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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번째 금강경 17-3
何以故오 如來者는 卽諸法如義니
若有人이 言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하나
須菩提야 實無有法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須菩提야 如來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於是中에 無實無虛니
是故로 如來說- 一切法이 皆是佛法이라하니라
須菩提야 所言一切法者는
卽非一切法일새 是故로 名一切法이니라
須菩提야 譬如人身長大니라
須菩提- 言하사대 世尊이시여
如來說人身長大는 卽爲非大身일새 是名大身이니이다
須菩提야 菩薩도 亦如是하야
若作是言호대 我當滅度無量衆生이라하면
卽不名菩薩이니 何以故오
須菩提야 實無有法일새 名爲菩薩이니
是故로 佛說一切法이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라하나니라
須菩提야 若菩薩이 作是言호대
我當莊嚴佛土라하면 是不名菩薩이니 何以故오
如來說莊嚴佛土者는 卽非莊嚴일새 是名莊嚴이니라
須菩提야 若菩薩이
通達無我法者는 如來說名眞是菩薩이니라
* 단어공부
·實無有法 - 본체는 실무유법
구마라집: 실무유법(實無有法)
현장: 무유소법(無有小法)
일반적으로 법(法)은 일체의 현상을 의미합니다. 色法, 心法
·無實無虛 - 유도 아니요 무도 아닌 그것 無諦無妄
·無我法
세상 무엇도 정해진 것은 없다.
‘나’라는 실체가 따로 없다.
내 것이라고 정해진 것이 없다.
아상(我相)이 존재하지 않음
我空 法空
·莊嚴 ~ "아름답게 꾸민다"는 것ㅡ
장엄은 그 겉모습을 치장하여 눈을 현혹 하는 것이 아니다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의 업장을 걷어내고
본래 모습인 청정성을 회복 하는 것으로
우리는 그대로 빛나는 부처의 나라에 서게되고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장엄 불사의 사명이다
·대신 - 변하는 줄 알면서 크다라고 한 것 예) 은현을 알고 크다고 한 것
고정 관념이 없이 크다라고 한 것 예) 중생들은 자기 기준이 있다.
내것이다 남의 것이다는 분별이 없이 크다는 것 예) 절대 평가
2024년 4월 12일
경계 : 말다툼과 이사
12일 금요일 아침에 1팀장과 2팀장 이 말다툼을 한다. 이유는 물 때문이다. 출근 시간에 다들 커피를 마신다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1팀장이 2팀장에게 정수기에 가면 따뜻한 물이 있는데 ‘언니는 정수기 물을 떠다마시지’라고 말하니까 2팀장이 끓는 물에 커피 타 마시려고 하는데 왜 잔소리하느냐고 하면서 큰소리가 나고 사무실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보다 못한 지점장이 옆자리에서 시끄럽게 한다고 자리를 옮기라고 한다. 우리팀장이 나에게 제안을 한다. 지점장에게 언니가 싫다고 안 가겠다고 말해보라고 한다.
우리팀은 항상 1등하는 팀인데 못하는 팀이 옮겨야지 하면서, 팀장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 이미 지점장이 결정한 일을 내가 우기면 입장이 곤란할 거 같아서 옮기기 싫지만, 답을 안 하고 병원에 예약이 돼 있어서 그냥 퇴근했다.
이사를 하려면 일이 많다. 짐도 옮겨야 하고 서류정리도 해야 하고 손목이 안 좋아서 무거운 짐도 들기 힘든데 속이 상한다. 병원에 치료 후 팀장이 전화가 와서 책상을 옮긴다고 큰 것은 옮겨놓는다고 시간 되면 와서 정리하라고 한다.
토요일에는 친구 남편 사십구재 참석한다고 물금교당에 다녀오느라 늦어서 못 가고, 일요일은 경산 상사님 뵈러 가서 못 가고 월요일 출근해보니 자리가 옮겨져 있었다. 아직도 팀장들은 화해는 안 하고 말도 안 하고 지내는 거 같다.
이틀 동안 정리를 했다. 막상 옮겨놓고 보니 좋은 거 같다. 교육시간에도 집중이 잘되고 서류정리를 하고 나니까 마음도 홀가분하고 난 좋은데, 아직도 팀장들은 서로 말을 안 하고 각자 일만 한다.
옛날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길 기원해 본다.
교무의 의견
우리는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체험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생각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저장이 되며 그 저장된 것들이 하나의 기준을 만듭니다. 자기가 만든 기준에 못 미치면 잘못했다고 하고 기준에 맞으면 좋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욕심이 있습니다. 남들보다 자기가 더 낫고 싶고 더 드러나고 싶고 더 가지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서로의 욕심이 부딪히게 되면 갈등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유정물(有情物)은 배우지 아니하되 근본적으로 알아지는 것과 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는데, 최령한 사람은 보고 듣고 배우고 하여 아는 것과 하고자 하는 것이 다른 동물의 몇 배 이상이 되므로 그 아는 것과 하고자 하는 것을 취하자면 예의 염치와 공정한 법칙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자기에게 있는 권리와 기능과 무력을 다하여 욕심만 채우려 하다가 결국은 가패 신망도 하며, 번민 망상과 분심 초려로 자포 자기의 염세증도 나며, 혹은 신경 쇠약자도 되며, 혹은 실진자도 되며, 혹은 극도에 들어가 자살하는 사람까지도 있게 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1팀장과 2팀장이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하고자 하는 것이 다르지요, 그 다름이 갈등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평소에도 실적으로 앞서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경쟁심도 있었을 것인데, 물을 끓이지 말고 정수기의 더운물을 사용하라는 말에 감정이 상한 것 같습니다. 나의 일에 간섭하는 것이 싫고 특히나 경쟁 관계에 있으니 큰소리를 낸 것 같습니다. 이 상황을 보고 나의 일어나는 마음은 무엇이었나요? 이 싸움에 말려들지 말자 별일도 아닌데 끼어들면 이익될 것이 없다.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일어나셨나요?
우리가 가고자 하는 낙원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경계를 피하여 자성 자리로 가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심신작용을 잘하여 변화를 일으켜서 좀 더 낫게 하는 것입니다. 두 팀장이 싸울 때 자성 반조를 할 것인가 목적 반조를 하여야 할 것인가 생각을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자기가 힘이 없을 때는 피경이 좋습니다. 괜히 끼어들어 싸움을 말리지도 못하고 거기에 엮여 나에게도 괴로움이 온다면 피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함께하는 동료들이 갈등으로 괴로워하면 양쪽의 의견을 들어 조정하고 평화가 오게 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습니다.
대종사님께서 솔성요론에 ‘다른 사람의 원 없는 데에는 무슨 일이든지 권하지 말고 자기 할 일만 할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물을 끓여 차를 마시려는 사람에게 정수기 물을 사용하라니 간섭이 되고 싫은 마음이 들었겠지요. 사람들에게 피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면 충고한다거나 잘되라고 권하는 것이라고 간섭하는 것은 조심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남에게 말을 할 때는 강요하거나 명령하거나 단정적인 말보다 부드럽게 상의하는 말투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원기 109년 4월 22일
경계 : 그림 판매
원불교 미술품 전시를 준비하며 무얼 그릴까. 어떻게 그릴까. 많은 시간을 생각하며 소재를 선택하며 나름 정성을 들여 봄을 담아 그렸다. 작품을 전시장에 걸고 보니 그런대로 괜찮다고 평해주신다. 이 그림을 바라보면 마음이 정화가 되는 것 같다고 하며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문화원에서 그림동우회원들과 전시회를 할 때와는 다소 다른 분위기 속에서 원불교 미술 전시회를 마치고 봄의 그림을 잘 싸서 집에 모셔왔다. 월요일 오전에 성혼회장님께서 전화로 ‘나의 그림을 사고 싶은 분이 있는데 우짤까?’하신다. 그림을 그리기만 했지 팔아 본 적이 없는데 막상 팔자고 하시니 부끄럽고 어색하여 ‘회장님께서 알아서 하세요’하였더니 오십만원에 흥정을 하시겠단다. 몇 번의 대화에 십만원을 깎아 주면서 그림을 팔자는 회장님의 말씀. 내 생각엔 그린 그림을 쌓아놓고 있는 것보다 어느 곳에선가 빛을 보는 게 보람 있고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나의 전화 내용을 듣고 있던 서방님께서 ‘십만원 깎아 주려고’ 하면서 백만원 줄낀께 팔지 말란다. 아 - 백만원 보다 나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서방님이 넘 멋있다. 백만원 안주도 됩니다. 그림의 가치를 보아 주고 작가로 인정해 주는 서방님이 존경스럽다. 몇 해를 그림 그린다고 식사도 소홀히 챙겨주면서 싸돌아다니는 마누라를 화가로 인정해 주니 정말 감사하다. 나의 소품 일부까지도 인정해 주는 사람. 동반자가 나의 옆에 있다는 현실 매우 든든하다.
이제 이 동반자가 내 생각과 맞지 않는 일을 할 때도 나도 양보하며 맞추며 살아가는 거다. 동반자의 격려가 이렇게 힘이 되는데 서방님이 힘들 때 내가 알아주고 위로를 해 주면 좋을 것 아니겠는가!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좋은 경험도 얻고 또 다른 인연들과 상생의 연을 쌓아 기쁘다.
교무의 의견
이번에 부산울산교구 미술전시회에 출품을 하셨군요. 내가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 여러 사람에게 보여지게 되고 그림이 좋다는 평을 들을 때에 흐뭇하였지요? 그 보람으로 그림을 그리는 지도 모릅니다.
전시회가 끝나고 그림을 판매하자는 제안에 여러 가지 생각이 일어나셨네요. 집에 그냥 놓아두는 것보다 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 집에 걸려 빛을 보는 것이 더 나을성싶으셨지요. 그래서 팔려고 하는데 서방님께서 판매예정가인 40만원보다 두 배도 더 되는 백만원 준다고 하니 그림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뜻이지요. 동반자가 나의 가치를 알아주니 얼마나 보람이 있으셨나요. 남들이 다 알아주지 않아도 동반자가 알아주면 된다는 분도 있습니다.
주부인데 집안일을 덜 하고 그림 그리러 다닌다고 하면 서방님이 속으로 언짢아하면 어쩌나 그런 걱정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림을 인정해 주니 든든한 후원자요 고마운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나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고맙고 나의 일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무한한 은혜를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남편이 나를 믿어주고 격려해 주니 나도 그렇게 해야겠는 생각을 하시게 되었네요. 나의 마음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도 그런 경계에 일어날 생각이 예상되지요. 좋은 일기 감사드립니다.
원기 109년 4월 22일
경계: 사주
우리 식당에 오신 분이 갑자기 사주를 봐주신다고 하셔서 나도 모르게 ‘네 봐주세요’ 했는데 이름과 생년 월일을 알려 달라 하여 주었더니만 안 좋은 얘기만 한다. 몸이 많이 안 좋다. 돈도 안 모인다. 속에 화가 들어있는데 많이 참고 산다. 마음은 따뜻하나 남한테 많이 당하고 산다.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이용을 당하고 남자 복도 없어서 그러고 산다. 정말 너무 짜증이 나고 가슴이 답답해 왔다. 그래서 ‘다 틀리고만’이라고 말은 했지만, 마음 한구석엔 정말 그런가? 아~ 미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경계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며칠 동안 그 말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지난날들을 살아오면서 어찌 살았나 계속 생각하고 내 팔자에 대해서 생각에 생각이 이어졌다. 안 되겠다 싶어 떨쳐버리고 올바른 생각을 하려고 해도 며칠 동안 머리가 많이 아팠다.
그런데 갑자기 일상수행의 요법이 생각이 났다.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정을 세우자. 일상수행의 요법을 외우면서 마음에 안정을 찾기 시작하였다. 과거에 지은 것은 어쩔 수 없고 지금 현재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미래는 바뀌는 것이니까 지금 현재에 충실하고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마음을 평온하게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원불교에서는 사주팔자를 고친다고 한다. 하루하루 심신작용을 잘하여 선업을 지으면 복락이 온다는 말씀을 생각해 본다. 원불교를 만남에 참으로 감사하다. 앞으로 원불교 교법에 바탕해서 예쁘게 살아가야겠다.
교무의 의견
참 좋은 체험을 하신 것 같습니다.
사주는 영 틀리는 것은 아니지만 완전히 맞는 것도 아닙니다. 만일 사주를 믿는다면 아무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이미 사주에 결정이 되어있기 때문에 노력해도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사주에 삼재가 있다느니 어려움이 있는데 그 난관을 지내려면 어떻게 하라고 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렇게 한다고 해도 사주는 고쳐지지 않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모든 변화를 심신작용에 두고 있습니다. 인과의 이치에 따라 심신작용을 하면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비록 전생에 지은 업은 받게 되는 것이지만 그 업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와 현재 나의 심신작용에 따라 미래는 변하는 것입니다.
지난날 지었던 악업이 올 때는 감수하며, 옛 빚을 청산하였다 생각하고 후련한 마음으로 미래를 위하여 선업을 지어가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몰랐을 때는 나와 관계없이 신이 알아서 하다거나 무슨 방편을 써서 업을 해결하려 했으나 그것은 확실한 근거가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를 가르친다면 신이나 조상이 다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하여야 할까요? 아니면 사주팔자로 정해진다고 할까요? 그러면 인생이 피동적으로 되며 원망을 하여야 합니다. 신은 나에게 왜 이런 운명을 주느냐 하면서 원망하고 우리 조상은 왜 나를 안 돌보냐고 탓하며 살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노력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과의 이치는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될 뿐만 아니라 현실 생활을 변하게 하는 원리입니다.
경계를 당하면 생각이 일어납니다. 경계 따라 일어난 생각이 경계가 사라져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생각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착심이라 합니다. 주착심에 사로잡히면 새로운 경계에 일어난 생각과 머물고 있는 생각이 겹치게 됩니다. 그러면 새 경계에 맞는 생각을 못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번 일어난 생각은 저장이 됩니다. 의식과 무의식에 저장합니다. 의식에 저장되는 것을 기억이라고도 합니다. 저장된 생각들은 연을 만나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바르게 보이지 않고 왜곡이 일어나거나 전도몽상을 일으킵니다. 따라서 대종사님께서는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를 정신이라 하였고 분별성과 주참심을 없이하는 것을 수양이라 하였습니다.
사주에 나의 팔자가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면 사주가 좋은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안 좋은 사람은 삶에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 생각에 사로잡히면 일이 안 될 때마다 사주가 그래서 그렇다고 하면서 실의에 빠지게 됩니다. 쓸데없는 생각에 생각이 이어지는 것을 망념이라고 합니다. 망념에서 벗어나는 좋은 체험을 하신 것 같습니다.
이주성(사상교당) 교도 공부담
저희 사상교당은 원기 109년을 맞아 대정진 대적공을 장려하기 위한 여러 방법 중 한 가지인 정기일기 기재가 있는데 그중 제가 썼던 정기일기 한편을 발표해보고자 합니다.
어머니랑 늦은 저녁, 차로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저는 잠시 집 근처 상가에서 잠깐 볼일을 보는 중이었고 어머니는 저 기다리는 동안 주차를 하셨습니다. 볼 일을 다 보고 차에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심각한 표정으로 사고를 쳤다면서 빨리 차에 타라며 재촉하셨습니다. 차에 타서 얘기를 들어보니, 후진 주차하던 중 끼익 소리가 났었고 큰 충격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다른 차를 살짝 긁은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확인하고자 내리려고 했는데 어머니는 잠깐 기다려보라며 엄청나게 고민하셨습니다. 주위가 캄캄하고 많이 어둡기도 했으며 또 긁은 게 맞는지 아닌지도 확신이 안 드는 상황이니 그냥 집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얘기를 듣고 지금이 딱 경계 상황임을 알아차렸습니다. 그 즉시 법률은의 배반이 생각이 났고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법률은을 배반하는 순간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모든 법이 세상의 질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을 벌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작용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를 지켜주는 법이 도리어 우리를 벌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 상황에선 일단 멈추고 온전한 마음을 챙긴 후 맑은 정신으로 사은에 배반되지 않도록 잘 판단하여 실행에 옮겨야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우선 어머니께 괜찮다고 실수로 그럴 수도 있다며 달래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험을 들어놓은 것 아니냐며 마음을 챙기도록 도와드렸습니다. 그 후 긁힌 것 같은 부위를 확인했고 차주에게 연락을 하였습니다.
그 후 차주가 나오셨고 제가 공손하게 인사드리며 차분히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를 드렸습니다. 그분이 차를 살펴보시더니 웃으시면서 이거는 원래 있던 자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끼익 소리가 타이어에서 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사고 안 난 것 같다고 오히려 저희를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중에라도 자국 보이는 게 있으면 제 번호로 꼭 연락 달라고 마지막까지 죄송하다고 인사드렸습니다. 일은 그렇게 마무리 잘 되었습니다.
이번 일에 참 느낀 것이 많았습니다. 일이 없을 땐 정신 수양을 통해 마음의 힘을 기르고 일이 있을 때는 삼학을 통해 일을 헤쳐나간다면 이 세상에서 못해낼 일이 없지 않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는 너무 마음 편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몇 번이나 쉬면서 웃으셨습니다. 저희는 집에 돌아와서도 좀 전 있었던 일에 대해 마음작용 처리한 방식을 회화를 통해 피드백을 나누었고 또 앞으로는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할지 다시 한번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평소 일이 없을 때 정신 수양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염불을 생활화했고 교전 공부가 재밌어서 늘 교전을 가까이하며 지냈습니다. 그 덕분에 갑자기 닥친 이런 경계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고 사리연구부터 작업취사까지 잘할 수 있었던 것이라 [확신]합니다. 어머니 덕분에 실전에서 큰 공부를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이 회상을 펼쳐주신 대종사님께 [큰]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교무님의 지도로 더 열심히 정진적공하는 청년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석인경 교도 공부담
사실 저에게는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아주 큰 경계였던 일이라 덮어두고 좀 더 있다가 다시 생각해 보려고 한 일입니다. 마음공부는 저와 아주 가까운 사람과의 일이라 이렇게 나와 발표하는 것 자체가 아주 조심스럽고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한 달 전 저는 며느리를 보았습니다. 며느리에게 책 잡히지 않는 좋은 시어머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여러 사연을 찾아 읽으며 저렇게 하지 말아야겠구나 하며 나름 챙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소 마음공부 하면서 경계를 당하면 멈추어서 나를 객관화하며 경계 당한 나 자신을 보는 법도 배우고 있었습니다. 결혼식 전 설날이 있었고 저희는 교당에서 합동 차례를 지내고 있었던 터라 차례를 지내고 혼인 기도식을 할 거라고 한 달전에 아들에게 말을 해 놓은 터라 당연히 며늘아기도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들과 통화를 하다 보니 며늘아기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늘 아이가 기도를 해 주시는 건 정말 감사한 데 원불교 의식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 아이가 너무 싫어지면서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어리석음이 저를 완전히 덮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 화에 아무것도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오로지 괘씸하다는 생각만 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시어머니한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지네들 좋아지라고 기도한다는데 그걸 거부해? 내 성의가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더 화가 나고 온몸에 열까지 났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감정적으로 온갖 뾰족한 말들을 쏟아 내었습니다. 아이들 결혼식 때 제가 덕담을 하기로 했었는데 덕담 안 할 거다. 너희는 이제 우리 집에 올 필요 없다. 너희끼리 살아라. 명절이고 뭐고 안 와도 된다. 등등 좀 심각하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화를 낼 거라고 생각을 못 했던 아이들도 당황하였고 결혼식이 잘못될 뻔했습니다. 그날 저녁 화가 조금 누그러지면서 다시 생각했지만, 여전히 괘씸하고 이해도 안 됐습니다. 하지만 결혼식을 망칠 순 없어서 덕담은 그대로 하기로 했고 며늘아기에게도 감정적으로 한 말들에 사과도 했습니다. 이제는 종교에 대해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고도 했습니다. 사실 제가 강압적으로 원불교 나와야 한다는 말도 한 적이 없는데 너무 크게 부담 느끼는 그 아이도 불만이었습니다. 이후 계속 이해하려고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니 그럴 수 있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제가 놓친 것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를 이해하고 못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제가 그 경계를 당한 순간 마음을 멈추지 못하고 어리석음이 나를 잠식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해서 제대로 된 취사를 못 해서 일이 커진 것이었습니다. 마음공부 한다는 사람이 정작 큰 경계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해 버린 것입니다. 작고 소소한 경계는 잘 넘겨놓고 나 잘했구나 하며 스스로 만족하고 지내다가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이렇게 돼버린 저 자신이 참 부끄러웠습니다. 이 마음을 마음 한구석에 밀어 놓고 있었는데 오늘 이 시간이 저에게 온 것이 우연이 아니었네요. 이 공부마저 하라는 진리님의 뜻이었습니다. 괜히 며늘 아이 욕보이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합니다. 결혼식 이후 한 달 만에 아들 부부를 만났습니다. 잘 해줘야겠다는 마음은 많지만, 왠지 어색함이 있었는데 아직 내 마음이 다 녹지 않았다는 거겠죠. 이 마음을 녹여 내는 것이 제 숙제이겠지요. 요즘 교무님들께서는 저희에게 시키시는 게 참 많습니다. 예전에 일요일에 교당 와서 설법만 듣고 고개만 끄덕이면 됐었는데 요즘은 저희를 깨 볶듯 달달 볶으십니다. 마음공부 해라. 교리 공부해라. 염불 좌선해라 등등 깨를 볶으면 톡톡 튑니다. 저도 공부하기 싫어서 톡톡 튀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조금씩 노란빛을 띠어갑니다. 저희는 이렇게 정진하고 열심히 볶이면서 예쁜 색깔의 잘 익은 깨가 되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