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57년 석가탄신일
석가탄신일의 의미와 유래를 알아보다
음력으로 4월8일 석가탄신일입니다. 산사의 느낌을 만날 수 있는 파주 약천사
석가는 BD 563년 음력으로 5월 8일 북인도 카필라 왕국( 지금의 네팔지방) 의 왕 슈도다나와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556년 전 일 이었지요. 카필라 왕국의 왕자 고사마싯다르타가 출가후 수행을통한 깨달음을 하였고 부처가 되면선 석가모니라고 불리워졌슴 입니다. 불교의 종주국인 인도 등지에서는 예로부터 음력 4월 8일을 석가의 탄일로 기념해 왔다라고 하며, 1956년 11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린 제4차 세계불교대회에서는 양력 5월 5일을 석가탄신일로 결정하였다라고 합니다.
그중 우리나라에서는 음력 4월 초파일을 석가탄신일로 기념하고 있답니다. 울긋불긋 화려한 모습으로가장기쁜날을 맞이한 파주 약천사에 비교적 이른 시간에 도착하였건만 이미 그곳을 찾은 사람들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삭가의 탄생일인 석가탄신일은 원래는 불가에서 하던 축의 행사였으나 불교가 민중 속에 전파되면서 불교의식 또한 민속화되기에이르렀는데 특히나 신라에서는 호국불교를 바탕으로 참여시키는정책을 유지하면서불교행사 또한 이전부터 전해오던 세시행사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병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신라의 팔관회,고려의 연등회등을 거치면서 동화되어 간후 지금과 같은모습으로 완전히정착되었다라고합니다.
아직 꽃을피우지는 않았지만 불교의 상징인연꽃도 바라보고 난간에 운치있게 자리하고있던 동자승들의 모습도 바라봅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산사의 풍경들입니다.
그러다가는 아이들은 바로 관불의식에 참여합니다. 관욕이라고도불리우는 아기부처님을씻기는의식은부처님이 탄생할 때 9마리의 용이 향수로 태어난 아이를 목욕시켰다는 기록에 근거, 고대 인도로부터 유래된 의식으로 부처님의 형상을 깨끗이 씻으면 자신의 마음에 쌓인 죄와 번뇌를 씻고 맑고 깨끗해지며 복을 누리게 된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답니다.
의식을 행하는 아이들은 그런깊은 의미까지는 모를듯한데 차분하게행하는의식만큼은 참으로 경건해 보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무슨 생각으로 아기부처님을 씻기어 드렸냐 물으니 아이들은 관불의식을 행하면서도 소원을
빌었다 라고 합니다.
그 시간 지장보전에서는봉축법요식이 진행됩니다. 석가탄신일때면 늘상 절을 찾았었지만 봉축법요식을 만나는 것은 처음입니다. 차마 법요식이 열리고 있는 지장보전 안에는 들어가지 못한 채 문 밖에서 엄숙히 거행되는
의식을 지켜봅니다.
그냥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좋아 기회가 될때면 이 사찰, 저 사찰은 찾는 객인지라, 주지스님의 설법에
이어 발원문가지 귀동냥을 하였거만 정확한 의미엔 다가가지를 못했지요.
그리고 봉축법요식은 끝이 났습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무거운 분위기보단 마음의 초를 켜둔 곳에서 좀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들만의 방식으로서 석가탄신일의 의미를 짚어보았답니다.
관불의식을 행하고 바라보기만 했을망정 법요식마저 참석하고나니 이젠 부처니의 자비로 차려진 점심 공양
생각이 납니다. 부실했던 아침으로 인해 배가 출출해져 오기도 했었지요.
알려준이도 없었건만 한번에 공양간에 찾아들었습니다. 출출해진 배가 알아서 찾아왔다라고 할까요 ?
비빔밥과 , 떡 , 생수한통까지, 생각외로 푸짐한 점심상을 받아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부처님의 자비를 생각하며 깨끗하게 공양 그릇을 비웠습니다. 감사한 마음까지 더불어서요.
그렇게 정신없이 점심을 먹고나니 조금 전 보다 공양줄이 훨씬 길어졌습니다.
행사에 참여하느라 약천사에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약사여래대불에 미쳐 인사를 드리지 못했었네요.
약천사를 대표하는 불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높이 13m에 이르는 거대 청동 약사여래대불은 2008년 10월
성대한 점안 법회를 갖은 대불로 남북통일과 국태민안 소원성취등의 발원을 위해 3년에 걸쳐 조성되었다라고 합니다. 불교에서의 역사여래불은 중생들의 질병의 고통을 없애주고 재난과 위험을 벗어나게 해주는 부처님
이랍니다.
아이들이 그러한 부처님을 그냥 지나칠리가 없지요. 서둘러 올라서는 바로 인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또 한번
소원을 빌었다라고합니다. 그것도한가지가 아닌, 2가지씩, 3가지씩이요 아주 진지한 모습으로,한참동안이나요 .
그렇게 부처님만 보면은 습관적으로 소원을 빌고 또 빌고 있던 아이들에게 진짜로 들어주실까 ? 하고 물으니 네 , 당연히요, 라고 합창을 합니다.
어른들이 부처님의 힘을 빌어 삶의 무게감을 덜어내는 것처럼 아이들도 역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내용만의 차이가 있을뿐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시절이 1932년에 법성사로 한 대처승에 의해 창건되었었던 자그마한 절 약산사는 1980년후반우연히 이곳에 온 허정스님이 정착하면서 약천사로 개명하고 지장 참회도량으로 탈바꿈하면서 지금에 와서는
지역 명소에까지 이르게 된 사찰이 되었으니, 약사여래대불에서 약산사의 지장보전을 내려다보노라니 참으로 웅장해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대웅전까지 두르는 것으로 불기 2556년의 석가탄신일을 보냈답니다.
산은 깊고 물은 흐르고 각색 초목은 휘어져 있고 이상한 새소리는 울고 적적하여 세상 사람은 오지 않는데, 고요히 앉아 내 마음을 궁구하니 내 마음은 부처가 아니면 무엇인가.
- 내 마음은 부처
불기 2557년 부처님 오신날 우리가족은 약천사에서의 시간을 가지면서 연등을 바라보면서 조금 더 개끗하고 정갈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