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주춤했던 교육 현장에서의 ‘디지털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최근 1~2년 새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 태블릿 PC와 스마트폰 등 첨단 기기들이 ‘똑똑한 교육’을 이끌고 있는 것. 처음 변화를 주도한 건 ‘하드웨어’였지만 최근엔 교과서나 참고서 등 ‘소프트웨어’도 속속 정보기술(IT)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이 틈을 타 지난 2007년 교육 현장에 첫선을 보인 이후 지지부진했던 ‘디지털 교과서’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소년조선일보는 ‘종이’에서 ‘디지털 기기’로 무대를 바꾼 교과서 시장의 현황·문제점·전망 등을 집중 취재, 총 5회에 걸쳐 매주 화요일에 싣는다. 첫 회는 전교생이 태블릿PC로 공부하는 ‘첨단 IT학교’ 충남 청양 남양초등 얘기다. /편집자 주
-
- ▲ 최종원 선생님(오른쪽)과 남양초등 6학년 어린이들이 디지털 교과서가 담긴 태블릿 PC와 보조교재로 활용되는 아이패드2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 청양=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자, 모두 사회 교과서를 펼치세요. 오늘은 ‘시무 28조’에 대해 공부해볼 거예요. 시무 28조란 고려 초기 문신 최승로(927~989년)가 6대 임금 성종(960~997년)에게 올린, 28개 조항으로 구성된 상소문입니다. 불과 22세 나이로 왕위에 오른 성종이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쓴 글이죠. 좀 더 자세하게 공부해볼까요? 자, 각자 받은 QR 코드를 스캔해봅시다.”
지난 14일 오전, 충남 청양군에 위치한 남양초등학교(교장 김영택) 6학년 사회 수업 현장. 최종원 6학년 담임 선생님의 지시가 떨어지자, 20명의 어린이가 아이패드2(미국 애플사<社>가 개발한 태블릿PC)를 꺼내 QR 코드를 읽히기 시작했다. 모니터엔 곧바로 시무 28조의 내용이 정리된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 내 블로그 화면이 떠올랐다.
학생들은 디지털 교과서가 내장(內藏·안에 간직함)된 태블릿 PC형 노트북을 보는 틈틈이 아이패드2로 시무 28조의 구체적 내용을 확인했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전자펜을 활용해 밑줄을 그었고, 보조교재 내용 중 일부는 디지털 교과서 메모장에 옮겨 적었다. 정미나 양은 “디지털 교과서를 쓰기 시작한 후 메모하는 습관이 늘었다”라고 귀띔했다.
전병인 군은 “수업 도중 선생님께서 주요 부분을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땐 메모 대신 녹음 기능을 활용해 저장해둔 후 복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
- ▲ 남양초등 어린이들은 디지털 교과서로 선행학습을 마친 후 아이패드2를 활용, 수업 관련 자료로 ‘바로가기’ 할 수 있는 QR 코드를 스캔해 수업 내용을 보완한다.
◆2년 만에 '연구학교'서 '선도학교'로
남양초등학교는 지난 2009년 ‘디지털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됐다. 디지털교과서 연구학교란 지난 2007년부터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이 추진해오고 있는 사업. 농·산·어촌 지역 학교들이 효과를 보기 시작하면서 대상 학교가 점차 확대됐다.
남양초등학교는 연구학교로 지정된 후 2년간 디지털 교과서의 효과적 활용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4월 ‘디지털교과서 선도학교’로 선정됐다. 김영택 교장 선생님은 “학교 주변이 온통 논밭이고 변변한 학원 하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편”이라며 “이런 환경에서 어린이들의 학습 능률을 높이려면 지적 호기심부터 채워줘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과정에서 떠올린 게 디지털 교과서였다”고 회상했다.
최종원 선생님은 “디지털 교과서 수업을 좀 더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모든 교실에 전자칠판을 설치했고, 디지털 교과서가 내장된 태블릿PC를 장만했다”며 “올해 아이패드2를 구입해 보조교재로 활용하면서 학생들의 만족도가 더욱 높아졌다”고 말했다. 남양초등의 ‘디지털 수업’ 사례는 빠른 속도로 입소문을 타 전국 각지는 물론, 일본 학교에서도 참관하러 올 정도로 유명해졌다.
실제로 디지털 교과서 활용 수업에 대한 남양초등 어린이들의 만족도는 상당하다. 지난해 디지털 교과서로 수업을 받은 5·6년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만족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95%가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이채림 양(6년)은 “디지털교과서의 가장 큰 장점은 클릭 한번으로 동영상이나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라며 “수업 내용과도 연관돼 있어 놀면서 공부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민 군(6년)은 “줄 글만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하면 동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어 이해가 쉽다”고 말했다.
◆보조교재와의 연계학습이 중요
이날 사회 수업은 ‘나만의 시무 28조 만들기’란 자기주도학습 활동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학생들은 각자의 바람을 담은 상소문을 만든 후, 그 내용을 QR 코드에 담아 학급 홈페이지 과제란에 올렸다. 발표를 원하는 학생은 제출한 내용을 전자칠판에 띄워 다른 친구들과 공유했다.
최종원 선생님은 “디지털교과서를 수업에 도입한 이후, 다양한 연계학습을 통해 학생들과 손쉽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라며 “특히 QR 코드나 증강현실 등을 보조 교재로 활용하면 학생들의 수업 집중도를 크게 높일 수 있어 도움이 된다”고 귀띔했다.
김영택 교장 선생님은 “시골 학교의 학생 수가 점점 줄고 있다는데 우리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라며 “하지만 시내에서 차로 30분이나 떨어진 우리 학교 재학생이 70여 명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디지털교과서와 보조 IT기기의 적극적 활용 덕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