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오랜 벗 정한석 평론가가 묻고 홍상수 감독이 답하다)
Q1. 영화의 제목이 알려지고 나서 항간에 화제가 된 것이 있습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가 아니라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라고 띄어 쓰지 않은 제목으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감독님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더 커진 것 같습니다. 사소해 보인다 해도, 띄어쓰기 없는 이 작명의 동기에
관하여 말씀해주신다면 흥미로워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홍 제목이 글자가 워낙 많아서 그렇게 해본 겁니다.
Q2. 요약컨대 전작 <자유의 언덕>은 “시간이란 틀의 압력이 약해지면 뭐가 달라질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하신
것이라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시작하시면서 느낀 호기심 내지는 단상
내지는 기대란 어떤 것이었는지, 그에 관하여 조금 상세히 듣고 싶습니다.
홍 인물의 감정적 태도의 변화, 그에 따른 제스처, 얼굴표정, 말투 등의 변화를 가지고 1부와 2부 사이의 차이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이부 처음의 두 신에서 거의 같은 대사를 유지하면서 그런 종류의 차이의 힘만으로 밀고
나가다가, 관객이 그런 식의 차이에 좀 익숙해졌을 때 다른 종류의 좀 더 굵은 차이들도 하나씩 생겨나는 식으로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Q3. 영화가 촬영된 곳은 경기도 수원입니다. 수원이라는 곳이 감독님에게 준 인상이 어떤 것이었기에 여기서
촬영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셨는지요.
홍 제가 수원역에 옛날에 한번 가본 적이 있었습니다. 역 근처에 잠깐 있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온 거 같습니다.
그 이후로 괜히 수원 하면 겨울날 배회하는 남자가 떠올랐습니다.
Q4. 조금 특별해 보이는 구체적 장소가 한 곳 있습니다. 주인공 함춘수(정재영)와 윤희정(김민희)이 술을
마시는 조그마한 횟집입니다. 감독님 영화의 인물들은 주로 마주 보고 앉습니다. 그때 인물들이 앵글 안에서
편하게 보인다고 감독님은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횟집서 두 인물은 좁고 긴 탁자를 따라
카메라의 전경과 후경을 차지하며 수직으로 나란히 앉게 됩니다. 이곳은 함춘수와 윤희정이 급속히 가까워지는
중요한 장소인데요, 이러한 앵글과 인물의 앉은 위치 등등에 영향을 미친 것들은 어떤 것들이었는지요.
홍 헌팅 때 그 장소를 정하면서 카메라 앵글이 좀 힘들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도 거기서 하기로 했는데,
왜 그런 찍기 힘든 장소를 굳이 정했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문 밖으로 보이는 것들 때문이었을까요?
주인이 호의적이라서 그랬을까요? 하여간 촬영하는 날 앵글 때문에 조금 애를 먹었고, 배우들의 자세나
움직임에 약간의 조정이 필요했습니다.
Q5. 정재영 배우와 감독님은 영화 <우리 선희>에서 처음 만나 함께 일했습니다. 정재영 배우는 <우리 선희>에
출연하는 세 남자 배우 중 한 명이었습니다. 감독님은 그를 중심으로 한 번 더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감독님의 영화는 감독이 배우의 인상에 세심하게 반응하면서 그것 자체로
영화가 완성되어갑니다. 그렇다면 정재영 배우의 어떤 면모에 특별히 반응하게 된다고 감독님 스스로는
느끼셨는지요. 그리고 그 반응들은 영화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요.
홍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 평상시 솔직하게 쳐다보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쳐다봄의 결과물들이 적당한 유머가 섞여진 솔직한 표현으로 저에게 자주 전달되었고,
그게 저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고, 그 사람에 대한 믿음 같은 것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게 영화의 인물이나
이야기의 진행, 결말에 다 영향을 주었습니다.
Q6. 김민희 배우는 이번 영화에서 감독님과 처음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번 영화에서는 그 특별함이 더할 나위 없이 돋보이고 있습니다. 감독님도 크게 만족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감독님이 김민희 배우와 함께 일하며 느끼신 점 그리고 그 느낌들이 영화의 결로
묻어나게 된 방식들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홍 천진함과 강단이 같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어진 그 순간이 되면 바로 살아나고, 반응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여러 가지 결을 자유자재로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재영 씨와 함께
저한테 깊은 신뢰를 주는 동료였고, 이 영화의 내용과 느낌이 결정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사람입니다.
Q7. ‘데칼코마니’ 같은 영화를 초반에 염두에 두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스탭들에게 “쉬운 길이 있고 어려운 길이
있는데 어느 쪽이 좋겠느냐”고 물은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어려운 길을 택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소 거창하게 감상을 밝히자면 거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모든 것이 변하는 것 같은 영화라고나 할까요.
1부와 2부에서 주인공들의 상황이나 설정이나 동선이 크게 바뀌지 않는 가운데 두 사람이 교류하는 감정이
바뀌게 되는 기이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형식에 관련하여 감독님이 중시하고 견지한 것들은
어떤 것들이었는지요.
홍 겉으로 보면 같은 부분이 더 많고, 차이는 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미세한 차이들로 – 저의 전 영화들과 비교해서 –
이루어진 영화를 생각했습니다. 그런 것이 1부와 2부 사이의 딱 떨어지는 어떤 해석을 더 어렵게 만들면서,
1부와 2부가 “두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으면 했습니다. “두 다른 세계”가 독립된 세계처럼 느껴질수록
“더 많은 다른 세계들”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두 세계의 어떤 요소들이 연결되어지고,
그 결과로 어떤 “도덕적인 해석” 같은 것도 가능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 두 세계의 독립성은 여전히 유지되는
것을 원했습니다.
Q8. 1부를 촬영하고 2부 촬영에 들어가기 전, 배우들에게 중간 편집본을 보여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례적인 일이라고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점을 염두에 두셨거나 기대하셨던 것인지요.
홍 감정적인 태도의 차이를 구현해야 하는데, 제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배우들이 직접 자신들의 1부에서
한 것을 보면, 그것을 잊지 않고, 그 기억에 대한 반응으로서 2부에서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Q9. 어쩌면 개봉 이후 관객이 영화를 보며 가장 크게 웃게 될 장명이 하나 있습니다. 술에 취한 주인공 함춘수가
사람들 앞에서 옷을 훌렁훌렁 벗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어떻게 떠올리게 되신 것인지 묻고 싶어지는데요.
홍 옛날에 그러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함춘수가 이룰 수는 없겠지만, 한 여자에 대한 정말 오랜만에 느낀
뜨거운 감정으로 가슴이 꽉 차 숨이 답답할 지경인데, 앞의 다른 두 여자는 쓸데없는 말들을 계속 떠들고 있는
겁니다. 그래도 술이 너무 많이 취해서 그런 거겠지요, 결국은.
Q10. 가곡 <봄이 오면>이 편곡되어 영화 속에 흐릅니다. 인물과 날씨와 장소와 함께 잘 어울려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 곡의 어떤 점이 좋아서 영화에 넣고자 하셨던가요.
홍 1부 촬영 중에 숙소에서 혼자 있다가 갑자기 그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새 봄이 오면 집에서 나와 걸을 때
자주 흥얼거리는 노래입니다. 그때 제가 방에 갖고 있던 작은 장난감 피아노 같은 걸로 쳐봤는데 좋게 어울리는
거 같았습니다.
Q11. 영화의 라스트 신을 촬영하는 동안에 날씨(눈)와 관련한 우연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우연이 영화 안의 장면으로도 반영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우연이 일어난 그날의 상황과 그 반영의
과정에 관하여 들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홍 눈이 올 줄 몰랐습니다. 예보도 잘 안 보고 나오니깐요. 둘이 주차장에서 만나는 신을 찍고 있는데 눈이
흩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좋아서 찍었습니다. 그 신을 찍고 나서 점심으로 도시락을 건물 안에서 먹고, 제가
먼저 나왔는데 온통 하얀 세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30분 만에. 원래는 극장 안에서 둘이 다시 만나고 나서,
1부처럼 함춘수가 걸어가는 신으로 엔딩을 써놨는데 바꿨습니다. 쌓인 눈의 양이 너무 많아져서 함춘수가 잠깐
극장 안에 들어갔다 나온 시간의 경과에 맞지 않았습니다. 하늘이 그냥 그렇게 하라고 한 거 같습니다.
Q12. 감독님께 이번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어떤 느낌으로 기억되고 유지되고 있는지요.
이 영화가 감독님에게 되돌려준 영향이란 어떤 것인지요.
홍 전 주어진 것들을 귀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추구해서 얻은 것보다, 그때 주어진 환경들, 배우들, 우연들에
저를 온전히 맡기고 만드는 겁니다. 그때의 저의 활동과 경험들이 아직도 생생하고, 정말 따뜻하게 기억됩니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전단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