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법등사설오스님TV(YouTube) 작성자 : 변함없는 즐거움
大慈(대자)는 능히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중생들에게 기쁨을 주어서 행복을 얻을 수 있게 해줍니다. 중생들이 고뇌가 없게 해줍니다. 어떻게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고뇌가 없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대비(大悲)입니다. 비(悲)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고 자(慈)는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원컨대 일체 중생이 다 행복을 얻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무량한 환희입니다. 환희가 무량하면 여러분의 마음이 항상 평등하고 차별이 없습니다. 특별히 고통받고 있는 중생들을 평등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평등하게 대하여 원수와 친한 이가 없습니다. 원한을 갚는 마음이 없습니다. 이것을 사(捨)무량이라고 합니다.
자비희사와 육바라밀과 사무량심을 동시에 관상해야 합니다. 일체 제법이 본래 고요하다는 것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관상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일체 제법이 생멸이 없고 본래 고요하고 적정하다는 것을 관상해야 합니다. 평등하고 평등에서 한 맛으로 평등합니다. 생각을 떠나서 청정하고 필경에 원만합니다. 이것은 지장보살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점찰윤상을 사용하기 전에 먼저 마음을 크게 확대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내가 이 문장을 읽는 것을 듣고 <점찰선악업보경>이 대승인지 소승인지, 여러분 자신이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또 마땅히 마음을 모아서 나 지장보살에게 공양을 해야 합니다. 지극한 정성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공양을 올려야 합니다. 혹은 나의 명호를 칭명해야 합니다. 마땅히 칭명하고 공양을 올리거나 혹은 묵념으로 지장보살을 염해야 합니다. 묵념으로 염불해도 됩니다.
일심으로 고하여 이르기를... 염불만 하고 또 공경하게 절만 하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지장보살님께 보고를 드려야 합니다. 지장보살님께 내용을 고해야 합니다. 고하기를 마치고 나서 나무지장보살마하살, 나무지장보살마하살 칭명 염불하기를 일천 번을 합니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하면, 점찰윤상은 가지고 던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길거리에서 돈 몇 푼 주고 주사위 점이나 보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장보살 명호를 천 번 염불을 한 다음에 또 바로 발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지장보살상 앞에서 여쭈어야 합니다.
지장보살마하살이시여! 당신은 대자대비하신 보살이십니다. 저와 일체 중생을 호념하시어 모든 업장을 속히 소멸하여 주소서. 저에게 도에 장애가 되는 모든 인연들을 다 소멸해 주소서. 현재 저는 아직 신심을 구족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청정한 신심이 증장되게 하소서.
이렇게 청하신 분은 바로 견정신보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신심이 구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견고하고 안정되기는 고사하고 그런 신심을 아직 일으키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나에게 청정한 신심을 증장되게 해달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던진 윤상이 진실하게 상응하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자비로 와서, 돌봐 주시지 않아서 이 윤상이 상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장보살님의 자비를 청해서 제가 짓고 묻는 일들을 상응하게 한다는 것은 바로 서로 맞는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물었는지 윤상이 그 일에 대해서 대답을 해주는 것입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를 모릅니다. 윤상을 사용해서 지장보살님께 알려주시길 청하는 겁니다. 지장보살님께서 여러분에게 어떻게 하라고 알려하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윤상을 사용할 때에 먼저 지장보살님께 여쭈어야 합니다. 말씀을 드리고 나서, 이렇게 절을 하고 또 여쭙고 나서 그리고 나서 손으로 윤상을 잡습니다. 그냥 목륜을 잡자마자 던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목륜을 봅니다.
이 목륜은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 세 가지를 전부같이 던지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아침 일찍 던져보는데 청정해졌는가를 던져보는 겁니다. 세 개의 윤상이 있는데 한쪽에는 붉은 선이 있고 한쪽에는 검은 선입니다. 하나는 큰 붉은 선이고 하나는 큰 검은 선입니다. 하나는 작은 붉은 선, 하나는 작은 검은 선입니다. 점찰기도를 할 때에 매일 매일 이 세 개를 던져봅니다. 만약 모두 붉은 색이 나오면 참회 절을 해서 청정해졌다는 겁니다. 이 때는 무엇을 구하든지 다 얻어집니다.
윤상을 던질 때에는 깨끗한 천을 하나 펴 놓아야 합니다. 보자기나 수건 같은 것 위에 던집니다. 재료는 어떤 재료도 괜찮습니다. 다만 깨끗한 것이어야 합니다. 윤상을 위로 들어서 옆으로 던집니다. 자기가 어떤 일을 묻고자 하면 윤상을 던져 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던져 봐도 되는지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던져 봐도 됩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일을 관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관하고자 하면, 다른 사람을 관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보거나 혹은 어떤 스님에 대해서 알고자 할 때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 몽참 노스님이 좋은 스님인지 아닌지를 던져보면 윤상이 여러분에게 알려줍니다. 저 자신은 여러분한테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중:박수) 저는 아직 그렇게 솔직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참회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윤상을 한번 던져보면 지장보살님이 알려줍니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대중: 웃음,박수)
그러면 여러분이 그를 믿으면 됩니다. 지장보살님을 절대로 속이지 않습니다. 좋으면 좋다고 하고 나쁘면 나쁘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물어봐도 됩니다. 어떤 스님을 스승님으로 모셔야 하는지, 내가 스승님으로 삼아도 되는지 안 되는지 여러분들이 물어볼 수 있습니다. 지장보살님이 모두 알려 줄 겁니다. 지장보살은 단점을 숨겨주지 않습니다. 이기적이지도 않습니다. 내가 그분을 숭배하고 내가 제자라고 해서 단점을 숨겨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사실대로 알려주십니다. 여러분들이 스스로를 관해도 되고 혹은 다른 사람을 관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 다 할 수 있습니다.
지장보살의 점찰윤상법을 쓰려면 그 윤상법은 우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들이 배울 때에 점찰을 해보아야 합니다. 할 줄 아는 많은 법우들이 있습니다. 서로 전해주어도 됩니다. 여러분들이 서로서로 배우면 됩니다. 첫 번째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면 반드시 정성스러워야 합니다. 정성스러워야 합니다.
정성스럽다는 의미는 경전에서 말한 지극한 마음(至心)입니다. 이 지극한 마음은 지장보살님께서 우리에게만 말씀하신 것입니다. 상지심과 중지심, 하지심이 있습니다. 상지심(上至心)은 우리는 모두 도달하지 못합니다. 성인이라야 상지심(上至心)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지심(下至心)이라도 그것을 잡란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에 잡란함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참회실에 들어갈 때에 반드시 밖에 일은 모두 다 참회실 문밖에 두고 들어갑니다.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참회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마음에 두 가지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렇게 하지 못하면 나무지장보살, 지장보살님 형상을 생각하고 입으로는 지장보살 명호를 염합니다. 그러면 됩니다. 그러면 지심(至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생각 지장보살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참법기도를 했는데 청정한 윤상을 얻지 못하더라도, 다만 지장보살님을 염하고 지장보살님께 절을 한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업장이 소멸되었습니다. 지장보살께서 업장을 소멸해주십니다.
꿈속에 길상하지 못한 일을 만났을 때나 혹은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어떤 일을 만나든지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단지 여러분들 자신이 반드시 지극한 정성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속일 수가 있지만 지장보살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점에 대해서는 다 믿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극한 정성과 간절한 마음으로 사실대로 여쭈어야 합니다. 지장보살상에게 무언가를 얘기하면 염험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에게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영험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힘이 없습니다. 나는 절대 여러분들을 속이지 않습니다. 내가 직접 경험한 것입니다. 그러나 업장이 매우 무거워서 나의 업장이 매우 무겁습니다. 나는 홍일대사를 보내드리고 나서 샤먼(사찰)으로 돌아갔습니다. 칭다오에서 폐관을 하면서 점찰 참법을 수행했습니다. 몇 번의 7일을 지날 때까지 기도를 했습니다. 이미 윤상도 거의 다 청정해졌습니다. 일본이 칭다오를 점령했습니다. 77사변 이후에 칭다오로 쳐들어 왔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모든 것이 멈춰버렸습니다. 이것은 큰 장애였습니다. 그러나 이 점찰윤상 기도를 성공하지 못하고 나서 그 이후에 몇 십 년을 아주 어렵게 지냈습니다. 아주 괴로웠습니다. 그 이후에 몇 십 년이 지나서 1989년 뉴욕의 맨하탄에서 있을 때에 그들이 나에게 <점찰선악업보경>을 강설해 주기를 청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했는데 그러나 그렇게 순조롭지는 않았습니다. 중간에 또 십년을 지나서 1989년에서 1998년이 되었습니다. 오대산 보수사에서 <점찰선악업보경>을 강설했습니다. 이 중간에 지금 금년도가 2009년입니다. 1998년에서 2019년까지 하나의 법을 설하고 배우고 하는데 여러분들이 함께 배울 수 있는 이러한 인연이 모두 다 불가사의합니다. 모두 다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대만에 왔을 때 본래는 건강을 좀 단련하려고 했었습니다. 내가 오대산에 있을 때 이미 몸이 안 좋았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오대산에 있으면 몸이 건강이 안 좋으니 산에서 내려가서 몸을 좀 단련을 해야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태원으로 내려왔는데 태원에서는 몸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좀 더 멀리 가도 되겠다’해서 대만까지 생각이 되었습니다. 한번 생각을 내니까 바로 영험했습니다. (대중:박수) 대만에 와서 다시 설법을 하다든지 경전강의를 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그런 힘이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나는 내가 늙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러나 95세입니다. 역시 늙은 겁니다. 이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일입니다. (대중: 박수, 웃음) 인정하고 인정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정을 하든지 안하든지 늙은 것은 늙은 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k2VAWZ4XbM&t=5s 설오스님 한국어 통역 (233) 점찰선악업보경상권 제23강-한국어통역 - https://www.youtube.com/watch?v=dSYDQ8Z5SMw&list=PL5MPltq86t11mMX67mzXILujzccPO6sKj&index=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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