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반기문은 충성을 다해 지각과 양심을 갖고 유엔 사무총장으로 나에게 부여된 임무를 다할 것을 엄숙하게 선서합니다" 14일(현지시간) 오전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 192개국 유엔 회원국들과 외교사절들이 꽉메운 유엔총회장에서 차기 유엔총장이 취임선언문을 낭독했다.
취임선언문을 낭독한 주인공은 바로 한국의 반기문 전 외교장관이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 시대를 활짝 여는 순간이다.
취임선서는 차기 유엔총장이 회원국들을 상대로 한 취임 전 마지막 공식행사다.
하지만 이번 행사는 이날 이임식을 가진 코피 아난 시대를 마무리하고 반기문 사무총장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첫 행사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취임선서는 한국인 사무총장 시대가 사실상 시작됐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날 역사적인 취임선서식을 갖고 제8대 유엔 사무총장에 오를 반기문 차기 사무총장은 내년 1월1일부터 공식업무를 시작한다.
?반기문 시대 공식선언= 알 칼리파 유엔 총회 의장의 개회선언으로 시작된 이번 행사는 10년만에 유엔을 떠나는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퇴임식과 반 차기총장의 취임식 등 2부로 나뉘어 2시간 가량 진행됐다.
반 차기총장 취임선서는 지금까지의 관행과 다르게 진행됐다.
1∼7대 사무총장들은 총회 의장 앞에서 손을 들고 선서해 왔다.
그러나 반 차기총장은 유엔 헌장에 손을 얹고 총회 의장이 낭독하는 선서문을 한줄씩 따라 읽었다.
이같은 방식의 취임선서는 반차기 총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선서를 하는 동안 역대 총회 의장과 부의장단,상임위원회를 비롯한 주요 위원회 의장 등 20여명이 반 총장 주변을 반 타원형으로 에워싸고 신임 총장의 새출발을 축하했다.
연단에는 반 총장이 비서실장 자격으로 보좌했던 제56차 한승수 유엔 총회 의장도 축하사절 및 증인으로 연단에 자리를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제8대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한 반 차기총장은 역대 어느 총장 못지 않게 국제사회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추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나타냈다.
그는 취임연설을 통해 "유엔의 3대 목표인 안전과 개발, 인권을 강화함으로써 보다 평화롭고,번영되며, 후세들에게 한층 공정한 세상을 열어 나갈 것"이라며 "이를 위해 신뢰를 제고하는데 최우선 순위를 두고 갈등조정자와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조, 국제분쟁 해결사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와함께 이같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사무국의 개혁에도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유엔 회원국들은 수동적이고 모험을 꺼리는 사무국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용기있는 사무국을 갈구한다"면서 유엔 조직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했다.
그는 특히 "유엔 헌장은 조직원들에게 고도의 효율성과 능력, 성실함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나는 그런 기준에 부합하도록 확고한 신망을 쌓아나가고 솔선수범할 것이며 무엇보다 고도의 윤리적 기준을 갖추도록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유엔 조직원들은 유엔이 한층 글로벌한 역할을 떠맡고 있음을 고려해 보다 기동력있고 다기능적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직원들의 사기와 전문성,책임감을 함양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이를 통해 유엔이 회원국들을 더 잘 지원하고 유엔내 신뢰를 제고토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반 차기총장은 이어 "우리가 모든 것을 즉각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몇몇 분야에선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집중적이고 지속적인 대화가 필요할 것이며 투명하고 유연하며 정직한 자세로 협력해가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 차기총장은 "그간 불신과 경멸의 어두운 밤이 너무 오래 지속됐다"면서"그러나 이제는 유엔 회원국들과 사무국 관계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됐다"고 말했다.
?굿바이 아난=이날 유엔본부에서는 아프리카 지역 대표인 아부마카르 이브라힘 아바니 니제르 대사가 아난 총장의 노고를 치하하는 결의안을 즉석에서 상정해 회원국들의 박수로 통과시켰다.
이어 칼리파 총회의장,아프리카 아시아 동유럽 라틴아메리카·카리브 지역 서유럽 대표들이 나와 알파벳 순으로 연설했다.
아난총장은 10년전 미국의 지지아래 유엔사무총장으로 당선돼 한차례 연임을 했으나 유엔사무총장시절 미국과의 잦은 의견차이로 미국과 긴장 관계를 유지해왔다.
아난 총장은 지난 11일 마지막 연설을 통해 독선과 아집, 힘으로 군림하려는 미국의 행태와 부시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해 주목받았다.
유엔 관계자는 "아난 총장의 임기가 올해말까지지만 13일로 모든 공식 업무는 종료됐다"며 "아난 총장은 퇴임 후 고국인 가나로 돌아가지 않고 스위스 제네바에 거주하면서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아난 총장이 1년 후로 다가온 가나 대통령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뉴욕 = 위정환 특파원 / 손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