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입한 경제방에서 펌
2010년 11월에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 개통이 예정된 가운데, 2단계 구간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경부고속철도 동대구~경주~부산 신선에서는 시운전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개통을 앞두고 한국철도공사에서는 '코레일, 11월부터 KTX 운행 대폭 확대'라는 제목으로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 개통 관련 자료를 발간했다.
그 자료 주요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2010년 9월 현재 하루에 평일 144회, 주말 181회 운행하던 경부선 KTX는 11월부터는 평일 170회, 주말 222회로 현재 보다 각각 평일 26회, 주말 41회가 더 늘어난다. 그리고 월요일 오전 4시 30분과 40분에 부산역을 출발해 서울역에 7시 32분, 7시 42분에 도착하던 열차를 부산에서 5시, 5시 20분에 각각 출발하도록 조정해서, 열차 시간이 너무 이르다는 지적을 받아들였다. 뿐만 아니라 경전선 삼랑진~마산 구간 전철화 공사가 11월에 끝나면 경전선에도 KTX가 평일 14회, 주말엔 24회 운행될 것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 운행 시간도 현재 2시간 40분에서 2시간 18분으로 22분 단축된다. 서울에서 신경주까지는 현재 약 3시간 30분에서 2시간 2분으로 약 1시간 28분이 단축되고, 서울에서 울산까지는 현재 4시간 10분에서 2시간 11분으로 약 2시간이 단축된다. 서울에서 마산까지는 현재 소요시간 약 3시간 30분에서 2시간 54분으로 약 36분이 단축된다.
일단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두 지역을 잇는 교통망이 개량되고 쌍방으로 접근성이 편리해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국가 기간교통망을 구축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 가운데 한 가지는, 새로운 교통 시설 구축이나 기존 교통 시설 개량 같은 교통망 확충 정책이 해당 지역에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개 이론으로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서로 교류하며 함께 성장하는 경우와 어느 한 쪽으로 다른 한 쪽에서 물자와 인구가 몰려드는 경우이다.
문제는 국토 불균형 개발 문제가 매우 심각한 한국에서는 대개 앞에서 제시한 두 가지 가능성 가운데 후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부고속철도 개통으로 수도권 주민들이 지방으로 관광과 사업을 위해 내려가고, 기업들도 굳이 수도권으로 몰릴 필요가 없어져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와 반대로 부유층과 지식층을 중심으로 더 좋은 의료, 주거, 교육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지방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지역경제는 오히려 더욱 침체되었다. 게다가 고속철도라는 명칭에 걸맞게 주요 광역권에만 혜택을 주다 보니까, 그 사이에 있는 중소 도시들은 오히려 예전보다 철도 교통이 훨씬 더 불편해져서, 교통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곧 수도권과 지방을 잇는 고속철도는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빨대 효과(straw effect)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정부가 경부고속철도를 둘러싼 이해 관계와 정치 논리를 제대로 조율하고 때로는 강력하게 저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만약 중간 정차역이 적절한 위치에 들어서고 기존 교통망과 제대로 연계되기라도 한다면, 이는 당장은 빨대 효과 때문에 지역경제가 침체되는 것을 걱정할 수밖에 없지만, 지역경제 활성화 정책을 잘 펴기만 한다면 지방에서 수도권이 아닌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일어나는 빨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그리고 결국 고속철도가 잡아야 할 장거리 실수요에 손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그 손해를 중간 정차역에서 발생하는 수요로 어느 정도는 메울 수 있다.
하지만 온갖 이해 관계와 정치 논리에 휘말리는 바람에 이번 2단계 개통 때 영업을 시작할 중간 정차역들은, 주요 수요지에서 모두 접근하기 불편한 지역에 건설되었다. 이는 국가 기간교통망 구축 방안이 제대로 서 있지 않다는 말이나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만약 정말 처음에 고속철도를 건설하려던 목적대로 주요 광역 거점을 빠르게 잇는 고속 교통망, 곧 서울, 대전, 대구, 울산, 부산에만 고속철도역을 세우고, 기존 철도 노선을 재빨리 개량해 준고속선 수준으로 높였다면, 지금과 같이 중간 정차역을 건설해 달라는 요구를 거절할 명분이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 철도망 개량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고속철도를 빨리 개통해서 선심을 쓰고 업적을 홍보하는 데만 신경을 쓰는 바람에, 교통 편의가 불편해진 지역에서 요구하는 바를 반박하기가 궁색해졌다. 그런 데다가 수요도 잡기 힘든 곳에 명분만을 따져 역을 건설하는 바람에 역을 세우는데 들어간 수 천 억 원도 언제 다 벌어들일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예를 들자면 오송역과 김천구미역은 그야말로 지역 이기주의가 낳은 최악 결과로 중등 사회 교과서에 반드시 소개되어야 할 정도다. 오송역을 지금 수준으로 건설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청사모는 1991년부터 시작된 집요한 공작으로 결국 호남고속철도까지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채, 현재 오창생명과학단지 건설과 신도시 개발이 불투명해지면서 역세권을 개발하라고 난리를 치고 있으며, 김천구미역은 원래 김천역을 개량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던 것을 구미시에서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결국 오송역과 마찬가지로 김천 수요도 구미 수요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허허벌판 위에 들어서고 말았다.
게다가 고속철도 역세권 개발을 놓고 지방자치단체 사이 갈등과 투기꾼들 사이 이전투구가 극성을 부리면서 지방 부동산 시장에도 심각한 혼란을 가져왔다. 예를 들자면 기존에 들어선 광명역과 천안아산역이야 그래도 역세권이 원래 있거나 어느 정도 개발되고 있는 지역이라고 치더라도 2단계 개통 때 영업을 개시할 오송역, 김천구미역, 신경주역, 울산역은 모두 기존 시가지와는 한참 떨어져서 제대로 수요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오송역과 김천구미역 건설을 주장한 이들이 그저 예정만 되어있을 뿐 현실에서 개발이 제대로 될지도 알 수 없는 허황된 역세권을 유치 근거로 삼았고, 일단 역을 건설하기 시작한 뒤에는 일단 고속철도역이 들어섰으니 그에 걸맞은 역세권을 제대로 건설해야 한다면서 고속철도역을 개발 사업 추진 근거로 삼는 것이다. 아전인수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그러면서 참여정부 때 추진했던 공공기관 이전까지 명분으로 삼아 온갖 개발 사업을 새로 따내려고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해 관계가 얽힌 사람들이 몰려들어 투기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지역경제에 반짝 호황을 불러일으킨 뒤, 나중에는 정말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를 안기고 극심한 침체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국토 균형 개발은 절대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이며, 국가 기간교통망 확충 정책은 그 과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정책과 조율을 거쳐 신중하게 만들어지고 실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교통망 확충 사업, 특히 고속철도 건설 사업은 지역경제에 빨대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개발 투기를 부추겨 부동산 시장을 혼란스럽게 하는 악영향만 끼치고 있을 뿐이다. 정말 정부가 지역경제 활성화와 국토 균형 개발을 실현할 의지가 있다면, 우선 국가 기간교통망 확충 정책에 직접 이해 관계를 갖고 있는 건설업계, 지역 이기주의에 물든 시민단체, 건설 실적으로 선거에서 이득을 보려는 데만 급급한 지방자치단체장들 앞에서 단호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절대 제대로 된 교통정책을 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