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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 경파(금녕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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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게시판 스크랩 화순 쌍봉리 충신각(雙峰里 忠臣閣)
김영광 추천 0 조회 108 17.09.22 08:4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쌍봉리 충신각(雙峰里 忠臣閣,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59호)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110

 

  

이 충신각은 조선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때 진주성(晋州城)  싸움에서 전사한

 김인갑(金仁甲)과 그의 아우 김의갑(金義甲), 그리고  조선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전사한 김인갑의 아들 김시엽(金時燁)의 충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조선 고종 10년(1872)에 세운 건물이다.

김인갑은 선조 12년(1579) 무과에 급제한 후   선조 24년(1591)에는 훈련원 판관을 지냈으며,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하자 선무원종공신으로 기록되었고 병조판서 벼슬에 올랐다.

김의갑(金義甲)은 선조 23년(1590)  무과에  급제한 후 바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쟁터에 나가 싸워 전사하자 주부의 벼슬에 올랐다.

김시엽 (金時燁)은   김인갑의 아들로   광해군 13년(1621)에 무과에 급제한 후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과 인조 5년(1627) 정묘호란 때에 공을 세웠다.

병자호란 때 전사하자 승정원 우승지 벼슬에 올랐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2칸, 측면 1칸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막돌로 1단의 기단을 쌓고 둥글게 다듬은 주춧돌을 놓은 다음 기둥을 세웠다.

건물 뒷면에는 벽을 설치하고 나머지 3면은 홍살을 돌려 개방하였다.

건물에는 '김해김씨 충신각(金海金氏忠臣閣)'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마을 입구에는 자랑스러운 역사유적들이 마을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의병장행사 양선생회일 순의기념비(義兵將杏史梁先生會一殉義紀念碑)와

태극기가 새겨진 비석은 쌍산의소에서 의병하시던 분들의 

성함과  밑에는 의병의 노래가 새겨져 있다.

 

 

1907년에 의병활동을 하다 일제에 붙잡혀 순절한 쌍봉마을 출신인  의병장 양회일 선생을

 비롯한 의병들의 발자취와 500년 역사와 전통이 숨쉬고 있는 마을이다.

 

 

 숲에광장에 들어서면  쌍봉천의 개울물 소리가 정겹게 들려오고

시원한 바람과 맑은 달이 쉬어가간다는 풍영정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풍영정 옆으로 가니 광풍제월이란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풍영정은  1926년에 마을사람들이 힘을 모아 건립하였다.

이후 초가지붕에 비가 새므로 1969년에 기와를 올려 중창하였다.

그래도 건물 자체가 낡아 기둥이 기울고 무너지려 하자 1997년에 마을

 사람들이 모금한 자금과 군비를 보조받아 목조누각 기와집으로 중건하였다.

 2002년에 군비를 더 지원받아 단청하니 마침내 멋드러진 누각이 되었다 한다.

풍영정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누정으로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마을 사람들의 협동심과 애향심이 깊이 서려있는 곳이다.

 

 

 풍양정 주위에는 느티나무 보호수들이 줄지어 서 있다.

500여년전 마을이 형성되면서 행해진 것으로 추정되는 당산제를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밤에 이곳 느티나무 아래에서 지낸다고 한다.

 

 

숲에광장을 온통 느티나무 보호수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마을 입구 언덕에는 화림당이라는 마을회관이 자리하고 

 

 

 화림당 앞에는 화림당건립기를 쓴 비석이 세워져 있다.

 

 

꽃밭에는 맨드라미 꽃이 반갑게 맞이하고

 

 

맥문동도 보라색 꽃을 피워  자리를 빛내고 있다.

 

 

들판에는 황금물결이 넘실되고

 

 

누렇게 익어가는 고개숙인 벼가 풍요로움을 준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쌍봉천 위에는  쌍봉교가 놓여있고

 

 

쌍봉천은 지석천의 처음이 되어 영산강으로 흘러간다. 

 

 

산좋고 물좋은 쌍봉마을은  고려 때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하며 1495년경 김해김씨(金海金氏),

1519년 제주양씨(濟州梁氏), 1545년경 하동정씨(河東鄭氏), 1585년경 달성배씨(達城裵氏),

1885년경 전주이씨(全州李氏)가 입향하여 마을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쌍봉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의병들의 격전지였던 쌍봉의소가 나온다.

쌍산의소는 1907년 3월 양회일. 임노복. 임상영. 정세현. 안찬재 등이 증리를 중심으로

 쌍산의소에서 거병하여 화순군 능주면, 동복면 일대에서 왜경과 전투를 벌이다가

동복면 도마재에서 패하기까지 의병들의 거점지로 이용되었다.

1908년 1월부터는 도대장 이백래를 주축으로 호남창의소(湖南倡義所)가 설치되어

의병활동을 펼쳤으며 1909년까지 단독 또는 연합으로 대일항전을 벌이던 곳이다.

파청. 운월치. 대원사. 진산 등지에서 봉기했던 안규홍 부대의 전투도 이곳을 거점으로 이루어졌다.

 

 

쌍봉리를 떠나면서 바라본 전경들이 평화로움을 안겨준다.

쌍봉리는 망일봉 아래 주정들이 있고 서쪽은 월봉, 교리산,신틀봉이 있으며,

남쪽은 문봉, 대산이 있고 북쪽에는 감투봉이 우뚝 솟아있다.

주정천이 마을 앞을 동서 방향으로 흘러간다.

쌍봉은 마을 앞에 육봉(숫봉)과 대산(암봉)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또 마을 주위의 산들이 쌍쌍이 있어 쌍봉이란 이름이 생겼다고도 하고

철감선사의 호를 따라 쌍봉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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