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바튼 아카데미>
1. 외롭고 상처입은 사람들은 때론 아픔을 불편한 방식으로 드러내곤 한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괴팍스러운 행동을 하며 상대에게 독설을 날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때 고립된 공간에서 만났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화 <바튼 아카데미>는 상처입은 사람들의 아픔과 갈등 그리고 결국 이어지는 사랑과 연대의 순간을 포착한다. 1970대라는 이제는 오래된 과거의 시간을 배경으로 인간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관계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다.
2. 크리스마스 시즌 유명 사립고등학교 <바튼 아카데미> 학생들은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아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부모가 이혼하고 자신의 시간을 갖기 위해 여행을 떠난 어머니 때문에 돌아갈 수 없는 한 남학생은 학교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학생을 돌보기 위해 열정적이고 교육적이지만 지나치게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독신의 남성교사와 최근 전쟁터에서 아들을 잃은 식당매니저인 흑인 여성만이 학생과 함께 한다. 모두가 즐거운 시간인 크리스마스에 이들은 고립되고 적막한 공간에서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차츰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알게 되고 사소한 에피소드 속에서 각자가 숨겨온 아픔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3. 이들의 슬픔은 개인적인 영역이지만 그것은 넓은 시각에서 볼 때 사회적인 불평등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교장에게 학생들을 관용적으로 교육해달라고 요구받는 교사는 그것이 부유한 학부모의 버릇없는 자식의 낙제를 취소해달라는 압박이라는 점을 알고 있으며, 흑인 여성의 사망한 아들은 징집을 피한 부유계층의 자식들 대신 참전하였다는 점이 밝혀지는 것이다. 홀로 남은 학생 또한 아버지가 정신병원에 방치되어 있고 자신은 어머니의 새로운 삶에 방해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고립되어 있다. 이러한 표면적인 아픔은 그것과 관련된 또다른 아픔과 연결되어 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외면적 모습과 행위를 단순하게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이 표현된다.
4. 서로가 맞지 않은 학생과 교사이지만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평소에 가졌던 불쾌함 대신 서로의 장점과 인간적 깊이를 발견하게 되며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피상적인 만남에서 제한되었던 인간적 관계가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극복하면서 친숙함으로 변모한 것이다. 변화된 관계는 결국 학생의 금지된 행동을 옹호하며 기꺼이 자신이 책임을 지고 학교를 그만두는 교사의 결단으로 표현된다. 무엇보다도 사랑했던 학교였지만 교사는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쫓겨가야 하는 학생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책임으로 돌린 것이다.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를 그린 수많은 교육영화 중에서도 특별한 교사와 학생의 관계이다. 학생의 아픔을 대신한 교사의 희생, 그것은 학생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였지만 오랫동안 페쇄되어 있던 자신의 장벽을 무너뜨린 새로운 도전의 결심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 마지막 학생은 표정으로 감사의 뜻을 전한다. 교사는 ‘열심히 하라’는 말로써 그가 ‘바튼 아카데미’에서 경험했던 교사의 존재적 가치를 전달한다. 인간들 사이에 나타날 수 있는 드물지만 아름다운 모습이다.
5. 영화는 1970년을 배경으로 조금은 낡은 무대 속에서 어느 시대든 중요한 인간적 가치와 사회적 불평등의 진실을 조금은 유머스럽고 조금은 시니컬한 형태로 재현한다. 영화 초반 서로에게 반감을 드러내던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에게 도움을 주었고 서로의 아픔을 공감했던 것이다. 이제는 흘러간 과거의 시간이기에 그러한 인간적 따뜻함은 아쉬운 과거의 온기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최근 한국에서도 사람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은 <응답하라 1988> 또한 과거의 부족함과 아쉬움 속에서 발견하는 따뜻함과 연대함이 깊은 감명을 주기도 하였다. AI가 지배하고 점차 분열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재, 과거의 시간 속에서 발견하는 여전히 중요한 인간적 관계는 영화 속 흐르는 오래된 노래의 감성과 함께 현재의 우리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첫댓글 - 군중 속의 고독, 소외받는 외로움은 현대인의 숙명적 운명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