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콤플렉스
전 수 림
컴퓨터화면에 벌써 두어 시간째 나의 콤플렉스라는 제목만 쳐놓고 책을 보기도 하고 빨래를 하기도 한다. 물론 머릿속으로는 나의 콤플렉스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군대간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아들한테 “야! 엄마 콤플렉스가 뭐냐?”하고 물으니 엄마도 콤플렉스 있느냐고 오리려 내게 되묻는다. 아들이 내 방에 수북하게 걸린 모자들을 뒤적거리더니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지 결국 자기 모자를 쓰고 나갔다. 흠..그러고 보니 세어보진 않았지만 모자가 오십 개는 족히 돼 보인다.
나는 외출할 때 미리 입고 나갈 옷을 정해 놓는 편이다. 예컨대 내일 나갈 일이 있으면 그 전날 한번쯤은 옷장을 열고 미리 눈도장을 찍어 놓는다. 어쩌다가 그냥 지나치면 이불 속에서라도 어느 옷을 입어야하는지 정해 놓아야 마음이 편안하다. 남들이 들으면 연예인도 아니면서 무슨 옷에 그렇게 신경을 쓰느냐고 핀잔을 줄지 모르지만, 내겐 옷이 주는 의미는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단순히 그냥 가리는 것만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옷을 잘 입으면 하루가 상쾌하고 일도 잘 되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 보이지는 않지만 속옷역시도 잘 챙겨 입으면 겉옷 잘 입은 것 못지않게 기분이 좋다. 내가 언제부터 옷에 신경을 썼나하고 생각해 봤더니 아주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내가 열두 살 때쯤이다. 점심시간에 학교운동장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데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너희엄마 왔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이유인즉 동생이 다 죽어간다고 아버지를 불러오라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전화가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우리 집과 아버지가 계신 곳의 중간에 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나를 심부름 보내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그런데. 빌어먹을..... 그 순간에 왜 엉망인 엄마의 옷이 먼저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나는 옷 좀 갈아입고 오지......하고 퉁명을 떨었다. 그러나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동생이 죽어간다는 소리에 아버지를 찾으러 죽어라고 뛰어갔다. 나는 정말로 동생이 죽으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을 하면서도 엄마의 옷차림이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엄마는 아무리 좋은 옷을 사다 입혀도 소용없다. 새로 샀을 당시에만 반짝하고 그다음에 다시 입은 것을 보면 이상하게 얼룩져 있어서 항상 지저분하게 보였다. 옷이 왜 그러냐고 물으면 깨끗이 빨았는데도 그렇다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어린 내 눈에도 그런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지 상상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우리엄마 눈썰미는 대단하다. 내가 아홉 살. 그러니까 봄소풍 갈 때였다. 엄마는 장에 나가더니 소풍갈 때 입으라며 옷을 한 벌 사왔다. 티셔츠와 바지를 사왔는데 이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완전히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였다. 워낙 눈썰미가 없다고 해도 그렇지 그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나는 골을 있는 대로 내며 할 수 없이 입던 옷을 입고 소풍을 가야했다.
엄마는 그 다음 장날 옷을 바꾸러 장에 나갔다. 그러나 지난번에 워낙 작은 옷을 사 온 통에 바꿔온 것 역시도 또 작아서 입지 못하게 되었고, 그리고 그 다음은 비가 와서 장이 안 섰고, 또 다음 장은 옷장사가 안 나와서 못 바꾸고, 그다음 장부터는 장마철이라고 못 바꾸었다. 결국 나는 그 옷은 입어보지도 못하고 한해를 보내야했다.
중학교에 막 들어가서는 교복을 다려준다는 것이 재만 잔득 묻혀서 더 지저분하게 만들어놓기도 하고, 아버지의 와이셔츠는 옷깃과 손목이 새까맣게 때가 타도 빨아달라고 안하면 도무지 미리 챙겨놓는 법이 없어 어디를 갑자기 나갈라치면 난감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뒤부터는 엄마의 손을 빌리지 않고, 아버지의 옷과 내 옷은 내가 챙기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부모님을 모시고 어디를 가야할 일이 있을 때는 항상 옷을 새로 사 입히고 모시고 가는 것이 우리 집 자식들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 영향 때문인지 옷을 아무렇게나 챙겨 입고 나가면 하루종일 편하지가 않다.
내 콤플렉스는 엄마였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엄마지만 난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그립다, 보고 싶다, 눈물이 난다 그런 말 보다는 늘 엄마의 뒤치다꺼리가 지겹다, 싫다, 저만큼에서 엄마 오면 돌아가고, 엄마와 끝없이 부딪친 일들만 생각난다. 어느 자리에서든 엄마이야기를 할라치면 거의 엽기 수준으로 전략해 버린다. 그러면 모르긴 몰라도 그런 나를 보며 “저놈에 기집애 또 내 흉보고 있어...”하고 눈을 있는 대로 흘길 것이다.
언젠가 친구네 갔는데, 그 친구의 엄마가 왔다. 사위가 아프다고 하니까 반찬을 찬합에다 차곡차곡 싸가지고 와서는 잠든 사위 깰까봐 조심조심 나긋나긋한 엄마를 보면서 그런 자상한 배려를 할 수 있는 엄마가 부러웠고, 또 어떤 친구의 엄마는 돈이 없다는 딸에게 지갑을 열더니 세어보지도 않고 돈을 몽땅 꺼내주던 엄마도 있었다. 왜 몸이 아프면 친정엄마가 보고 싶은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내게 보기 좋은 본보기였다.
그럼 우리엄마는? 우리엄마는 아프다면 약사다 먹으라고 하고, 아버지와 말다툼하면 아침마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내게 아침밥을 지으라했고, 평생을 뜨개질을 해도 입을 수 없게 짜놓고 안 입는다고 난리를 치고, 김치 담갔다고 수다라도 떨면 안 갔다준다고 삐치고, 나랑 말다툼하면 네가 사준 것 다 가지고 가라고 옷장을 뒤집어 팽개치기고 이쯤 되면 비교가 안될래야 안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난 내 아이한테는 최대한의 좋은 엄마로 남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아이에게 될 수 있으면 자유스러운 엄마, 될 수 있으면 멋있는 엄마, 될 수 있으면 화끈한 엄마로 남기위해 난 수시로 엄마를 떠올렸었다. 내가 정말 싫었던 일들은 내 아이에게 절대로 시키지 않고, 친구같이 편안한 엄마로 무엇이든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려고 애들 썼다.
그런데 어느 순간은 내 엄마의 모습을 나한테서 볼 때가 있다. 내 계산대로라면 절대로 닮지 않아야 했는데, 내게서 불쑥 엄마가 튀어나올 때는 어? 이게 아닌데 하면서 혹시 누가 보는 것은 아닌지 주위를 살피는 내 행동이 너무 우스워 슬며시 미소를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 엄마를 그래도 봐 줄만한 나이가 됐는지 미치게 싫었던 기억들이 비 오는 날 수채와처럼 희미하게나마 미소 짓는 쪽으로 채색되어 가고 있다.
콤플렉스..... 이제는 ‘내게도 콤플렉스가 있나?’ 싶을 정도가 되어버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