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일정 마지막 날이다. 호롬보 산장에서 만다라 산장을 거쳐 마랑구게이트까지 약20km를 내려가는 코스다. 정상정복을 마쳤으니 이제 홀가분하게 내려간다. 마음 같아서는 달려가고 싶지만 몸은 여전히 피로와 고산후유증이 있다.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유럽 사람으로 보이는 백인들이 소란을 피우며 즐기고 있다. 친구는 백인들만 보면 기죽기 싫어 양보하지 않는다며 맏대응 할 자세다. 과연 백인은 우월한 민족일까?
유럽 국가들은 세계 곳곳을 식민지로 삼고 현지 주민들을 노예로 부렸던 경험으로 주인은 백인이고 식민지의 인종들은 노예 취급했던 잔재가 남아 있다. 힘에 의한 지배일 뿐 선민選民일 이유가 없다. 그래서 ‘마크 트웨인, 에이브러햄 링컨, 헨리 데이비드 소로’같이 제국주의의 횡포에 대항하고 백인 우월주의를 비판한 의인들이 있었다. 수양이 덜 된 인간들의 소란행위로 생각하고 넘길 뿐이다.
만다라 산장에 도착하니 이제 빗방울이 쏟아진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포터들이 라면을 끓여준다. 나는 라면을 별로 즐기지 않은 편이라 기대감 없이 젓가락을 들었다. 그동안 고산증으로 고생한 탓일까? 라면 면발이 쫄깃쫄깃 하다. 쫄깃한 식감이 푸석푸석한 몸을 상쇄시켜주기에 맛이 일품이다. 비는 내리고 옷은 젖고 친구는 내일 일정을 걱정하고 있다. 나는 짐 정리를 겸해서 배낭에 있는 옷을 꺼내 포터에게 주었더니 기뻐한다. 내일이면 다른 사람들은 귀국하고 우리는 탄자니아 국내여행에 돌입해야 한다. 그런데 배낭 안에 있는 옷이 젖었으니 걱정거리다. 친구가 가이드에게 세탁을 맡겨보라고 재차 주문하지만 답이 없다.
폭포를 지나고 4거리가 나온다. 어느 길로 갈까? 비는 내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산장을 찾아서 내려왔다. 개울이 나온다. 잠시 앉아 손을 씻는다. 여행은 목적달성도 중요하지만 즐기는 것 또한 중요하다. 주어진 틀 안에서 걸으며 고산증의 걱정으로 보낸 일주일의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마랑구 게이트에 도착하니 옷과 신발이 흠뻑 젖었다. 일행들과 가이드, 포터들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서 마지막 축하파티를 즐긴다. 고생과 함께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 이었기에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있다.
숙소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몸을 씻고 저녁식사를 한다. 양고기 파티다. 맛이 있어 두 그릇을 먹었다. 쫄깃한 맛에 인생도 쫄깃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맥주 한 잔과 함께 등산 일정을 마무리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밤이다.
숙소로 돌아와 버릴 것과 챙겨야 할 짐을 정리하면서 간단하게 말릴 수 있는 옷은 선풍기를 이용해서 말리기로 했다. 친구는 가이드에게 부탁한 세탁물이 건조할 수 없다고 하자 짜증이 나는 모양이다. 밤이 깊었다. 갑자기 선풍기 소리가 시끄럽다며 고함치듯 큰 목소리가 들린다. 나도 짜증스럽지만 말대꾸를 하면 결과는 뻔하다. 장자의 ‘빈 배’ 이야기 생각났다.
배를 나란히 하고 강을 건널 때, 빈 배가 와서 부딪히면,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도 성을 내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배에 한 사람이라도 타고 있다면, 배를 돌리라고 소리칠 것이다. 한 번 불러도 듣지 못하고, 두 번 불러도 듣지 못하면, 그때는 세 번째 소리치면서,
틀림없이 욕이 나올 것이다. 앞에서는 성내지 않았는데 이번에 성는 것은, 앞서는 빈 배였지만 이번에는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를 비우고 살아간다면, 누가 해칠 수 있겠는가?
方舟而濟於河 有虛舩來觸舟 雖有惼心之人不怒 有一人在其上 則呼張歙之
一呼而不聞 再呼而不聞 於是三呼邪 則必以惡聲隨之 向也不怒而今也怒
向也虛而今也實 人能虛己以遊世 其孰能害之
방주이제어하 유허선래촉주 수유편심지인불노 유일인재기상 즉호장흡지
일호이불문 재호이불문 어시삼호야 즉필이오성수지 향야불노이금야노
향야허이금야실 인능허기이유세 기숙능해지) <산목편 2>
분노가 솟구치는 상황에서 상대가 화를 내면 맞대응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자고로 angry 시대가 되었다. 국민소득 3만 불 시대.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살아간다. 마주치는 대상마다 화를 자초할 요인이 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고 상해를 가하는 뉴스가 비일비재하다.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고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분노는 감정에서 비롯되지만 절제하거나 참는 것은 의지의 문제다. 세상에 모든 일은 마주치는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마주치는 배가 비어 있다면 누구도 소리치지 않고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란 강을 건너면서 내 배를 빈 배로 만들면 아무도 나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내 배가 비어 있는데도 사람이 화를 낸다면 상대는 정신적인 감정이 필요하다. 자신을 텅 비게 하고서 아무런 감정 없이 세상에 노닐면 근심걱정은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