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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장 1~10절 [예수님이 찾으시고 영접하시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5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오늘 그리고 다음 주일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 비유와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 비유의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찾으시고 영접하시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 그리고 성령님이 깨닫게 하시는 이 복음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구원의 복을 어떤 자가 받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말씀을 드릴 것은~
흔히 ‘잃어버린 양 한 마리 비유’로
‘99마리의 양’은 교회 잘 다니는 성도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는 지금은 교회 안 나오는, 아니면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으로 말을 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와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을 먼저 말씀을 드립니다.
본문 1, 2절에 보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기 위해 ‘모든 세리, 죄인들’이 예수님 가까이 나아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회적으로는 천대를 받고 소외되어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간절함과 겸손함으로 예수님께 가까이 나오는
‘모든 세리와 죄인을 영접’합니다.
‘모든 세리, 죄인들이’이 ‘간절함과 겸손함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니 예수님도 이들을 영접’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영접한다.‘ 하는 것은~ 그저 말로만 하는 것도, 종교 형식을 말하는 것이 아닌,
예수님에 대한 100% 신뢰, 예수님과의 100% 연합을 말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기들이 천대하고 무시하는~
‘모든 세리와 죄인들’을 예수님이 영접할 뿐만 아니라, 같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는 예수님을 원망합니다.
‘원망한다.’는 것은 불만을 가진다, 욕을 한다, 비아냥거린다, 무시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마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칭송하고 따르는 예수님이,
‘모든 세리와 죄인들’에게 지도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 자신들을 영접해 주고 공경해 주기를 바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자신들의 권위와 위치를 더 세우고 싶어했던 같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약속대로 이 땅에 오셨을 때
‘모든 세리와 죄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는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도리어 예수님에게 영졉, 공경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 오늘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이
자신에게 있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찾고 기도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통해 나에게 그런 모습이 없는지 잘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잃은 양 한 마리와 잃은 한 드라크마 비유‘를 예수님은 지금 누구에게 들으라고 하시는 ’비유 말씀‘입니까?
3절에 보면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저희‘는 누구입니까?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아니라,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꼭 짚어서 언약대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또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천국 복음을 듣지 않고
도리어 자신들을 영접하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있는 예수님과 상관없는 심판 받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들려주시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제가 여러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의 많은 부분은~
먼저는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 하나님의 선민으로 살았던 이스라엘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이 찾으시는 잃어버린 자들, 사회적으로는 차별받고 소외되었지만
메시야를 고대하며 참된 예배를 사모했던 가난한 자, 과부, 세리, 고아, 스불론과 납달리 사람, 사마리아 사람들,
그리고 지도자의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을 사랑하여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종교지도자들,
’비유의 말씀‘은 먼저는 이들에게 하시는 것입니다.
⇨ 왜냐하면 오랫동안 메시야 언약을 간직하며 살았던 그들에 대한 평가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약의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교훈을 발견하면 되는 것입니다.
⤷ 그런데 이런 것을 무시하고 무작정 우리 신약의 교회에 적용을 하다 보니
억지스러운 해석도, 의문이 남는 부분도,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가르치는 자들이 전하는 것을 여과 없이 받지 마시고 잘 분별해서 들으시기 바립니다.
그래서 ’잃은 양 한 마리와 잃은 한 드라크마 비유‘도 먼저는 이스라엘 사람들 특히~
예수님이 오셨지만,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예수님에게 원망을 늘어놓고 있는, 구원받지 못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예수님의 뜻을 알려주시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 본문에서 분명히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 ’비유의 말씀에서 예수님이 찾으시는 잃어버린 양이 누구‘입니까?
⇨ 예수님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지 않겠느냐.
그리고 그 잃어버린 양을 찾으면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아 나의 잃은 양을 찾았으니 나와 함께 즐기자 하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7절에 ’이 잃어버린 양이 어떤 자‘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이라고 했습니다.
즉 이 ’잃어버렸던 양은, 회개한 죄인‘을 말합니다.
길 잃은 양이 주인을 찾기 위해 목이 찢어져라, 우는 것처럼
⇨ ’이 잃어버린 양‘은~ 본문 1절에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린 그리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메시야 임을 알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온, 예수님이 영접한 모든 세리와 죄인들을 말합니다.
’이 잃어버린 양‘은 구원받은 자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99마리의 양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7절에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이 세상에는 회개할 것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회개할 것이 없는 이 의인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은 누구를 의미할까요?
누가복음 18장 9~14절을 봅시다.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바리새인은 스스로 죄가 없는 의로운 자라고 자처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7절에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은~
⤷ 자신들은 죄가 없는 의인이라고 자처하는 바리새인, 서기관 이들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 말씀에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하신 것은~
⤷ 자기들은 죄가 없는 의인이라고 자처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을
예수님이 속된 표현으로 비꼬는 내용입니다.
즉 ’너희들은 죄가 없는 의인이니 하나님이 기뻐하겠지만‘ 라는 식의 비꼬는 말씀입니다.
방금 읽은 누가복음 18장 9~14절을 다시 보십시오.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바리새인은 종교적인 외적인 모습과 형식적인 모습은 흠잡을 데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선한 것이 하나 없는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형식적인 신앙인은 자기가 심판의 길에 서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참 그리스도인인지,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인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 자신의 중심에 소망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재림, 영원한 것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 욕망에서 나오는 세상에 대한 것인지.
자기중심에 하나님의 나라를 채워나가려고 하는지, 세상 것을 끊임없이 채우려고 하는지.
⇨ 자신을 속이는 마음 없이 잠깐만 생각해본다면
자기가 구원의 길에 서 있는지, 아니면 심판의 길에 서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 목회자든 성도든, 자신의 세상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으로 포장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8장 13절에 ’세리는 나는 죄인입니다.‘ 라며 기도합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양 비유의 말씀‘에서~
⇨ ’잃어버린 양‘은~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그 죄를 회개하고 겸손함과 진실함으로 예수님께 나온,
예수님이 영접, 예수님이 구원하신, 구원받은 자인 ’모든 세리와 죄인들‘을 말합니다.
⤷ 결코 교회 잘 다니다가 지금은 교회를 떠나있는 성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잃어버렸다.‘는 하는 것은 신앙적으로 나가 떨어진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천대받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도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5장 24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누가복음 19장 10절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그리고 99마리 양은~ 스스로 죄가 없는 의인이라 생각하며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심판받을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말합니다.
⤷ 결코 지금 교회 잘 다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양 비유의 말씀‘은~ 예수님이 찾으시고 구원하시는 자는
스스로 죄인임을 알고 예수님 앞에 나와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의인으로 죄가 없다고 자처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종교인은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잃어버린 양‘은 교회 잘 다니다가 지금은 교회를 떠나있는 성도를 말하는 것도
99마리 양은 교회 잘 다니는 사람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99마리 양은 심판받을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말하고 있는 것인데,
⤷ 이 99마리의 양을 지금의 교회 성도로 말을 한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미와 너무나 다르지 않습니까?
그동안 ’탕자의 비유, 사마리아 여인, 혼인 잔치 비유‘ 등을 통해서 들어 아시겠지만
우리 이방인은 하나님이 언약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신약의 교회는 단번에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잃어버린 바 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 잘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잃어버린 양이나 탕자‘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결코 신앙을 버리지 않습니다.
결론
그렇다면 ‘잃어버린 양 한 마리 비유’에서 우리 신약의 교회가 얻을 영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모든 세리, 죄인들이’은 예수님의 영접을 받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 그들에게 주신 메시야 언약을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메시야의 초림 때까지 그 소망을 품고 메시야를 영접한 자들입니다.
구원받는 참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재림을 품고 사는 존재입니다.
‘메시야의 초림을 소망한 자가 구원받았듯이,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는 자가 구원받는 자’입니다.
그런데 다시 오신다는 예수님의 재림에 소망을 두고 사는 기독인이 얼마나 될까요?
도리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하나님 잘 믿는 복이라고 말하는 사두개인처럼
세상의 것이 목적이 되어 사는 기독인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이 바로 99마리의 양으로 비유된 구원과 상관없는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자들입니다.
메시야의 초림을 소망하지 않았으니 그들은 메시야를 영접하지 못한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 그 신앙에 없다면 거듭난 성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지금도 성령이 깨닫게 하시는 것은 영원한 것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읽으면서 날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세워져야 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해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시는 한울타리 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라며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조금만 신경 써서 읽어보면
’예수님의 말씀하신 의도‘가 무엇인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내용이 아님에도~
예수님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인간의 뜻에 맞추어서 가르치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이런 가르침은 신앙이 바르게 자라날 수도 없고, 종교인만 만들 뿐입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읽으면서 마치겠습니다.
마태복음 13장 10~14절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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