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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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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타락 후의 인간을 하나님의 언약에 기인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족장 시대와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신 초기의 구속사를 약속의 땅 가나안 입성 이전까지의 역사에 다루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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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서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민족의 역사가 하나님의 왕국이 세워져 신정이 이루어지는 약속의 땅가나안에서 전개되는 것을 다루는 언약백성의 삶과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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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백성의 경험과 감정 및 사고를 반영한 노래와 지혜로서 언약 백성의 삶에 대한 내면적 성찰과 지혜의 권면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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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사역하는 선지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전하는 예언의 말씀을 중심으로 기록한 것으로 하나님의 언약 파기에 대한 책망과 함께 새시대-새언약의 제시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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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지서인 12선지서에서 호세아서를 보면 제일 첫 번째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12선지자들의 사역 시기를 보면, (1) 오바댜 : 850/40 (2) 요엘 : 835-820 (3) 요나 : 780 (4) 아모스 : 760 (5) 호세아 : 755-710 (6) 미가 : 740-687 (7) 나훔 : 650/30 (8) 스바냐 : 640-610 (9) 하박국 : 600 (10) 학개 : 520 (11) 스가랴 : 520 (12) 말라기 : 458/44 순서로 오바댜의 선지자 사역 시기가 가장 빠르다.1)
그럼에도 호세아서가 12선지서에서 가장 앞에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12선지서의 배열과 구성은 연대기에 따른 것이 아니다. 이는 대선지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대선지서는 이사야 - 예레미야, 애가 - 에스겔 - 다니엘의 순서이나 연대기에 의한 순서는 이사야 - 예레미야, 애가 - 다니엘 - 에스겔 순서이다. 12선지서는 연대기에 의해서 배열되는 구성을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12선지서의 다른 선지서와 갖는 공통 주제와 그에 따른 근접 문맥을 연결하려는 의도로 이루어졌음을 전제하고 있다. 그래서 호세아서가 독립적인 한 권이 아니라 다른 12선지서와의 통일성2)에 의해서 12선지서 곧 소선지서 전체를 한 권의 책으로 본다.
Ⅱ. 호세아서의 정경적 통일성
호세아서는 소선지서로 불려지는 12선지서에 해당된다. 호세아서는 12선지서를 차지하고 있는 한 권으로 이해하여 왔으나, 최근 20년 동안에는 소선지서인 12선지서를 한 권으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2001년 SBL 세미나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으며, 2007년 Interpretation 61권 2호에서도 “열두 권의 책을 신학적으로 읽기”("Reading the Book of the Twelve Theologically")라는 주제로 특집이 마련되기도 했다. 후자의 편집장인 노갈스키(James D. Nogalski)는 표제어를 중심으로 한 연대기적 구조 문제와 핵심어(catchwords), 암유(allusion), 반복되는 주제(recurring themes)를 통해 열두 권의 통일성을 고찰한다고 하였다.3) 그는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개별적으로 예언하게 하는 것을 통해서 말씀을 맡기는 개별적인 신탁보다는 예언적 책에 의해 전달되는 메시지로서의 전환에 주목하고 있다.4) 이러한 경향은 호세아서를 12선지서의 다른 성경과 구분하는 책으로서가 아닌 12선지서 전체가 동일한 내용의 통일성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해를 갖는 것이다.
Ⅲ. 호세아서 명칭-기록 연대-내용에 대한 이해
호세아서의 히브리어 성경의 명칭은 ‘호쉐아/호세아’(['ve/h)이다. 이 단어는 “돕다, 보존하다, 구출하다, 안전하다, 구원을 가져오다(구원을 이루는), 구원하다(구원자), 승리를 얻다”는 뜻을 지닌 동사 ‘야솨’([v'y:)에서 온 것으로, 그 뜻은 ‘구원’(salvation)이다.5) ‘야솨’란 뜻은 속박에서 풀림을 받은 자유의 상태를 말함이 원의(原義)인데, 넓은 광장으로 옮겨서 자유로운 공간 속의 환한 분위기를 뜻하기도 하는 것으로, 속박과 구속이 없는 자유의 행동이 ‘야솨’란 말 속에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야솨’란 말로써 “야웨는 구원자이시다.”라는 표현을 구약이 즐겨 사용하고 인명으로 즐겨 택했다.6) 동사 ‘야솨’([v'y:)에서 유래한 이름으로는 ‘호세아’ 외에도 ‘여호수아’ 및 그리스도이신 ‘예수’란 이름이 있다. 70인경(LXX)의 Ώσηέ, 라틴어의 Hoseae, 영어의 Hosea, 그리고 우리말의 ‘호세아’는 모두 히브리어 성경에 근거하고 있다.7)
호세아서의 기록 연대는 호세아서를 기록한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한 시대인 B.C. 755-710년 사이입니다. 호세아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 의해서 세워진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주로 왕과 제사장 같은 고급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을 상대로 사역한 선지자이다. 이때는 유다에서는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대를 이어서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고, 또한 이사야와 미가 두 선지자가 사역의 활동을 하고 있었고, 이스라엘에서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세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과 같은 이름인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Ⅱ가 왕이 되어 다스리던 시대였다(호 1:1).8)
호세아서는 하나님께서 브에리의 아들 선지자 호세아에게 부정한 여인과 결혼하게 하는 말씀을 하시는 것으로 시작되어 창녀 고멜과 결혼하고 그녀에게서 음란한 자식 이스르엘(la[er>z>yI), 로루하마(hm;j;ru al), 로암미(yMi[' al)를 낳는 호세아 개인적 경험을 다루지만,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일을 통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에 대한 관계를 설명하여 주려는데 있다. 그래서 남편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부정한 아내(이스라엘)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시며, 결국 남편이신 하나님께서 그녀를 사서 축복의 처소로 회복시켜 주심을 보여주신다.9)
Ⅳ. 호세아서의 선지자 메시지 사역
호세아서에 나타나고 있는 호세아의 선지자 메시지 사역은 선지서에 나타나고 있는 다음의 다섯 가지 공통된 특징을 띤다.
(1) 죄악(罪惡) :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향한 말씀(뜻)을 불순종하여 악한 죄를 지음
(2) 질책(叱責) :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악한 죄를 질책하심
(3) 경고(警告) : 악한 죄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심
(4) 권고(勸告) : 악한 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의 회개를 권고하심
(5) 약속(約束) : 회개에 따른 회복의 약속에 의한 구원
Ⅴ. 호세아서의 중심 사상
호세아서는 하나님께서 브에리의 아들 선지자 호세아에게 부정한 여인과 결혼하게 함으로 호세아가 창녀 고멜과 결혼하고 세 명의 음란한 자식들을 낳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으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이 사랑을 오늘날 교회는 그리스도인이 믿음의 삶으로 실천해 보여야 할 도덕적인 사랑으로 말하고 있다. 그래서 호세아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모범으로 해서 그리스도인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 보일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호세아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음란한 여인 고멜에게서 나온 음란한 세 명의 자식에 의해서 나타내 주시고 있는 것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신하여 떠나 다른 연애하는 자인 우상을 숭배하여 하나님의 저주의 심판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스라엘에게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나타내시면서 이스라엘을 데려와 신부 삼으시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호세아서는 인간의 도덕적인 사랑의 행위에 있지 않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에 있다. 따라서 호세아서 전체에 흐르고 있는 중심 사상은 하나님의 언약이다.
호세아서는 이 중심 사상에 의해서 과거 역사의 회복 구절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각 단원마다 심판에서 회복의 약속을 주시고 있는 구원이, 그리고 회개의 권고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즉, 심판의 선고+회복의 약속
회개의 권고
이 셋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Ⅵ. 호세아서에서의 하나님의 언약에 나타난 그리스도
호세아서에서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1) 하나님께 악을 행하는 죄의 실상을 드러내시고 (2)그에 대해 질책하시며 (3) 심판이 있을 것의 경고가 매장마다 말씀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북왕국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이 갖고 계신 변함없는 사랑이 (4) 회개를 권고하시며 (5) 회복을 약속하시는 말씀이 선언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북왕국 이스라엘의 죄악을 질책하고 그에 대한 경고를 하시면서 또한 회개의 권고와 회복의 약속을 하시는 말씀을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에서 예언해 주시고 있는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호세아는 총 14장으로 되어 있다. 위에 따라서 각 장의 본문 내용에서 말씀되고 있는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호세아서의 표제
1절.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대를)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 ‘호세아서는 여호와께서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하신 말씀이다.’
2. 호세아서의 본문 이해
하나님께서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말씀을 시작하셨다. 호세아는 이 모든 말씀을 기록하였다. 호세아서는 이렇게 해서 주어졌다. 호세아가 기록된 때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직전에 선지자 호세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예언이 주어진 것이므로, 그 연대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주전 721년 직후로 보아 주전 720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본다. 호세아는 호세아서의 주제를 말해주는 표제가 되는 1절에서 알 수 있듯이, 남왕국 유다에서는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대를 이어서 왕이 되고 북왕국 이스라엘에서는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Ⅱ가 통치하던 때에 활동한 선지자로서 그 활동 기간은 주전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후인 710년경까지이므로 주전 755-710년경에 활동한 선지자이다.
여로보암Ⅱ가 통치하던 때의 북왕국 이스라엘이 어땠는가는 1장 2절부터 언급되어 시작되면서 1장 전체에 걸쳐, 그리고 호세아서 매장에서 이스라엘의 죄악을 질책하시고 그에 따른 심판을 경고하시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하였다.”
이것은 북왕국 이스라엘이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떠나 창녀처럼 다른 신들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악한 죄에 있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호세아서 매장에서 지적하여 언급하시는 것에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범죄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이에 대하여 각 장에서 보는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하여 다음과 같다.
(1) 호세아의 음란한 여인과의 결혼에서 나타내신 북왕국 이스라엘의 죄 : 우상숭배
1장 : 2절.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하였느니라.”
본 절은 호세아서 전체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스라엘 범죄가 어떤 것인지를 한마디로 규정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북왕국 이스라엘이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떠나 크게 음란한 것이다. 여기서의 북왕국 이스라엘의 음란한 행동은 우상숭배에 있는 악한 죄를 지칭하는 것이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다른 신들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호세아가 디블라임의 딸 고멜과 결혼하게 하여 아들을 낳게 하고 그 첫째 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 곧 “하나님이 씨를 뿌린다.”는 뜻의 이름을 짓게 하고,10) 또한 둘째 딸의 이름을 ‘로루하마’, 곧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한 자이다.”라는 뜻의 이름을 짓게 한 것에서 나타내주셨다. 그리고 셋째로 낳은 아들의 이름을 ‘로암미’라고 지어 부르게 하셨는데, 그 뜻은 “(이스라엘은) 내 백성이 아니다.”는 것에서, 그래서 “여호와이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아니다.”는 뜻을 나타내 주셨다. 여기서 첫째 아들의 이름인 ‘이스르엘’에서 뜻하고 있는 “하나님이 씨를 뿌린다.”는 뜻은 “하나님께서 파종하실 것이다.”(God will plant)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4절에서의 이스르엘은 씨를 땅에 흩어 뿌리는 것에서의 뜻으로 쓰이고 있어 “하나님께서 씨[이스라엘 백성]를 흩으실 것이다.”를 의미한다. 이는 4-5절에서 설명되고 있는 대로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예후의 왕조를 벌하여 예후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시는 것이었는데,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군대를 궤멸시켜 그 나라를 없애 버리시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에게서 떠나 다른 신들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악한 죄에 있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이 예언되고 있는 것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언해 주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딸의 이름인 ‘로루하마’에서 뜻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한 자이다.”는 뜻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고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북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더 이상 긍휼을 입을 수 없으며, 다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상태인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그러한 북왕국 이스라엘을 셋째 아들의 이름을 ‘로암미’라고 부르게 한 것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내 백성이 아니다.”, “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북왕국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의 음란한 행위에 있는 것은 하나님과 그 백성의 관계에서 끊어져 떨어져 나간 것으로 표현하시고 있다.
(2)하나님이 주신 금과 은으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이스라엘
2장 : 1-7절.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너희 어머니와 논쟁하고 논쟁하라 그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그의 남편이 아니라 그가 그의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그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그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내가 그의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a) 호세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이하에서는‘북왕국 이스라엘’또는‘이스라엘’로 병행하여 표기)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음란한 아내’로 비유하여 말하며, 하나님은 더 이상 그러한 이스라엘의 남편이 아니라며, 그 어미에게서 난 자식들은 하나님의 자식이 아니므로 그 어미의 자식들에게도 긍휼을 베풀지 않을 것임을 말씀한다. 음란한 아내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온갖 축복을 받으며 그것으로 먹고 마시고 온 몸을 치장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처럼 떠받드는 바알의 신상들을 만들 때 사용한 모든 금과 은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에도 그것으로 바알의 신상들을 만들어 숭배하는 악한 죄에 있으므로, 그들을 벌함으로써 더 이상 긍휼을 베풀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셨다.
(b) 하나님은 그러한 이스라엘에게 소망의 말씀을 주신다.“오,‘이스르엘’아, 네 아우와 누이의 이름을 고쳐라. 네 아우는‘암미’(“이제 너는 내 백성(자식)이다.”는 뜻)라 부르고, 네 누이는‘루하마’(“긍휼을 받은 자”라는 뜻)라고 불러라. 이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내 백성에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하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주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의 모래같이 불어나 셀 수도 없고 잴 수도 없이 될 것을 말씀하신 약속에 따른 것이다.11)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남으로써 하나님의 언약 파기에 있었으며 그러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버린 자식이라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과 맺은 언약에 의해서 그들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자녀로 있게 하실 것이며,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가 되어서 한 왕을 받들고 돌아올 것이며, 하나님은 그 백성을 그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에 다시 뿌려 놓을 씨가 되는 이스르엘의 날이 되게 하실 것이므로 그 날은 더할 수 없이 위대한 날이 될 것이라는 말씀에 의한 것이다.
(3) 많은 날들 동안 포로가 될 것에 있을 이스라엘
3장 : 1-5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a)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는 음행에 빠져 있음을 지적하신다. 이스라엘이 어느 정도로 마음이 빼앗겨져 있는가 하면,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다른 신들에게 온갖 좋은 선물들을 갖다 바치는 열애에 빠져 있다. 하나님은 그러한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들이 하나님에게 행하였던 것과 똑같이 대하여 행할 것을 말씀하신다.
(b) 그럼에도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이에 호세아는 은 15세겔과 보리 한 호멜 반을 주고 음녀로 전락한 그 여자를 다시 사왔다. 그러나 호세아는 그 여자, 곧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 후에 되어질 것임을 말한다. 다시 호세아의 아내가 된 여자[이스라엘]는 많은 날들 동안 함께 지낼 것이므로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아야 할 것인데,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들 동안 그들이 열애하여 섬겼던 이방 신인 우상을 숭배해 온 날들만큼 많은 날들을 이방 나라에 포로가 되어 있는 것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을 주로 섬겨왔던 믿음에서 부패에 있던 모두를 제거하여서 오히려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회복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의 포로 됨은 이 하나님의 은총에 있다.12) 유다는 포로 됨이 바벨론 포로 생활인 70년에 그치지만, 이스라엘의 포로 됨은 그보다 더욱 길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당하여 완전히 없어져 실질상 포로 됨에서 자유로운 몸에 결코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포로 기간에 하나님은 그들을 부패케 한 죄로부터 거룩하게 해 나가실 계획과 그 준비에 계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다윗 왕과 맺은 언약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와 자기들의 왕 다윗을 찾을 것인데 그렇게 다윗 왕을 찾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다윗 왕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여 자기들의 왕이신 메시야에게로 돌아올 것에서 이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진심으로 여호와이신 하나님께 나아가 경외하며 벅찬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온갖 좋은 것/선물/복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호세아 3장에서는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이 이스라엘의 구원이 근거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스라엘은 비록 유다로부터 분리되어 나가 독자적으로 독립해 나가고자 하며 우상숭배의 부패에 있어왔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이스라엘을 다윗 왕국과 그 집에 두고서 영원히 견고함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보호에 두고 계신다.
(4) 제사장들의 죄와 백성의 죄가 하나인 이스라엘
4장 : 1-2, 6, 12-13절.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 그들이 산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좋음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은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은 간음을 행하는 도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음란하게 우상숭배에 있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다른 신을 열애하여 우상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때문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로 올바르게 인도해야 할 제사장들에게서 극명하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면서도 하나님의 율법을 잊은 자로 있으며,13)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다. 이런 제사장들로 인해서 그 백성들은 ‘그 제사장에 그 백성’의 꼴 모습에 있다.
(5)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가 매일반
5장 : 3-5절,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
(a)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에브라임은 가장 세력이 큰 지파로서 주동적인 위치에 있으면서 북왕국 이스라엘 전체와 동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 에브라임은 다른 지파들을 하나님 앞에 있게 하는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데서 그 큰 세력이 쓰여져야 했다. 그러나 에브라임은 미스바에서는 백성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올무가 되고, 다볼산에서는 백성을 잡는 그물이 되고, 싯딤에서는 백성을 빠뜨리는 깊은 함정이 되어 버렸다. 그럼으로써 이스라엘이 음란한 여인이 남편을 버리고 떠나듯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 우상숭배와 음행으로 온몸이 더럽혀졌다. 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음란한 생각이 숨어 있어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나님이심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들이 저지른 죄 값대로 반드시 갚으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러한 이스라엘의 죄악에 유다도 동참하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는 결국에 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나 남왕국 유다나 매일반이었던 것이다.
(b) 에브라임은 이스라엘 족속 10지파 중에 가장 주동적이고 지도적인 지파이다. 따라서 이 호세아서에서는 에브라임 지파가 이스라엘 족속 전체와 동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엄청난 범죄 때문에 주께서는 그들을 버리시기로 하셨다. 본문은 4장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할 것임을 선언하신 것에 이어서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교만으로 망함을 예언하시는데, 유다도 이스라엘과 함께 넘어질 것을 선언하시고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과 유다는 자기들의 병세 - 정치적인 곤궁의 상태 - 가 중한 줄을 깨달아 앗수르의 대왕에게 특사를 보내 도움을 청하지만 그는 결코 그들을 돕지도 병을 고치지도 못할 것이었다: (1) 북왕국 이스라엘 - 여로보암 2세 때의 백성들의 부패만 아니라 그 아들 스가랴의 타락은 마침내 여로보암의 왕가가 무너지고 뒤이어 혁명에 혁명을 거듭하면서 앗수르에 점령을 당했다.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이스라엘의 므나헴 왕은 앗수르 왕 티글랏빌레셀(B.C. 745-727) 에게 은 일천달란트의 조공을 드리며 앗수르의 도움을 얻으려 했으나 헛된 일이었고(왕하 15:19), 또 이스라엘의 최후의 왕 호세아(B.C. 732-723)도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며 왕위를 계속했으나, 앗수르 왕 티글랏빌레셀이 죽자 한 때 앗수르이 굴레를 벗어나 볼려고 하였으나 다시 살만에셀(티글랏빌레셀의 아들)에게 굴복하여 조공을 바치며 명맥을 유지해 가다가 애굽과 동맹하고 앗수르에서 벗어나려고 하다가 앗수르에게 점령을 당하고 말았다(왕하 17:3, 4). (2) 남왕국 유다 - 또 이때 남왕국 유다에서의 아하스 왕(B.C. 731-715)도 왕위에 있는 동안(16년간)에 친앗수르 정책을 쓰면서 이스라엘의 압력과 블레셋과 에돔의 공격을 막아보려고 애썼다. 이처럼 그도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그의 후원을 얻어 보려고 했으나 앗수르는 유다를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괴롭게 했다(대하 28:20, 21). (3) 13절은 그러한 사실의 시대적 배경을 잘 나타내 보여 준다.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 그런데 이처럼 북왕국 이스라엘도 남왕국 유다도 앗수르를 의지하나 그 의지가 헛된 것은 14절에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라고 말씀하여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때문임을 밝힌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도 유다도 심판하실 것이 벌써 작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4)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처럼 섭리하신 이유는 이것이 그들에게 경고가 되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실 것 때문이었다. 즉 이스라엘이나 유다나 모두 하나님이 아닌 앗수르를 의지하는 것에서 자신들 정권을 쥔 왕국을 유지해 보려고 하나 그 모두가 허사로 돌아갈 것인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마음이시다. 그들이 회개하기만 하면 다시 돌아오실 것을 시사해 주시는 구절을 볼 수 있는 곳은 15절인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이다.
(6) 아담처럼 하나님의 언약을 어긴 이스라엘
6장 : 7절.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a)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이 무엇 때문에 망하는지를 예언해 주시고 있다. 에브라임은 다른 신들을 따라가고 이스라엘은 완전히 더러워졌다. 이러한 이들의 운명은 마치 가을걷이가 풍년을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은데(9-10절), “오, 에브라임아,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으랴?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으랴? 너희들의 인애<진심>는 아침 안개처럼 흩어지고, 이른 아침의 이슬처럼 쉬 사라지고 있구나. 그러므로 나는 예언자들을 보내어 너희의 멸망을 알리고 내 입에서 나가는 말씀으로 너희를 죽이겠다고 경고하였다. 밤이 지나면 낮이 오듯이 나의 심판이 어김없이 너희에게 닥쳐올 것이다.”(4-5절). 이스라엘은 형식적으로 지킬 것은 제대로 지키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단지 격식과 껍데기가 아니라 중심이요 주의 기뻐하심에 따라 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은 6절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인애이다. 나는 너희들이 번제의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한다.”14) 라는 말씀으로 토해내지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이 인애가 없으므로 망할 것이 선언되고 있는 것이다.
(b)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있지 못한 까닭은 그들은 아담처럼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김에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이스라엘의 죄악이 아담이 하나님의 언약을 어긴 그 죄성에 따른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하여 인애가 없었던 문제점의 본질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언약에서 말씀되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에 그들의 마음이 있지 않은 것에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언급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다루시는 것에서 다름 아닌 그 문제점을 해결하실 것을 나타내시고 있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어기고 있는 그 하나님의 언약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아담처럼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갔지만, 그래서 그렇게 언약 파기에 있은 이스라엘은 폭력이 들끓는 도시가 되었고 발자국마다 피가 묻어 있으며 숲속에 숨어 행인들을 강탈하는 강도떼처럼 제사장들은 세겜으로 가는 길목에서 살인과 온갖 죄를 저지르고 있어 이스라엘에서는 무서운 일만 벌어지고 있지만,15)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시고 있으며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언약적 관계에 두고 있음을 함의하고 있다.
(7)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부르짖지 않고 이방 나라를 의지하므로 망할 것임을 재차 강조함
7장 : 7-16절. “…그들 중에는 내게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로 말미암아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 도다…그들은 돌아오나 높으신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니…”
여기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부르짖지 않고 강대국인 이방 나라를 의지하므로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은데 따라 망할 것을 예언해 주신다. 이스라엘의 죄악의 극심함은 그들이 하나님을 부르짖지 않은 데 있었다. 하나님께서 한탄하시는데 이스라엘의 잘못, 그것은 그들이 이방 나라인 외세에만 의지하려 하지 그들의 참 신이신 하나님을 부르짖지 않으며, 하나님께 돌아오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7절, 10절, 14절, 16절에서 네 차례에 걸쳐 반복되어 지적되고 있다.
(8)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원인은 하나님의 언약을 어긴데 있음
8장 : 1절. “나팔을 네 입에 댈지어다 원수가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그들이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
하나님은 자신을 찾지 않고 당시 강대국인 이방 나라를 의지하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언하시는데,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씀해 주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율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들의 운명은 노예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다. 13절에서 “저희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기 전의 상태, 곧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그 때의 모습인 노예생활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을 의미하는데, 이번에는 그들이 의지하던 이방 나라에 포로가 되어서 노예생활을 하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이는 이스라엘 뿐 아니라 유다도 이스라엘과 동일한 죄악으로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처럼 동일하게 멸망할 것이었다(8:14)
(9)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이방 나라처럼 행음(우상숭배)하는 부패에 있으므로 열방 중에 유리하는 자가 될 것임
9장 : 1절, 17절.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리니 그들이 여러 나라 가운데에 떠도는 자가 되리라.”
본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이방 나라처럼 행음(우상숭배)하는 부패한 죄악이 드러나고, 그들의 운명은 결국 온 세상에 흩어져서 집도 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는 유리하는 자가 될 것을 선언하는 예언의 계시인데, 왜 하나님께서 그처럼 그들을 버리시는지 그 이유를 알게 해주신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지 않아 불순종하기 때문이다.
(10) 이스라엘이 가장 큰 죄인 (1) 신앙의 변절<두 마음을 품음>과 (2) 우상숭배로 망함
10장 : 1-3절, 10절.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 그들이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리요 하리로다…내가 원하는 때에 그들을 징계하리니 그들이 두 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서 그들을 치리라.”
(a) 본문에서는 포도나무에 비유하여 이스라엘의 죄악을 말하고 있다(1-3절). 그들의 악과 죄가 얼마나 극심한지는 다음과 같이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너희는 부정과 불법을 심어 온갖 범죄의 열매를 무성하게 키워 냈다. 또한 거짓을 신뢰하여 전쟁 무기와 막강한 병력만이 나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너희가 바란 대로 이제 그 보상을 온전히 받게 되리라!”(13절), “이스라엘은 가지마다 주렁주렁 탐스러운 열매가 가득한 포도나무처럼 번영을 누리고 있다! 그들은 그 재산을 제단과 기념비와 신상을 세우는 데에 쏟아 붓고 그 땅에 풍년이 들면 들수록 더욱더 많은 제물을 제단에 바치기에 바쁘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는 진실한 마음을 바치지 않으니 마땅히 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의 호화스러운 제단을 무너뜨리고 신상들을 쓰러뜨리실 것이다…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며 온갖 죄를 저지르던 아웬의 그 죄악의 제단들은 산산조각이 나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뒤덮일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산들을 향하여 '우리를 덮어 다오!'하고 애원하며, 언덕들을 향하여 '우리 위로 무너져 다오!'라고 울부짖을 것이다”(1-2, 8절) 여기에서 보는 대로 이스라엘은 두 마음을 품어 하나님이 아니라 거짓을 신뢰하여 강대국으로 있는 이방 나라를 의지하며 우상숭배에 있는 죄악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스라엘의 마음이 여호와이신 하나님과 강대국 이방 나라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그들의 마음이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진실되지 못하고 거짓된 것은 그들이 강대국 이방 나라를 신뢰하고 의지하며 우상숭배에 있는 죄악에서 잘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그러한 그들의 두 가지 죄, 곧 전에 지은 죄와 지금 저지르고 있는 죄를 한꺼번에 심판[징벌]하실 것이므로 망할 것을 예언하신다.
(b) 그러나 심판을 말씀하는 이 10장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은총이 아주 강하게 표시되고 있다.“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12절).16) 이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소망을 걸 수 있음을 보여준다.
(11) 이스라엘이 배은의 죄로 망함
11장 : 2절.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a)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품은 사랑이 어떤지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여 말씀한다. “이스라엘이 어렸을 적에 나는 그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그를 애굽에서 데려다가 내 아들로 삼았다”(11:1).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예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인 430년을 애굽에 있을 때를 이스라엘이 어렸을 적으로 표현하며 그 이스라엘을 아끼고 사랑하였으며, 그러한 그들을 애굽에서 데려다가 자신의 아들로 삼았다고 말씀한다.
그러나 “내가 예언자를 보내어 그를 부르면 부를수록 그는 바알이라는 우상들에게 짐승을 잡아 바치고 신상들 앞에 향을 피워 올리며, 점점 더 내게서 멀리 떠나갔다”(11:2).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이스라엘임에도 불구하고 배은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가진 죄악은 참으로 고질적이고 의도적이며 아주 완고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을 이방 나라에 의하여 멸망할 것과 그 나라에 복속케 할 것임을 경고하신다(11:5-6)
(b)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도 애절하다시피 깊고 넓다. 이 크신 사랑이 결국 그들을 다시 회복시켜 본 땅으로 되돌아오게 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큰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으로 그들이 회복될 것이 다음과 같이 말씀되고 있다. “오, 에브라임아, 그러나 내가 어떻게 너를 내어 버릴 수가 있겠느냐? 오, 이스라엘아, 내가 어떻게 너를 포기할 수가 있겠느냐? 내가 어떻게 너를 ㄱ) 아드마처럼 파멸시킬 수 있으며, 내가 어떻게 너를 스보임처럼 멸망의 길로 빠지게 할 수 있겠느냐? 내 마음이 다시 돌아섰다. 너를 돕고 싶은 마음이 불붙듯 타오르고 있다. (ㄱ. 소돔, 고모라와 함께 멸망한 도시들(신 29:23) 다시는 끓어오르는 분노가 시키는 대로 너희에게 벌을 내리지 않겠다. 에브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겠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다. 나는 너희 가운데에 살아 있는 거룩한 신이지 멸망이나 시키러 온 자가 아니다. 이제 내 백성이 나를 뒤따라 올 것이다. 내 백성이 사자처럼 포효하는 나의 소리를 듣고 서쪽에서 달려올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애굽 땅에서 새 떼처럼, 앗수르 땅에서 비둘기 떼처럼 떨면서 날아올 것이다. 내가 이렇게 그들을 다시 고향집으로 데려다 주어 살게 하겠다. 나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11:8-11)
이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역사에 근거하여 그들에게 있을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을 주신다. “그의 조상 야곱은 태 안에서 이미 자기 형을 속였고 장성한 뒤에는 하나님과도 싸움을 겨루었다. 그렇다! 그는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이 벌어지게 되자 울며 간청하여 축복을 얻어 내고 하나님께서는 벧엘로 그를 찾아와 말씀하셨다. '여호와, 온 세계의 주인, 나의 이름은 여호와이다. 너는 이제 네 하나님께로 돌아와 늘 사랑과 정의를 지키며 살고, 네 하나님께만 희망을 두고 지내라‘ ”(12:3-6) : ① 야곱이 태에서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은 일 - 이것은 야곱의 의식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김에 있게 하실 것에서 있는 하나님의 섭리로 있는 것이었다. ② 야곱이 형을 피하여 도망한 일 - 이것은 야곱이 형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받아내고 아버지로부터는 형 에서에게 축복하고자 하는 축복을 가로챈 일로 형 에서의 분노를 사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는 것에서 있는 일이었으나 이 모든 일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김에 있게 하실 것을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이루어 가시는 것에서 있는 일이었다. 따라서 이 일은 야곱 한 개인의 간교함으로 몰아가 야곱의 인격이나 성품의 결여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하여 외삼촌 라반이 있는 밧단 아람으로 도망하며, 이러한 야곱을 벧엘에서 만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맺은 야곱의 하나님으로서 또한 그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그를 그의 조상이 있는 땅으로 반드시 돌아오게 하실 것을 말씀하여 주시는 것에서 야곱이 그 하나님께로 마음을 두고 하나님께만 희망을 두고 살 것을 말씀해 주셨다. ③ 천사와 힘을 겨루어 대항한 일 - 이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께 서원한 것에서 나타내시고 있는 그를 반드시 조상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임에도 형 에서를 크게 두려워하여 얍복강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못하는 육체의 소욕에 있는 야곱의 생명을 보존하시며 그를 통해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루어 가실 것에서 있는 일이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이 사건에서 야곱이 하나님을 대면하여 겨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명이 보존된 것이 하나님에 의한 것임을 나타내시고 있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야곱, 곧 이스라엘에게 있는 일을 상기시켜 주시고 있는 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며 이삭의 하나님은 또한 야곱,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상기시켜 주시고 있는 것으로서 야곱, 곧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에 근거하여서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이스라엘 족속을 사랑하여 오셨다는 것을 나타내시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땅에서 구원한 바로 그 날부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되셨음을 말하면서 그들을 다시 광야시대 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며 만남을 가지셨던 천막에서 살게 하되 광야시대에서 축제를 벌이던 것처럼 살게 하며, 일찍이 선지자들을 보내어 많은 환상과 꿈과 비유로 자신의 뜻을 알려주던 대로 하실 것임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신을 배반하는 것은 죄악임을 말씀한다. 에브라임<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마음을 몹시도 괴롭혀 드렸으나, 하나님은 그들이 지은 피의 죄값을 그들에게 되돌려 갚으시고, 그들에게 받은 수치를 그들에게 되돌려 주실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족속을 사랑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를 범죄함으로 하나님을 격노케 함이 극심하였으므로 심판은 불가피한 것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런데도 에브라임은 하나님의 마음을 몹시도 괴롭혀 드렸다. 그들이 지은 피의 죄값을 이제 주께서 그들에게 되돌려 갚으시고, 그들에게 받은 수치를 그들에게 되돌려 주실 것이다.”(12:14) 즉,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에 있다는 것은 그들 자신들에게 그것이 어떠한 심판이 되는 것인지를 알라는 것이다.
(12) 이스라엘이 바알과 송아지의 헛된 우상숭배로 망함
13장 : 1-3절. “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떨었도다 그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하므로 망하였거늘, 이제도 그들은 더욱 범죄하여 그 은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되 자기의 정교함을 따라 우상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다 은장색이 만든 것이거늘 그들은 그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제사를 드리는 자는 송아지와 입을 맞출 것이라 하도다. 이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 같으며 쉬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 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
(a) 본문은 이스라엘에서 에브라임 지파가 하는 말은 온 이스라엘을 벌벌 떨게 만들만큼 이스라엘에서 지도적인 세력을 가진 위치에 있었으나 그러한 에브라임 지파가 바알을 섬겨 스스로 멸망을 불러들였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점점 더 불순종의 길을 가고 있으며, 은을 모아 여러 가지 신상들을 만들고 거기에 제사를 드리며 송아지 형상에 입 맞추어 숭배하는 어리석음에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그러한 그들을 하나님께선 아침 안개처럼, 쉬 말라버리는 이슬처럼, 타작마당에서 바람에 불려 나가는 쭉정이처럼 흩어지는 먼지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에서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얼마나 싫어하시는지를 잘 나타내 주시고 있다(1-3절).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온 뒤부터 언제나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이셨으며,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고 다른 구원자가 없이 그들을 광야에서 보호하고 살펴주셨는데도 -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냄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 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고 자주 우상을 섬김으로 하나님에 대한 크나큰 반역에 있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그 악한 죄값에 합당한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그러한 이스라엘을 길가에 몸을 숨기고 있는 표범처럼 기회를 노려 달려들 것이며, 새끼를 빼앗긴 암콤같이 달려들어 가슴통을 찌고 심장을 꺼내며, 그 자리에서 개들이 그것을 뜯어먹고 들짐승들이 갈기갈기 찢게 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에서 더욱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드러내 주시고 있다(4-8절).
(b) 그러나 이 심판을 예고하는 먹구름 같은 하늘에서도 빛나는 햇살이 한줄기 비취듯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보임으로 소망을 갖게 하시는 말씀을 하신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냄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 관계의 성립에 따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속량하시는 은혜의 약속에 있다. “내가 지옥에서 그들의 몸값을 치르고 살려내야 되겠느냐? 내가 죽음에서 그들의 목숨을 건져내야 옳겠느냐? 오, 죽음아, 네 재앙을 모조리 풀어 놓아 그들이 맛보게 하여라! 오, 무덤아, 네 가시들을 그들에게 보여주어라! 내가 절대로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14절).
(13) 지금까지에서 보게 되는 모든 불의로 넘어져 망함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회개의 권고와 회복의 약속이 주어짐
14장 : 1-3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호세아서에서 마지막 장인 본문은 참으로 감격스러운 말씀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에서 보게 되는 모든 불의로 넘어져 망함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촉구하시며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하나님께서 베풀고 싶어 하는 그 큰 사랑을 담뿍 받아 누릴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이루어질 축복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침을 알 수 있는데, 그러한 축복은 단지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확장되어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깨닫고 그에게 돌아오는 자는 모두 다 그런 축복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이 예언의 말씀을 깨닫는 ‘지혜자’요 그 깨닫는 지혜를 따라 의로운 길을 가는 ‘의인’이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우상을 숭배하는 악한 죄에서 돌이켜 돌아오는 자이다. 그러나 죄인은 자기들의 죄에 걸려 넘어지고 마는 자이다. “이 모든 말씀을 깨달을 수 있을 만큼 지혜로운 자는 누구인가? 이 모든 것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슬기로운 자는 누구인가? 주님의 길은 곧고 평평하다. 의로운 사람들은 그 길을 잘 걸어갈 것이지만 죄인들은 그 길에서 자기들의 죄에 걸려 넘어지고 말 것이다.”(9절).
Ⅶ. 결론
이제 우리는 다음의 질문을 통해서 호세아서의 결론을 말하고자 한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인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나님께서 어찌 선지자에게 그러한 명령을 내리실 수 있는가? 라고 여기는가? 그러면 이제 다음과 같이 묻겠다.
(1) 하나님이 언약을 파기하고 우상숭배에 있는 이스라엘을 받아들이기 어려운가?.
(2) 선지자가 음녀를 아내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가?.
어느 쪽이 더 받아들이기가 어려운가? (1) 인가? (2) 인가?
(1) 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선지자가 음녀를 아내로 받아들이게 하시는가? 선지자에게 부도덕한 행실을 하나님이 조장하고, 강요하는 것이겠는가? 호세아서는 음녀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며, 그러한 음녀를 아내로 받아들이는 선지자의 관용과 사랑의 행실 문제를 다루어 가시는 것이 아니다.
호세아서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죄악과 이 죄에 동참하고 있는 남왕국 유다의 죄악을 다루는 것에서 (1)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회개의 권고’를 하시며(14:1-3), (2) 이로 인해서 ‘미래에 있게 될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하시며(14:4-8), (3) 이스라엘의 지혜가 의인의 길이요 생명의 길에 있을 것인지, 악인의 길이요 멸망의 길에 있을 것인지 에서, “너희는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의 권고를 통하여(14:9), 그 선택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아담언약-아브라함언약-다윗언약에 나타내시고 있는 언약의 주이신 메시야/그리스도를 알게 해주시는 것이 호세아서의 마무리인 결론이다.
호세아서에서의 하나님의 언약/아담언약-아브라함언약-다윗언약은 그리스도가 약속되고 있는 언약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부르짖음에 있는 것은, 그래서 하나님께로 나아온 하나님의 백성으로 있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인 다윗 언약에 약속되고 있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리고 그보다 더 훨씬 오래 전인 하나님께서 아담과 언약을 맺으시고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곧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약속되고 있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우리가 선택과 구원의 은혜를 입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다. 호세아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알게 해 주시는 것이 이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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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선지자에서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는 요나, 아모스, 호세아 이며, 남왕국 유다에서 활동한 선지자는 오바댜, 요엘, 미가, 나훔, 스바냐, 하박국, 학개, 스가랴, 말라기 이다.
2) 최근의 구약학자들은 12소선지서를 전체적인 한 권으로 보는 견해를 ‘문학적인 통일성’으로 말한다.
3) 노갈스키(James D. Nogalski)는 소논문을 통하여 12선지서의 편집에 대한 표지로서 다음 4가지를 들고 있다. (1) 여호와의 날 (2) 그 땅의 풍요성 (3) 하나님 백성의 운명 (4) 신정론(theodicy). 장 재, 제5회 개혁신학회 구약학회 학술세미나 ‘소선지서 연구의 최근 동향과 전망Ⅱ’『최근 호세아서 연구의 동향과 전망』, 2011. 11. 20.
4) James D. Nogalski, What kind of "Book" Is Twelve? 인용.
5) 안영복, 구약요람(서울: 성광문화사, 1980), p.210.
6) 최종진, 구약성서개론(서울: 도서출판 소망사1986), p.427.
7) 안영복, loc. cit.
8) 호세아 1장 1절은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1) 여기에서 볼 수 있는 대로 남왕국 왕들의 이름을 먼저 기록한 것은 구속사적 입장에서 볼 때 다윗의 직계로서 다윗에게 준 ‘언약’의 정통성 때문이다. 김희보, 구약호세아 주해(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1983), p.19.
(2) 또한 여기에서 볼 수 있는대로 호세아가 활동하던 시대의 남왕국 유다의 왕들의 계보를 보면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라고 했다. 하지만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의 계보는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Ⅱ 한 사람만 기술하고 있다. 사실 선지자 호세아가 활동하던 시대의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의 계보는 여로보암Ⅱ 한 사람만이 아니다. 그를 위시하여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및 호세아 왕이 나라를 다스렸다. 그럼에도 여로보암Ⅱ 한 사람만이 기록된 것은 그의 통치와 함께 그의 말기와 후 시대의 이스라엘의 형편은 나라가 부패하여 극에 달했으며, 국권은 급전직하(急轉直下)로 사양길에 들어서 혼란을 거듭하며 멸망으로 치닫고 있던 시대였다. 여로보암Ⅱ세의 아들 스가랴가 불과 6개월만에 살룸의 반역으로 죽음을 당하여 여로보암의 집은 망했으며(B.C. 752), 살룸 왕은 왕위에 오른지 불과 한 달만에 므나헴에게 죽임을 당했고(왕하 15:14), 왕 위에 오른 므나헴은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많은 조공을 바침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왕하 15:19), 그후 그 아들 브가히야가 왕이 되었으나 궁중 반란으로 베가에게 죽었다. 그리고 베가는 반 앗수르 정책으로 국권을 회복하려 했으나 호세아의 반란으로 그 역시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호세아 왕은 앗수르의 보호를 받으며 왕위에 올랐으나 기회를 얻어 앗수를 배반하고 친애굽 정책을 펼침으로 인해서 앗수라에게 망했다. 이렇게 호세아가 선지자로 활동하던 당시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죄악이 관영하고 국가의 반란이 거듭되는 혼란기에 있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왕들은 여로보암Ⅱ를 비롯하여서 하나같이 이스라엘의 멸망을 불러 온 장본인들이었으므로 그들의 이름은 생략했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입장에서 볼 때는 거론할 가치조차 없는 자들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희보, 구약호세아 주해(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1983), p.18-19.
9) 안영복, loc. cit.
10) 이스르엘이란 이름이 지닌 뜻에서의 ‘씨’는 아들 - 자손(후손) - 이스라엘 백성의 발전적 개념을 갖는다.
11)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의 모래같이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성취로 있는 ‘약속의 씨’에 의해서 되어 진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서 약속되고 있는 씨인 아들[자손]을 여럿이 아닌 ‘오직 한 사람(아들)’을 가리키는 것인데, 곧 그리스도라고 설명해 주고 있다(갈 3:16).
12) ‘많은 날 동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밈 랍빔’은 문자적으로는 ‘많은 날들’로서 특정한 기간이 아닌 불특정한 기간인 아주 많은 날들인 ‘아주 오랜 후에’를 의미하는 것으로 문맥상 북왕국 이스라엘이 포로되는 기간이다. 이 기간은 남왕국 유다의 포로 기간인 70년보다 훨씬 더 긴 오랜 기간이 될 것인데, 이스라엘이 포로됨에 있어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는 이 기간이 그들에게서 어떤 성격의 것이 되게 할 것인지를 4-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범람하였던 부패한 여섯 가지 요소들을 제거하여 이스라엘이 거룩하여질 것이며 이후에 그들이 다시 하나님과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을 것에서 말씀해 주신다. 이때 4절에서의 여섯 가지 부패 요소는 각각 세 가지 범주로 엮여 있다. (1)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을 것이다 : 통치자 왕과 왕이 임명한 총독이나 방백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없을 것이라는 것인데, 이는 이스라엘이 열애하여 따라 다녔던, 그래서 ‘주’로 섬겼던 ‘다른 신’, 곧 ‘우상’이다. 이스라엘이 열애하며 의지하였던 우상은 결코 그들을 책임지는 ‘주’가 되지 못할 것임을 나타내신다. (2)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을 것이다 : 제사는 희생 제사를 지칭하는 것이며, 주상은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를 위해서 세웠던 아세라 목상 등 우상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하였던 희생 제사를 우상에게 드려가면서까지 하나님의 진노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제사와 주상을 이스라엘에 없게 하실 것이므로 더 이상 그들에게 희생제사를 요구할 수 없게 할 것임을 나타내신다. (3) 에봇과 드라빔도 없이 지내게 할 것이다 : 에봇은 대제사장 제복 외부체 부착하였던 종교적 도구로서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사용하였던 것, 곧 ‘신탁’의 의미로 쓰였으며, 드라빔은 작은 규모의 우상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탁에 의해서 하나님이 그들의 길을 인도하심에 있는데, 이스라엘은 에봇과 드라빔을 사용하여 우상에게 그들의 장래를 묻고 의지하였다. 하나님은 이것들을 그들에게 없게 하실 것임을 나타내심으로써 더 이상 이스라엘의 희망이 되질 못한다.
13) 현대어성경은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잊은 것”을 “하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전달하기를 마다하였다.”라고 의미에서 전달하고 있다. 이런 그들은 7, 8절에서 “백성들의 죄악으로 먹고 살면서 그것도 모자라 더 많은 죄들을 부추긴다.” 이는 “제사장의 수가 많을수록 더 많은 죄를 쌓고 하나님의 영광을 우상들의 치욕과 바꾸었다.”라고 말해지고 있다.
14) 참조. 사무엘상 15:22-23. 하나님께서 제사를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보다 좋아하시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다.
15) 북왕국 이스라엘 제사장들의 악한 횡포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사실 그대로가 묘사되고 있다는 견해이다.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 제사장들은 도피성의 하나인 세겜의 길목에서 이곳에 몸을 피하러 오는 사람이나 북이스라엘의 경건한 신앙인들 중 절기 때마다 남유다의 예루살렘으로 내려가는 이들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한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본다(Pusey). 다른 하나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보는 것이다. 족장 시대에 제사장 직분을 구성하는 지파의 조상 레위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더불어 동일한 장소 세겜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잔혹하게 죽인 것처럼(창 34:2-31) 당시 제사장들이 사람들에게 잔혹하게 대하였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란 견해를 갖는다. 두 견해 모두가 가능성이 있으나, 원문 표현이나 당시 역사적 정황, 즉 북왕국 이스라엘 제사장들이 혈통적으로 레위 지파와 상관이 없다는 점에서 전자의 견해가 후자의 견해보다 더 지지를 받는다. 옥스퍼드원어성경대전(서울: 제자원, 2008), p.290.
16) 현대어성경. “너희는 선한 행실의 씨를 뿌려라. 그러면 좋은 열매를 거둘 것이다. 너희는 묵은 땅을 가는 농부처럼 다시 시작하여라. 이번에는 나 여호와에게 물어 보고 시작하여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가서 온갖 좋은 복을 쏟아 부어 주겠다.”
첫댓글 신실하게 언약을 이루시는 그 은혜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없었음을 깨닫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인쇄해서 되새김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집사님이나 우리를 끌고가시는역사가 없으면 한시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따를수 없지요^^그래서 나의 구원을 추호도 의심하면 안되지요~ 오직 나의 구원은 하나님에게서만 봐야합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약속의 씨를 바라보는 우리는 참 행복한자들입니다. 한주간도 박집사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