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 않아도 따뜻했던 설빔
김금자
아버지는 시골에서 평생 땅을 일구며 사셨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 믿음 하나로 더 나은 살림을 위해 억척스레 몸부림치기보다는 하늘이 허락하고 대지가 내어주는 만큼을 감사히 받아들이며 살아온 순한 농부이었다. 투박한 그 손으로 일궈낸 곡식들은 언제나 정직한 무게로 우리 식구의 끼니를 채웠다. 덕분에 나의 어린 시절 가난은 특별한 불행이 아니었다. 마당 한쪽 늘 놓여 있던 장독대처럼 익숙하고도 담담한 풍경이었다. 어린 나는 스스로 가난하다는 사실조차 잘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래서 설날이 다가와도 설빔으로 새 옷을 머리맡에 수북이 쌓아두는 호사는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어느 해 아버지가 설빔으로 털신을 사 왔다. 검은 고무신 안에 복슬복슬한 털이 박힌 그 신발은 아버지가 장터에서 몇 번이고 만져보고 크기에 맞을지 고민하며 골랐을 당신의 지극한 정성이었다.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문지방을 넘나들던 겨울밤 밖에 나갈 때 발이 시려도 그 털신을 절대 미리 신지 않았다. 설날에 새 신을 신어야 복이 달아나지 않는다. 혼자서 괜한 이유를 만들어 윗목에 고이 모셔두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이미 정월의 햇볕처럼 따뜻해졌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집 앞 도로만 건너면 바로 학교 운동장이었다. 밤새 소리 없이 내려앉은 눈은 하얀 소금 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운동장으로 변하였다. 우리는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며 뛰어놀았다. 낡은 운동화 사이로 스며든 눈 녹은 물이 발가락 끝을 얼어붙게 하고, 통증으로 발의 감각이 무뎌질 때도, 나는 윗목의 털신을 떠올렸다.
설날 아침 새 눈을 처음으로 밟게 될 그 뽀드득한 순간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시림 정도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기다림은 고통이 아니라 다가올 “기쁨”을 정성껏 우려내는 발효 과정이었다.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루 만물이 새로이 시작되는 날이다. “삼가다”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처럼 설은 지난 시간을 고요히 돌아보고 새로운 마음으로 여미는 날이다. 그래서 설빔은 단순한 치장이 아니라 묵은 허물을 벗고 새 삶으로 들어가기 위한 작은 의식이다. 아버지가 사 온 털신과 엄마가 쓰다남은 엉킨 털실로 하나하나 풀어 손수 짠 알록달록 무지개색 스웨터는, 어린 내가 세상으로 나아갈 때 거친 눈보라를 막아주는 부모님의 보이지 않는 기도이었다.
그해 설을 앞두고 대구에서 실 공장을 하던 큰아버지가 설빔을 보내주었다. 서문시장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큰아버지는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무뚝뚝함으로 말수는 적었으나 속정만큼은 깊고 푸른 분이었다. 상자 안에는 눈이 부시게 선명한 색의 빨간 백 프로 나일론 점퍼와 자주색 골덴 바지가 곱게 접혀 있었다. 그 나일론 점프는 당시 시골 아이들에게는 선망의 상징이었다. 옷을 받아든 순간 나는 세상을 다 가진 아이가 되었다. 옷감에서 나는 특유의 새 옷 냄새는 그 어떤 꽃향기보다 향긋했다. 시골 학교에는 여전히 무릎이 해진 바지나 언니에게 물려받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다니는 아이들이 많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당신의 투박한 손으로 옷자락을 쓰다듬으며 “공부 잘하는 것이 큰아버지께 최고의 인사다.”라고 하였다. 명절마다 말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공부 잘하는 네가 참 이쁘다.” 하던 큰아버지의 목소리가 그 옷감의 올 하나하나에 그대로 배어 있는 것 같았다. “많이 먹어라”“아프지 말고 자라라”는 말 대신 조용한 사랑이 실처럼 촘촘히 박혀 있었다. 사랑은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살에 닿는 옷감의 촉감으로 전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보름이나 남은 설날은 왜 그렇게 더디게 오던지, 달력의 까만 날짜들은 왜 줄어들지 않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하였다.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과 빨리 입고 싶은 조급함에 마음은 이미 설날을 지나 학교 운동장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따뜻한 방 아랫목에 엎드려 방학 숙제를 하다 그만 깜박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그 빨간 점퍼를 입고 씩씩하게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친구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운동장을 누비는 꿈이었다. 눈을 뜨니 사방이 어둑어둑하였다. 잠결에 몽롱했던 나는 그것이 동이 트기 전의 새벽이라 철석같이 믿어버렸다. 설빔을 입고 책보를 맨 채 밥도 안 먹고 새 옷을 뽐내겠다는 마음 하나로 교문까지 내달렸다.
교문 앞에서 마주친 이웃집 오빠의 한마디에 시간이 멈췄다. “야, 너 지금 저녁에 학교 가나?” 해는 이미 산으로 기울어 있었고 그것은 새해의 여명이 아니라 하루의 끝자락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설빔에 대한 과도한 설렘이 현실의 시간마저 속여버린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괜히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자 엄마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설날에 입을 옷을 왜 벌써 입고 저 난리인고 그리도 좋더나?” 하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날 이후로도 빨간 점퍼는 어둠 속에서도 왜 그렇게 눈에 띄는지 자꾸만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참을 수 없어 밤마다 다시 꺼내 입고는 거울 앞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설날에 새 옷 마련하는 일이 특별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면 옷은 다음날 새벽 도착하고 유행도 계절보다 빠르게 바뀌어 옷장은 늘 복잡하다.
돌이켜 보면 그때의 설빔은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식의 발 시림을 걱정하던 아버지의 마음이었고, 멀리서 질녀의 안부를 빌던 큰아버지의 사랑이었고, 가난 속에서도 스스로 나를 귀하게 여기게 해주던 어린 날의 자부심이었다. “나는 설빔을 입은 것이 아니라 그날의 사랑을 입고 자랐다.” 그 시절의 설빔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설빔이 사라진 지금도 그 안에 담긴 마음과 온기는 내 삶 속에서 따뜻이 나를 데워 준다. 올 설날에는 나도 누군가에게 식지 않는 온기를 전하는 따스한 설빔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