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료사
탁구, 칠 마음만 있으면 됍니다!
수료사... 저의 실습 과정을 한 편의 아름다운 수필로 작성해야 한다기에 새벽 2시의 감성으로 써봅니다. 하지만 온통 웃겼던 것밖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수료사를 쓰는데 이렇게 입꼬리가 씰룩거려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냥 쓰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괴상한 미소를 지으며 쓰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이 탁구라는 소재를 가지고 한 사회사업이 재밌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기억 안에는 아름다운 저와 성현동 주민들이 함께이니 제가 감성을 불어넣지 못해도 감정은 생생할 것이며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끔씩 저의 근거 없는 자신감의 원천이 어디일까? 심각하게 고민해 보는 사람입니다.
정말이지 이 아이의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고 제가 다 민망해지기도 하고 이 아이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심히 궁금합니다.
성현동의 탁구 잔치도 이 아이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실습지원서를 넣을 때 희망 사회사업 1지망, 2지망 칸이 있어서 사업들을 보았는데 1분도 안 걸려 결정했습니다.
“성현동 탁구, 이거 재밌겠다. 탁구 치러 가야지.” 했습니다. 무슨 복지관 체험 프로그램을 제가 결정해서 가는 것처럼, 당사자처럼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사실 사회사업도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당사자가 딱 봤을 때 하고 싶은거. 재밌을거 같은거.
난 성현동 탁구가 제일 하고 싶고 재밌어 보였고, 그래서 당사자들도 그런 생각으로 쉽게 웃으며 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에게는 웃기고 재밌게 즐길 놀이가 필요합니다.
<네덜란드의 역사가이자 철학자 요한 하위징아(1872~1945)는 유희가 인간의 본질 중 하나라면서 호모 루덴스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놀이하는 인간’이란 어쩌면 사람들이 잊고 있었던, 혹은 생각하지 않았던 가장 중요한 본성인지도 모른다. >
라는 개념의 주장처럼 말이죠.
저는 자주 생각이 많아지고 진지해지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를 보고 실습 동료 서영 선생님이 “이 선생님은 참 애늙은이 같아서 웃기지 않아요?” 했습니다.
애늙은이가 진지하게 바라본 세상, 온통 흑백 세상에 힘이 들어 지쳐있습니다. 한 번 사는 내 소중한 인생, 이렇게 감동 없이 무거운 짐만 짊어진 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가끔씩은 이런 생각 다 때려치고 내 마음을 웃기기도 울리기도 하는 알록달록한 컬러로 세상을 볼 수 있게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사람다움, 사회다움을 지키며 살아가려면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탁구 치러 온 주민들은 모두 얼굴이 밝았습니다. 개인사를 알지 못하면 그 누가 힘든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정신장애가 있어요. 그래서 정신장애인들을 활동시키고 일을 시켜주는 한 단체에 15년을 다녔는데요. 거긴 다 정신장애인들만 있어서 재미가 없는거에요. 다들 아픈 사람들이라 그런가.. 아파서 그런지 자기 밖에 몰라서 나는 이런저런 간식을 사줬는데 한 번도 얻어먹어본 적이 없어요. 근데 여기(강감찬관악종합사회복지관)에 오니깐 저 형님이 아이스크림을 사주시는거에요.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여기에 오면 누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누가 장애가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내가 성현동에 사는데 성현동에 살면 성현동 사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하잖아요. 그래서 주민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여기 왔는데 형이랑 동생이 생겨서 좋죠. 지금은 탁구 행사가 있어서 탁구 연습하러 오지만 이거 끝나면 다른 활동도 참여하려고 해요.” 라는 주민분의 말처럼 말입니다.
우리 탁구 잔치에는 딱 저 같은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아주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세상 다 하는 그런 아이들. 저와 꼭 닮았던 모습은 “나 탁구 한 번도 안쳐봤는데 잘 칠거 같아요! 탁구 치고 싶어요! 재밌겠다” 하던 아이들.
그저 학교가 끝난 후, 복지관 무더위 쉼터를 본인들 아지트 삼아 놀던 아이들이 탁구 잔치를 알고 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딱 저와 같았습니다. 나도 어릴 때 복지관을 제 집 마냥 놀러 가서 친구들이랑 아지트 삼고, 어른들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되려 어리숙한 신입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을 놀리기 바빴습니다. 지금은 제가 그 어리숙한 어른이 되어 아이들에게 큰 놀림을 받고 있습니다. 제 업보입니다.
저도 아이들도 한 번도 안쳐본 탁구, 그거 그냥 치면 다 되는 거 아니냐며 탁구 연습 모임을 가졌었는데, 내 몸이 말을 따르지 않습니다. 눈이 침침한 건지 탁구공을 분명 보고 쳤는데 탁구공이 땅바닥으로 댕구르르 굴러갑니다. 아이들도 나도 그때 가서 당황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탁구 국가대표 선발전도 아니고 그저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야구 치듯 탁구공을 하늘로 홈런 치면 홈런 치는 대로 재밌다고 깔깔거리며 탁구 쳤습니다.
사람이 그런가 봅니다. 나보다 어린 사람을 보고 자신 어렸을 때의 경험을 비슷하게 하는 아이들을 보면 나와 닮았다는 생각에 더 사랑을 주곤 합니다. 난 정말이지 아이들을 너무 사랑했습니다. 아이들이 오히려 더 이런 마음을 직관적으로 잘 파악합니다. 헤어질 때 아이들이 겨우 한 달 만난 저를 친한 친구 전학갈 때 마냥 아쉬워하는 것을 봤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릴 때 그랬습니다. ‘앗 저 어른은 날 엄청 좋아하는구나!’하며 경계를 풀고 날 좋아하는 어른을 따르고 좋아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제가 10년 전 신입 사회복지사로 들어와 저를 데리고 사회사업을 한 선생님이 생각나고, 연락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관장님도, 부장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시기에 만나보는 대학생 언니, 오빠에 대한 기억은 강렬합니다. 어른인 듯 어른 아닌 어른 같은 사람들과 놀아본 추억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갑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나이가 넘어설 쯤, 다시 한번 생각이 납니다. ‘그땐 한참 어른같던 사람이 애기였구나!’ 라고. 그리고 사회 초년생이 되어서는 현재 10년 차 베테랑이 됐을 그 어른, 대 선배님께 그렇게 장난을 쳤었구나 싶습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고, 아이들에게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마치 저희가 탁구 잔치 선행 연구를 위해 어릴 적 탁구 잔치 mc를 봤던 어엿한 회사원이 된 분을 인터뷰 했을 때 말씀해 주셨던 것과 같이 말입니다.
“탁구 잔치 전에는 이웃인데도 모르는 분들을 알게 되고, 전체적인 동네 분위기가 좋아졌어요. 그 경험이 지금 업무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건 아니지만, 다 자라서 회사 생활하는데, 아직도 그 추억에서 힘을 얻어요.”
우리 아이들도 탁구 잔치 후에 자신의 동네에 애착이 생기고, 다 커서도 문득문득 추억에서 힘도 받고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이렇게 봤듯 저보다 어른들은 저를 그렇게 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중장년층 아버님들도, 어르신들도. 슈퍼바이저 선생님들도.
어르신들은 그냥 만나면 안기고 싶었습니다. 어무니, 아부지 부르며 안기면 그 자리에서 딸이 되었습니다. 저와 자주 만난 어르신들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울산에 있는 제가 좋아하는 남자친구를.
탁구 강당에도 서울에도 없는 제 임을 데려다 놓으시곤 상견례를 보시는 줄 알았습니다. 정말 마치 우리 엄마 같았습니다. “뭐 하는 앤데? 잘 해줘? 울산이면 장거린데 괜찮아? 결혼할겨? 요즘엔 안가도 돼~ 나도 고운 시절이 있었는데 깔깔깔” 하셨습니다.
중장년층 아버님 중엔 유독 제게 많은 사랑을 주시는 아버님이 있습니다. 최근에 저녁에 남아서 그 분과 진지하게 제가 좋은 이유에 대해서 나눠봤습니다. “아버님. 제가 왜 그렇게 좋으세요? 이유가 뭐였어요?”라는 질문에 한참을 히죽 웃으시다가 “민지 선생님은 탁구도 못 치고, 당구도 못 하고, 못 하는 게 너무 많아서 그래서 좋아했어요.” 라고 하시는 겁니다.
정말 때 묻지 않고 새하얀 순수한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이런 마음을 받아도 되나 싶었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 그 어려운걸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늘 사회에서 잘 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잘 못해서 연민으로 날 아픈 손가락처럼 생각하여 좋아했다는 아버님 말씀에 버스 타고 가면서 정말 오랜만에 엉엉 울었습니다. 그 말씀은 내가 했던 받았던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기억을 우르르 쏟아내게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슈퍼바이저 문은선 선생님. 본인이 사회사업 바르게 하시는 것처럼 일상에서도 사회사업가처럼 드러나지 않게 하시고, 주목받기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잘 숨어다니시지만 복지관에서 가장 귀여운 외형을 가지셔서 그 존재감을 숨기진 못하십니다.
은선 선생님이 제 12일차 슈퍼비전에 선생님이 보기에 제가 어떤 사회사업가 같나요? 라고 역질문을 남겨주셨습니다. 선생님은 복지요결 그 자체였습니다. 복지 요결이 사람화 되면 저 모습이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달간 옆에서 따라다니며 보니 선생님의 특화된 역할이 있긴 했습니다. 발로 일하는 사람, 주선하는 사람, 주게 하는 사람. 그것에 특화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성현동팀 실습생들은 발바닥이 아팠고, 주선하고 주게 하느라 본인들의 역량의 120%를 끌어다가 썼습니다.
은선 선생님을 다른 실습생 선생님들이 귀엽다고 제게 말해주실 때마다 나만 알고 나만 가지고 싶어서 “내 슈퍼바이저 선생님 탐내지 말라”고 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또 경고합니다. 귀여운 외형과는 다르게 아주 무서우신 분입니다. 은영 선생님과 저였기에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종결 평가서 피드백 해주실 때, “저도 보고서 피드백 받을 때, 제 인쇄물을 빨간펜으로 설명해주시는 거 보고 그 마음을 압니다.” 하시고는 자신도 똑같이 제 인쇄물에 빨간펜으로 열심히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그러시고는 혹시 실습 지원서에 너무 혼이 나고 싶다고 적으셨던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혼나려고 이렇게 종결평가서를 쓰셨냐며 제게 자주 옥상에서 좌로 굴러 우로 굴러를 하러 갈 의향이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 신청서를 쓰러 갔다가 자원봉사 신청서가 다 떨어져서 제가 “어엇 홈페이지에는 자원봉사 신청서 있다 그랬는데” 했다가 “어엇 후원 신청서는 있는데,,,” 이 말 듣고 사무실에서 도망쳤습니다. 정말이지 실습생까지도 주게 만드는 진정한 주게 하는 사람입니다.
슈퍼바이저 선생님께 이렇게 버릇없이 장난치는 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은선 선생님은 실습생인 저를 참 편안하게 해주시고 배려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저보다도 제 안위를 걱정하시고 응원과 위로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은선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제가 한 달간 실습을 이어오지 못 했을거란 생각도 듭니다. 탁구채 냅다 집어던지고 집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은선선생님, 은영선생님, 우리 성현동 주민들 모두가 탁구채를 던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거 집어 들고 사회사업과 탁구 재밌게 쳤습니다.
마지막으로 내 사랑, 은영 선생님
은영선생님은 저와 첫날부터 카페 가서 단둘이 커피 마시고 얘기했습니다. 정말 신기한게 은영선생님은 커피를 잘 못 마시면서 점심 식후 커피를 마십니다. 한 두모금 입을 축이시며 저의 안부를 늘 물었습니다. 제 이번년도 목표가 다정한 사람이고 싶었는데, 은영 선생님의 다정함을 이기지 못한 것인지 은영선생님보다 제가 더 다정했던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너무 아쉽고 실습 끝나고 너무 보고 싶을거 같습니다.
사회복지과 와서 여러 기관을 다니며 활동했지만, 이토록 사람 냄새 나는 곳은 없었습니다. 사람을 돕고 싶고 잘 되길 응원하고 싶었던 사람으로 사회복지과에 들어와 활동하는데, 늘 기관에서 활동하며 느낀 것은 마음만으로 되는게 아니구나. 하며 인류애를 잃어가고 그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기술 습득에만 몰두했습니다. 정작 가장 중요한건 그 마음을 지켜나가는 것인데 왜 이런 마음을 지키지 못하게 만드는 건가? 못 지키는 내가 잘못된거고 자격이 없는걸까? 자주 생각했습니다. 강감찬 복지관을 보면 현장에 나오고 싶습니다. 그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 근본을 중요시 여기는 실천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목도 탁구, 칠 마음만 있으면 됍니다. 라고 정한 이유도 있습니다.
또한 강감찬 복지관은 책 좋아하고 공부 좋아하는 제게는 재밌는 보물 상자 꾸러미를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이 직업으로 평생 많은 공부하고 실천하면 참 의미 있는 삶이겠다 싶습니다. 그 표본들이 제 앞에 사람적으로 정말 멋있게 있어 주셨고 주변 옆에도 있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길었던 수료사가 너무나 짧게 느껴질 만큼 감사한게 많은데 담아내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그저 개개인에게 감사 인사를 드릴 기회가 또 있길 바랄 뿐입니다. 아쉽게 수료사 마무리합니다. 지금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