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와 우주인 이소연
제18대 국회의원 선거가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났다. 당선자 299명이 환하게 웃는 사진이 신문지상을 덮는다. 그들이 앞으로 4년간 우리나라의 입법권을 좌지우지하며 국민들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각종 법규를 제정할 것이며, 국정을 감시하고 국민을 대변할 것이다.
투표율 46%에 불과한 저조한 국민들의 투표가 과연 민의를 제대로 반영했다고 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 선거제도는 다수 득표자를 당선자로 하도록 하고 있을 뿐 결선투표제도를 도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20%대로 당선된 자가 있는가 하면 90%가 넘는 당선자도 있으니, 무엇이 공평하고 무엇이 불공평한지 모르겠다. 한나라당의 압승이다. 그들만으로 168석 이상을 확보해 모든 상임위원회의 과반을 넘고 싶다는 야심찬 계획이 무산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153석을 확보해 과반을 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원세력이랄 수 있는 무소속, 친박연대 등의 당선자까지 합치면 200석 가까운 원내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들이 협력체제로 나아갈지 싸움박질을 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언론은 또 다시 박근혜의 힘이라는 제목을 대서특필로 뽑고, 친박연대, 친박 무소속 의원 10여명을 당선시켰다며 야단이다. 어떻게 보면 한나라당, 아니 이명박 대통령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고 하겠다. 정면승부의 진검승부를 펼칠 것인지, 아니면 우회적인 포용의 정책을 쓰면서 끌려 다닐 것인지를 말이다. 박근혜의 힘을 인정하고 그를 함께 가는 동반자로 대우할 것인지, 그럼으로써 여전히 한나라당을 영남의 맹주로만 안존시킬 것인지, 아니면 수도권 압승을 계기로 새로운 전국정당으로 환골탈태의 길을 걸을 것인지, 시기상조지만 지켜 볼 일이다. 어찌 되었든 그가 옛날 현대건설을 이끌며, 불모의 땅을 가꾸던 개척정신을 다시 한 번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실용의 틀 안에서 양보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후퇴시킬 것인지 지켜볼 수밖에 없겠다. 물론 국민이야 그런 갈등 양상을 지켜보며 또 한 번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지만 말이다.
정치가는 이름이 생명이지만, 이름이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곳도 역시 정치판이다. 거물급이라고 자칭 타칭 불리던 많은 정치인들이 신인들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한 번의 물갈이가 이루어지고, 그 사이에서 또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새로운 도약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통합민주당의 김근태 후보가 한나라당의 신지호 후보에게 박빙으로 패배하는 것을 보면서 한 시대가 완전히 가버렸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제 그의 퇴진을 지켜보면서 1970년대부터 불어닥쳤던 이념의 시대가 가고, 진짜로 실용의 시대가 도래했구나 하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불리며 그의 후배들에게 이념적 지표를 제공해 주었던 그가 신진보수세력의 기치를 내세운 이제 40대 중반인 신지호 후보에게 패배하는 것을 지켜보며, 이 나라에 변화는 이미 현실화되어 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깊이 드는 것은 이제 우리 젊은이들에게 어른들이 해줘야 할 것은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이들에게 경제는 최고의 가치가 되어 버렸다. 대학생들의 주요 이슈도 어떻게 하면 좋은 직장에 취업을 잘 해서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아갈 것인지, 학기 내내 내세우는 이슈는 등록금이 비싸니 등록금을 깎아 달라는 것밖에 없다. 책을 읽어도 철학서나 인문도서를 읽기 보다는 주식 투자를 어떻게 하고 부동산 재테크는 어떻게 하는지 등등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책들만을 찾아 읽는 것을 본다. 그러면서도 세계 속에 당당히 나가 기 죽지 않고 코리아를 외치는 모습은 신기하기조차 하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념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이야기를 강의시간에 종종 한다. 이념의 노예가 되는 순간 자기 정체성은 사라지고 헛된 구호, 헛된 깃발의 노예가 되기 때문임을 누누이 강조한다.
혁명가들은 스스로 희생의 제물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을 추종하는 자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우고, 그들의 피와 생명을 희생의 제물로 삼을 것을 선동할 뿐이다. 혁명가들은 마지막까지 비겁하게 도망 다니다가 붙잡혀 죽거나 최종적으로 변절의 길을 걷는다. 먼저 앞장서서 자살특공대가 되지 않고, 먼저 공격의 선봉에 서지 않는다. 뒤에 숨어서 철모르는 추종자들을 리모콘으로 조종할 뿐이다. 그러다 어쩔 수 없어서 죽을 뿐이다. 까닭에 나는 혁명가를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학생들에게 가치를 몰각하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점도 함께 강조한다. 그것은 방향성이기 때문이다. 방향을 상실하면 얻어지는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기 때문이다. 옳고 정의로운 방향을 설정하고 그 길을 향해 이념에 사로잡히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가라고 강조한다. 그들이 의연하고 당당할 때 조국의 미래는 밝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국회의원의 금뱃지를 달기 위해 도토리 키재기 같은 치열한 전쟁이 치루어지고 있는 순간,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는 우주를 날았다. 광대무변한 우주의 신비를 만끽하며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아니 지구의 아주 작은 나라 대한민국, 그것도 반쪽으로 분단된 남쪽을 바라보면서 무슨 상념에 잠겼을까? 솔로몬의 잠언 말씀처럼, 인간 세상에서 인간들이 버벅거리며 살고 있는 것을 우주에 비해 볼 때 너무나 하잘 것 없어 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하였을까? 아니면 조디 포스트가 주연으로 나왔던 “콘택트”의 여주인공처럼 “너무나 아름다워, 과학자가 아닌 시인이 왔었어야 해” 했을까? 과학도인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첫 번째 탄성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기자회견에서 했다는 말, 아마도 “와우” 할 것 같은데요 라는 말이 어쩌면 가장 순수한, 인간이 꾸밈없이 내뱉을 감탄사로는 최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투명한 어둠, 우주 공간을 비행하며 신의 위대함과 인간의 위대함을 함께 느꼈을 것이다. 신은 우주를 만들었고, 인간은 그 우주를 여행할 수 있게 하였으니까... 아직은 우주의 광대무변함에 비하면 정말 조족지혈에 불과할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어쩌랴? 우주는 광대하고 지구, 아니 대한민국은 한정되어 있는 걸, 어쩔 수 없이 299명의 국회의원들이 또 우리를 들들 볶아댈 테니 묵묵히 참고 살아갈 밖에. 제발 싸우지들 말고, 이제는 진정 당선되던 순간의 초심을 4년 내내 유지해 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아, 젊고 많이 배운 국회의원이 아니고, 아주 욕심 없이 평생을 살아온, 평생동안 고기 잡고, 농사 짓고 살아오며 자식들에게 바리바리 싸주기만 해 주시던, 그러면서도 여전히 싸 주실 것이 남아 도는 여든쯤 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정치를 하면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만개한 벚꽃이 아름답다. 아름답다.
2008년 4월 11일, 법률저널, 오시영의 세상의 창에 게재
첫댓글 어록 250. 이념의 노예가 되지 말라. 이념의 노예가 되는 순간 자기 정체성은 사라지고 헛된 구호, 헛된 깃발의 그림자가 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와 우주인 이소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