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다시 하얼빈에서] ③ 독립운동 사적지를 찾아서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등 중국에서 만나는 독립운동 사적지
작성자이주영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이 7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8일간의 열전에 들어갔습니다. 이번 대회는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에서 열려 태극전사들의 승리 의지를 더욱 불러일으킵니다. 더욱이 올해는 광복 80주년입니다. 이번 동계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독립운동사와 맞물린 하얼빈의 역사적 의미와 현재를 되짚어보는 한편, 경기도가 마련한 광복 80주년 기념 사업을 소개합니다. |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프랑스 조계에서 수립되고 1926년 백래나몽 마랑로 보경리 4호, 그리고 1932년 5월 항저우로 이전하며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현재 상하이에 남아있는 임시정부 건물에서는 여러 전시물을 만나볼 수 있다. ⓒ 경기도 기회기자단 출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프랑스 조계에서 수립된 것이 그 시초입니다. 이후 상하이 하비로 321 부근에 새롭게 이전한 후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나 1920년대에 들어서 일제의 압박과 재정적 문제, 프랑스 조계 당국의 청사 폐쇄조치 등의 문제가 겹쳐 위기를 맞게 됐습니다.
이에 임시정부는 1925년과 1927년 4월 각각 헌법 개정을 통해 정부의 내각을 구성하여 정부의 안정적인 운영의 기초를 다지고 1926년 백래나몽 마랑로 보경리 4호에 새로운 청사를 마련했습니다. 임시정부는 이곳에서 1932년 5월 항저우로 이전할때까지 6년 동안 활동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1980년대 후반 대한민국 정부와 상하이시가 연대를 맺어 임시정부의 청사 건물을 찾기 위한 공동 조사를 진행해 현 위치를 파악하게 됐는데요. 청사 건물은 1990년 6월 5일 상하이시 노만구에서 문물보호단위로 지정했고, 1992년 본격적인 복원공사가 추진됐습니다. 그 결과 한중 양국은 1993년 4월 13일 복구공사 완공기념식을 거행하고 일반인에게 정식으로 공개했습니다.
전시는 독립기념관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이후 몇 차례 보완이 이루어졌습니다. 2012년에는 노만구가 황포구에 통합되면서 현재 황포구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됐으며, 2015년에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독립기념관의 지원으로 전시물을 전면 교체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2019년 관람 동선의 용이성을 위해 매표소 리모델링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윤봉길 의사 의거지(홍구공원)
중국 상하이에 있는 홍구공원에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기념하는 정자가 건립돼있다. 이곳에선 윤봉길 의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 경기도 기회기자단 출처
중국 상하이에 있는 홍구공원(홍커우공원)은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투탄의거를 결행했던 곳입니다.
그 결과 일왕의 생일과 승전을 축하하는 행사에 참여한 일제 군부와 정관계 인사에게 수통형 폭탄을 투척하여 7명을 처단하는 성과를 거두었는데요.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침체되어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로를 개척했으며, 나아가 독립운동의 대환점이 됐습니다.
이에 1994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기념하여 매정이라는 정자를 건립했고, 이곳에서 40m 떨어진 지점에 1998년 ‘윤봉길의사 의거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이후 2009년에 현판을 ‘매정’에서 ‘매헌’으로 교체했고, 2015년 전시 및 동영상을 제작하여 당시의 상황과 윤봉길 의사의 생애를 만나볼 수 있게 됐습니다.
현재 훙구공원은 루쉰공원으로 이름이 바뀌고 의거 현장 근처에는 루쉰의 동상이 세워져있습니다.
충칭 한국광복군 사적지
충칭 한국광복군 사적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처음 한국광복군을 창설된 곳으로 현재 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첫 번째 사진은 기존 건물, 두 번째 사진은 새롭게 복원된 건물. ⓒ 독립기념관 출처
충칭 한국광복군 사적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처음 한국광복군을 창설된 곳입니다.
1942년 충칭 신생로 45호로 이전하기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을 펼쳤었는데요.
이후 한국광복군총사령부는 1991년 `광복군 유적조사단`에 의해 발견되어 학계에 보고되었으며, 1999년 총사령부 건물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표지석 설치를 추진했고 독립기념관은 2003년 총사령부 건물 훼손을 대비하여 정밀 실측을 실시했습니다.
이후 2013년 12월 충칭시는 총사령부 건물 주변에 금융가 개발을 결정해 2015년 안전상 이유로 건물을 철거하게 됐으나 중국측과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2018년 3월 총사령부 건물 복원이 결정돼 그 해 봄에 복원, 개관하게 됐습니다.
총 3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층은 전시실, 2층은 복원된 광복군 사무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황포 군관학교
황포군관학교는 한국독립운동을 위해 한국학생들이 군사훈련을 받던 곳이다. ⓒ 독립기념관 출처
황포군관학교는 광동정부가 수립된 후 1924년 6월 6일 장개석을 교장으로 삼아 설립한 학교로서 정식 명칭은 ‘중국국민당 육군군관학교’였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총리였던 신규식은 1921년 10월 광주에서 손문과 회견할 때 임시정부 승인문제를 비롯한 한국독립운동에 관한 5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고, 이 때 요구한 사항 중 하나가 한국학생들을 중국 군관학교에 수용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황포군관학교에는 한인 학생들이 다수 입학하였는데, 명단이 확인되는 사람은 73명입니다. 이들과 무한분교를 비롯하여 여러 분교에 재학한 한인 청년들까지 합치면 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황포군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특히 제4기 훈련생들 중 김원봉을 비롯한 의열단 간부들이 대거 참여했으며, 이들은 졸업 후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통한 군사간부 양성에 힘썼습니다. 또한 조선민족혁명당을 결성하고 조선의용대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의 주요 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육군군관학교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황포군교 구지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2023년 3월엔 국가 4A급 관광지구로 지정되었으며 진입로 및 관광시설을 정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