같은 것이 전혀 없었는데도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방주를 만들어 자기 가족을 구해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노아의 신앙은 그 당시 거역만을 일삼던 사람들의 죄나 불신앙과 비교할 때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이 믿음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시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노아는 아직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장차 올 심판에 대하여 하나님의 명령대로 방주를 예비하여 자기의 가족을 구원하였습니다. 그는 어떠한 일에도 자기의 믿음을 지키면서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그의 행위는 완전하였으며 의롭고 경건하였습니다.
당시 세상은 지금처럼 온갖 죄악으로 가득 차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심을 한탄까지 하셨습니다(창 6:5-7).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도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사람들이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벧후 3:9 / 비록 때로는 주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좀처럼 실현되지 않고 너무도 지연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주께서 공연히 날짜를 연기하고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주께서는 단 한 사람도 멸망당하지 않게 하시려고 죄인들이 모두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함으로 다 멸망했습니다.
벧전 3:20 / …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순종해 오기를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하나님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무서운 홍수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여덟 사람뿐이었습니다.
1. 노아는 단순히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순종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경고도 외쳤습니다.
▶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히 11:7) 실천했다고 하였습니다. 노아가 복된 것은 전혀 보지 못하고 알지도 못한 상황 속에서 믿었기 때문입니다(요 20:29).
홍수심판은 그 당시에 어느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홍수’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마불’은 엄청난 양의 물이 흘러 넘쳐 모든 만물을 덮쳐 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시 90:5). 천지창조 이후 노아의 때까지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천재지변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따라서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홍수’란 말이 머리에 그림이 전혀 그려지지 않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렸을 게 뻔합니다. 그런데도 노아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습니다(창 6:22).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의심치 않았습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한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일지라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히 1:1).
▶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간구하는 그의 백성에게 신속히 응답해 주시는데, 응답해 주실 때까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과연 몇 명이나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예수님도 한탄하셨습니다(눅 18:7-8).
베드로 사도는 노아가 오직 ‘의’(義)를 전파하는 삶을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벧후 2:5 / 또한 하나님께서는 옛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을 때도 노아의 일곱 식구를 제외하고는 한 사람도 용서해 주시지 않고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사는 세상을 큰 홍수로 멸망시켜 버리셨습니다(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베드로의 이 말씀은 노아가 타락하고 불법이 횡행하는 당시의 사회에서 하나님의 의를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전도인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아는 홍수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믿었을 뿐 아니라, 그 사실을 이웃에게 열심히 전파하여 그들도 믿고 멸망 받지 않고 구원받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사실 노아 식구들이 홀로 방주를 건조한다는 자체도 미련하게 보이거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홍수심판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자 사람들은 미쳤다고 하거나 예수님이 당하신 것처럼 귀신들렸다는 조롱까지 받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를 외쳤던 것입니다.
▶ 이런 경우는 성경에 종종 나타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상을 파악하기 위하여 그곳에 내려간 천사가 롯에게 물었습니다. “이 집에 사는 사람말고 또 가까운 친척이 이 성안에 살고 있소? 딸이나 아들이나 사위나 또 그밖에 친척들이 이 성안에 살고 있거든 모두 데리고 성 밖으로 나가시오. 우리가 이 성을 모조리 쓸어버릴 작정이오. 이 성 사람들이 어찌나 못된 짓만 일삼는지 이 성 사람들 때문에 억울해하여 한이 맺혀 울부짖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 여호와께서도 그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이 소돔성을 쓸어버리라고 우리를 보내셨소.” 그러자 롯이 자기 딸들과 결혼하려고 약속한 사위들에게 찾아가 말하였습니다. “이보게들, 어서 서둘게. 빨리 이 성읍에서 나가도록 하세. 여호와께서 이 성읍을 쓸어버리려고 하시네.” 그러자 그 사위들은 “장인이 농담하고 계시겠거니.” 하고 생각할 뿐이었습니다(창 19:12-14).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사도 바울의 말이 생각납니다.
딤후 4:1-5 / 나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장차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하여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엄숙히 그대에게 명령합니다. 2) 언제 어느 때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으로 전파하시오. 기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또 그 시기가 좋든지 나쁘든지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시오. 신도들의 허물을 바로잡고 책망해야할 때는 책망을 하시오. 옳은 일을 행하도록 격려하고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키우시오. 3) 사람들이 진리를 들으려 하기보다는 오직 자신의 비위에 맞는 말을 하는 교사들을 찾아다니는 때가 올 것입니다. 4) 그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사상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따라갑니다. 5) 그러나 그대는 굳건히 서서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그대가 맡은 사명을 다하시오.
바울은 힘써 외친 결과 많은 성과가 있었던 반면, 노아는 오랫동안 방주를 만드는 동안 당대의 사람들에게 경종도 울렸고 권면도 했지만 피눈물 나는 노력 속에서도 성과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가족들만큼은 구원할 수가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과 유황과 연기로 타는 불바다에 침몰될 때에 롯은 천사의 경고를 받고서도 두 딸밖에는 건지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큰 성과였습니다.
▶ 다시 노아로 돌아갑니다.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했을 때, 하나님은 노아를 부르셔서 방주를 짓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그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기로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노아는 약 120여년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던 것은 다른 많은 사람들이 볼 때 비웃음 외에는 전혀 반응이 없었지만, 이러한 기록이 있는 것은 후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과 그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려 경각심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딤전 2:4 /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럴지라도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무서운 홍수 심판에 대한 예고도 있었건만 건짐을 받은 사람은 겨우 노아의 식구 여덟 사람뿐이라는 사실입니다. 노아와 그의 아내, 세 아들과 세 며느리...
2. 순종으로 방주를 예비했던 노아와 홍수 후에 순종이 사람 노아와 더불어 맺은 새로운 언약
노아 시대에 있었던 홍수사건은 곧 불순종하던 사람들을 심판하고 순종하던 사람들을 구원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너무 두렵습니다.
벧전 3:20 / …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순종해 오기를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하나님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무서운 홍수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여덟 사람뿐이었습니다.
노아 홍수시대에 멸망을 당한 사람들은 불순종하던 자들이었습니다.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사악한 영들을 따라 범죄했던 모든 자들이 죽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은 이처럼 죽음 곧 심판으로 사람들을 내몰았습니다.
▶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노아는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노아가 방주 안에 들어가기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창 6:9 / 노아의 이야기는 이렇다. 노아는 무척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보다 깨끗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하나님과 늘 함께 살았다.
방주의 재료가 무엇인지, 방주의 안팎을 무엇으로 칠해야 할지, 방주의 크기는 어느 정도로 할지, 방주에는 어떤 것들을 태워야 할지, 또 그것들을 어떻게 방주에 태워야 할는지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자세히 명령하셨고 노아는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창 6:22, 7:5 /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 7:5) 노아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시행하였다.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방주는 포유류(哺乳類) 3,500 종류, 조류(鳥類) 8,600 종류, 파충류(爬蟲類)와 양서류(兩棲類) 5,000 종류의 각 쌍을 합한 35,000 마리의 3배인 105,000 마리가 들어갈 수 있는 용적률을 갖고 있었고, 높이가 14미터(5층높이)이고, 길이가 137미터, 축구장보다 훨씬 크고, 폭이 23미터, 그리고 용적량이 14,000톤 배수량이 20,000톤이나 되었습니다.
엄청나게 큰 화물선의 규모였습니다. 이 방주의 크기는 금강산을 관광하는 유람선인 봉래호(길이가 171.6m, 폭 24.4m이며 7층 높이)의 크기보다 약간 작은 크기입니다. 세계적으로 이런 배가 등장한 것은 19세기 말인데, 노아가 방주를 만들 당시는 성경적인 자료에 의하면, 홍수는 BC 2304 ± 11년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하튼 4천 년 전에 그 방주를 만들어야 할 노아의 가족은 정작 8명뿐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대형 화물선은 당대에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어서, 이를 완성하는데 걸린 시간이 무려 약 120년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전 가족이 전 재산을 쏟아 부어서 건조했을 이 엄청난 대역사를 노아와 그의 가족은 불신, 불평, 힘듬을 극복하고 완성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좇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의 수많은 인내를 동반하는 헌신적인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아의 피눈물 나는 헌신에 짐승과 새와 길짐승들은 하나님의 이끌림에 따라 순종하여 배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방주의 문까지 순종하여 닫혔습니다.
창 7:8-9, 15-16 / 또한 제물로 드리기에 적합하고 사람이 먹기에도 괜찮은 깨끗한 짐승과 그렇지 못한 부정한 짐승과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와 땅위에 기어다니는 길짐승을 각각 암컷과 수컷 한 쌍씩 배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따랐다. 15) 살아 있어 숨 쉬고 있는 것은 모두 다 한 쌍씩 노아에게로 나아와 배 안으로 들어갔다. 16) 이렇게 배 안으로 들어간 것이 모두 암컷과 수컷 한 쌍씩이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명령하신 그대로였다. 여호와께서는 노아가 배 안으로 들어간 뒤에 배의 문을 닫으셨다.
▶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후, 노아와 그의 식구들이 방주에서 나왔고 배에 함께 탔던 짐승들 곧 들짐승과 집짐승과 땅 위에 기어다니는 길짐승이 모두 다 배에서 나왔습니다. 노아의 방주에 탔던 노아의 식구들을 비롯하여 모든 생명체가 있는 것들은 모두가 순종으로 일관하였습니다.
※ 하나님께서 죄를 범하기 전의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계약과 같은 새로운 계약을 순종의 사람 노아와 맺으셨습니다.
창 1:28-29 / 그들에게 이렇게 복을 내리셨다. “딸 아들 많이 낳아 그 후손들이 온 땅 위에 퍼져라. 땅을 정복하여라. 내가 바다에 사는 물고기와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와 땅 위에 기어다니는 온갖 짐승들을 다스릴 권한을 너희에게 주마. 너희는 그것들을 잘 다스리고 관리하여라.” 29) 또 덧붙여서 “내가 또 온 땅 위에서 나는 풀과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낟알이 열리는 풀과 씨가 들어 있는 과일나무를 너희 먹거리로 삼아라.”
창 9:1-3 /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 내리시며 이르셨다. “자식들을 많이 낳아라. 자꾸 불어나 온 땅을 가득 채워라. 2) 땅 위에서 사는 모든 짐승과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와 땅 위에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 그리고 바다에 살고 있는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무서워하리라. 너희를 두려워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 짐승들을 모두 너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 3) 살아 움직이는 모든 짐승의 고기가 너희의 먹거리가 되리라. 그것들을 전에 너희의 양식으로 준 푸성귀와 함께 너희의 양식으로 삼아라.”
※ 참고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계약도 내용면에서는 다를지라도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창 12:1-3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셨다. “너는 어서 고향을 떠나거라. 한데 어울려 사는 네 친척과 네 집안사람들을 떠나 내가 가르쳐 줄 땅으로 가거라. 2) 나는 네 후손이 엄청나게 불어나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또한 네게 복을 내려 이름을 날리게 하리라. 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전해 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3) 네게 복 빌어 주는 사람에게 나는 복을 내리리라. 네게 저주를 퍼붓는 사람에게는 나 역시 저주를 퍼부으리라. 무릇 땅위에 살고 있는 민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으리라.”
※ 이러한 언약은 후일 이스라엘 민족과 맺으신 언약과도 일치되는 것이었습니다.
출 19:3-6 / … 너는 야곱의 자손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라. 4) “내가 애굽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또 내가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어떻게 내게로 데리고 왔는지 너희는 다 보았다. 5) 온 누리가 다 나의 것이 아니냐?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가 세워 준 계약을 잘 지키면 너희는 뭇 민족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되리라. 6) 너희야말로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 가룟 유다를 제외한 11제자들은 3년이라는 힘든 순종의 훈련 기간을 마치자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그들에게는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게 하셨습니다.
막 16:15-18 /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서례(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나 믿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은 죄인으로 선고받을 것이다. 17) 믿는 사람들에게는 표적이 따를 것인데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만지거나 독을 마시더라도 해를 입지 않을 것이며 병자에게 손을 얹으면 그 병이 나을 것이다.”(참고 : 막 16:20)
※ 그리고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벧전 2:8-9 / 또 성경에는 그분이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며 장애물이 된 바위’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도 순종하지도 않는 자들은 결국 이처럼 벌을 받고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9) 그러나 여러분은 다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손수 택하신 민족이요, 왕의 제사장들이요, 거룩하고 순결한 겨레이며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널리 찬양하기 위한 것입니다.
3. 순종의 사람 노아를 보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
특별히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복음서에서는 노아가 세상과 뚜렷이 구별됨을 보여줍니다.
마 24:37-44 / 인자가 올 때도 노아 때와 같이 될 것이다. 38) 노아 때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 안에 들어갈 때까지 흥겨운 잔치를 벌이며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였다. 39) 사람들은 홍수가 나서 휩쓸려 갈 때까지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올 때도 그럴 것이다. 40) 그때 두 사람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어도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 둘 것이다. 41)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어도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 둘 것이다. 42) 그러니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 주인이 언제 올지 너희가 알지 못하리라. 43) 만일 집주인이 밤에 도둑이 드는 시간을 알았다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을 지킬 것이다. 44) 그러니 언제나 준비하고 있으라. 인자는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예고도 없이 올 것이다.
노아 당시의 사람들은 먹고 결혼하는 일상의 생활에 급급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보지 않았으며 사람을 바라보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모두라고 여겼으며 하늘나라 소망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물론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은 인간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일들입니다. 따라서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 외에, 다른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즉 노아 당시의 사람들은 심판이 있으리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등, 식욕과 성욕과 같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행위에만 관심이 있었으며, 하나님과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동물처럼 땅의 것에만 관심을 쏟다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모두 멸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 대홍수 심판이 임박한 순간까지 세상 것에만 취해 있었던 것처럼,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역시 사람들은 그러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세상은 어떠합니까? 어느 일간지에 어떤 작가가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이라는 제하에 이러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눈을 떠보면 매일 생겨나는 것은 레스토랑과, 골프장, 러브호텔 뿐,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는 오직 돈과 섹스에 관한 이야기들뿐, 참으로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이것이 오늘 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 여기에서 조금 더 보충설명 합니다. 두 사람의 삶의 목적이 달랐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생을 받았습니다. 같은 장소와 시간을 받았습니다. 같은 노동의 재능을 받았습니다. 같은 밭과 같은 매라고 하는 재원과 노동의 수단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밭에서 일하고, 집에서 매를 돌리는 것이 죄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노동은 하나님이 주신 신성한 축복입니다. 장가가고 시집가고 집을 짓는 문화생활을 하는 그 자체가 죄는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생존의 목적과 의의와 가치와 내용과 방향이 어디 있었는가가 중대합니다. 인생에게 주어진 온갖 유의 생존 수단 그 자체에는 반드시 목적이 수반됩니다. 시집가고 장가가며, 물건을 사고파는 살아가는 생존의 의미와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 남자와 한 여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밭을 갈고 매를 돌렸습니다. 반대로 또 다른 한 남자와 여자는 자기를 위하여 아니면 맹목적으로 무의미하게 밭을 갈고 매를 돌렸습니다.
노아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도 그 시대 사람들과 똑같이 먹고 마시고 옷 입었습니다. 가정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아와 그의 가족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방주를 짓는 일을 자신들의 삶의 목적과 의미와 내용으로 삼았습니다. 반대로 그 시대의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갔습니다. 한편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을 하였으나 또 다른 한편은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했습니다(요 6:27). 한편은 자기를 위하여 밭을 갈고, 맷돌을 돌렸습니다. 또 한편은 주를 위하여 밭을 갈고, 맷돌을 돌렸습니다(롬 14:6-8). 성도들은 몸은 밭에 있고, 손은 맷돌을 붙잡고 있어도 그 삶의 내용과 목적은 하나님을 위함에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4:37-44에서는 분명히 ‘데려감을 당하고’,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똑같이 당하는 그 때의 사건은, 전혀 두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두 사람은 전혀 피동적이 되고 만다고 하였습니다. ‘당하고’ 만다고 하였습니다. 데려감을 ‘당하고’, 버려둠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는 당함입니다. 피할 수 없는 당함입니다. 지연할 수 없는 당함입니다. 당연한 당함입니다. 그 때 역사의 현장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만유의 주이십니다. 자신의 약속대로 타작마당을 정결케 하실 분이십니다. 알곡은 모아 곡간으로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분이기 때문입니다(마 3:12). 가라지가 아닌 알곡이 되지 못한 신앙의 소유자는 쭉정이로 꺼지지 않는 불에 던짐을 받고 맙니다.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 고침을 받은 10명의 나병환자의 예를 들어 보충설명을 합니다.
눅 17:11-19 /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여행을 하시는 중에 갈릴리와 사마리아의 경계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자 나병환자 열 사람이 먼 곳에 서서 13) “예수 선생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소리 질렀다. 14)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가 나았다는 것을 보여라.” 그들이 가는 도중에 병이 모두 나았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께 되돌아와서 큰소리로 말하였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제 병이 나았습니다.” 16) 그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예수께 감사를 드렸다. 이 사람은 늘 경멸을 당하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예수께서는 “열사람이 낫지 아니하였느냐?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인 한 사람뿐이냐?” 하시고 19)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열 명의 나병환자의 소원이 나병에서의 고침을 받는 것이기에 예수님께 나와 은총을 간구하였습니다. 그러나 10명 모두가 제사장에게 자기 몸을 보이러 가는 중에 고침받은 사실을 알고 예수님께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평상시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병 고침의 기쁨을 식구들과 함께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찾아 영광을 돌릴 수 있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병 고침만을 받는 데 목적이 있습니까? 한걸음 나아가 병 고침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마음이 우선시 되고 있습니까?
▶ 라오디게아 교회의 예를 보면서 우리의 마음을 여미려고 합니다. 뜨거운 신앙생활을 하십시다.
계 3:15-21 / 나는 너를 잘 알고 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나는 네가 차든지 덥든지 어느 한쪽이면 좋겠다. 16) 그러나 너는 미지근하기만 하기 때문에 나는 너를 내 입에서 토해 내겠다. 17) 너는 스스로 부자라고 하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손에 넣을 수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너는 네 자신이 불쌍하고 비참하고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18) 그러므로 나는 네게 충고한다. 불로 제련된 순금을 내게서 사라. 그것만이 네가 참다운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이다. 그리고 깨끗하고 순결한 흰옷을 내게서 사라. 그래야 너는 벌거벗은 수치를 가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네 눈을 치료하려거든 내게서 안약을 사라. 그러면 시력을 되찾게 될 것이다. 19)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일수록 훈련과 징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만일 무관심한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의 일에 열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벌할 수밖에 없다. 20)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다. 만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 21) 이기는 사람은 마치 내가 이긴 후에 내 아버지께서 당신의 보좌에 나를 함께 앉히신 것처럼 나도 내 보좌 곁에 그를 앉게 하겠다.
▣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으로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을 다해 순종할 때 미소 지으신다. / 전 세계를 뒤 덮은 홍수에서 동물들을 구해내는 것은 운송 방법과 그 외의 구체적인 사안들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었다. / 모든 것은 하나님이 처방해주시는 대로 이루어져야 했다. 하나님은 “노아야 네가 원하는 대로 아무 배나 지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 하나님은 방주에 실을 동물 각각의 수뿐 아니라 방주의 크기, 모양 그리고 재료까지 세세하게 지시하셨다. / 성경에 나타난 노아의 반응은 이러하다. /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 6:22 참고, 히11:7) / 노아가 모든 것에 순종했고(단 하나의 지시 사항도 간과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확하게 순종한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과 시간에 맞추어 보아라. 이것이 온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 하나님이 노아를 보시며 기뻐하신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만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배를 지으라고 명하셨다면, 우리는 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반대를 하며 조건을 달지 않았겠는가? 노아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했다.
진심어린 순종이란 하나님이 명하신 것에 조건을 달지 않고 지체 없이 무엇이든 행하는 것이다. 미루지 않아야 한다. “기도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망설임 없이 바로 행한다. 나중에 하겠다는 말은 사실 하지 않겠다는 뜻임을 모든 부모는 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설명을 하시거나 명하신 것에 대한 이유를 말해줄 필요가 없으시다. 이해는 나중에 하더라도 우선 순종해야 한다. 즉각적인 순종은 평생 성경에 대해 토론하고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르쳐줄 것이다. 사실 먼저 순종하지 않으면 이해 할 수 없는 명령도 있다. 순종은 이해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께 부분적인 순종을 하려고 한다. 우리는 순종하기 좋은 명령들을 취사선택(取捨選擇)하고 싶어 한다. 좋아하는 명령만으로 목록을 만들어 그것들만 순종하고, 부당하고, 어려우며, 비용이 많이 들고, 혹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 수 없는 명령들은 간과한다. “교회는 가겠지만 십일조는 내지 않겠다. 성경을 읽긴 하겠지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용서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적인 순종은 불순종이다. 진심으로 하는 순종은 기쁜 마음으로 열심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라”(시 100:2) 이것이 다윗의 자세였다. “주님 제게 무엇을 해야 할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대로 하겠습니다. 제가 사는 동안 진심으로 순종하겠습니다.”(시 119:33) 야고보는 이미 크리스천이 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믿는 것뿐 아니라 행동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약 2:24)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명확하게 말씀하신다. 우리의 노력이 아닌 은혜로만 가능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순종을 통해 기쁨을 드릴 수 있다. 모든 순종의 모습은 또한 예배의 모습이다. 왜 순종이 그토록 하나님을 기쁘시게 만들까? 왜냐하면 이를 통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