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을 기르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문애선
어머니는 어렸을 적 설 대목을 며칠 앞두고는 안방 윗목에 콩나물을 기르셨다. 삼발이 위에 얹힌 콩나물 독에 틈나는 대로 정성스럽게 물을 부어주곤 하셨다. 마르지 않도록 또 썩지 않게 정성을 다해 물을 주다보면 알맞게 자라 우리 식탁에 맛있는 콩나물 요리로 등장했다.
서민의 음식치곤 콩나물과 두부처럼 만만한 것이 또 있겠는가? 또 콩의 영양가는 쇠고기에 비유될 정도로 단백질이 풍부하다. 콩 속의 레시틴 성분은 혈관과 심장, 간 등 장기 사이에 지방이 끼지 않도록 막아주며 식물성 여성호르몬인 이소플라본이 유방암을 일으키는 에스트로겐을 조절해 유방암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특히 콩에는 비타민 B군이 풍부하고 비타민 A와 D도 들어 있지만 비타민C는 거의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콩을 콩나물로 재배하면 싹이 돋는 사이에 성분 변화가 생겨 비타민C가 풍부한 식품으로 바뀐다니, 참으로 신비로운 게 콩나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트나 시장 어디에고 콩나물은 많지만 가끔 귀를 막고 싶은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성장촉진제나 농약 성분 운운하니 사먹으려면 조금 망설여지기도 한다. 직장생활 할 때는 겨울 방학에만 시간이 나서 콩나물을 길러 먹기 시작했다. 전에 시골학교에서 근무할 때 그 지방에서 살고 있는 친절한 여직원에게 부탁하여 아는 분에게 그 해 수확된 쥐눈이콩을 사두어야 한다. 묵은 콩은 콩나물이 자라지 않는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콩나물을 기르고 싶을 때는 먼저 콩을 물에 흠뻑 담가 충분히 불려야 한다. 우리 집에는 큰 화분 모양의 콩나물 통이 있다. 언젠가 콩나물 밥 전문 식당에서 맘씨 좋은 주인에게서 얻어온 것이다. 콩나물시루에 콩나물을 안칠 때는 밑바닥에 어느 집에나 흔히 있는 양파망을 먼저 깔아 준다. 다음엔 불리지 않은 콩을 먼저 얹고 그 위에 불린 콩을 얹는다. 한꺼번에 많이 길어버리면 처치가 곤란하기에 시차를 두고 자라게 하기 위해서다.
또한 햇빛을 보면 색깔이 푸르스름해지고 싹이 나올 수 있으므로 콩 위를 헝겊으로 차단해주어야 한다. 물을 자주 주어야 하고 물이 잘 빠져야 하므로 우리 집 콩나물시루의 현주소는 화장실이었다. 가끔 냄새 때문에 어쩔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별 문제는 없었다. 가족 모두에게 화장실에 갈 때는 의무적으로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고 나오게 하였다. 콩나물에 물을 주고서 얼마나 자랐을까 시루에 덮인 헝겊을 들춰보며 자라나는 콩나물 길이를 가늠해보는 것 또한 재미가 쏠쏠하다. 은밀한 즐거움에 빠지다 보면 어느 새 머리에는 새카만 모자를 뒤집어쓰고 자라는 콩나물, 그 밑으로 잘 자라준 새하얀 뿌리를 바라보면 흐뭇하다. 콩나물은 줄기가 아니라 뿌리를 먹는데 비타민 C와 숙취해소에 좋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주는 아스파라긴산이 뿌리 쪽에 있다니. 다만 물만 주었을 뿐인데 쑥 쑥 자라는 콩나물을 바라보노라면 어릴 적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며 콩나물 자라듯하다는 말을 실감한다.
콩나물이 조금 자라기 시작하면 그날의 식탁은 콩나물 비빔밥으로 풍성한 식탁이 시작된다. 밥을 지을 적에 쌀 위에 콩나물을 얹어 밥을 한 뒤 고춧가루, 통깨, 마늘, 파를 넣은 간장에 참기름을 듬뿍 친 양념장을 끼얹어 비벼먹게 하면 식구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밥도 각자 밥그릇이 아니라 조금 널찍한 면기에 밥을 충분하게 퍼 주어야 한다. 두 공기는 기본으로 먹기에. 같은 콩나물이라도 내 손으로 직접 기른 콩나물의 고소함과 안전한 먹거리를 가족들에게 준다는 자부심에 더욱 흐뭇하기만 하다. 조금 더 길어진 콩나물은 이후 콩나물 무침과 콩나물국을 지나 마지막은 새콤달콤하게 묻혀먹는 전라도식 콩나물잡채로 콩나물 시루 속 콩나믈의 삶을 마감하게 된다.
싱싱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겨울철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C를 보충하기 위한 콩나물은 더욱 맛이 좋다. 화장실에서 기르기 시작한 우리 집 콩나물시루는 요사이에는 응접실로 옮겨졌다. 화장실이 너무 추워서 콩나물이 쉬이 자라지 않을 뿐더러 응접실에서 물을 주다보니 건조해지기 쉬운 계절에 습도 조절이 되고 눈에 띄니 바로 바로 물주기도 수월해서다.
식물을 키우면 우리의 마음이 순화된다. 한 바가지 한 바가지 정성을 다해 물을 부어줄 때마다 부모들이 자식을 키우는 심정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도 물을 부어준 만큼 정직하게 자라주는 콩나물처럼 자식들이나 이웃에게도 사랑이라는 물을 부어줄 일이다. 햇볕은 가려주고 적당하게 물을 주어야지 조금만 게을리 하면 콩나물 뿌리도 허리가 굽어지고 더하면 썩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돈도 절약되고 건강에도 좋은 웰빙식이라서 좋지만 더욱 콩나물에게 물을 주며 마음의 안정까지 덤으로 얻게 되니 일석삼조려니 싶다.
(2014. 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