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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수필100년
사파이어문고11 (정연원 수필집)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979-11-92613-63-5 / 272쪽 / 150*220 / 2023-08-05 / 15,000원
■ 책 소개 (유튜브 영상 바로보기)
“팔순에 책을 냅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새천년을 맞이하는 설렘에서 나는 화마로 아내와 시력을 잃었습니다. 보잘것없는 이 책은 23년째 걸어온 사람냄새 나는 도움의 이야기들입니다. … ” (머리말 중에서)
청담淸潭 정연원鄭然源 수필가의 첫 수필집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한국수필 100년 사파이어 문고 11번째 책으로 선정된 이 책은 5부로 나누어 실은 48편의 이야기마다 크고 우람한 나무가 선사하는 깊은 그늘 같은 진한 감동이 넘실거린다.
함양군 안의면 시골 마을에서 피아노로 음악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하여 작곡가로, 교사로, 교육행정가로 수필가로 오늘날까지 긴 인생길을 걸어온 작가는 그간 자신이 삶으로부터 받은 무한한 사랑의 기록을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라는 악보에 그리움과 감사의 선율로 옮겨 담았다.
■ 저자 소개
정연원(淸潭 鄭然源)
-경남 함양 안의 출생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경복중학교, 경북예술고등학교 교사
-신일전문대학(학생, 교무, 학장직무대리)
-2000.10.22. 사고로 1급 시각장애인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장 역임
-2017년 계간 《문장》 겨울호 수필 등단
-제7회 매일 시니어 문학상 수필 부문 수상
-전국 장애인수필공모전 등 다수 수상
-대구문인협회, 문장작가회, 문장인문학회, 화요수필문학회 회원
■ 목차
책머리에
1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움막집 / 산 수업 / 비질 / 예가 아니여! / 아버지는 길이었다 / 에피슈라의 삶 /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 동계 할아버지
2 영혼의 동반자
전우야 잘 자라 / 늦게 쓰는 답장 / 희망이 / 영혼의 동반자 / 애창곡 / 해바라기꽃 / 할짝 / 21주기를 지나며
3 가지 치는 나무
폭포수 독서 / 힘을 빼세요 / 아쉽지만 / 나는 걷는다 / 봄날은 간다 / 다이아몬드의 밤 / 청수의 무대 / 오토와 폭포 / 탄금대 / 백두산 천지 / 가지 치는 나무
4 꿀밤나무 숲에서
광명천 작은 주인 / 삼중주단 / 오월의 하모니 / 요정들의 변주곡 / 거리 두기 / 안경을 닦는다 / 안마를 받으며 / 꿀밤나무 / 여울의 물소리 / 꿀밤나무 숲에서
5 곶감
귀명창 / 곶감 / 귀밝이술 / 들돌 / 몸이 하는 말 / 반백 년 만의 만남 / 사진 두 장 / 사람 인 다섯 자 / 쓰레기를 버리면서 / 웃프클럽 /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발문│맛난 만남이 펼치는 오케스트라_장호병
■ 출판사 서평
삶의 도중 시력을 잃는 크나큰 시련을 겪고도 “내 삶은 특별한 행운의 연속”이었다고, “나의 전성기는 내일”이라고 자신만만한 노년의 작가가 돌아본 삶의 길에는 “포근하고 달콤한” 나무 그늘로 표현되는 크고 온전한 사랑이 그득했다. 1부에서는 일제의 압제를 피해 산속으로 화전을 하러 갈 정도로 충정과 기개가 넘쳤던 할아버지께 배운 인·의·예·지와 적선여경積善餘慶의 정신, 6·25동란과 새마을 운동까지 가문과 농촌을 지키고 자존심을 지킨 영욕의 일생을 꿋꿋이 걸어간 선비였던 아버지가 보여주신 삶의 이정표, 우주 같은 사랑으로 애지중지愛之重之를 뿌리 내리게 한 자랑스러운 어머니, 예禮를 알고 고고하고 단아한 기품을 지녔던 할머니의 생생한 면면 등 그들께 물려받은 의義, 도리, 값진 유산과 책무의 교훈을 감동적인 수필 작품으로 형상화하였다.
“아버지는 내 음악의 모태다. … 나에게는 농부인 초라한 모습의 아버지와 부끄러웠던 쌀자루가 남아 있다. 초라한 모습은 부끄러움이 없는 예禮로 변했고 쌀은 마음의 양식인 악樂이 되었다. 쌀은 굶주린 사람의 배를 불리고 악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채워 넉넉하게 한다. 그 악樂은 아픈 마음을 낫게 하고 모난 마음을 부드럽고 둥글게 만든다. 힘들고 마음이 괴로울 때면 나를 바꿨던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과 무거운 쌀자루가 떠올랐다.”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중에서)
“… 그때다. 오른손의 감각이 달라졌다. 그렇게 소원하던 어머니의 새우등이 서서히 펴지고 있었다. 정말! 소원처럼 어머니는 이생을 떠나면서 온전한 모습을 갖추었다.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감격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얼굴 주름마다 내게 친숙한 미소를 남기셨다. 고종명考終命이었다. 해조음같이 고르고 규칙적이던 어머니의 베 짜던 소리와 사랑이 거대한 해일로 나를 덮쳐왔다. 내 어머니의 삶은 에피슈라였다.” (「에피슈라의 삶」 중에서)
““신발 벗어놓은 모양을 보면 그 사람의 정신머리를 알 수 있는 법이여.” “신발이 헝클어지면 마음도 어지러워지는 법이여.” “신발을 밟으면 그 사람을 밟는 법이여.” “신발에 대한 예禮가 아니여!” ‘바른 모양은 바른 행동을 하게 된다’는 할머니의 특별한 손주 사랑이었다.” (「예가 아니여!」 중에서)
“노래는 대화이고 열정이며 공감이다. 그리고 위로와 희망이다. 음악은 철학이나 세계관도 아니다. 세상이 부르는 스스로의 찬가이며 삶에 대한 선율로 된 증언인 셈이다.” (「전우야 잘 자라」)
작가는 2부에서 6·25전쟁 전장에서 편지를 보내온 큰형님, 끝내 전사한 큰형님의 목숨값으로 산 소 희망이,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어머니 등 그립고 아픈 혈육과 그들의 애틋한 사연을 음악에 실어 이야기한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 4악장’, ‘차이콥스키 Violin Concerto D Major’, ‘과수원길’ ‘오빠 생각’, ‘베토벤 교향곡 6번 1악장’ 등 떠나간 사람을 추억하게 하고 상실의 고통을 위로하는 음악과 글이 아름답게 버무려졌다. “삶이 곧 음악, 또한 생활의 안식처이며 영혼의 동반자Soulmate”임을 아는 전문음악인 작가의 남다른 그리움과 설렘이 있는 인생살이가 아름답게 그려졌다.
“손주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기분이 좋은 날인 것 같다. 그런데 나에게는 새신랑 때 부른 ‘까로 미오 벤’의 가락이 비집고 나온다. 편도선 수술로 특이한 아내의 불안한 음정이 모처럼 섞여든다. 오늘은 더듬거리면서 끝까지 따라오고 있다. 손주들의 노래와 나와 아내의 노래가 여울목에서 만나 함께 흘러간다. 오, 내 사랑 오, 내 기쁨~.” (「애창곡」 중에서)
“화마가 집을 휩쓸고 나는 아내를 잃고 시력을 잃었다. … 새로 주어진 내 삶은 캄캄하였다. 나를 지배하고 있는 혼돈과 고통은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작가는 처절한 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독서, 수행, 걷기, 여행, 치료 등 있는 힘을 다해 삶에 전력투구하였다. 그때의 기록을 소재로 그린 3부의 작품들에서는 “낯선 어둠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을 때, 흩어진 나를 하나둘 모아 이 물처럼 푸르고 검게 만들어준 것은 주위의 애정 어린 보살핌과 폭포와 같은 독서였다. 머지않아 나는 번쩍이는 비늘과 굳센 날개를 달고 내리꽂히는 폭포를 거슬러 위로 날아오르리라. (「폭포수 독서」)”와 같은 수정처럼 빛나는 용기의 문장으로 삶을 무한히 긍정하는 시시포스 같은 불굴의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침묵을 통해 지금까지 만나본 적이 없는 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보게 되는 인연이었다. 처음으로 온전히 나와 마주하며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누구의 참견이나 영향도 받지 않는 꾸밈없는 나밖에 없었다.” (「힘을 빼세요」)
“땀범벅에 넘어지고 미끄러졌다. 며칠 지나자 옷은 찢기고 온몸은 타박상으로 멍투성이다. 푸르스름한 멍이 산 빛에 물이 든 것 같다. 아프기보다 내가 만든 삶의 흔적이니 탓할 수도 없었다.” (「나는 걷는다」)
“무심코 지나쳤던 낙화를 바라본다. 꽃잎은 이승을 떠나는 마지막 길을 가고 있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내게 꽃잎이 날아와 무릎에 앉는다. 순간 내 안에 쌓아온 ‘그러면 안 돼.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쌓인 관념과 체면의 둑이 무너졌다.” (「봄날은 간다」)
“…불타버린 그루터기의 악몽들,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몸과 마음, 차별의 아픔도 견디기 힘들지만 내 자신의 편이 더 힘들었던 일들,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이 금강소나무 숲의 운기로 밀려나고 있었다.” (「가지 치는 나무」)
한때 고향인 기백산 “광명천의 작은 주인으로 불리면서 약수처럼 살겠다고 다짐”하였지만, “아버지의 자리이타自利利他와 상선약수上善藥水 같은 삶에는 미치지 못했다.”라고 한탄하는 작가는 “음악은 광명천이 내 안에 흐르고 있는 물소리의 화현이며 광명천 마음”이라고 음악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삶의 온갖 희로애락을 음악에 빗대 이야기하는 작가의 작품은 예술적 향기 높은 음악 수필이라고 할만하다. 누군가의 연주라는 도움 없이는 혼자서 소리를 낼 수 없는 장애인이 된 작가가 피아노 삼중주, 합창, 변주곡이 의미하는 자식 며느리 손주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하모니의 힘으로 절망을 넘어 자기 삶의 지휘자로 우뚝 서게 되는 삶의 과정을 수굿하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딸과 사위가 처음 나를 살려내는 듀엣duet을 맡았다. 주치의가 된 사위와 간호사, 간병인을 맡은 딸의 연주는 체계적이고 섬세했다. 나는 형체를 구분할 정도의 시력을 회복하고 유치원 들어갈 정도의 체력으로 생기를 얻었다. 시각장애인 시아버지를 모시겠다는 며느리가 나타날 때까지 4년 반이었다. 큰며느리의 연주는 지극한 정성이다. 작은며느리를 맞았다. 나를 보살필 수 있는 자식들이 모두 가정을 이루어 딸과 며느리 세 사람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보살핌은 3중주三重奏, trio 형태였다. 그리고 나는 닮은 점이 많은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대공大公 Archduke(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Piano trio(No. 7 B♭ op. 97 Archduke)이 되었다. 대공은 난청의 장애로 불안과 괴팍한 베토벤을 끝까지 후원한 오스트리아 황제의 막냇동생인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된 곡이다.”
(「삼중주단」 중에서)
“우리의 인생도 변주곡과 같다고 하겠다. 변주곡은 리듬과 박자 조성이 변하면서 확장하는 음악 형식이다. 일상생활도 변주곡처럼 다양하게 변화되면서 나의 요정들은 스스로 상호 존중과 질서 의식을 익히며 품격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또한, 사고의 틀이 자라면서 사랑의 영역도 넓어지리라.” (「요정들의 변주곡」 중에서)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의 표지 그림은 삼중주단의 일원인 효성스러운 큰며느리가, 각 부에 제목에 걸맞은 그림은 작가의 사랑스러운 요정인 다섯 손녀가 그려서 책을 환히 빛내고 있다.
한때 “누군가에 의해 껍질이 벗기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알몸으로 내걸린 둥시가 되었다. 하늘을 원망했다. 수많은 탓과 하소연들은 메아리가 없다. 보이지도 않는 햇빛과 별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숱한 한숨과 울분을 토”(「곶감」)했던 삶은 이제 “자신을 건사하고 이웃과 사회에 봉사하면서 잘 마른 곶감이 되고 싶다.”라는 소망으로 환골탈태하였다. “내 계산법은 ‘세상에 고맙지 않은 일은 없다.”라며 고난의 삶에서 체득한 사랑의 주법으로 연주하는 원숙한 삶의 이야기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이다.
“오랜 방황 끝에 여울물에서 소리의 향연을 맛본다. 노을을 맞으며 교교한 달빛이 중천을 넘어 기울고 풀벌레 소리가 끊기면서 물소리가 달라졌다. 느리게 분리된 소리가 하나씩 들어와 전체에 어울리는 기이한 현상이다. 바람이 산산이 부서지고 달빛이 몸속을 비추며 샅샅이 씻어낸다. 익숙한 시끄러운 여울 물소리가 아니다. 조약돌마다 희로애락의 사연을 가득 담고 있는 것이다. 우아일체宇我一體, 무아無我의 세계다. 나는 비로소 여울의 물소리와 하나가 되었다.” (「여울의 물소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