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침례교회-오늘의 경건말씀]
2012.10.18(목) 열왕기상 12장 1절-20절
1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2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여전히 애굽에 있는 중에
3 무리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
4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5 르호보암이 대답하되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6 르호보암 왕이 그의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충고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7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8 왕이 노인들이 자문하는 것을 버리고 자기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사람들과 의논하여
9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자문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10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아뢰어 이르되 이 백성들이 왕께 아뢰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
즉 왕은 대답하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 보다 굵으니
11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
12 삼 일 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이르기를 삼 일 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13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14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15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
16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17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르호보암이 그들의 왕이
되었더라
18 르호보암 왕이 역꾼의 감독 아도람을 보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쳐죽인지라 르호보암 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19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20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이 돌아왔다 함을 듣고 사람을 보내 그를 공회로
청하여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따르는 자가 없으니라
르호보암(Rehoboam)
솔로몬왕과 암몬 여인 나아마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통일왕국 최후의 왕
솔로몬이 암몬 여인 나아마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통일왕국 최후의 왕이다
(왕상 14:21, 31). 솔로몬 사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겜에서 그를 왕으로
삼고자 했을 때 여로보암과 열 지파들이 무거운 세금과 강제 노역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왕상 12:3-4). 그러나 이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북쪽의 열 지파가
여로보암을 지도자로 세웠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는 비극이 일어났다
(왕상 12:12-14; 20).
유다와 베냐민에 의해 남유다의 왕으로 세워진 르호보암은 군대를 결성하여
북왕국을 치려고도 했으나 이를 막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전해 듣고 포기하였다
(왕상 12:21-24; 대하 11:1-4). 그 후 르호보암은 하나님께 순종하고(대하 11:4)
북이스라엘로부터 레위 족속과 제사장을 받아들이는 선정을 베풀기도 했다
(대하 11:13-14).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3년 동안 그는 경제적, 군사적으로
강한 나라를 세웠다(대하 11:12).
르호보암의 아내는 마할랏, 마아가 등 18명이었으며 첩이 60명이었고, 여우스,
스마랴, 사함, 아비야 등 아들 28명과 딸 60명을 두었다(대하 11:18-23).
그는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여 우상을 숭배하는 악을 행했다(왕상 14:22-24;
대하 12:1-15). 결국 그는 애굽 왕 시삭의 침입을 받았으며(왕상 14:21-28;
대하 12:1-8), 17년 간의 남유다 통치의 막을 내렸다(왕상 14:31; 대하 12:13, 16)).
여로보암 1세(JeroboamⅠ)
여로보암 1세(JeroboamⅠ)
북이스라엘 초대 왕
아버지는 느밧, 어머니는 스루아이다
북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아버지는 느밧, 어머니는 스루아이다(왕상 11:26).
아들로는 아비야, 나답이 있다(왕상 14:1; 15:25).
큰 용사였던 여로보암은 부지런하여, 솔로몬은 그를 건축 감독자로 일하게 했다
(왕상 11:28). 그 즈음 여로보암은 선지자 아히야를 만나게 되었는데, 아히야는
입고 있던 새 옷을 열두 조각으로 찢어서 그 중 열 조각을 여로보암에게 주며,
나라가 분열되어 여로보암이 열 지파의 왕이 될 것임을 예언했다(왕상 11:29-39).
이로 인해 여로보암은 솔로몬에게 추격당하게 되어 애굽에 망명해 있다가
(왕상 11:40) 솔로몬이 죽은 후에 애굽으로부터 돌아왔고, 북쪽 열 지파가
르호보암을 반역했을 때,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되었다(왕상 12:20).
* 여로보암 2세(Jeroboam Ⅱ)
41년 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북이스라엘의 13대 왕이다(왕하 14:23-29).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의 아버지인 요아스 때부터 다메섹이 취했던 성읍들을
회복하였고, 유다를 공격하는 등 회복세를 타고 있었다(왕하 14:8-14).
외부적으로 아람과 앗수르의 세력이 약해진 시기에 왕이 된 여로보암 2세는
다메섹을 회복하고, 레바논 산맥과 안티레바논 산맥 사이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아카바 만)에 이르는 영토를 회복했다(왕하 14:25, 28). 또한 아람의
하사엘이 지배하던 길르앗을 차지하는 등 경제적인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반면 점차 지도자와 백성들이 부패하기 시작했다(암 2:6-7). 또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성의없는 제사를 드리는 일이 허다했다(암 5:21-24).
뿐만 아니라 부정부패와 불공평한 재판으로 사회 정의가 흔들리게 되었다(암 6:1-8).
이 시기의 사회상을 비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선지자로는 아모스(암 1:1)와
호세아(호 1:1)가 있다. 여로보암 2세의 사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는 아들인 스가랴가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왕하 14:29).
세겜(Shechem)
세겜(Shechem)
사마리아의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에 위치한 성읍
북왕국이스라엘의 첫 수도
<인명>
1. 히위 사람 하몰의 아들로 히위 족속의 추장이다(창 33:19; 34:2).
야곱의 딸 디나를 사랑하여 강제로 성 관계를 가진 결과 야곱의 아들인
시므온과 레위에 의해 죽고 말았다(창 34:2-31).
2. 므낫세 후손 길르앗의 아들 중 하나로 세겜 족속의 족장이다(민 26:31).
3. 므낫세 지파 스미다의 아들이다(대상 7:19).
<지명>
사마리아의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에 위치한 성읍으로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67k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곳이다. ‘등, 어깨’라는 뜻을 지닌 세겜이란 이름은
평지보다 조금 높은 곳인 에발 산 기슭 쪽으로 자리잡고 있어서 생긴 이름으로
보인다. 지금의 이름은 근처 마을의 이름을 따서 ‘텔 엘 발라타’(Tell- el- Balatah)
라고 부르고 있다.
세겜은 연평균 강우량이 적당하고 물이 많은 곳이어서 고대로부터 농사짓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그래서 이곳에는 보리나 밀, 채소가 재배되었으며 평지를
둘러싼 산비탈에는 포도, 무화과나무, 감람나무들이 경작되었고 목축에 좋은
풀밭도 많이 있었다(창 37:12-13). 헤브론에 살던 야곱이 그의 아들들을 세겜
근처로 보내 양을 치게 했다는 것만 보아도 세겜이 목축에 좋은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창 37:12-15).
또한 세겜은 지정학적으로 여러 갈래의 길들이 통과하는 곳에 위치하여 사마리아
지방의 교통 중심지였다. 남쪽으로는 산악 지방으로 가는 ‘큰 길’(삿 21:19)이 나
있어 실로, 벧엘,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고, 동쪽으로는 요단 강으로 향하는 길이
나 있고, 북쪽으로는 와디 엘 아브라드 골짜기를 따라 뻗어 있고 서쪽으로 가는
길은 사마리아를 지나 도단에 이르는 길과 이스라엘 해안 지방으로 내려가서
애굽과 메소포타미아를 연결하는 해변 도로에 닿는 길이 있다. 특히 서에서 동으로
연결된 길인 해안 평야에서 요단 동편으로 연결하는 길은 세겜을 지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러한 지정학적인 중요성 때문에 이곳에는 사람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살아왔으며 강력한 도시를 이룰 수 있었다.
* 세겜에서 일어난 일
여러 자연적, 지리적인 조건들 때문인지 세겜에서는 중요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
세겜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하나님께 제단을 쌓은 곳으로
아브라함은 여기서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들에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창 12:6-7).
또 야곱이 가족을 데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세겜의 아비 하몰에게 장막 친 밭을
사고 하나님께 첫 제단을 쌓은 곳도 이곳이었다(창 33:20). 야곱의 가족들이 이곳에
묻혔으며(행 7:14-16) 훗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자손들에 의해 요셉의
뼈도 이곳에 묻혔다(수 24:32).
모세가 축복과 저주를 선포할 장소로 선택한 곳도 세겜의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이었다(신 27장; 수 8:30-35). 이곳은 에브라임 지파에게 분배된 땅이었지만
(수 20:7) 고핫 자손에게 재분배되었고 도피성이 세워졌다(수 21:21).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 말년에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언약 갱신을 한 곳도 이곳 세겜이었다(수 24:1-28).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자기 형제들을 죽이고 왕으로 등극한 곳도 세겜이었고(삿 9:1-6), 더욱 중요한
사건은 솔로몬이 죽은 후에 르호보암이 이곳에서 왕권 확인식을 하려고 갔다가
(왕상 12:1) 어리석은 처신으로 인해(왕상 12:3-15) 이스라엘 백성이 여로보암을
북 왕국의 초대 왕으로 삼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었다(왕상 12:20). 그후 여로보암이
첫 수도로 삼은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왕상 12:25).
고고학적인 자료에 의하면 BC 9세기 말 여로보암이 세겜을 차지하고는 성벽과
동쪽 성문의 망대를 재축조했다고 한다. 그리고 세겜 성 안에 집들이 많이 건축된
것으로 보아 세겜 성의 중요성이나 경제적인 형편이 나아졌음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볼 때 세겜은 언제나 이스라엘의 중요한 종교적·제의적인
성소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세겜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약,
계약을 맺는 중요한 장소로 공동 운명체적인 결단을 할 때 모였던 곳이었다.
예루살렘이 통일 왕국의 수도였음에도 르호보암이 왕권 확인식을 세겜에서
하였던 점으로 볼 때 세겜의 제의적인 성소로서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신약 시대에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우물가에서 대화하셨던 수가 성은 세겜을
말하는 것으로 이곳에 야곱의 우물이 있다(창 48:21-22; 요 4:5, 12 ).
[출처] 두란노비전성경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