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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이태억
펜션에 도착하니 벌써 마당에 차가 가득하다. 옥계계곡 입구의 넓은 터에 자리 잡은 2층 3개 동에 숙소를 잡고, 1989년 구미전자공고 정보과 졸업생들이 1박 2일로 선생님을 초대하여 스승의 날 기념 및 동기회를 가진다. 재작년, 작년, 올해 3년을 내리 이렇게 융성한 대접을 하고 있다.
마당에서는 미나리를 씻고, 바깥 솥에는 능이백숙이 끓고 있다. 개두릅이 잘 자라 지난주에 미리 따두어 냉장고에 넣었다가 가져왔다며 동희 군의 처가 다듬고 있다. 때가 지나면 너무 자라 억세져서 시간 싸움을 했단다. 참 보기 좋은 제자 부부다. 동희 군의 처는 3년 내리 모임의 안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동기 모임에 항상 동반하니 잉꼬부부상을 주어야겠다. 방안에서는 인호 군의 처가 미나리전에 배추 동이 전을 구우며, 상차림 준비를 하고 있다.
일찍 도착하였더니 인호 군과 동희가 선생님을 모시고 계곡경치 구경을 가시자며 이끈다. 준비가 바쁜 성길 군과 ⭘⭘ 군은 인사를 마치고는 돌아서 하던 일을 계속한다. 언제나 이지만 참 보기 좋다. 각자 맡은 일을 성실히 하는 모습에서 사회생활에서나 직장생활에서나 그 존재감을 인정받고 있을 것이라 느껴진다. 그러니 이제 떳떳한 모습으로 동기들 모임에 어깨를 으쓱하며 참가하는 것 아니겠나. 고마운 마음을 가슴에 담고 손 교장 선생님과 제자들과 함께 계곡으로 들어섰다.
깊은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새소리가 반겨준다. 절벽 아래로는 맑디맑은 계곡물이 투명함을 자랑하며 흐른다. 가마득한 높이의 출렁다리가 반긴다. 아래로 내려보니 옥계계곡의 넓적 바위 사이로 갈색과 4월의 색인 연한 초록의 물이 어울려 소리 내며 다투어 내려간다.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을 길을 바쁘게도 간다. 우리의 인생도 이러하다. 그럼에도 불구 스쳐 지나간 인연도 놓치지 않고 되살려 주는 아이들이 고맙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는 옛말을 떠올리며 요즈음의 세태에 이런 제자를 둔 기쁨과 보람을 만끽한다.
출렁다리 위에 서니 만감이 교차한다. 흔들리는 세상을 꿋꿋이 견디어 온 나나, 홀로서기 한 제자들의 삶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중심을 잡으며 안간힘을 쓰면서 버티고 있는 지금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기숙사에서 온갖 애환과 어려움을 견디어 내었고, 거친 세상에 나가 거의 혈혈단신으로 삶을 개척해 왔을 구미전자공고의 제자들도 이와 같았으리라. 어린 고교 시절의 고생을 가슴에 품고 서로 의지하며 도우며 우정을 키워 온 제자들이 그 어느 학교의 제자들보다도 정이 간다.
다리를 건너니 숲이다. 이름 모를 나무에서 꿀보다 더 단 향기가 날아온다. 작지만 여리고 하얀 꽃에서 진한 향이 난다. 우리 제자들도 이렇게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맑은 향을 내고 있을 것이다.
서로의 건강에 대해 여쭈어본다. 4명 중 셋이 암을 앓고 있다. 나는 위암, 동희 군은 간암, 인호 군은 대장암. 연세가 가장 많으신 손 교장 선생님만 건강관리를 잘하신 덕에 무병이다. 거친 세상을 헤치며 얻은 병이 훈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인호 군은 서울 사이버수사대에서 휴대폰 등 포렌식을 하는 업무를 하고 있단다. 업무의 과함으로 인해 병을 얻었을 것이고, 여린 성격에 참다 견디다 몸을 상했을 것이다. 다행히 일 년의 휴가를 받았다 한다. 제주도에서 두 달 살이 하고, 오늘 일부러 일정을 앞당겨 스승을 뵙기 위해 집사람과 함께 참석했다 한다. 그 정성을 어찌 잊을까. 서로 격려하며 건강을 빌었다.
숙소로 내려오니 차가 넘친다. 그 사이 동기생들이 많이도 모였다. 준비한 음식들을 상에 차린다. 자리가 부족하였지만 모두 한자리에 앉자며 다닥다닥 어깨를 비벼가며 앉았다.
담임이 있으니 10반 반장부터 인사말 하라며 태진 군을 세운다. 삼성전자의 혁신팀에서 일하는 재원이다. 취업 나가는 자신에게 선생님께서 “어디에 가든 2등을 하라. 이 말을 삶의 모토로 삼아라. 회사의 첫째는 돈 많은 사장이다. 너는 2등의 자세로 기술로 회사의 일인자가 되어라.”라고 가르침을 주셨다고 회고한다. 그 말을 가슴에 새겨 언제나 ‘삼성전자의 주인은 나다.’라는 자세로 임하였더니, 회사에서 공고생이면서 가장 어린 나이로 팀장도 되고 부장도 되었으며 34년을 그 어려운 삼성전자에 뿌리를 박고 있다 한다. 왈칵 목이 멘다. 고생했을 태진 군의 그 험한 시간이 눈에 선하다. 구미전자공고 졸업생으로 세계 제일의 삼성전자를 이끌어 가는 제자가 자랑스럽다.
학창 시절 힘듦으로 익힌 기숙사 생활이 몸에 배어서인지, 군대 생활이 이래도 되는가 하는 생각도 했다며 9반 실장▢▢ 군의 인사말도 고맙다. 기숙사에서 매일 밤 점호를 받으며 지낸 그 시간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어린 나이에 부모님 품을 떠나 빤스 바람으로 운동장을 돌며 구호를 외치는 설움은 또 얼마나 컸을까. 좀 더 다독여 주지 못했던 마음이 아프다.
나도 한마디 했다. “퇴직 후 8년을 일없이 보내었다. 일 없는 게 병이 되어 우울증도 생겼고, 삶의 의욕도 없어졌었다. 이제 삶의 목표가 생겼다.” 모두 눈이 동그랗다.
“내년에도 나는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너희들을 보러 올 것이다. 이게 나의 삶의 목표다.” 박수가 요란하다. 고마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20여 명이 기다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앉았다. 12제자와 만찬을 하신 예수님에게 보여드리고 싶다. 우리 제자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배추 동이전과 함께 미나리전이 들어온다. 좋아하는 개두릅이 알맞게 익혀져서 한 접시 올라왔고, 잘 삶겨진 미나리도 돌돌 말려서 파랗게 한 자리 차지한다. 능이 버섯을 넣고 끓인 닭고기는 잘게 찢어져 널따란 네모난 트레이에 담겨 탁자에 자리 잡는다. 그 곁에는 영덕의 자랑 도다리 광어회가 또 하얗게 포 떠져 얹히고, 오늘의 하이라이트! 밑 뚫린 커다란 장독에다 넣고 구운, 꼬챙이에 꿰인 돼지고기가 영롱한 색을 띠며 올라온다. 난생처음 본 요리다.
산해진미다. 육해공군 총집합했다. 조선시대 아니 5천년 역사의 어떤 임금도 이보다 풍성한 상을 받아 보지 못했으리라. 거기다 제자들의 정성과 스승의 사랑이 듬뿍 비벼져 있으니, 이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 어디 있으랴. 따라주는 술 한잔을 어찌 마다할 수 있겠나. 비록 암으로 진단받은 위이지만 오늘은 용서가 되리다.
남자들은 군대 얘기가 처음이자 끝이라 하지만, 여기 구미전자공고 졸업생은 이태억 선생님에게 맞은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선생님이라며 끝낸다고 했다. 즐겁고 기쁘다.
제자들의 삶의 이야기 또한 드라마틱하다. 취업을 나가 적응하지 못해 도망 나온 병호와 찬동이의 이야기에서 취업이라는 멍에에 씌워진 슬픈 역사를 본다. 찬동이가 취업 담당 선생님에게 허벌라게 뚜드려 맞았고, 병호는 빨리 오라는 독촉을 받았단다. 병호는 담임인 나에게 흠뻑 두들겨 맞는 꿈을 꾸면서 학교에 왔다나. 죄지은 모습으로 죽을상으로 찾아온 병호를 “고생 많았제, 가서 쉬어라.”라는 말씀을 듣고 고마워서 담임을 새로이 봤다 한다.
전자공고를 나왔음에도 불구 자신의 길을 엉뚱한 곳에서 찾은 제자들도 많았다. 큐브리펀드(Cube Refund)회사 오승현 부문장 군의 스토리도 한편의 서사시다. 전공인 전자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인문계열의 일을 하고 있단다. 회사의 경영 인사 총무계통에서 일하면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내는 세금이라든지 법인세 등의 사안에 대해 자문 등을 하며 연간 매출을 100억 올린다한다. 전혀 뜻밖이다.
또 바다로 나가 고기 잡으며 새로운 길을 가는 친구도 있단다. 영화에 빠져 스폰스를 찾아다니는 기획을 맡은 애도 있단다. 참 다양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 그 분야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맡아 하고 있단다. 자랑스러운 제자들이다. 어디에 있던 학교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단다.
나도 결코 빠뜨릴 수 없는 구미전자공고 5년 이야기로 자리에 불려 온 값을 했다.
어느 휴일 오후 어둑어둑한 불 꺼진 교실에 움직이는 물체가 보였다. 숙직 근무를 하며 순찰하는 중에 무엇인가 수상한 낌새를 느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학생이 몸을 숨긴다. “무슨 일이냐?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다그쳤다.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숨을 일이 아니지 않는가.
“우리 학교는 전자 사업을 하는 공장에서 일할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대학으로 진학하고 싶습니다. 취업을 포기하였기에 숨어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라고 한다. 숨어서 공부하다니… 안쓰럽다.
여기에 또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움직이는 생명체가 있었다.
진학을 위해 준비하는 10여 명의 학생을 위해 방과 후 짬짬이 특별 수업을 해주었다. 많이 지도하지는 못했지만, 그 아이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는 안도감을 심어주었다. 그중 한 명이 KAIST에 공업계 특별전형으로 합격했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줄 수 있었다.
학교 도서관 건물이 완공되었다. 경북대학교에 사서교사 연수를 신청했다. 사서교사 자격증 취득 후 도서관장을 겸임했다. 국어, 영어, 물리 선생님들과 함께 하자며 도움을 청하였다. 기꺼이 응해 주셨다. 고마우신 선배님들이시다.
1986년 11월. 대학 진학을 위한 특별반을 만들었다. 2학년 15여 명 정도였다. 다음 해 10월 초, 시험 치는 전전날까지 1년 시간을 학생들과 함께했다. 방학에는 도서관을 개방, 2층 열람실 책상들을 붙여 놓고 그 위에 모기장을 설치하여 잠을 자도록 했다. 도서관 소장용 책 구매 시 참고서도 함께 포함하여, 진학 공부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해주었다.
학생들도 마치 울분을 토하듯 죽기 살기로 열심히 공부했다. 12시에 도서관 문을 밖에서 잠그고 퇴근한다. 진학반 학생들은 도서관 안에서 잠을 잔다.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 앉은 자리에서 머리를 뒤로 제치고 자는 아이도 있었다. 목이 아파 눈을 뜨고, 다시 공부한다. 1987년 석배 군 외 8명이 KAIST에 합격하였다.
시험이 끝나는 즉시 3학년은 물러가고, 2학년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이 이어 도서관으로 들어와 꼭 일 년을 공부하고, 시험을 치르고는 물러났다. 이렇게 진학반은 4년을 이어왔다. 1988년 현석 군 외 10명, 1989년 기범 군 외 10명. 4년간 32명이 KAIST로 진학하였다.
지금 모인 동기생 재구 군은 악대부 활동하며 진학반에 들어와 함께 공부했다. 억울하게 맞았다는 얘기를 노래 부르듯 한다. 구미시 행사에 불려 가는 악대부에 없어서 안 되는 재구 군을 음악 선생님이 진학반에 가서 불러오라고 2학년 악대부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보내줄 리가 없다. 음악 선생님께서 직접 올라오셔서 데려가신다. “재구 이리 와.”한 대 건사하게 맞았단다. 재구 왈 “나는 불려 간 죄 밖에 없었는데 …” 억울했단다. 선생님에게 처음 맞았다나.
구미전자공고에서 무섭기로 유명했지만 나에게 억울하게 맞은 아이들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내가 무섭다는 것을 말로 전했을 뿐이다. 구미전자공고에 오기 전 봉화고등학교에서의 일이다. 군 제대 후 첫 발령 받았던 학교다. 28살.
수업 시간인데 제일 뒷자리에 앉은 소위 주먹으로 까분다는 놈의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앞으로 나와!” 불렀다. 오는 놈을 오른 주먹으로 한 방 가슴을 쳤다.
“털썩!” 그 자리에서 까무러친다. “실장, 바케스에 물 떠와” 하고는 그냥 두었다. 쳐다보지도 않았다. 교실이 쥐 죽은 듯하다. 얼굴에 물을 끼얹자 정신을 차린다. “일어나!” “괜찮지?” “들어가!”
“그 뒤로 봉화고에서 ‘무서운 선생님이라고, 작은 호랑이’라고 불린다.”라고 했을 뿐이다. "단, 수업 중에 수학 문제를 못 풀면 가느다란 회초리로 종아리를 한두 대 두드렸지"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선생님은 그 이름만으로도 무서웠습니다." 한다. ㅎㅎ
3학년 담임 배정 이야기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3월 첫 합동 조례. 전교생이 강당에 모였다. 저희끼리들 이야기인즉 슨, “9반 너거는 이제 죽었다.” 10반 아이들이 9반 아이들을 보며 놀렸단다. 왜냐면 이태억 선생님은 몇 년간 9반 담임만 했었다며.
1반 이⭘⭘선생님, 2반 김⭘⭘ 선생님, … 9반이 다가왔다. 적막이 흐른다.
“9반 강태화 선생님” 갑자기 강당이 “와!”하며 함성이 터졌다. “10반 이태억 선생님”
“아 C” 던지고 난리가 났다. 9반 아이들이 10반 아이들을 놀리며 소리치고, 10반 아이들은 거의 초주검 상태가 되었단다. 나에 대한 제자들의 얘기가 끝이 없다. 그저 허허 웃어 줄 뿐이다.
그 외 많은 제자의 얼굴도 보고, 얘기를 들으며 하하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쏜살같이 시간이 지나갔다. 1박 2일은 동기들끼리 선생님을 욕하며 보내야 한다.
자세한 제자들의 얘기를 밤새워 들어주지 못하는 것을 용서해 달라며 내년을 기약했다. 내년에는 사모님을 꼭 모시고 오셔서 하룻밤을 주무시라고 당부한다.
더 있고 싶었지만 “낄낄빠빠”가 중요함을 나이가 들면서 배웠다. 끼일 수 있을 자리는 언제나 끼이고, 빠질 곳에서는 과감하게 빠져야 한다.
제자들의 “이태억! 이태억!” 연호 소리를 들으며, 억지로 손을 흔들며 자리를 비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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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편의 드라마 같은 교직 생활입니다. 충분히 존경 받고 기억에 남을 선생님이 십니다. 훌륭한 작가가 되시어 못다한 이야기들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선생님 힘들었던 그 시절을 기억해 주는 제자들이 있다는것만도 멋진 선생님이십니다. 재밌는 스토리 잘읽었습니다
회사생활에서 1등과 2등을 말씀해 주셨는데요~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