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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는 사랑] 12
S#1. 어느 골목과 정환의 옛집 (낮)
11회 엔딩에서 이어지는 느낌으로.
경주와 정환, 서로 어색한 기분으로 뚝 떨어져서.
정환 : ... 저 아파트 자리가 시장이었는데, 어디가 어딘지 원....아, 이 골목이다, 맞죠... 여기 생각 안나요?
경주 : 몰라요. (정환이 보면) 사장님은 중학생이었지만, 저는 겨우 열 살이었어요. 어떻게 기억을 해요?
정환 : (신이 나서 걸음 빨라지며) 여기, 짱구네 몰라요? 세퍼트 기르던 집? 맨날 무섭다고 징징 거렸으면서
경주 : 그러는 분도 혹시 개 안 무서워했어요? 생각은 안 나지만 그랬을 거 같애..
정환 : 무슨 소리? 아 여기다. (옛 집 앞으로 뛰어간다)
이윽고, 정환의 옛집 앞에서
정환 : 이 집이다. (보며) 이렇게 작았나? ... 참 작다 그죠?
경주 : ...하나두 생각 안 난다니까요?
문간방의 낡은 창문(혹은 대문)을 바라보는 경주의 시선으로
S#2. 명륜동 고가 앞(경주의 회상)
앞 씬과 같은 장소
어린정환 : (고개를 내밀고는) 울보 왔구나!
어린경주 : 우리 새엄마 찾으러 왔는데요?
어린정환 : 오빠라구 부르면 문 열어주지?
S#3. 명륜동 고가 (낮)
정환 : 정말 생각 안나요?
경주 : 생각 안 난다니까! 암만 그래봐야 우리 사이 변하는 거 없어요.
정환 : (보면)
경주 : 몰라요? 거래처 여직원과 사장님. 유부남과 노처녀. 여자는 계속 사귀자구 쫒아다니구,
남자는 (정환 위로) 이 핑계 저 핑계 피하면서도, 막상 떠난다니까 잡지 못해 안달인 상황이죠.
정환 : 아 또 시작 따따부따 따따부따 왜 노처녀들은 하나같이 다 똑같을까. (열린 문 안쪽을 살피다가 들어가면)
경주 : 어머, 거기 인제 남의 집이예요?! 거길 왜 들어가 (두리번 하며 따라 들어가고)
저만치에서 주인남자(40대, 우락부락)가 몰래 나오며 째려본다.
정환 : 내가 맨날 여기서 꽃 따준 거 생각 안나?
경주 : 생각 안나요.
정환 : 하하 이래두 생각 안나?
정환, 꽃을 꺽어서 경주에게 과장된 폼으로 주는데.
주인 : 야아! 너 거기 서!
주인, 개 (도베르만 두 마리 정도) 까지 끌고 나온다
경주와 정환, 순식간에 겁에 질려서 아아아 소리 지르며 도망.
S#4. 동 앞 골목(동 낮)
경주, 정환 뛰어온다. 정환이 어느 골목으로 가려면
경주 : 거기 막다른 골목이잖아!
자기가 먼저 옆 골목으로 뛰면
정환 : (따라가며) 생각 안 난다며?
두 사람 뛰는 위로
손잡고 달리는 어린 경주와 어린 정환.
현재의 경주와 정환이 마주보는데 경주의 손에 그때까지 꽃이 들려있다.
두 사람, 웃음 터뜨리고.
S#5. 정환집
정환모, 반가운 사람을 맞으러 서성이며
재동 : 누가 와요?
정환모 : 으응 아빠가 너 만했을 때부터 십 년이나 같이 살았던 아줌마가 오신데...
초인종 울리면 재동이 누구세요 문 열렸어요 소리치고
말 끝나기도 전에 들이닥치는 경주모, 벌써부터 울면서 왔다.
경주모 : 으으응 아줌마! 아줌마! 저 복희예요
정환모 : (핑 돌며) 어서 와...
경주모, 그대로 엎어지면서 통곡을 한다.
경주모 : 아유, 이 몹쓸 년이 이제야 왔네요... 죽지 않으니까 만나네.
정환모 : 왜 울어? 이 좋은 날 왜 울어 (등을 쓰다듬어주며)
경주모 : (그러다 재동을 보고) 아이고 얘가 환이 아들이예요? 아이구 아이구... 어쩜 환이를 그냥 그대로 꺽었네...
아이구, 너는 나 모르지? 내가 느이 아빠를 업어서 키웠어... 아유, 세상에... 참, 얘가 경철이잖아요.
그 오줌싸개 말이예요?
경철 : 절 받으십시오. (정환모가 말리기도 전에 큰절하고)
정환모 :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잘 컸니? ... 복희야 너는 밥 안 먹어도 배부르겠다... 참, 위에 또 하나 있었잖어. 누나는?
S#6. 삼청 공원 (동 낮)
호젓한 숲길을 걷는 경주와 정환.
정환 : 이 공원이 이렇게 좋았었나?
경주 : 나무들이 더 자라서 그런가봐요.
정환 : ... 그러네.
경주 : ... 아, 저기서 노래부르던 거 생각나요?
정환 : (보면) 무슨 노래?
S#7. 같은 장소 (회상)
오솔레미오를 열창하는 어린 정환.
그 앞에서 넋 놓고 듣는 어린 경주.
S#8. 같은 장소 (동 낮)
경주 : 생각 안나?
정환 : (좀 창피해서) 아니?
경주 : 피이... 그럼, 나한테 시 읊어준 것도?
정환 : 뭐? 시? 말두 안돼. 내가 시를?
경주 :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정환 : (보는 위로)
S#9. 같은 장소 (회상)
종이를 들고 있지만 암송하며. 그 종이는 어린 경주에게 주고.
어린정환 :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어린경주 : (정환의 종이를 읽으며)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어린 정환을 보며)
S#10. 같은 장소
경주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생각 안나요?
(놀리며) 자기가 직접 지은 신데 생각이 안나요?
정환 : 뭐! (펄쩍) 말두 안돼! 야 그 시가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거는 온 국민이 다 안다. 근데 그걸
경주 : (흘기며) 그렇게 유명한 시를 자기가 지었다고 뻥을 치냐? 하기는 그러니까 남의 디자인이나 카피하지
정환 : 야아! 그때 얘기 자꾸 할래! (웃는다) ... 하기는 내가 니 그림 카피 안 했으면 우리, 못 만났겠다 그지?
경주 : ...
정환 : ... 왜, 못 알아 봤을까? 나는 중학교 얼굴 그대론데, 니가 먼저 알아봐야지.
경주 : ... 뭐가 그대로예요? 유들유들 뻔뻔한 걸레장사 아저씨.
정환 : 맞아 이렇게 따따부따 뻐시기만한 노처녀를 어떻게 알아봐!
경주 : (빠악 치고) 성질 건드리지 말라니까!
정환 : (웃음 터지고)
S#11. 경주네 집 앞 (동 저녁)
영재, 차안에서 기다리는데
저만치에서 나란히 걸어오는 경주와 정환.
그런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질투의 감정으로 보는 영재.
경주 : 참... 그 이태리어 무슨 뜻이예요?
정환 : 뭐 뭐가!
경주 : 나한테 잘난 척 하다 얻어맞은 말이요! 시뇨리나, 그 다음요.
정환 : 시뇨리나 게벨 덴뽀? 레에 몰또 벨라... 논 바다 비아... 날씨가 좋다, 그거지 뭐.
경주 : 또 거짓말? 그 다음에 두 구절 더 있잖아. 무슨 말인데 응, 응?
영재 : (나서며) 두분 같이 계셨네요?
정환 : (순간, 굳고)
영재 : 실장님이 가보라고 해서요... 과장님이 이태리 가는 거 어떻게 됐는지, 아침부터 소식이 없어서, 다들 초조해 하십니다.
경주 : 어...
정환 : 저, 누님은 나중에 뵙겠다고 전해 드려요.. 그럼.
정환, 목례하고, 걸어가며 뒤에서 만나고 있을 경주와 영재에게 신경이 쓰이지만 앞만 보고.
경주 : (영재에게) ... 미안해.
영재 : 그 소리 듣기 싫다고 그랬지 ... 경철이한테 들었어. 오빠 동생이라구? 나란히 손도 잡고 오지 그랬어?
경주 : 우리가 만든 상황, 아니야. (영재의 차로)
영재 : ... 이태리는 물 건너 간 거니? 그런 기회 잘 안 와.
짧은 시간 경과의 느낌. 영재의 차안에 나란히 앉아서.
경주 : 너두 알잖아. 처음부터 거기까지 갈 생각은 없었어. 그냥 여기서 도망치고 싶었던 거지...
모험? (자조하고) 나 못난 거 너도 잘 알잖아.... 지하철 노선 새로 생긴 것도 적응 못해서 헤매는데,
내가 뭘 얼마나 하겠어... 영재씨.. 그냥 꾀 좀 부리면 안돼? 꼭 힘들게 살아야 돼? (내리는데)
영재 : 눈 가리고 아웅이야.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라고... 언제까지 갈지, 두고 보자.
경주 : 너, 정말 못됐어. 아주 정이 딱딱 떨어져. (차 문을 탕 닫고)
영재, 시동 걸고 가다가 다시 뒤로 백한다. 경주, 돌아보면.
영재 : (차창을 열며, 앞만 보고) 나, 작년에 밀라노에서 몇 달 묵을 때, 귀동냥을 좀 했는데... 레에 몰또 벨라... 논 바다 비아.
경주 : (보는 위로)
영재 :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가지 마세요. 그 뜻이야... (차 떠나고)
경주 : ...
S#12. 경주네 안방
경주, 책장 안쪽에서 낡은 앨범을 꺼내 펴본다.
몇장 넘기다 보면.
어린 경주(꽃을 든)와 정환이 찍은 사진이 나온다.
경주 : (사진을 보며) ...
S#13. J 기획 사무실
어두운 사무실에 스탠드 불빛.
경주의 포트폴리오를 넘기며, 꽃 그림들을 본다.
정환 : 기집애.... 그렇게 꽃, 꽃 하더니...
S#14. 민우 스튜디오
민우, 박스에 책과 카메라를 넣는다.
책들 사이에 끼워진 사진봉투를 들어서 흔들면 자기가 찍었던 원희 사진이 우수수 떨어진다.
민우 : (활짝 웃는 원희의 사진을 보며) ...
박스 안에 사진들을 넣고 뚜껑을 덮으며.
S#15. 유비 실장실 (동 저녁)
원희와 강실장, 허장, 커피를 마시며 환담하는 분위기.
원희 : 우리 그이 아프리카 가요!
허장 : 뭐! 갑자기 웬 아프리카?
원희 : 내셔널 지오그래픽지 아시죠? 거기하고 계약이 됐데요.
강 : 정말? 와 그거 정말 가문의 영광 아니야?
원희 : 그럼 뭐해요? 아프리카 정글에서 갖은 고생 다 하는 건데. 이럴 줄 알았으면, 스튜디오는 괜히 돈 들여서 차렸잖아요.
S#16. 원희 침실 (동 밤)
굳은 표정의 원희, 민우와 마주 앉아서.
원희 : 꼭 가야 돼? ... 이혼하자는 말 차마 못해서, 대신 떠나는 거지?
민우 : ... 조금만 기다려 줘... 돌아오면, 잘 할게. 옛날처럼 잘 할게...
원희 : 언제 오는데?
민우 : ...
원희 : 보름 떠나 있는 동안도 미치는 줄 알았어... 차라리 이혼하고 가. (화장대 서랍의 이혼서류 꺼내 놓는다)
민우 : (보면)
원희 : 기다림보다는 차라리 이별이 나아... 헤어지자. 내 맘 알겠지?
민우 : 그러면 너 더 힘들어. 그냥 여기 있어... 나 꼭 돌아 온다구.
원희 : 어머니한테는... (가슴 아파서 말 막히고, 오히려 모질게) 그래, 나 당신 부모님한테도 정 없어...
공장 물려받으려고 종처럼 굽신거렸는데, 그것도 다른 사람한테 뺏길 판이지. 그저 자나깨나 자식타령, 정말 지겨워...
(나가려고 문 열다 말고 돌아서서) 이혼 허락 안 하시면 내가 일부러 아이 지운 거 말씀 드려, 당장에 내쫒아 주실 거야.
원희, 돌아서는데 열려진 문 밖에 장승처럼 우뚝 선 민우부.
원희 : ... (부들부들 떨며)
민우부 : 비행기가 열흘 후에 뜬다 캤나.
민우 : ... 아버지...
민우부 : 그 안에 집 얻어 나가고, 내 호적에서 이름 파라.
원희 : 아버님...
민우부 : ... 느그 어무이는 모르는 게 낫겠다. 서방 나가있는 동안에, 회사 가차운 데 방 얻어 이사하는 기라고 말 맞추자.
(돌아서고)
원희 : ...
그렇게 어두워지고.
S#17. 민우네 집 전경 (아침)
S#18. 민우네 주방
원희, 고개 숙이고 들어와 앞치마 두르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민우모.
민우모 : 니 진짜 그럴 기가? 꼭 따로 나가 살아야겠나아?
원희 : 어머니 (고개 떨구면)
민우모 : 여시 여시... 뒤에서, 시아버지 조정해놓고, 슬픈 척은 와 하노?
그래 서방도 없는데 시집살이 할 우리 며늘아가 아니지. (말은 그렇게 해도 흔쾌하게)
원희 : ...
민우모 : 니, 참말 시집살이 매워서 도망가는 기가? 내가 아들타령 쪼매 했다고 서운터나?
니 시집 올 때 타박한 거 아직도 꼬아있나?
원희 : 아니예요, 어머니.
민우모 : 하모, 그간에 그라도 정이 쌓였다 아이가? 니 토요일마다 고기 사들고 올기재?
원희 : 네... (떨며)
민우모 : 됐다 그라모. 후딱 밥 안쳐라. (나가고)
민우부 : (그 뒤에서 며느리를 보는 시선) ...
원희 : (고개 숙이며) ...
S#19. 정환네 주방 (아침)
토스트, 생식, 야채, 녹즙, 커피 등 각자 식성에 맞는 아침 식탁.
채옥 : 와, 서경주씨랑 그런 인연이 있었구나? 당신 너무 좋았겠다 응?
정환 : 응.
정환모 : 얘, 언제 경주 한번 데려와라... 걔가 참 이뻤는데.
채옥 : 네, 자세히 보니까 미인이더라구요. 첫 인상은 좀...
정환 : (먹고)
채옥 : 두구 보자 서경주... 난 자기가 마음에 들어서 자꾸 불러내는데, 그렇게 뻣뻣하게...
잠깐, 중학교 이 학년이면 한창 이성에 눈뜰 때 아니야? 그럼, 첫사랑?
정환모 : 얘, 경주 걔는 한참 구구단 외울 때였어... 혼자 외롭다가 여동생 생겼다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
채옥 : 어쨋든, 당신이 정식으로 초대해요.
정환 : ...
S#20. 유비 디자인실
테이블에 둘러앉은 경주, 정환, 원희, 영재, 강실장, 허장.
경주와 영재의 팽팽한 신경전, 다른 사람은 구경.
영재 : 리즈팸 SS 시즌 그림은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경주 : OL) 나영재씨, 어째서 혼자 해야된다고 생각해요?
영재 : OL) 잊으셨어요? 지난 번 피티 때 내가 이겼던 거... 컨셉 바꾸자는 말은 없었습니다.
경주 : OL) 어차피 바이어가 고르는 거니까, 내 그림도 같이 보내요.
원희 : 샘플 20개면 될 걸, 지금 40개 하자는 거지? 저 웬수 왜 이태리 안 갔을까?
허장 : 일은 핑계고 지금 사랑싸움하는 거지?
경주 : (쏘아보면)
강 : 어...컨버터 생각은 어때?
정환 : 서과장의 생각은 비효율적이고, 에너지 낭빕니다. 리즈팸 샘플은 유과장하고, 나영재씨가 책임지시고,
서과장은 내수 시장 개척에 주력해주세요. (경주가 이의 있어요 하는데) 자 군포공장 말씀인데요?
경주 : (흘겨보고)
S#21. 동 밖 주차장 (동 낮)
경주와 정환 나오며.
경주 : 어떻게 그렇게 사람 무안을 줘요?
정환 : 나영재 그림에 콤플랙스 있니?
경주 : (흘기다가) 그래요! 나 열등감이 많아서 잘난 척 합니다.
정환 : 알면 지금부터 고쳐... 운전은 할 줄 아니?
경주 : 사람 무시하지 마세요. (면허증 보여주며) 십년 무사고 녹색카드 (정환이 차 키를 던져주면 얼떨결에 받고) 어?
정환 : (운전석 문열고) 신호등이나 볼 줄 아나 몰라, 안봐도 비디오지, 뭐는 제대로 하겠어.
(가방에서 흰 종이 꺼내서 매직으로 초보 운전이라고 쓰기 시작)
경주 : ... 나더러, 이 차 몰라구요?
정환 : 다리도 부실한 게, 언제까지 무거운 가방 들고 지하철 타고 다닐 거야?
경주 : ... 근데 저, 이 차 비싸잖아요... 가다 긁히기라도 하면.
정환 : 한번 긁을 때마다 한 대씩 쥐어박는다.
S#22. 거리, 달리는 정환의 차 (동 낮)
초보운전 붙이고 덜컹대며 가는 정환의 차.
경주, 어깨에 힘 주고 운전대 꽉 잡고 비명 질러가며 운전한다.
정환은 깜빡이 켜! 옆에 보고! 야아! (운전대 잡고) 조심해 소리 지르고, 백 밀러 안보냐! 신호 바뀌잖아 정신차려 (쥐어박고)
경주, 입 좀 다물어요. 정신이 더 없잖아. 엄마 엄마 어떡해 어떡해 저 차 왜 저래요 등등
(정신없고 재미있는 상황 연출해주세요)
S#23. J 기획 앞 (동 낮)
운전석에서 내리는 경주, 다리 풀리고 어깨 아프고 아무 정신없고
정환은 고개 뻣뻣하고. 목쉬고.
정환 : 내가 너 땜에 십년 감수 음음, 그냥 지하철 타구 다녀라 응?
경주 : 빈정 상해서 정말... 내가 다시는 이 차 모나 봐라 (발로 차고)
정환 : 차가 무슨 죄니! 보다보다 너같은 돌은 처음 본다
경주 : 그래 나 돌이다!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춤도 못 춘다. 잘났어 정말 (눈물 핑 돌면)
정환 : 또 우냐 또 울어! 이 울보야. (쥐어박고)
경주 : (가방으로 후려치고)
태만이 나오다가 눈이 휘둥그래져서 본다.
S#24. J 기획 엘리베이터 안
정환 : (어깨를 두드리며) 겨우 한시간 차 타고 다녔는데, 온 몸이 다 아프다.
태만, 흘겨보다가 문 닫히자 마자 정환을 마구 구타한다.
정환 : 아 아야 왜에?
태만 : 나쁜 자식 싸가지 없는 자식...
내가 바이어 접대 한번 한다고 그렇게 싹싹 빌어도 안 빌려주더니, 그 생초보한테 키를 내줘!
S#25. J기획 사장실
정환을 따라오는 태만.
태만 : 김밥 먹으면서 복회 누나와 상봉한 게 어제다, 그제도 아니고 바로 24시간 전...
어떻게 하루만에 21년 공백을 뛰어넘었냐?
정환 : 아 그 기집애 진짜 운동신경 없더라... 운전은 포기해야되나? (핸드폰 누르고)
태만 : 안개 피우지 마 짜샤... 안 속는다.
정환 : 난데! 너 오늘부터 당장 시내연수 다시 받어! 까불지 말고 말 들어 임마! (끊고)
태만 : 그 여자더러 지금 임마 임마 하는 거냐 임마?
정환 : 그 여자는 무슨?
난영, 노크하고 들어오고.
난영 : 저.. 오늘부터 촬영 시작해요. 열흘이나 걸린 데는데...
태만 : 경철이 있잖아. 괜찮아.
정환 : 장난영, 가서 잘 하는데... 명심해. 이건 분명히 아르바이트고, 여가활동이야. 니 직장은 여기라구 알았어?
난영 : 솔직히 말해도 돼요? ... 저는 이번 기회에 뜨고 싶어요. 그래서
정환 : (보며) 그래서?
난영 : 내 인생을 바꾸고 싶어요...(겨우 웃고) 그렇다구요? (꾸벅하고 돌아서는 위로)
태만 : 살아봐라... 인생에서 그때가 제일 좋을 땐 걸 왜 모르냐?
난영 : ... (돌아보며) 제일 좋은 게 겨우 이거예요? ...
정환 : (짧게 보며)
S#26. 민우 스튜디오
무대, 의상에 맞게 제작해주세요)
헹거에 가득 실려 들어오는 의상들.
채옥, 코디들과 의상 체크하며 이거 다시 데려와 악세서리가 빠졌잖아. 구두 어딨어! 모자! 등등
정연과 민우는 무대 소품과 조명 만들며 적절한 애드립.
이윽고 무대 위에 조명이 켜지고.
민우 : (소리) 자, 시작합니다. 집중해주세요.
그 소리에 다들 조용해지고.
이윽고, 의상을 차려입고 분장을 끝낸 난영이 무대 위에 서고.
그 위로 스포트라이트가 쏘아지면서.
난영, 순간 찌푸리는 것부터 찰칵 찍는 민우.
난영 : 어, 준비 안됐어요.
민우 : 지금 표정도 좋았어, 자 자신감을 갖고... 들어갑시다? 하이!
난영, 표정 지으며.
난영의 바뀌어 가는 표정들, 디졸브 되며.
S#27. 민우스튜디오 (밤)
10일이 지났다.
행거에 걸린 의상들이 다 걷어져서 박스에 넣어진다.
초죽음이 된 난영,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온다.
난영 : 으.. 이젠 정말 옷만 봐도 지겨워요. 근데 너무 좋았어요, 선생님. 저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채옥 : 너, 그새 조명에 맛 들렸니?
난영 : 선생님 이쁘게 찍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스타 되면 이 은혜 안 잊을 게요.
민우 : 나 때문에 철야까지 해서 미안해요. 꼬박 열흘이네. 집에 갈 수 있어요?
난영 : 친구들이 기다려요. 먼저 가겠습니다 (인사하고 나가고)
채옥 : 민우씨, 우리 쫑파티, 안 해요?
민우 : 미안합니다. 여기 오늘 안에 정리해야 되서.
채옥 : 섭섭하네... 나 실은 민우씨한테 반했었는데, 그러니까 부인한테도 화 안 낼게요.
민우 : (보며) 고맙습니다.
채옥 : 나, 그날 사건으로 생각 많이 했어요.... 여자한테 남편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만약에 내가 독신이었으면, 그날 아마 열배는 더 당했을 거예요 그죠?
민우 : ...
S#28. 거리 (동 밤)
난영, 피곤하지만 결의에 차서 걸어온다.
어느 음식점을 보고 곧장 들어간다.
S#29. 로바다야끼 (동 밤)
난영이 들어오면, 경철과 유지가 생선을 구우며 기다리고 있다.
경철 : 빨리 와, 이거 먹어... 넌 익힌 고기만 먹어야된데. 안 피곤해?
난영 : 부탁 있는데, 남들 앞에서 나 아픈 얘기, 절대 하지마. 자기 일하는 여자한테는 몸 약한 게 치명적인 약점인 거 몰라?
유지, 경철 : (멍하니 보다가)
경철 : 어어! J기획 미스 장, 며칠 못 본 새 많이 컸다? 하하...
유지 : 맥주 한잔은 마셔도 돼지? (따라주고)
난영 : 좋아. (술잔 부딪치고, 마시고)
경철 : 와, 사진 몇 방 찍었다고 각이 딱 나오는데?
난영 : 너네들한테 할 말 있어.
유지, 경철 : (보면)
난영 : 지난 열흘이 너희들한테는 그저 평범한 날이지만, 난 그 동안 하루에 세시간도 못 자면서 엄청난 작업을 했어.
경철 : 유지야 얘가 작업이랜다. 아주 거장이 다 되셨다 응?
난영 : 나, 인제 인생이 바뀌었어. 너희들하고는 가는 길이 달라졌다구.
경철 : (장난기 가시며 보며)
난영 : 사장님 말씀이 맞아. 빨리 사람이 되고 싶다아아. 그거 우리들 얘기 아니니? 경철이 너는 대학이나 마저 졸업하고,
유지 너두 인제 고향으로 돌아가. 언제까지 이렇게 무책임하게 살 거야? 난 정말 인제부터 다시 살 거야.
그래서 너희들하고도 당분간 거리를 뒀으면 좋겠어. (일어나며) 나 피곤해서 먼저 갈게...
유지 : 난영아.
경철 : 냅둬 냅둬... 니가 한국말을 덜 알아들은 모양인데, 우리 지금 걸레 값으로 땡처리 된 거야....
알아들었으니까 바쁘신 분은 어서 가셔요?
난영 : (정말 깍쟁이같이 상큼하게) 그럼 밥값은 내가 낼게? 바이바이. (나가면)
유지 : ... 나는 난영이 마음 이해해... 가끔씩 사랑하는 사람들을 버리고 싶을 때가 있잖아. 니가 이해해.
경철 : 그럼, 이해하구두 남지...민우형 조수 하면서 저런 꼴 많이 봤다.
후지게 살던 애들이 조명 쬐금 받으면 그냥 확 뒤집어진다는 거 아니냐? 웃겨, 웃겨... 에이씨 나 못 참아! (벌떡)
S#30. 동 앞 (동 밤)
난영, 밖으로 나온다. 울지 않는다.
난영 : 그래, 나 변했어. 나 인제 안 울어, 내가 어떻게 사는지 두구봐. (택시에 타려는데)
경철 : (거칠게 잡고, 택시 보낸다)
난영 : 촌스럽게 왜 이래?
경철 : 아, 나도 끈적거리는 애 제일 싫어해. 절교 선언은 받아주겠는데, 유지하고 나를 한데 묶어서 도매금으로 해치워?
난영 : 난 너보다 유지랑 더 친했어. 왜 그래?
경철 : 갠 그냥 친구고 너랑 나는....
난영 : ... 우리가 연애라도 했니? 언제? 우리가 어디서 뭘 했는데? 손잡고 다정하게 데이트 한번이라도 한 적 있어? 있었니?
경철 : ...
난영 : 우리는 그냥 오다가다 만나서 애들처럼 놀았던 거야. 한 동네 살 때는 친하게 지내다가,
딴 동네로 이사가면 멀어지는 게 인지상정 아니니? 인연 있으면 또 만나자. 택시! (잡는다)
택시 안의 난영, 고개 싹 돌리며 외면하고.
백미러로 아프게 남아있는 경철의 멀어지는 모습을 본다.
S#31. 거리 달리는 정환의 차 (밤이나 새벽)
정환, 정신없이 잔다.
경주, 신나서 운전하는데. 제법 잘하는가 싶더니 끽 하고.
정환 : (짜증 왕창) 아아 멀미난다. 잠 좀 자자 응?
경주 : (운전이 너무 신난다) 안산서 여기까지 한번도 안 틀렸어... 나 아무래도 운전 체질인가 봐?
아까 프린트 검사하는데 무늬가 핸들로 보이는 거 있죠?
정환 : 프린트, 불량 나오면 가만 안 놔둔다? 아아 졸려, 난 졸린 거 제일 못 참겠더라 너는?
경주 : 난 배고픈 거요... (핸드폰 울리고) 보나마나 엄말 거야.
정환 : (받아보면)
경주모 : (F) 너 지금 어디야, 똑바로 말해, 남자랑 같이 있지
정환 : 네, 저 남잡니다. 하하 ... 지금 집에 가는 길인데...
S#32. 경주네 집 (새벽)
정환, 경주 들어오면.
경주모, 얼큰한 국을 퍼주며.
경주모 : 어서 와, 배고프지?
정환 : 와, 냄새... 죽인다.
경주 : 밥, 밥 (앉으며 수저 들고)
정환 : (같이 먹고) 경철이는요?
경주모 : 유진지 뭔지 하고 같이 있데. 어서 먹어.
정환 : 이 동네 싸우나 없나요?
경주모 : 여름마다 공사중이잖아.
S#33. 경주네 집 전경 (아침)
S#34. 경주 집 거실과 안방
거실에서 잠들어있는 정환, 아주 곤하고 달게.
경주모, 손 지갑을 들고 살금살금 나와서 문을 탁 닫고 나간다.
그 작은 소리에 일어나는 정환, 잠결에 둘러보고 일어나서 화장실인 줄 알고 문을 여는데.
안방에서 경주가 잠들어있다.
어, 미안하며 얼른 문을 닫다가...
정환 : (문을 조금 밀어보면)
경주의 아이처럼 쌕쌕 잠든 얼굴.
정환, 망설이다가 방으로 들어오고 만다.
정환, 경주를 잠시 내려보다가 옆에 있는 손 부채를 들어 부채질 몇번 쯤. 제풀에 그만둔다.
정환의 시선에 경주의 맨발이 보이고.
경주의 발에 가만히 자기 손을 뼘을 재듯 대보는 정환.
그것도 부질없는 짓인 줄 안다. 훌쩍 일어나서 나가며.
경주 자는 위로 들리는 정환의 으으으 기이한 기지개 소리.
경주, 잠결에 경철아! 잠 좀 자자 응! 소리 지르고.
정환 : (소리) 야! 울보! 출근 안 하냐! 늦었어.
경주, 벌떡 일어나서 시계보고 뛰어나가며.
경주 : 어, 나 먼저 씻어야 돼.
정환 : (메롱 하며 이미 욕실로 들어가 문 탕 닫고)
경주 : 빨리 나와! (장난처럼 탕 쳐주고)
기지개 켜며. 거실의 이부자리를 개는데....
경주, 그제서야, 정환이 함께 자고 있었다는 실감이 들며.
경주 : ...
정환, 젖은 얼굴 닦으며 나온다.
정환 : 십분 기다린다? 빨리 나와.
경주 : 어... 네... 잠깐...
정환, 경주가 주방의 서랍들을 마구 열다가 아래 서랍에서 새 칫솔 하나 꺼내는 것을 설레는 느낌으로 본다.
경주, 어색해서 머리 넘기며 칫솔을 준다.
정환 : 어... 고마워요.
경주모 : (칫솔 사들고 들어온다) 어, 칫솔이 거기 있었냐? 여기 면도기도 샀다?
아우, 과부 혼자 애들만 끼고 살다가, 집에 니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어찌나 든든한지...
정환 : 어...
경주 : 엄마, 오바하지 마... 나보다 겨우 다섯 살 많어.
S#35. 경주네 집 앞 (아침)
정환, 차를 닦고 있다.
안에서 경주가 나오며 쪼르르 운전석으로 가려면
정환이 안돼 하며 뒤에서 당기고.
그때 지나가던 동네 중년 부부가 한마디씩 던지고.
경주와 정환은 멍하니 듣는다.
아줌마 : 아유, 아줌마가 운전 좀 하겠다는 데 냅두지.
아저씨 : 오죽 답답하면 그러겠냐구요?
아줌마 : 아줌마, 남편 옆에서 운전해봐야 자존심만 상해. 그냥 가요!
정환 : (당황스러운 마음을 덥고, 키를 주며) 회사까지만이다?
경주 : 네에.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정환 : (차에 타며) 자 좌우 앞뒤를 살피시고! 출발.
경주 : ... 고마워요.
정환 : 뭐가? (보면) 운전 말야? 그럼 평생 고마워해야지. 그럼...
경주 : 남들한테 자랑해야지... 누가 나한테 꽃도 꺾어 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시도 (웃음)지어줬다고.
... 그 중에 제일 고마운 건요? (정환의 위로) 논 바다 비아....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정환 : ...
S#36. 법원 앞 (동 낮)
가정 법원에서 걸어나오는 원희.
허탈하고 쓸쓸하게 걸어나온다.
그런 원희 앞에 차가 서고
민우 : 타.
원희 : 바쁘잖아... (보다가 옆에 탄다)
민우 : 회사로 갈 거지?
S#37. 유비 앞 (동 낮)
민우의 차 멈추고.
원희 : ... 잘 왔어요, 고마워요.
민우 : (보면) 나두 말 높여서 해야 돼?
원희 : (웃고) 아니... 남들은 이혼 한번 하는데 몇 년 씩 걸린다는데...우린 겨우 열흘이네? 정말 실감 안 난다 그지?
원희, 내리면. 민우, 따라 내리고.
민우 : ... 미안해. 나는 비행기라도 타고 떠나는데... 당신은
원희 : 뭘, 이사하고. 집 꾸미고 나도 바뻐. 공항은 안 나가두 돼죠?
민우 : 그럼... (손 내밀다가 원희가 외면하면 그대로 내리고)
원희 : ...
민우 : ... 참, 할말이 많았는데...
원희 : ... 인제는 아무 말도 필요 없게 됐네... ... 들어가야 돼, 요새 너무 일을 안 했거든요...
(가다가 돌아서서) 기다려요. 경주 불러 줄게... (미소) 이혼하니까 좋은 것도 있네. 인제 경주한테 질투 안 해도 되잖아.
(웃어준다) 경주한테 얘기 안 했어요... 안 할 거야, 나.. 거짓말 선수잖아.
민우 : (겨우 보며) ...
S#38. 유비 디자인 실
원희 : 늦어서 죄송합니다.
경주 : 누구는 야근하고 왔는데, 아줌마 너무 티낸다 응? 멸치랑 고추장이랑 가방은 다 쌌어?
원희 : 나가 봐, 니 친구 왔어.
경주 : 어 그래? 잘됐다 줄 거 있는데. (봉투 들고 나간다)
원희 : (서늘한 표정으로 앉으며) ...
영재 : (그런 원희를 보다가) 과장님, 차 한잔 드릴까요?
원희 : 아, 괜찮아. 고마워요...
S#39. 동 꽃밭 (동 낮)
경주, 앞치마 입은 채로 민우야 부르며 뛰어나온다.
경주 : 이거 약이랑 책이랑... 뭐 그런 거야. (주고) 사자 조심하고 악어 조심하고? 아프리카 여자들도 조심하고 알았지! 악수!
민우 : (악수하다 푹 웃고) 너는 나랑 이별하는 게 그렇게 좋으니?
경주 : 내숭, 속으로는 너두 좋지? 지금 와이프 무서워서 표정관리 하는 거지?
민우 : 넌 이태리 안 간다며?
경주 : ... 아무나 떠나냐? 나는 이대로 살란다
민우 : 뭐 좋은 일 있니? 다른 때보다 더 이뻐 보여.
경주 : 그래 보여?
민우 : 나 돌아올 때까지 계속 그렇게 이쁘게 있어. 알았지?
경주 : 언제 오는데?
민우 : ... 일년쯤?
경주 : 그때까지? .... (한숨 푹 쉬는 기분으로)
S#40. 디자인 실
경주, 들어오는데.
영재 : (전화 받다가) 잠깐만요, 지금 들어오십니다... 어머니세요.
경주 : (받고) 어. 왜?
S#41. 경주네 거실과 유비텍
경주모, 이옷 저옷 잔뜩 꺼내놓고
경주모 : 얘 갈비가 낫니? 홍삼 같은 게 낫니?
경주 : 뜬금 없이 웬 갈비? 어디 가?
경주모 : (F) 무슨 소리야? 환이네 초대 받았잖어? 너 연락 못 받았어?
경주 : !
S#42. 유비 빌딩 지하 주차장
정환의 차 들어오면. 경주가 다가와 차에 탄다.
경주 : (자연스럽게 옆에 앉고) 나 그 댁에 초대받은 거 알아요?
정환 : 어... 어머니가 너 보고싶어 하셔.
경주 : 어머니가 초대한 건 아니잖아요.
정환의 핸드폰 울리면, 번호 보면서 경주의 눈치를 보게 된다.
경주 : 받으세요.
정환 : ... 어, 나야.
S#43. 수퍼 안
채옥 : (카트 가득 찬거리 담으며) 나 지금 장보는 중인데? 경주씨 뭐 좋아해?
S#44. 정환의 차 안
정환 : 어 (경주가 신경 쓰이고) 알아서 사.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 나 바빠... 끊어. (끊고) ...
경주 : ...
이번에는 경주의 핸드폰이 울리고.
경주, 윤채옥 이름 본다.
경주 : ... (받는다) 네... 윤이사님.
정환 : ...
S#45. 수퍼 안
채옥 : (웃고) 윤 이사님이 뭐예요? 우리 만나면 호칭 정리부터 해야겠다 그죠? 그이한테 얘기 들었죠? 오늘 오실 거죠?
S#46. 정환의 차 안 (동 낮)
경주 : 어, 죄송해요... 갑자기 일이 생겨서(하는데)
채옥 : (F 버럭) 몰라 몰라. 열흘 전부터 얘기했던 거잖아요. 겨우 스케쥴 빼서, 지금 시장까지 보고 있단 말이예요!
오늘 꼭 와야 돼요 알았죠! (끊고)
경주 : (기 막혀 멍하니 있다가 끊고) 열흘 전에 예약된 거였어요? 왜 말 안 했어요?
정환 : ...
경주 : 나라두 말 안 했겠다... (풀썩 웃고)
정환 : (보면)
경주 : 민우가 저더러 좋아 보인다고... 요 며칠 만나는 사람마다 다 그래요, 좋은 일 있냐고... 나, 지난 열흘 정말 행복했어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인가 봐...얼마나 오래 끌 수 있을까...한달? 일주일?..겨우 하루, 아니 한나절을 못 가네요..
정환 : ...
경주 :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가 이런 거죠? (내리며) 내 변명은 알아서 해주세요... 나 그 댁 차마, 못 들어가요.
정환 : ...
S#47. 유비 디자인 실
경주, 들어오면.
영재, 그림 그리고 있다. 원희도 열심히 캐드 작업하고.
경주 : 어, 어제 그리던 거 아니네? (캐드 보고) 너두 벌써 다 한 거야?
원희 : 서과장, 이태리 바람 아직도 안 꺼졌니? 너처럼 근무 태만하다가는 잘린다아? (캐드 끄고)
경주 : 원희야, 나랑 영화... 아, 공항 가야겠구나?
원희 : 그래야지. 내일 보자? (나가고)
경주 : ... 배웅 잘해... (영재를 보면)
영재 : 나도 바빠요. 과장님은 한 사장님 댁에 초대받았다면서요? 가기 싫어요? 핑계댈 건 있어요?
양가 부모, 형제 부인까지 몽땅 속아 넘겨야 되잖아.
경주 :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고)
영재 : (턱 잡고) 가! 가서 봐!
경주 : 뭘?
영재 : 얼마나 집을 잘 꾸며놓고 사는지, 잘 보고 오라고. 거실, 가구, 주방, 침실.... 궁금하지 않니?
경주, 또 집어던지는데, 영재 피하지 않고 맞는다.
경주 : 꼭 그렇게 확인사살을 해야겠어?
영재 : 니가 택한 거야... 너처럼 무식한 인간은 맞아봐야 아픈 줄 알지?
경주 : ...
S#48. 정환네 주방
정환, 주방으로 들어서면,
채옥과 정환모, 정성들인 음식장만에 여념 없고.
정환 경주는 못 오나봐요, 어머니. 공장에 일이 터졌다네요.
정환모 : 그래? 할 수 없지 뭐... 보고 싶은데....
채옥 : 당신, 혹시 경주씨한테 공사 구별한다고 빡빡하게 구는 거 아니야?
정환 : ....
S#49. J 기획 사무실
유지, 원단(좀 다른 종류로 니트, 솔리드 모직, 스판 등)들을 작두(없으면, 패킹가위)로 자르고. 난영도 가위질한다.
경철 : 아 알았어 엄마. 선물이야 가면서 사면되잖아. 기다리세요, 지금 출발할게요. 네. (끊고, 난영에게 다가오며)
저 장난영씨. 제가 회사 차 좀 써도 되겠습니까? 집안에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요.
난영 : (자동차 키를 주고) 조심해서 모세요.
경철 : 우리 모친이 장난영씨 싸인 한장 받아오라는데, 싸인 만들어 둔 건 있나요?
난영 : 유지야 그거 그만 자르고 이걸로 해줘. 모직이라 힘들지?
유지 : 오케이.
경철 : 근데 곧 스타되실 분이 손 모양 망가지게 그런 험한 일을 왜 하십니까? 여긴 월급도 얼마 안 되는데.
그냥 때려치시지. (나간다)
난영 : ... (원단 탕 내려놓고) 정말 여길 그만두든지 해야지...
유지, 너는 왜 가만있어? 틈만 나면 옳은 소리 또박또박 사람 속을 뒤집더니?
유지 : 니가 나 땡처리 했잖아. 나도 기브업 했어.
난영 : ... 칫!
S#50. 거리 (동 밤)
경주모, 기다리다가 경철이 차를 몰아오면. 마구 손을 흔들고. 차를 여기 저기 둘러보고.
경철 : 빨리 안타고 뭐해!
경주모 : (차에 타며) 이차 너 달라고 그래라. 내가 얘기해줄까? 환이가 내 말이라면 꼼짝 못 하지?
경철 : 엄마, 한번만 더 그러면 확 사표 쓴다? 누나한테 이른다?
경주모 : 알았어, 알았어... 인간 장복희 열 여덟 딸기같은 나이에 식모로 들어와, 10년이나 살던 집에
이렇게 잘난 아들을 데려고 인사를 가다니... 근데 이 기집애는 도대체 뭐 하구 있는 거야!
S#51. 거리 (동 밤)
경주, 어디로 갈지 몰라서 헤매다가. 핸드폰 누르고.
경주 : 난데? 너 민우 보내고 나면 기분 꿀꿀할까봐... 나, 지금 공항으로 갈까?
원희 : (F) 안돼, 그러지 마.
S#52. 원희 새 아파트 (동 밤)
칠년 전 살던 그 아파트만큼 허술하고 낡았다.
여기저기 박스들이 정리 안된 채.
원희 : 지금 공항에 있기는 한데 그이 친구들이 잔뜩 와서 내가 정신이 없을 거 같애.... 응, 내일 보자 응? (끊고)
원희, 풀썩 주저앉는다.
그 눈에 뜨이는 박스 안의 작은 화분들...
원희, 화분을 들어서 보는 위로.
플래시 백 되는
1회. 꽃을 주며 축하합니다 하던 민우.
원희 : (눈물을 참으며 화분을 들고 서다가 떨어뜨려 깨뜨린다)
그것을 보는 위로 들리는
민우 : (E) 칠주년을 화혼식이라고 부른데. 결혼 생활도 꽃을 가꾸듯이 정성을 기울여야한다 그런 뜻이겠지?
원희, 깨진 화분을 드는데. 그 위로 떠오르는
원희 : 암만 귀해봐야 들꽃이잖아. 나는 꽃이라면 인제 신물 나.
원희,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S#53. 공항 (동 밤)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의 민우.
입국장 앞에 서서 잠깐 돌아본다.
검은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 이윽고 안으로 들어간다.
S#54. 거리 (동 밤)
경주, 걸어온다. 그 눈에 뜨이는 실내운전 연습장.
안으로 들어간다.
S#55. 실내 운전 연습장
시뮬레이션 운전을 할 수 있는.
경주, 기계 앞에 앉으며 운전 시작하고.
시뮬레이션 운전의 소음과 화면들 현란하게.
S#56. 정환네 집
거실의 교자상에서 정환네와 경주모, 경철, 담소하며 식사 중.
경주모의 주책에 하하 웃는 식구들.
정환, 빈 접시를 들고 일어서는 표정.
S#57. 실내 운전 연습장
경주의 운전 점점 더 거칠어진다.
여기저기 부딪치고, 경고음? 들리고.
끝나면 다시 동전 넣고.
마음의 풍랑만큼이나 운전 거칠어지면서.
거칠고 빠르게 팍팍 찍히듯 떠오르는 장면들.
3회, 패션쇼장 앞에서의 정환과 채옥.
11회, 채옥이 시어머니가 주신 거예요 자랑하던 반지.
7회, 레스토랑에서 밥은 내가 사지만, 돈은 이이가 내니까 우리 비싼 거 먹어요 하던 채옥.
6회, 채옥이 전화로 남편에게 여보 응? 응? 하며 애교 떨던.
11회, 채옥의 반지 다시 한번 보이고.
11회에 자기가 상상했던 정환과 채옥의 키스.
경주, 못 견디고 핸들을 휙 꺾고.
화면에 대형사고의 장면과 소음들...
경주 : (핸들에 얼굴을 묻고) ...
S#58. 정환네 주방과 거실
경철은 재동과 놀고.
주방에서는 한참 설거지하고, 과일 깎느라 북적이는 분위기.
경주모 : 놔둬 놔둬. 이건 내가 전문가야. (웃기고)
채옥 : 경주씨가 어머니 반만 닮았어도 훨씬 애교 있을 텐데.
경주모 : 오호호, 맞아 맞아 그러면 벌써 시집갔지.
정환, 빈 접시를 나르는데.
인터폰 울리면 내가 나갈게요 하고 보는데
화면에 경주가 고개 숙이고.
정환 : !
S#59. 정환네 아파트 앞과 안 (동 밤)
경주, 긴장해서 서있다.
아파트 문이 열리고 나오는 정환.
정환 : 어... 왔어,요?
경주 : 네...
두 사람, 마주 보며.
S#60. 정환네 집 몽따쥬
정환의 집을 살피는 경주의 시선과 감춰진 욕망, 질투, 갈등.
경주모는 천진한 마음으로 적당히 샘내며 딸의 손을 끌고 다니며 이방 저방 구경을 시켜준다.
정환과 경철은 거실에서 야구 중계를 본다. 정환은 물론 경주에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욕실
정갈하게 정리된 수건들, 욕실용품, 남자용품들, 정환의 가운 등.
경주모 : (문 열고) 얘. 너두 시집가면 꼭 이렇게 꾸미고 살아라 응?
경주 : ...
주방
예쁜 그릇들과 씽크 대, 주방가구들. 그릇 정리를 하는 정환모.
경주모 : 아우 파출부 그렇게 다녀봐도 이렇게 잘 꾸민 집 못 봤네.
정환모 : (경주 손을 잡고) 어릴 때 모습 그대로네.. 이렇게 이쁘게 참하게 자랄 줄 알았어 내가...
장하다... 우리 환이가 잘 해주지?
경주 : ... 네....
재동의 방
아이 옷과 가족사진. 아이 그림 등
경주모 : (경주를 퍽퍽 패며) 이 기집애야. 재동 엄마랑 너랑 동갑내기더라.. 너두 시집갔으면 이만한 아들이 있잖어!
경주 : ...
거실
경주모가 경주 손을 끌고 침실 쪽으로 가면
채옥, 정환에게 어머 침실까지? 주책이야 하며 따라가고.
정환 : ...
침실
문을 열면 보여지는 침대에 놀라 물러서는 경주.
경주 : 됐어, 나가. (그러면서도 가장 궁금했던 공간, 발을 들여놓고)
경주모 : 어때, 뭐? (뒤에 오는 채옥에게) 괜찮죠?
채옥 : (들어오며) 뭐, 그럼요. 이리 잠깐 앉으세요... 수다나 떨게.
채옥이 경주 손을 잡고 침대에. 그 사이 경주모는 욕실 사용.
채옥 : 나 경주씨 오늘 안 왔으면 삐지려구 그랬어요...
재동 : 엄마 저기... (엄마에게 귀엣말)
경주의 시선에 화장대 위의 채옥의 반지(11회#3)가 보인다.
경주 : (그 반지를 보며) ...
채옥 : 어머, 우리 애 만난 적 있어요?
경주 : 네, 백화점에서요...(재동의 손을 잡고 그 작은 손을 보며) ....
채옥 : 그이도 그럼 그날 처음이겠네요?
경주 : 네... 아니, 그 전, 칠 년 전에도 만난 적 있어요.... 한 사장님 결혼하기 전이예요.
채옥 : 어머, 여보! 재동 아빠(불러놓고) 그럼 두 사람 연애할 수도 있었네?
정환 : ... 왜에? (들어오는데)
채옥 : 당신, 총각 때 경주씨 만났대며? 근데 아무 일 없었어?
정환 : (보는 위로)
경주 : 한 사장님이 좀 바빴어요, 그때...
S#61. 정환네 집 앞 (동 밤)
경철이 차를 몰아오면,
경주모 : 아유, 오늘 정말 잘 먹고 잘 놀다 가요... 환이야 너는 어디서 이렇게 이쁘고 착한 색시를 얻었니?
정환 : 네... 조심해서 가세요.
경주 : 가요 엄마. 안녕히 계세요. (차에 탄다)
경주모 : 기집애... 노처녀가 남의 집, 집들이 가면 원래 저래요, 이해하시우 응?
채옥 : 네, 자주 놀러오세요. 경주씨, 전화해요? 경철씨도 안녕?
차 떠나며 경주모 혼자 열심히 손 흔들고.
채옥이 아 피곤하다 하며 정환에게 달라붙고.
정환 : 들어가자. (집으로 들어가다 멀어지는 차를 슬쩍 보며) ...
S#62. 정환네 집 거실
정환모, 테이블을 정리하고.
정환 : 어머니도 힘드시겠어요, 주무세요.
방으로 들어갔던 채옥이 어머 내 반지하는 소리 들리고.
정환 : 으이그, 또 시작이다.
채옥 : 이상하다? 화장대 있었는데. 엄마 나 몰라? 어머니가 주신 거란 말야, 잊어버리면 안 되는 건데에?
채옥, 주방으로 뛰어가서 살피고.
정환모 : 거긴 없을 거야, 오늘 끼고 있는 거 못 봤거든?
채옥 : (갑자기 깔깔 웃고) 세상에 이 여자두 강적이네? 어떻게 이렇게 큰 걸 잊어먹고 다니냐?
(주방에서 경주의 가방을 들고 나온다)
정환모 : (웃음 참고) 걔가 스트레스가 많은가보네...
정환 : (아득해지며) ...
전화 오면 받는다.
정환 : 네.
경철 : (F) 저기, 우리 누나가요
정환 : 응, 내가 가지고 내려갈게...
S#63. 정환네 집 앞 (동 밤)
끽 하고 멈추는 경철의 차.
경주모 : (뒤에서 경주의 머리를 쥐어박고) 미쳐 미쳐... 말만한 기집애가 핸드백을 두구 와!... 아우 자존심 상해!
경주 : (그저 앞만 보며) ...
경철 : (네 네 하는 통화 끝내고) 사장님이 누나랑 할 얘기 있데, 엄마 우리는 먼저 갑시다.
S#64. 정환네 집 앞 광장 (동 밤)
정환이 경주의 가방을 들고 오면.
경주, 혼자 넓은 광장 복판에 우뚝 서있다.
정환, 경주에게 다가가며.
정환 : ... 어디 잠깐 갈까? (팔을 끄는데)
경주, 온 몸에 힘 들어가서 표정까지 굳어서.
정환 : 괜찮아. 서경주, 건망증 덜렁인 거 모르는 사람 없어. (뭔가 이상하다)? 왜 그래? 어디 아프니?
보는데 경주 오른 쪽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다.
정환 : 왜 그래? 그게 뭐야?
정환, 경주의 손을 잡아끄는데.
경주, 아이처럼 버티고.
정환, 어떤 예감과 긴장으로 억지로 힘주어 경주의 손을 잡아 주먹을 편다.
경주, 이를 앙 다물고, 절망적으로 떨리는, 마치 도둑같은 심정으로 버티다가 이윽고 손을 펴면.
그 손에 피 맺히게 쥐어져 있던 채옥의 알 반지.
정환 : (놀라며 보며)
경주 : ...
정환 : 왜...
경주 : (제 마음이 너무 독하고 무서워서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 그저 자신도 자기 마음을 믿을 수 없어서)
... 갖고 싶어서... 전부 다... 당신이 가진 거 전부... (정환은 눈물이 흐르고) 당신 어머니가 내 엄마면 좋겠어요.
당신 아들이 내 아들이면...
정환 : ....
경주 : (정환에게 반지 주며) 잘못했어요. 잊어버리세요. (꾸벅 인사한다)
경주, 걸어나오다가 달리기 시작하고.
정환 : (그대로 망연자실 울며) ...
경주, 이를 앙 다물고 뛴다.
정환, 눈물을 닦고 또 다시 경주를 향해 달려간다.
S#65. 근처 모퉁이 길 (동 밤)
정환, 달려와서 경주의 뒷모습을 본다.
정환 : 경주야!
경주, 듣지 못하고 간다.
정환, 달려가서 경주의 팔을 잡아 당겨 돌려세운다.
경주 : (고개 떨구고)
정환 : 나 봐. 나 좀 보라구 이 바보야!
경주 : (보면)
정환 : 보면 모르겠어? 내가 꼭 말로 해야 돼? 전부 다... 이미 니 거야... 내가 가진 거 다... 바로 나 말이야...
.... 처음부터 니 거였어.
경주 : (너무 놀라 차마 믿을 수 없어 보며)
정환 : (보며)
경주의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고,
그런 경주를 힘껏 부둥켜안는 정환에게서.
제12회 (2002년 7월 1일 월)
어느 골목과 정환의 옛집 (낮)
--11회 엔딩에서 이어지는 느낌으로.
--경주와 정환, 서로 어색한 기분으로 뚝 떨어져서.
정환 ... 저 아파트 자리가 시장이었는데, 어디가 어딘지 원....아, 이 골목이다, 맞죠... 여기 생각 안나요?
경주 몰라요. (정환이 보면) 사장님은 중학생이었지만, 저는 겨우 열 살이었어요. 어떻게 기억을 해요?
정환 (신이 나서 걸음 빨라지며) 여기, 짱구네 몰라요? 세퍼트 기르 던 집? 맨날 무섭다고 징징 거렸으면서
경주 그러는 분도 혹시 개 안 무서워했어요? 생각은 안 나지만 그 랬을 거 같애..
정환 무슨 소리? 아 여기다. (옛 집 앞으로 뛰어간다)
--이윽고, 정환의 옛집 앞에서
정환 이 집이다. (보며) 이렇게 작았나? ... 참 작다 그죠?
경주 ... 하나두 생각 안 난다니까요?
--문간방의 낡은 창문(혹은 대문)을 바라보는 경주의 시선으로
명륜동 고가 앞(경주의 회상)
--앞 씬과 같은 장소
어린정환 (고개를 내밀고는) 울보 왔구나!
어린경주 우리 새엄마 찾으러 왔는데요?
어린정환 오빠라구 부르면 문 열어주지?
명륜동 고가 (낮)
정환 정말 생각 안나요?
경주 생각 안 난다니까! 암만 그래봐야 우리 사이 변하는 거 없어 요.
정환 (보면)
경주 몰라요? 거래처 여직원과 사장님. 유부남과 노처녀. 여자는 계 속 사귀자구 쫒아다니구, 남자는 (정환 위로) 이 핑계 저 핑계 피하면서도, 막상 떠난다니까 잡지 못해 안달인 상황이죠.
정환 아 또 시작 따따부따 따따부따 왜 노처녀들은 하나같이 다 똑 같을까. (열린 문 안쪽을 살피다가 들어가면)
경주 어머, 거기 인제 남의 집이예요?! 거길 왜 들어가 (두리번 하 며 따라 들어가고)
--저만치에서 주인남자 (40대, 우락부락)가 몰래 나오며 째려본다.
정환 내가 맨날 여기서 꽃 따준 거 생각 안나?
경주 생각 안나요.
정환 하하 이래두 생각 안나?
--정환, 꽃을 꺽어서 경주에게 과장된 폼으로 주는데.
주인 야아! 너 거기 서!
--주인, 개 (도베르만 두 마리 정도) 까지 끌고 나온다
--경주와 정환, 순식간에 겁에 질려서 아아아 소리 지르며 도망.
동 앞 골목(동 낮)
--경주, 정환 뛰어온다. 정환이 어느 골목으로 가려면
경주 거기 막다른 골목이잖아!
--자기가 먼저 옆 골목으로 뛰면
정환 (따라가며) 생각 안 난다며?
--두 사람 뛰는 위로
--손잡고 달리는 어린 경주와 어린 정환.
--현재의 경주와 정환이 마주보는데 경주의 손에 그때까지 꽃이 들 려있다. 두 사람, 웃음 터뜨리고.
정환집.
--정환모, 반가운 사람을 맞으러 서성이며
재동 누가 와요?
정환모 으응 아빠가 너 만했을 때부터 십 년이나 같이 살았던 아줌 마가 오신데...
--초인종 울리면 재동이 누구세요 문 열렸어요 소리치고
--말 끝나기도 전에 들이닥치는 경주모, 벌써부터 울면서 왔다.
경주모 으으응 아줌마! 아줌마! 저 복희예요
정환모 (핑 돌며) 어서 와...
--경주모, 그대로 엎어지면서 통곡을 한다.
경주모 아유, 이 몹쓸 년이 이제야 왔네요... 죽지 않으니까 만나네.
정환모 왜 울어? 이 좋은 날 왜 울어 (등을 쓰다듬어주며)
경주모 (그러다 재동을 보고) 아이고 얘가 환이 아들이예요? 아이구 아이구... 어쩜 환이를 그냥 그대로 꺽었네... 아이구, 너는 나 모르지? 내가 느이 아빠를 업어서 키웠어... 아유, 세상에... 참, 얘가 경철이잖아요. 그 오줌싸개 말이예요?
경철 절 받으십시오. (정환모가 말리기도 전에 큰절하고)
정환모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잘 컸니? ... 복희야 너는 밥 안 먹어 도 배부르겠다... 참, 위에 또 하나 있었잖어. 누나는?
삼청 공원 (동 낮)
--호젓한 숲길을 걷는 경주와 정환.
정환 이 공원이 이렇게 좋았었나?
경주 나무들이 더 자라서 그런가봐요.
정환 ... 그러네.
경주 ... 아, 저기서 노래부르던 거 생각나요?
정환 (보면) 무슨 노래?
같은 장소 (회상)
--오솔레미오를 열창하는 어린 정환. 그 앞에서 넋 놓고 듣는 어린 경주.
같은 장소 (동 낮)
경주 생각 안나?
정환 (좀 창피해서) 아니?
경주 피이... 그럼, 나한테 시 읊어준 것도?
정환 뭐? 시? 말두 안돼. 내가 시를?
경주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 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정환 (보는 위로)
같은 장소 (회상)
--종이를 들고 있지만 암송하며. 그 종이는 어린 경주에게 주고.
어린정환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 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어린경주 (정환의 종이를 읽으며)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어린 정환을 보며)
같은 장소
경주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생각 안나요? (놀리 며) 자기가 직접 지은 신데 생각이 안나요?
정환 뭐! (펄쩍) 말두 안돼! 야 그 시가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거는
온 국민이 다 안다. 근데 그걸
경주 (흘기며) 그렇게 유명한 시를 자기가 지었다고 뻥을 치냐? 하 기는 그러니까 남의 디자인이나 카피하지
정환 야아! 그때 얘기 자꾸 할래! (웃는다) ... 하기는 내가 니 그림 카피 안 했으면 우리, 못 만났겠다 그지?
경주 ...
정환 ... 왜, 못 알아 봤을까? 나는 중학교 얼굴 그대론데, 니가 먼저 알아봐야지.
경주 ... 뭐가 그대로예요? 유들유들 뻔뻔한 걸레장사 아저씨.
정환 맞아 이렇게 따따부따 뻐시기만한 노처녀를 어떻게 알아봐!
경주 (빠악 치고) 성질 건드리지 말라니까!
정환 (웃음 터지고)
경주네 집 앞 (동 저녁)
--영재, 차안에서 기다리는데 저만치에서
--나란히 걸어오는 경주와 정환.
--그런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질투의 감정으로 보는 영재.
경주 참... 그 이태리어 무슨 뜻이예요?
정환 뭐 뭐가!
경주 나한테 잘난 척 하다 얻어맞은 말이요! 시뇨리나, 그 다음요.
정환 시뇨리나 게벨 덴뽀? 레에 몰또 벨라... 논 바다 비아... 날씨가 좋다, 그거지 뭐.
경주 또 거짓말? 그 다음에 두 구절 더 있잖아. 무슨 말인데 응, 응?
영재 (나서며) 두분 같이 계셨네요?
정환 (순간, 굳고)
영재 실장님이 가보라고 해서요... 과장님이 이태리 가는 거 어떻게 됐는지, 아침부터 소식이 없어서, 다들 초조해 하십니다.
경주 어...
정환 저, 누님은 나중에 뵙겠다고 전해 드려요.. 그럼.
--정환, 목례하고, 걸어가며 뒤에서 만나고 있을 경주와 영재에게 신 경이 쓰이지만 앞만 보고.
경주 (영재에게) ... 미안해.
영재 그 소리 듣기 싫다고 그랬지 ... 경철이한테 들었어. 오빠 동 생이라구? 나란히 손도 잡고 오지 그랬어?
경주 우리가 만든 상황, 아니야. (영재의 차로)
영재 ... 이태리는 물 건너 간 거니? 그런 기회 잘 안 와.
--짧은 시간 경과의 느낌. 영재의 차안에 나란히 앉아서.
경주 너두 알잖아. 처음부터 거기까지 갈 생각은 없었어. 그냥 여기 서 도망치고 싶었던 거지... 모험? (자조하고) 나 못난 거 너도 잘 알잖아.... 지하철 노선 새로 생긴 것도 적응 못해서 헤매는 데, 내가 뭘 얼마나 하겠어... 영재씨.. 그냥 꾀 좀 부리면 안 돼? 꼭 힘들게 살아야 돼? (내리는데)
영재 눈 가리고 아웅이야.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라고... 언제까지 갈지, 두고 보자.
경주 너, 정말 못됐어. 아주 정이 딱딱 떨어져. (차 문을 탕 닫고)
--영재, 시동 걸고 가다가 다시 뒤로 백한다. 경주, 돌아보면.
영재 (차창을 열며, 앞만 보고) 나, 작년에 밀라노에서 몇 달 묵을 때, 귀동냥을 좀 했는데... 레에 몰또 벨라... 논 바다 비아.
경주 (보는 위로)
영재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가지 마세요. 그 뜻이야... (차 떠나고)
경주 ...
경주네 안방
--경주, 책장 안쪽에서 낡은 앨범을 꺼내 펴본다.
--몇장 넘기다 보면.
--어린 경주(꽃을 든)와 정환이 찍은 사진이 나온다.
경주 (사진을 보며) ...
J 기획 사무실
--어두운 사무실에 스탠드 불빛.
--경주의 포트폴리오를 넘기며, 꽃 그림들을 본다.
정환 기집애.... 그렇게 꽃, 꽃 하더니...
민우 스튜디오
--민우, 박스에 책과 카메라를 넣는다.
--책들 사이에 끼워진 사진봉투를 들어서 흔들면 자기가 찍었던 원 희 사진이 우수수 떨어진다.
민우 (활짝 웃는 원희의 사진을 보며) ...
--박스 안에 사진들을 넣고 뚜껑을 덮으며.
유비 실장실 (동 저녁)
--원희와 강실장, 허장, 커피를 마시며 환담하는 분위기.
원희 우리 그이 아프리카 가요!
허장 뭐! 갑자기 웬 아프리카?
원희 내셔널 지오그래픽지 아시죠? 거기하고 계약이 됐데요.
강 정말? 와 그거 정말 가문의 영광 아니야?
원희 그럼 뭐해요? 아프리카 정글에서 갖은 고생 다 하는 건데.
이럴 줄 알았으면, 스튜디오는 괜히 돈 들여서 차렸잖아요.
원희 침실 (동 밤)
--굳은 표정의 원희, 민우와 마주 앉아서.
원희 꼭 가야 돼? ... 이혼하자는 말 차마 못해서, 대신 떠나는 거 지?
민우 ... 조금만 기다려 줘... 돌아오면, 잘 할게. 옛날처럼 잘 할게...
원희 언제 오는데?
민우 ...
원희 보름 떠나 있는 동안도 미치는 줄 알았어... 차라리 이혼하고 가. (화장대 서랍의 이혼서류 꺼내 놓는다)
민우 (보면)
원희 기다림보다는 차라리 이별이 나아... 헤어지자. 내 맘 알겠지?
민우 그러면 너 더 힘들어. 그냥 여기 있어... 나 꼭 돌아 온다구.
원희 어머니한테는... (가슴 아파서 말 막히고, 오히려 모질게) 그래, 나 당신 부모님한테도 정 없어... 공장 물려받으려고 종 처럼 굽신거렸는데, 그것도 다른 사람한테 뺏길 판이지. 그저 자나깨나 자식타령, 정말 지겨워... (나가려고 문 열다 말고 돌 아서서) 이혼 허락 안 하시면 내가 일부러 아이 지운 거 말씀 드려, 당장에 내쫒아 주실 거야.
--원희, 돌아서는데 열려진 문 밖에 장승처럼 우뚝 선 민우부.
원희 ... (부들부들 떨며)
민우부 비행기가 열흘 후에 뜬다 캤나.
민우 ... 아버지...
민우부 그 안에 집 얻어 나가고, 내 호적에서 이름 파라.
원희 아버님...
민우부 ... 느그 어무이는 모르는 게 낫겠다. 서방 나가있는 동안에, 회 사 가차운 데 방 얻어 이사하는 기라고 말 맞추자. (돌아서고)
원희 ...
--그렇게 어두워지고.
민우네 집 전경 (아침)
민우네 주방
--원희, 고개 숙이고 들어와 앞치마 두르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민우모.
민우모 니 진짜 그럴 기가? 꼭 따로 나가 살아야겠나 아?
원희 어머니 (고개 떨구면)
민우모 여시 여시... 뒤에서, 시아버지 조정해놓고, 슬픈 척은 와 하노? 그래 서방도 없는데 시집살이 할 우리 며늘아가 아니지. (말은 그렇게 해도 흔쾌하게)
원희 ...
민우모 니, 참말 시집살이 매워서 도망가는 기가? 내가 아들타령 쪼매 했다고 서운터나? 니 시집 올 때 타박한 거 아직도 꼬아있나?
원희 아니예요, 어머니.
민우모 하모, 그간에 그라도 정이 쌓였다 아이가? 니 토요일마다 고기 사들고 올기재?
원희 네... (떨며)
민우모 됐다 그라모. 후딱 밥 안쳐라. (나가고)
민우부 (그 뒤에서 며느리를 보는 시선) ...
원희 (고개 숙이며) ...
정환네 주방 (아침)
--토스트, 생식, 야채, 녹즙, 커피 등 각자 식성에 맞는 아침 식탁.
채옥 와, 서경주씨랑 그런 인연이 있었구나? 당신 너무 좋았겠다 응?
정환 응.
정환모 얘, 언제 경주 한번 데려와라... 걔가 참 이뻤는데.
채옥 네, 자세히 보니까 미인이더라구요. 첫 인상은 좀...
정환 (먹고)
채옥 두구 보자 서경주... 난 자기가 마음에 들어서 자꾸 불러내는 데, 그렇게 뻣뻣하게... 잠깐, 중학교 이 학년이면 한창 이성에 눈뜰 때 아니야? 그럼, 첫사랑?
정환모 얘, 경주 걔는 한참 구구단 외울 때였어... 혼자 외롭다가 여동생 생겼다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
채옥 어쨋든, 당신이 정식으로 초대해요.
정환 ...
유비 디자인실
--테이블에 둘러앉은 경주, 정환, 원희, 영재, 강실장, 허장.
--경주와 영재의 팽팽한 신경전, 다른 사람은 구경.
영재 리즈팸 SS 시즌 그림은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경주 OL) 나영재씨, 어째서 혼자 해야된다고 생각해요?
영재 OL) 잊으셨어요? 지난 번 피티 때 내가 이겼던 거... 컨셉 바 꾸자는 말은 없었습니다.
경주 OL) 어차피 바이어가 고르는 거니까, 내 그림도 같이 보내요.
원희 샘플 20개면 될 걸, 지금 40개 하자는 거지? 저 웬수 왜 이태 리 안 갔을까?
허장 일은 핑계고 지금 사랑싸움하는 거지?
경주 (쏘아보면)
강 어...컨버터 생각은 어때?
정환 서과장의 생각은 비효율적이고, 에너지 낭빕니다. 리즈팸 샘플 은 유과장하고, 나영재씨가 책임지시고, 서과장은 내수 시장 개척에 주력해주세요. (경주가 이의 있어요 하는데) 자 군포공 장 말씀인데요?
경주 (흘겨보고)
동 밖 주차장 (동 낮)
--경주와 정환 나오며.
경주 어떻게 그렇게 사람 무안을 줘요?
정환 나영재 그림에 콤플랙스 있니?
경주 (흘기다가) 그래요! 나 열등감이 많아서 잘난 척 합니다.
정환 알면 지금부터 고쳐... 운전은 할 줄 아니?
경주 사람 무시하지 마세요. (면허증 보여주며) 십년 무사고 녹색카 드 (정환이 차 키를 던져주면 얼떨결에 받고) 어?
정환 (운전석 문열고) 신호등이나 볼 줄 아나 몰라, 안봐도 비디오 지, 뭐는 제대로 하겠어. (가방에서 흰 종이 꺼내서 매직으로 초보 운전이라고 쓰기 시작)
경주 ... 나더러, 이 차 몰라구요?
정환 다리도 부실한 게, 언제까지 무거운 가방 들고 지하철 타고 다 닐 거야?
경주 ... 근데 저, 이 차 비싸잖아요... 가다 긁히기라도 하면.
정환 한번 긁을 때마다 한 대씩 쥐어박는다.
거리, 달리는 정환의 차 (동 낮)
--초보운전 붙이고 덜컹대며 가는 정환의 차.
--경주, 어깨에 힘 주고 운전대 꽉 잡고 비명 질러가며 운전한다.
--정환은 깜빡이 켜! 옆에 보고! 야아! (운전대 잡고) 조심해 소리 지 르고, 백 밀러 안보냐! 신호 바뀌잖아 정신차려 (쥐어박고)
경주, 입 좀 다물어요. 정신이 더 없잖아. 엄마 엄마 어떡해 어떡해 저 차 왜 저래요 등등 (정신없고 재미있는 상황 연출해주세요)
J 기획 앞 (동 낮)
--운전석에서 내리는 경주, 다리 풀리고 어깨 아프고 아무 정신없고
--정환은 고개 뻣뻣하고. 목쉬고.
정환 내가 너 땜에 십년 감수 음음, 그냥 지하철 타구 다녀라 응?
경주 빈정 상해서 정말... 내가 다시는 이 차 모나 봐라 (발로 차고)
정환 차가 무슨 죄니! 보다보다 너같은 돌은 처음 본다
경주 그래 나 돌이다!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춤도 못 춘다. 잘났어 정말 (눈물 핑 돌면)
정환 또 우냐 또 울어! 이 울보야. (쥐어박고)
경주 (가방으로 후려치고)
--태만이 나오다가 눈이 휘둥그래져서 본다.
J 기획 엘리베이터 안
정환 (어깨를 두드리며) 겨우 한시간 차 타고 다녔는데, 온 몸이 다 아프다.
--태만, 흘겨보다가 문 닫히자 마자 정환을 마구 구타한다.
정환 아 아야 왜에?
태만 나쁜 자식 싸가지 없는 자식... 내가 바이어 접대 한번 한다고 그렇게 싹싹 빌어도 안 빌려주더니, 그 생초보한테 키를 내줘!
J기획 사장실
--정환을 따라오는 태만.
태만 김밥 먹으면서 복회 누나와 상봉한 게 어제다, 그제도 아니고 바로 24시간 전... 어떻게 하루만에 21년 공백을 뛰어넘었냐?
정환 아 그 기집애 진짜 운동신경 없더라... 운전은 포기해야되나? (핸드폰 누르고)
태만 안개 피우지 마 짜샤... 안 속는다.
정환 난데! 너 오늘부터 당장 시내연수 다시 받어! 까불지 말고 말 들어 임마! (끊고)
태만 그 여자더러 지금 임마 임마 하는 거냐 임마?
정환 그 여자는 무슨?
--난영, 노크하고 들어오고.
난영 저.. 오늘부터 촬영 시작해요. 열흘이나 걸린 데는 데...
태만 경철이 있잖아. 괜찮아.
정환 장난영, 가서 잘 하는데... 명심해. 이건 분명히 아르바이트고, 여가활동이야. 니 직장은 여기라구 알았어?
난영 솔직히 말해도 돼요? ... 저는 이번 기회에 뜨고 싶어요. 그래 서
정환 (보며) 그래서?
난영 내 인생을 바꾸고 싶어요...(겨우 웃고) 그렇다구요? (꾸벅하고 돌아서는 위로)
태만 살아봐라... 인생에서 그때가 제일 좋을 땐 걸 왜 모르냐?
난영 ... (돌아보며) 제일 좋은 게 겨우 이거예요? ...
정환 (짧게 보며)
민우 스튜디오
--(무대, 의상에 맞게 제작해주세요)
--헹거에 가득 실려 들어오는 의상들.
--채옥, 코디들과 의상 체크하며 이거 다시 데려와 악세서리가 빠졌 잖아. 구두 어딨어! 모자! 등등
--정연과 민우는 무대 소품과 조명 만들며 적절한 애드립.
--이윽고 무대 위에 조명이 켜지고.
민우(소) 자, 시작합니다. 집중해주세요.
--그 소리에 다들 조용해지고.
--이윽고, 의상을 차려입고 분장을 끝낸 난영이 무대 위에 서고.
--그 위로 스포트라이트가 쏘아지면서.
--난영, 순간 찌푸리는 것부터 찰칵 찍는 민우.
난영 어, 준비 안됐어요.
민우 지금 표정도 좋았어, 자 자신감을 갖고... 들어갑시다? 하이!
--난영, 표정 지으며.
--난영의 바뀌어 가는 표정들, 디졸브 되며.
민우스튜디오 (밤)
--10일이 지났다.
--행거에 걸린 의상들이 다 걷어져서 박스에 넣어진다.
--초죽음이 된 난영,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온다.
난영 으.. 이젠 정말 옷만 봐도 지겨워요. 근데 너무 좋았어요, 선생 님. 저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채옥 너, 그새 조명에 맛 들렸니?
난영 선생님 이쁘게 찍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스타 되면 이 은혜 안 잊을 게요.
민우 나 때문에 철야까지 해서 미안해요. 꼬박 열흘이네. 집에 갈 수 있어요?
난영 친구들이 기다려요. 먼저 가겠습니다 (인사하고 나가고)
채옥 민우씨, 우리 쫑파티, 안 해요?
민우 미안합니다. 여기 오늘 안에 정리해야 되서.
채옥 섭섭하네... 나 실은 민우씨한테 반했었는데, 그러니까 부인한 테도 화 안 낼게요.
민우 (보며) 고맙습니다.
채옥 나, 그날 사건으로 생각 많이 했어요.... 여자한테 남편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만약에 내가 독신이었으면, 그날 아마 열배는 더 당했을 거예요 그죠?
민우 ...
거리 (동 밤)
--난영, 피곤하지만 결의에 차서 걸어온다.
--어느 음식점을 보고 곧장 들어간다.
로바다야끼 (동 밤)
--난영이 들어오면, 경철과 유지가 생선을 구우며 기다리고 있다.
경철 빨리 와, 이거 먹어... 넌 익힌 고기만 먹어야된데. 안 피곤해?
난영 부탁 있는데, 남들 앞에서 나 아픈 얘기, 절대 하지마. 자기 일 하는 여자한테는 몸 약한 게 치명적인 약점인 거 몰라?
유지,경철 (멍하니 보다가)
경철 어어! J기획 미스 장, 며칠 못 본 새 많이 컸다? 하하...
유지 맥주 한잔은 마셔도 돼지? (따라주고)
난영 좋아. (술잔 부딪치고, 마시고)
경철 와, 사진 몇 방 찍었다고 각이 딱 나오는데?
난영 너네들한테 할 말 있어.
유지, 경철 (보면)
난영 지난 열흘이 너희들한테는 그저 평범한 날이지만, 난 그 동 안 하루에 세시간도 못 자면서 엄청난 작업을 했어.
경철 유지야 얘가 작업이랜다. 아주 거장이 다 되셨다 응?
난영 나, 인제 인생이 바뀌었어. 너희들하고는 가는 길이 달라졌다 구.
경철 (장난기 가시며 보며)
난영 사장님 말씀이 맞아. 빨리 사람이 되고 싶다아아. 그거 우리들 얘기 아니니? 경철이 너는 대학이나 마저 졸업하고, 유지 너두 인제 고향으로 돌아가. 언제까지 이렇게 무책임하게 살 거야? 난 정말 인제부터 다시 살 거야. 그래서 너희들하고도 당분간 거리를 뒀으면 좋겠어. (일어나며) 나 피곤해서 먼저 갈게...
유지 난영아.
경철 냅둬 냅둬... 니가 한국말을 덜 알아들은 모양인데, 우리 지금 걸레 값으로 땡처리 된 거야.... 알아들었으니까 바쁘신 분은 어서 가셔요?
난영 (정말 깍쟁이같이 상큼하게) 그럼 밥값은 내가 낼게? 바이바 이. (나가면)
유지 ... 나는 난영이 마음 이해해... 가끔씩 사랑하는 사람들을 버리 고 싶을 때가 있잖아. 니가 이해해.
경철 그럼, 이해하구두 남지...민우형 조수 하면서 저런 꼴 많이 봤다. 후지게 살던 애들이 조명 쬐금 받으면 그냥 확 뒤집어진 다는 거 아니냐? 웃겨, 웃겨... 에이 씨 나 못 참아! (벌떡)
동 앞 (동 밤)
--난영, 밖으로 나온다. 울지 않는다.
난영 그래, 나 변했어. 나 인제 안 울어, 내가 어떻게 사는지 두구 봐. (택시에 타려는데)
경철 (거칠게 잡고, 택시 보낸다)
난영 촌스럽게 왜 이래?
경철 아, 나도 끈적거리는 애 제일 싫어해. 절교 선언은 받아주겠는 데, 유지하고 나를 한데 묶어서 도매금으로 해치워?
난영 난 너보다 유지랑 더 친했어. 왜 그래?
경철 갠 그냥 친구고 너랑 나는....
난영 ... 우리가 연애라도 했니? 언제? 우리가 어디서 뭘 했는데? 손 잡고 다정하게 데이트 한번이라도 한 적 있어? 있었니?
경철 ...
난영 우리는 그냥 오다가다 만나서 애들처럼 놀았던 거야. 한 동네 살 때는 친하게 지내다가, 딴 동네로 이사가면 멀어지는 게 인 지상정 아니니? 인연 있으면 또 만나자. 택시! (잡는다)
--택시 안의 난영, 고개 싹 돌리며 외면하고.
--백미러로 아프게 남아있는 경철의 멀어지는 모습을 본다.
거리 달리는 정환의 차 (밤이나 새벽)
--정환, 정신없이 잔다.
--경주, 신나서 운전하는데. 제법 잘하는가 싶더니 끽 하고.
정환 (짜증 왕창) 아아 멀미난다. 잠 좀 자자 응?
경주 (운전이 너무 신난다) 안산서 여기까지 한번도 안 틀렸어... 나 아무래도 운전 체질인가 봐? 아까 프린트 검사하는데 무늬가 핸들로 보이는 거 있죠?
정환 프린트, 불량 나오면 가만 안 놔둔다? 아아 졸려, 난 졸린 거 제일 못 참겠더라 너는?
경주 난 배고픈 거요... (핸드폰 울리고) 보나마나 엄말 거야.
정환 (받아보면)
경주모 F) 너 지금 어디야, 똑바로 말해, 남자랑 같이 있지
정환 네, 저 남잡니다. 하하 ... 지금 집에 가는 길인데...
경주네 집 (새벽)
--정환, 경주 들어오면.
--경주모, 얼큰한 국을 퍼주며.
경주모 어서 와, 배고프지?
정환 와, 냄새... 죽인다.
경주 밥, 밥 (앉으며 수저 들고)
정환 (같이 먹고) 경철이는요?
경주모 유진지 뭔지 하고 같이 있데. 어서 먹어.
정환 이 동네 싸우나 없나요?
경주모 여름마다 공사중이잖아.
경주네 집 전경 (아침)
경주 집 거실과 안방
--거실에서 잠들어있는 정환, 아주 곤하고 달게.
--경주모, 손 지갑을 들고 살금살금 나와서 문을 탁 닫고 나간다.
--그 작은 소리에 일어나는 정환, 잠결에 둘러보고
--일어나서 화장실인 줄 알고 문을 여는데.
--안방에서 경주가 잠들어있다.
--어, 미안하며 얼른 문을 닫다가...
정환 (문을 조금 밀어보면)
--경주의 아이처럼 쌕쌕 잠든 얼굴.
--정환, 망설이다가 방으로 들어오고 만다.
--정환, 경주를 잠시 내려보다가 옆에 있는 손 부채를 들어 부채질 몇번 쯤. 제풀에 그만둔다.
--정환의 시선에 경주의 맨발이 보이고.
--경주의 발에 가만히 자기 손을 뼘을 재듯 대보는 정환.
--그것도 부질없는 짓인 줄 안다. 훌쩍 일어나서 나가며.
--경주 자는 위로 들리는 정환의 으으으 기이한 기지개 소리.
--경주, 잠결에 경철아! 잠 좀 자자 응! 소리 지르고.
정환(소) 야! 울보! 출근 안 하냐! 늦었어.
--경주, 벌떡 일어나서 시계보고 뛰어나가며.
경주 어, 나 먼저 씻어야 돼.
정환 (메롱 하며 이미 욕실로 들어가 문 탕 닫고)
경주 빨리 나와! (장난처럼 탕 쳐주고)
--기지개 켜며. 거실의 이부자리를 개는데....
--경주, 그제서야, 정환이 함께 자고 있었다는 실감이 들며.
경주 ...
--정환, 젖은 얼굴 닦으며 나온다.
정환 십분 기다린다? 빨리 나와.
경주 어... 네... 잠깐...
--정환, 경주가 주방의 서랍들을 마구 열다가 아래 서랍에서 새 칫솔 하나 꺼내는 것을 설레는 느낌으로 본다. 경주, 어색해서 머리 넘기며 칫솔을 준다.
정환 어... 고마워요.
경주모 (칫솔 사들고 들어온다) 어, 칫솔이 거기 있었냐? 여기 면도기 도 샀다? 아우, 과부 혼자 애들만 끼고 살다가, 집에 니가 있 다고 생각하니까 어찌나 든든한지...
정환 어...
경주 엄마, 오바하지 마... 나보다 겨우 다섯 살 많어.
경주네 집 앞 (아침)
--정환, 차를 닦고 있다.
--안에서 경주가 나오며 쪼르르 운전석으로 가려면
--정환이 안돼 하며 뒤에서 당기고.
--그때 지나가던 동네 중년 부부가 한마디씩 던지고.
--경주와 정환은 멍하니 듣는다.
아줌마 아유, 아줌마가 운전 좀 하겠다는 데 냅두지.
아저씨 오죽 답답하면 그러겠냐구요?
아줌마 아줌마, 남편 옆에서 운전해봐야 자존심만 상해. 그냥 가요!
정환 (당황스러운 마음을 덥고, 키를 주며) 회사까지만 이다?
경주 네에.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정환 (차에 타며) 자 좌우 앞뒤를 살피시고! 출발.
경주 ... 고마워요.
정환 뭐가? (보면) 운전 말야? 그럼 평생 고마워해야지. 그럼...
경주 남들한테 자랑해야지... 누가 나한테 꽃도 꺾어 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시도 (웃음)지어줬다고. ... 그 중에 제일 고마운 건 요? (정환의 위로) 논 바다 비아....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 마워요...
정환 ...
법원 앞 (동 낮)
--가정 법원에서 걸어나오는 원희.
--허탈하고 쓸쓸하게 걸어나온다.
--그런 원희 앞에 차가 서고
민우 타.
원희 바쁘잖아... (보다가 옆에 탄다)
민우 회사로 갈 거지?
유비 앞 (동 낮)
--민우의 차 멈추고.
원희 ... 잘 왔어요, 고마워요.
민우 (보면) 나두 말 높여서 해야 돼?
원희 (웃고) 아니... 남들은 이혼 한번 하는데 몇 년 씩 걸린다는데... 우린 겨우 열흘이네? 정말 실감 안 난다 그지?
--원희, 내리면. 민우, 따라 내리고.
민우 ... 미안해. 나는 비행기라도 타고 떠나는데... 당신은
원희 뭘, 이사하고. 집 꾸미고 나도 바뻐. 공항은 안 나가두 돼죠?
민우 그럼... (손 내밀다가 원희가 외면하면 그대로 내리고)
원희 ...
민우 ... 참, 할말이 많았는데...
원희 ... 인제는 아무 말도 필요 없게 됐네... ... 들어가야 돼, 요새 너무 일을 안 했거든요... (가다가 돌아서서) 기다려요. 경주 불 러 줄게... (미소) 이혼하니까 좋은 것도 있네. 인제 경주 한테 질투 안 해도 되잖아. (웃어준다) 경주한테 얘기 안 했어 요... 안 할 거야, 나.. 거짓말 선수잖아.
민우 (겨우 보며) ...
유비 디자인 실
원희 늦어서 죄송합니다.
경주 누구는 야근하고 왔는데, 아줌마 너무 티낸다 응? 멸치랑 고추 장이랑 가방은 다 쌌어?
원희 나가 봐, 니 친구 왔어.
경주 어 그래? 잘됐다 줄 거 있는데. (봉투 들고 나간다)
원희 (서늘한 표정으로 앉으며) ...
영재 (그런 원희를 보다가) 과장님, 차 한잔 드릴까요?
원희 아, 괜찮아. 고마워요...
동 꽃밭 (동 낮)
--경주, 앞치마 입은 채로 민우야 부르며 뛰어나온다.
경주 이거 약이랑 책이랑... 뭐 그런 거야. (주고) 사자 조심하고 악어 조심하고? 아프리카 여자들도 조심하고 알았지! 악수!
민우 (악수하다 푹 웃고) 너는 나랑 이별하는 게 그렇게 좋으니?
경주 내숭, 속으로는 너두 좋지? 지금 와이프 무서워서 표정관리 하 는 거지?
민우 넌 이태리 안 간다며?
경주 ... 아무나 떠나냐? 나는 이대로 살란다
민우 뭐 좋은 일 있니? 다른 때보다 더 이뻐 보여.
경주 그래 보여?
민우 나 돌아올 때까지 계속 그렇게 이쁘게 있어. 알았지?
경주 언제 오는데?
민우 ... 일년쯤?
경주 그때까지? .... (한숨 푹 쉬는 기분으로)
디자인 실
--경주, 들어오는데.
영재 (전화 받다가) 잠깐만요, 지금 들어오십니다... 어머니세요.
경주 (받고) 어. 왜?
경주네 거실과 유비텍
--경주모, 이옷 저옷 잔뜩 꺼내놓고
경주모 얘 갈비가 낫니? 홍삼 같은 게 낫니?
경주 뜬금 없이 웬 갈비? 어디 가?
경주모F) 무슨 소리야? 환이네 초대 받았잖어? 너 연락 못 받았어?
경주 !
유비 빌딩 지하 주차장
--정환의 차 들어오면. 경주가 다가와 차에 탄다.
경주 (자연스럽게 옆에 앉고) 나 그 댁에 초대받은 거 알아요?
정환 어... 어머니가 너 보고싶어 하셔.
경주 어머니가 초대한 건 아니잖아요.
--정환의 핸드폰 울리면, 번호 보면서 경주의 눈치를 보게 된다.
경주 받으세요.
정환 ... 어, 나야.
수퍼 안
채옥 (카트 가득 찬거리 담으며) 나 지금 장보는 중인데? 경주씨 뭐 좋아해?
정환의 차 안
정환 어 (경주가 신경 쓰이고) 알아서 사.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 나 바빠... 끊어. (끊고) ...
경주 ...
--이번에는 경주의 핸드폰이 울리고. 경주, 윤채옥 이름 본다.
경주 ... (받는다) 네... 윤이사님.
정환 ...
수퍼 안
채옥 (웃고) 윤 이사님이 뭐예요? 우리 만나면 호칭 정리부터 해야 겠다 그죠? 그이한테 얘기 들었죠? 오늘 오실 거죠?
정환의 차 안 (동 낮)
경주 어, 죄송해요... 갑자기 일이 생겨서(하는데)
채옥F) (버럭) 몰라 몰라. 열흘 전부터 얘기했던 거잖아요. 겨우 스 케쥴 빼서, 지금 시장까지 보고 있단 말이예요! 오늘 꼭 와야 돼요 알았죠! (끊고)
경주 (기 막혀 멍하니 있다가 끊고) 열흘 전에 예약된 거였어요? 왜 말 안 했어요?
정환 ...
경주 나라두 말 안 했겠다... (풀썩 웃고)
정환 (보면)
경주 민우가 저더러 좋아 보인다고... 요 며칠 만나는 사람마다 다 그래요, 좋은 일 있냐고... 나, 지난 열흘 정말 행복했어요. 아 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인가 봐.... 얼마나 오래 끌 수 있을 까... 한달? 일주일?... 겨우 하루, 아니 한나절을 못 가네요...
정환 ...
경주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가 이런 거죠? (내리며) 내 변명은 알 아서 해주세요... 나 그 댁 차마, 못 들어가요.
정환 ...
유비 디자인 실
--경주, 들어오면.
--영재, 그림 그리고 있다. 원희도 열심히 캐드 작업하고.
경주 어, 어제 그리던 거 아니네? (캐드 보고) 너두 벌써 다 한 거 야?
원희 서과장, 이태리 바람 아직도 안 꺼졌니? 너처럼 근무 태만하다 가는 잘린다아? (캐드 끄고)
경주 원희야, 나랑 영화... 아, 공항 가야겠구나?
원희 그래야지. 내일 보자? (나가고)
경주 ... 배웅 잘해... (영재를 보면)
영재 나도 바빠요. 과장님은 한 사장님 댁에 초대받았다면서요? 가 기 싫어요? 핑계댈 건 있어요? 양가 부모, 형제 부인까지 몽땅 속아 넘겨야 되잖아.
경주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고)
영재 (턱 잡고) 가! 가서 봐!
경주 뭘?
영재 얼마나 집을 잘 꾸며놓고 사는지, 잘 보고 오라고. 거실, 가구, 주방, 침실.... 궁금하지 않니?
--경주, 또 집어던지는데, 영재 피하지 않고 맞는다.
경주 꼭 그렇게 확인사살을 해야겠어?
영재 니가 택한 거야... 너처럼 무식한 인간은 맞아봐야 아픈 줄 알지?
경주 ...
정환네 주방
--정환, 주방으로 들어서면,
--채옥과 정환모, 정성들인 음식장만에 여념 없고.
정환 경주는 못 오나봐요, 어머니. 공장에 일이 터졌다네요.
정환모 그래? 할 수 없지 뭐... 보고 싶은데....
채옥 당신, 혹시 경주씨한테 공사 구별한다고 빡빡하게 구는 거 아 니야?
정환 ....
J 기획 사무실
--유지, 원단(좀 다른 종류로 니트, 솔리드 모직, 스판 등)들을 작두 (없으면, 패킹가위)로 자르고. 난영도 가위질한다.
경철 아 알았어 엄마. 선물이야 가면서 사면되잖아. 기다리세요, 지 금 출발할게요. 네. (끊고, 난영에게 다가오며) 저 장난영씨. 제 가 회사 차 좀 써도 되겠습니까? 집안에 중요한 행사가 있어 서요.
난영 (자동차 키를 주고) 조심해서 모세요.
경철 우리 모친이 장난영씨 싸인 한장 받아오라는데, 싸인 만들어 둔 건 있나요?
난영 유지야 그거 그만 자르고 이걸로 해줘. 모직이라 힘들지?
유지 오케이.
경철 근데 곧 스타되실 분이 손 모양 망가지게 그런 험한 일을 왜 하십니까? 여긴 월급도 얼마 안 되는데. 그냥 때려치시지. (나 간다)
난영 ... (원단 탕 내려놓고) 정말 여길 그만두든지 해야지... 유지, 너는 왜 가만있어? 틈만 나면 옳은 소리 또박또박 사람 속을 뒤집더니?
유지 니가 나 땡처리 했잖아. 나도 기브업 했어.
난영 ... 칫!
거리 (동 밤)
--경주모, 기다리다가 경철이 차를 몰아오면. 마구 손을 흔들고. 차를 여기 저기 둘러보고.
경철 빨리 안타고 뭐해!
경주모 (차에 타며) 이차 너 달라고 그래라. 내가 얘기해줄까? 환 이가 내 말이라면 꼼짝 못 하지?
경철 엄마, 한번만 더 그러면 확 사표 쓴다? 누나한테 이른다?
경주모 알았어, 알았어... 인간 장복희 열 여덟 딸기같은 나이에 식모 로 들어와, 10년이나 살던 집에 이렇게 잘난 아들을 데려고 인 사를 가다니... 근데 이 기집애는 도대체 뭐 하구 있는 거야!
거리 (동 밤)
--경주, 어디로 갈지 몰라서 헤매다가. 핸드폰 누르고.
경주 난데? 너 민우 보내고 나면 기분 꿀꿀할까봐... 나, 지금 공항 으로 갈까?
원희F) 안돼, 그러지 마.
원희 새 아파트 (동 밤)
--칠년 전 살던 그 아파트만큼 허술하고 낡았다.
--여기저기 박스들이 정리 안된 채.
원희 지금 공항에 있기는 한데 그이 친구들이 잔뜩 와서 내가 정신 이 없을 거 같애.... 응, 내일 보자 응? (끊고)
--원희, 풀썩 주저앉는다.
--그 눈에 뜨이는 박스 안의 작은 화분들...
--원희, 화분을 들어서 보는 위로.
--플래시 백 되는
--1회. 꽃을 주며 축하합니다 하던 민우.
원희 (눈물을 참으며 화분을 들고 서다가 떨어뜨려 깨뜨린다)
--그것을 보는 위로 들리는
민우E) 칠주년을 화혼식이라고 부른데. 결혼 생활도 꽃을 가꾸듯이 정 성을 기울여야한다 그런 뜻이겠지?
--원희, 깨진 화분을 드는데. 그 위로 떠오르는
원희 암만 귀해봐야 들꽃이잖아. 나는 꽃이라면 인제 신물 나.
--원희,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공항 (동 밤)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의 민우.
--입국장 앞에 서서 잠깐 돌아본다.
--검은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 이윽고 안으로 들어간다.
거리 (동 밤)
--경주, 걸어온다. 그 눈에 뜨이는 실내운전 연습장.
--안으로 들어간다.
실내 운전 연습장
--시뮬레이션 운전을 할 수 있는.
--경주, 기계 앞에 앉으며 운전 시작하고.
--시뮬레이션 운전의 소음과 화면들 현란하게.
정환네 집
--거실의 교자상에서 정환네와 경주모, 경철, 담소하며 식사 중.
--경주모의 주책에 하하 웃는 식구들.
--정환, 빈 접시를 들고 일어서는 표정.
실내 운전 연습장
--경주의 운전 점점 더 거칠어진다.
--여기저기 부딪치고, 경고음? 들리고.
--끝나면 다시 동전 넣고.
--마음의 풍랑만큼이나 운전 거칠어지면서.
--거칠고 빠르게 팍팍 찍히듯 떠오르는 장면들.
--3회, 패션쇼장 앞에서의 정환과 채옥.
--11회, 채옥이 시어머니가 주신 거예요 자랑하던 반지.
--7회, 레스토랑에서 밥은 내가 사지만, 돈은 이이가 내니까 우리 비 싼 거 먹어요 하던 채옥.
--6회, 채옥이 전화로 남편에게 여보 응? 응? 하며 애교 떨던.
--11회, 채옥의 반지 다시 한번 보이고.
--11회에 자기가 상상했던 정환과 채옥의 키스.
--경주, 못 견디고 핸들을 휙 꺾고.
--화면에 대형사고의 장면과 소음들...
경주 (핸들에 얼굴을 묻고) ...
정환네 주방과 거실
--경철은 재동과 놀고.
--주방에서는 한참 설거지하고, 과일 깎느라 북적이는 분위기.
경주모 놔둬 놔둬. 이건 내가 전문가야. (웃기고)
채옥 경주씨가 어머니 반만 닮았어도 훨씬 애교 있을 텐데.
경주모 오호호, 맞아 맞아 그러면 벌써 시집갔지.
--정환, 빈 접시를 나르는데.
--인터폰 울리면 내가 나갈게요 하고 보는데
--화면에 경주가 고개 숙이고.
정환 !
정환네 아파트 앞과 안 (동 밤)
--경주, 긴장해서 서있다.
--아파트 문이 열리고 나오는 정환.
정환 어... 왔어,요?
경주 네...
--두 사람, 마주 보며.
정환네 집 몽따쥬
--정환의 집을 살피는 경주의 시선과 감춰진 욕망, 질투, 갈등.
--경주모는 천진한 마음으로 적당히 샘내며 딸의 손을 끌고 다니며 이방 저방 구경을 시켜준다.
--정환과 경철은 거실에서 야구 중계를 본다. 정환은 물론 경주에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욕실
--정갈하게 정리된 수건들, 욕실용품, 남자용품들, 정환의 가운 등.
경주모 (문 열고) 얘. 너두 시집가면 꼭 이렇게 꾸미고 살아라 응?
경주 ...
--주방
--예쁜 그릇들과 씽크 대, 주방가구들. 그릇 정리를 하는 정환모.
경주모 아우 파출부 그렇게 다녀봐도 이렇게 잘 꾸민 집 못 봤네.
정환모 (경주 손을 잡고) 어릴 때 모습 그대로네.. 이렇게 이쁘게 참하 게 자랄 줄 알았어 내가... 장하다... 우리 환이가 잘 해주지?
경주 ... 네....
--재동의 방
--아이 옷과 가족사진. 아이 그림 등
경주모 (경주를 퍽퍽 패며) 이 기집애야. 재동 엄마랑 너랑 동갑내기 더라.. 너두 시집갔으면 이만한 아들이 있잖어!
경주 ...
--거실
--경주모가 경주 손을 끌고 침실 쪽으로 가면
--채옥, 정환에게 어머 침실까지? 주책이야 하며 따라가고.
정환 ...
--침실
--문을 열면 보여지는 침대에 놀라 물러서는 경주.
경주 됐어, 나가. (그러면서도 가장 궁금했던 공간, 발을 들여놓고)
경주모 어때, 뭐? (뒤에 오는 채옥에게) 괜찮죠?
채옥 (들어오며) 뭐, 그럼요. 이리 잠깐 앉으세요... 수다나 떨게.
--채옥이 경주 손을 잡고 침대에. 그 사이 경주모는 욕실 사용.
채옥 나 경주씨 오늘 안 왔으면 삐지려구 그랬어요...
재동 엄마 저기... (엄마에게 귀엣말)
--경주의 시선에 화장대 위의 채옥의 반지(11회#3) 가 보인다.
경주 (그 반지를 보며) ...
채옥 어머, 우리 애 만난 적 있어요?
경주 네, 백화점에서요...(재동의 손을 잡고 그 작은 손을 보며) ....
채옥 그이도 그럼 그날 처음이겠네요?
경주 네... 아니, 그 전, 칠 년 전에도 만난 적 있어요.... 한 사장님 결혼하기 전이예요.
채옥 어머, 여보! 재동 아빠(불러놓고) 그럼 두 사람 연애할 수도 있었네?
정환 ... 왜에? (들어오는데)
채옥 당신, 총각 때 경주씨 만났대며? 근데 아무 일 없었어?
정환 (보는 위로)
경주 한 사장님이 좀 바빴어요, 그때...
정환네 집 앞 (동 밤)
--경철이 차를 몰아오면,
경주모 아유, 오늘 정말 잘 먹고 잘 놀다 가요... 환이야 너는 어디서 이렇게 이쁘고 착한 색시를 얻었니?
정환 네... 조심해서 가세요.
경주 가요 엄마. 안녕히 계세요. (차에 탄다)
경주모 기집애... 노처녀가 남의 집, 집들이 가면 원래 저래요, 이해하 시우 응?
채옥 네, 자주 놀러오세요. 경주씨, 전화해요? 경철씨도 안녕?
--차 떠나며 경주모 혼자 열심히 손 흔들고.
--채옥이 아 피곤하다 하며 정환에게 달라붙고.
정환 들어가자. (집으로 들어가다 멀어지는 차를 슬쩍 보며) ...
정환네 집 거실
--정환모, 테이블을 정리하고.
정환 어머니도 힘드시겠어요, 주무세요.
--방으로 들어갔던 채옥이 어머 내 반지 하는 소리 들리고.
정환 으이그, 또 시작이다.
채옥 이상하다? 화장대 있었는데. 엄마 나 몰라? 어머니가 주신 거 란 말야, 잊어버리면 안 되는 건데에?
--채옥, 주방으로 뛰어가서 살피고.
정환모 거긴 없을 거야, 오늘 끼고 있는 거 못 봤거든?
채옥 (갑자기 깔깔 웃고) 세상에 이 여자두 강적이네? 어떻게 이렇 게 큰 걸 잊어먹고 다니냐? (주방에서 경주의 가방을 들고 나 온다)
정환모 (웃음 참고) 걔가 스트레스가 많은가보네...
정환 (아득해지며) ...
--전화 오면 받는다.
정환 네.
경철F) 저기, 우리 누나가요
정환 응, 내가 가지고 내려갈게...
정환네 집 앞 (동 밤)
--끽 하고 멈추는 경철의 차.
경주모 (뒤에서 경주의 머리를 쥐어박고) 미쳐 미쳐... 말만한 기집애 가 핸드백을 두구 와!... 아우 자존심 상해!
경주 (그저 앞만 보며) ...
경철 (네 네 하는 통화 끝내고) 사장님이 누나랑 할 얘기 있데, 엄 마 우리는 먼저 갑시다.
정환네 집 앞 광장 (동 밤)
--정환이 경주의 가방을 들고 오면.
--경주, 혼자 넓은 광장 복판에 우뚝 서있다.
--정환, 경주에게 다가가며.
정환 ... 어디 잠깐 갈까? (팔을 끄는데)
--경주, 온 몸에 힘 들어가서 표정까지 굳어서.
정환 괜찮아. 서경주, 건망증 덜렁인 거 모르는 사람 없어. (뭔가 이 상하다)? 왜 그래? 어디 아프니?
--보는데 경주 오른 쪽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다.
정환 왜 그래? 그게 뭐야?
--정환, 경주의 손을 잡아끄는데. 경주, 아이처럼 버티고.
--정환, 어떤 예감과 긴장으로 억지로 힘주어 경주의 손을 잡아 주먹 을 편다.
--경주, 이를 앙 다물고, 절망적으로 떨리는, 마치 도둑같은 심정으로 버티다가 이윽고 손을 펴면.
--그 손에 피 맺히게 쥐어져 있던 채옥의 알 반지.
정환 (놀라며 보며)
경주 ...
정환 왜...
경주 (제 마음이 너무 독하고 무서워서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 그저 자신도 자기 마음을 믿을 수 없어서) ... 갖고 싶어서... 전부 다... 당신이 가진 거 전부... (정환은 눈물이 흐르고) 당신 어머 니가 내 엄마면 좋겠어요. 당신 아들이 내 아들이면...
정환 ....
경주 (정환에게 반지 주며) 잘못했어요. 잊어버리세요. (꾸벅 인사한 다)
--경주, 걸어나오다가 달리기 시작하고.
정환 (그대로 망연자실 울며) ...
--경주, 이를 앙 다물고 뛴다.
--눈물을 닦고 또 다시 경주를 향해 달려간다.
근처 모퉁이 길 (동 밤)
--정환, 달려와서 경주의 뒷모습을 본다.
정환 경주야!
--경주, 듣지 못하고 간다.
--정환, 달려가서 경주의 팔을 잡아 당겨 돌려세운다.
경주 (고개 떨구고)
정환 나 봐. 나 좀 보라구 이 바보야!
경주 (보면)
정환 보면 모르겠어? 내가 꼭 말로 해야 돼?
전부 다... 이미 니 거야... 내가 가진 거 다... 바로 나 말이야... .... 처음부터 니 거였어.
경주 (너무 놀라 차마 믿을 수 없어 보며)
정환 (보며)
--경주의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고,
--그런 경주를 힘껏 부둥켜안는 정환에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