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이야기/모친을 굶겨 죽인 불효자들의 말로
아들딸이 불효하니 손자들도 무정하고
잔인하게 노모를 굶겨 죽이니
인간의 정은 어디에 있는가
하늘은 은혜를 배반한 자 용서하지 않으리.
나의 이웃이 그들 고향에서 발생한 두 가지 일을 나에게 이야기 하면서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가 아닌가?’라고 물었다.
길림성 어느 현(縣) 시골마을에 일가 8명이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인간비극을 연출하였다. 이것은 이웃마을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건이다. 비록 그들이 무엇이 불법(佛法)인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모두 이것을 일러 인과응보라고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 집안의 부모는 수십 년 세월 동안 황토밭에서 고생스럽게 일하며 3명의 아들과 3명의 딸 모두 6명의 자녀를 키웠다. 아울러 아들들은 각자 아내를 맞이하여 집을 짓고 딸들은 예물을 들고 시집을 갔다. 이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흔히 보는 일이기도 하다. 생활의 압박 속에서 허리가 굽은 늙은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막내딸을 시집보낸 후 자기는 피로가 누적되어 병에 걸려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였다. 마을사람들은 모두 탄식하며 그의 운명이 고생스러웠다고 말하였으나 그의 아내는 오히려 그보다도 더 못하였다.
그 집의 늙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 달도 채 못 되어 어머니는 뇌일혈로 인하여 침상에 눕게 된 후 반신불수의 병을 얻게 되었다. 비록 자기는 왼손으로 밥을 먹기도 하고 화장실에도 갈 수 있지만 반드시 돌보는 사람이 있어 부축해 주어야 했다.
이들 육남매는 그녀의 자식도 아닌 셈이었다. 모두 열두 명의 자녀들(아들, 며느리, 딸, 사위 등)은 일평생 고생한 모친을 어떻게 대우했는가?
처음에는 그들 자녀들은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돌아가면서 어머니를 돌보아 그런 대로 지낼 만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노모를 모시고 있던 셋째아들과 며느리는 점점 귀찮아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번거로워 싫다는 둥 이러쿵저러쿵 불평하다가 나중에는 빗대어 욕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동서와 큰시누, 작은시누들과 싸우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아예 사람들이 와서 간호도 못하게 하고 노모에게 밥도 보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들이 밥 먹을 때 노모에게 약간의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보냈으나 나중에는 시어머니가 식사 후 화장실에 자주 가는 것을 발견하고 셋째며느리는 악심을 품고 밥과 물을 줄이고 어떤 때에는 그것조차도 보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자녀들과 셋째며느리는 불화하여 열흘, 보름이 지나도 한번도 돌보러 오지 않게 되었으며, 한번은 셋째 딸이 와서 노모를 보고는 노모가 기력이 매우 약해졌음을 발견하고 모친이 하는 말을 자세히 듣게 되었다.
“배고파, … 배고파, …”
그래서 딸은 오빠 집에 들어가 먹을 것을 찾아 모친에게 주려고 하자 올케가 크게 화를 내면서 노모 방에 뛰어 들어가 고함을 치는 것이었다.
“방금 밥 두 그릇을 먹고 나서 어떻게 또 먹을 것을 달라고 합니까? 만약 너무 많이 먹어서 죽으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당신 딸이 우리보고 불효했다고 할 게 아닙니까!”
결국에는 셋째딸이 우겨서 모친에게 몇 입의 밥을 먹여드렸다. 밥을 먹일 때 딸이 올케언니가 방에 없는 틈을 타 어머니의 배를 만져보니 배가 홀쭉한 것을 보고는 올케언니의 말이 거짓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날 그 딸은 어머니에게 여섯 개의 계란을 가지고 갔는데, 노모는 그야말로 게 눈 감추듯 한 입에 다 먹어버렸다.
잠시 후 다소 힘이 나는 듯 그녀는 셋째딸에게 작은 소리로 말하기를 “너희들이 안 오면 쟤들은 물과 밥조차도 주지 않으니 나를 굶겨 죽일 작정인 모양이야.”라고 하였다. 또 며칠 지나서 둘째딸이 큰 새우를 두 마리 가지고 와서 노모에게 먹이는데 뒤에 들어온 셋째아들이 보고는 새우를 담은 그릇을 땅에 던졌다. 발로 새우를 밟아 더럽게 하고는 분노하여 둘째 여동생을 욕하며 노모에게 새우를 먹이지 못하게 하였다. 그의 말인즉, “뇌일혈 환자에게는 몸을 보하는 음식을 먹이면 안 돼. 몸을 보하여 피가 많아지면 다시 뇌일혈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죽으면 네가 책임질 거냐.”고 하면서 욕을 해댔다. 아울러 만약 너희들 중 누가 노모를 돌보려면 너희 집으로 보낼 테니 간섭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들의 집안 사정은 일찍부터 마을에 전해져 소문이 분분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큰아들에게 전하고 다른 자녀에게도 전하여 빨리 노모를 모시고 가서 돌보라고 권하였으나 끝내 한 사람의 자녀도 호응하는 이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셋째아들 집에서 노모를 부르며 울며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평생 고생만 하신 노모는 병마와 기갈 나아가 그것보다도 더 잔혹한 천하의 불효자들에 의하여 끝내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매섭게 추운 한풍이 휙휙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게 마치 하늘을 진동시키고 땅을 놀라게 하는 슬픔이 상복(喪服)을 걸친 한 무리의 불효자식, 손자들을 따라 묘지로 향하고 있었다. 지전을 태우자 노한 한풍에 의하여 공중으로 솟구쳤다.
모친 사망 후 불행은 마치 길이 난 것같이 이 가정에 잇따라 찾아왔다. 한 달 후 큰아들이 뇌혈전으로 입원하게 되었다. 응급조치로 비록 죽음은 면했으나 반신불수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몸을 웅크리고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거리에 나타났다.
큰아들이 퇴원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둘째아들과 큰사위가 전후 며칠 사이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으니, 진단결과 모두 뇌혈전이었다. 20일 후 그 두 사람이 아직 퇴원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둘째딸도 같은 병으로 진(鎭 : 중국의 행정단위)의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둘째딸이 퇴원한 다음 날 셋째며느리에게도 과보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뇌혈전이 아니라 위천공(胃穿孔)이었다. 셋째며느리가 아직 주사바늘을 찌른 채 누워있는데 셋째사위가 자전거를 타다가 경운기와 부딪쳐 2미터 정도 날아가 떨어졌다. 병원에 도착하였을 때 숨은 있었으나 온몸이 골절상을 입어 밖으로 양쪽 무릎이 가루가 되어 몇 개월 동안을 서지도 못하였다.
노모의 죽음 후 일 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자녀들과 그들의 배우자들이 연이어 고향 진의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으며, 각자가 퇴원할 때에는 인민폐 일만 원 이상의 큰 돈을 쓰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농담으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진의 병원을 돈 많은 사람들이 전세를 내었군. 의사, 간호사들이 지금까지 그런 큰 보너스를 타간 적이 없었는데, 매월 모두 일 백 원 이상을 수령해 갔으니. 이렇게 비싼 입원환자 모두가 한 집안 사람들이라며?”
그러는 동안 소문은 주변마을로 멀리 퍼져 논밭에서, 식당에서, 찻집에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비록 그 지방에 불교를 믿는 사람은 매우 적을지라도 그 이야기를 입에 담는 사람들마다 모두 “그래도 싸지. 죽일 놈들. 이게 인과응보지!”라고 한마디씩 하였다.
아직 그 집안 이야기는 다 끝나지 않았다. 위에서 말한 반신불수의 큰아들은 어느 날 큰길에서 손발 운동을 할 때 갑자기 다리에 힘이 없어져 막 길을 지나가던 자동차에 머리가 부닥쳐 식물인간이 되어 지금까지 집에 누워있다고 한다.
얼마 후 둘째아들은 간염을 얻어 일 년여 동안을 고생하다가 죽었으며, 그 후 큰며느리도 뇌혈전을 얻어 사망하였다. 그 후 또 무슨 일이 발생하였는지는 알 수가 없단다.
나의 이웃사람 말에 의하면 손자, 손녀, 외손자, 외손녀들도 거의 모두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는데, 할머니가 병들어 있을 동안 할머니를 병문안한 손자 손녀가 하나도 없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정말 탄식하게 하였다. 다만 선지식(善知識)이 그들에게 불법을 가르쳐 미래의 운명을 바꾸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의 이치가 분명하니 그들의 결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불효자가 고의로 병든 노모를 굶겨 죽인 것은 비록 이웃이 고발하지 않고 관청에서 조사하지 않아 법의 제재를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늘의 그물이 비록 성근 것 같지만 악인은 결코 빠뜨리지 않는 법이니 이들 불효 자녀는 한 사람 한 사람 연이어 악보(惡報)를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은 정말로 세상만사와 만물이 모두 법을 설하는 셈이다. 선인(善人)은 선인의 법을, 악인은 악인의 법을, 사람은 사람의 법을, 축생은 축생의 법을 설하고 있다.
이 일을 바로 이해한다면 의식주행 모두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을 실천할 수 있다. 경(經)은 바로 길이다. 어떻게 가든 당신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생활 속에서의 인과보응, 현세에 나타난 실제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바로 부모에게 불효하는 역자(逆子)들이 하루 빨리 잘못을 고쳐 착한 사람이 될 것을 경고하기 위해서이다. 그렇지 않으면 악한 과보가 닥쳤을 때 후회해도 늦다.
<<오대산 노스님과 인과 이야기>> 원저자 묘법스님은
1916년에 태어 나시어 수년 동안 오대산에서 폐관 수행을 통해 큰 깨달음을 이루셨다.
시절인연이 도래하자 세상에 나오셔서 중생을 교화하셨다.
특히 생생한 인과법문을 통해 업장을 소멸함으로써 치유시키는 신이한 힘을 가지셨다.
말년에는 은둔수행을 하시다가 2004년 (87세)입적하셨다.
저자 과경·각산/ 번역 정원규 / 불광출판
구입처 불광출판사☎ (02-420-3200)
자료 출처 http://cafe.daum.net/BLD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