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31일 살림교회 송구영신예배
마지막 날의 비밀
계시록21:1~7
요즘도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저녁 6시에 하던 한 FM 음악 방송의 시작 멘트가 생각납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스름해지는 저녁, 하루 일과를 마칠 즈음에 항상 같은 말로 했던,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인사말이 참 따듯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 많은 일을 했느냐 못했느냐, 오늘 하루도 성과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와 상관없이, 그냥 오늘 하루도 살아내느라 고생 많았다, 위로해 주는 것 같은 인사말이었습니다. 저도 오늘 여러분과 저 자신에게 같은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올 한 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번, 깊은 울림을 갖고 자기 자신에게 인사해 보시지요. “올 한 해 정말 수고 많았다!” 옆에 있는 분들과도 인사 나누어 보시오. “올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 해를 마치면 으레 다사다난했다는 말을 말하지요? 올해도 여지없이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습니다. 사고를 넘어 사건이 된 세월호! 아직도 9명이 실종으로 되어 있고, 진상규명을 제대로 해야 하는 이 미완의 사건은 올 해 우리들과 우리 사회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사건 자체도 너무 컸지만, 사건이 가져다준 여파가 너무 컸습니다. 사람들의 마음까지 서로 갈라져버렸습니다. 이 사건만이 아니라 올해는 유독 사건사고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한 해를 돌아보면 좋은 일보다는 아프고 힘들고 화가 나는 일들이 훨씬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교회로도 힘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여러 형제자매들이 교회를 떠나갔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떠했나요? 올 한 해 어떤 기억들이 남는지요? 그리고 그 기억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우리가 바라보는 그 시선에 대해서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고 계실까요?
오늘 읽은 말씀은 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은 고난과 박해로 곤경에 처해있던 소아시아 교회에게 마지막 날의 비밀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책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상징의 언어로 쓰였기 때문에 읽고 해석해 내는 게 매우 어려운 책으로도 유명하지요.
오늘 읽은 본문은 이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인데, 제 개인적으로는 오늘 말씀은 더 기억에 남습니다. 지난 8월 말, 저희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시간에 제가 침상 맡에서 계속해서 읽어드린 말씀이 이 부분이었거든요.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숨을 거두시는 아버지께 이 말씀을 반복해서 읽어 드릴 때, 저희 아버지가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우리 삶에는 고통이 있고 눈물이 있고 심지어 이렇게 죽음이 실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삶은 또 다른 차원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우리의 삶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삶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믿음은 제가 50대 후반, 예순을 바라보는 즈음에, 제 안에 심으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은총이며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전에도 말로는 이런 말을 많이 했겠지만, 이것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들,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 곧 처음과 마지막이다.... 이기는 사람은 이것들을 상속받을 것이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서, 이런 것들이 우리는 그저 죽어서 가는 저 세상에서 이루어질 것을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세상 종말에 이루어지기를 막연히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우리는 이 비밀에 중심을 두고 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과 희망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영국에 노리치의 줄리안이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는데, 노리치의 줄리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녀가 노리치의 성 줄리안 교회에서 살았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살던 14세기는 영국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가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였습니다. 긴 십자군 전쟁 후 민생이 파탄이 되고 사람들은 도탄과 절망에 빠졌던 시대였습니다.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1/3이 죽었고, 영국과 프랑스 간에 백년 전쟁으로, 또 농민 혁명으로, 그야말로 유럽 전체가 혼란에 빠졌던 암흑기였습니다. 성 줄리안도 30대 초반에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중 그녀는 하나님의 환시를 보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이 본 환시를 기록하지요. “계시”라는 제목의 짧은 글입니다. 그리고 나서 20년가량 지난 후에 자신이 본 환시의 의미를 해석해서 긴 글을 쓰게 됩니다. 그는 환시 중에 이런 소리를 듣습니다. “나는 모든 것들을 잘되게 하며, 나는 모든 일들을 잘되게 할 수 있고, 나는 모든 일들을 잘되게 할 것이다.” 그는 나중에 그의 글에서 이 말을 반복합니다. “세상에 죄는 반드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잘될 것이며, 모든 종류의 일들이 잘 될 것이다.”
노리치의 줄리안은 오늘 요한이 말하는 종말의 비밀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녀가 “모든 일이 잘될 것이다”라고 한 것은 그녀에게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말씀입니다. 사람이 갖는 막연한 기대나 바람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사람이 아주 세심히 연구하고 계획적으로 전략을 짜서 나온 예측과 기대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우리와 모든 피조물의 근원이신, 알파와 오메가, 우리의 처음을 여셨고 끝을 마무르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입니다.
올 한 해 수많은 고통과 모순을 통과하신 여러분께서 들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나의 자녀가 될 것이다.” “이기는 사람은 이것들을 상속받을 것이다.”
비록 죄가 있고 고통이 있고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동시에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을 확고하게 가지는 일입니다. 모순의 해결이 아니라 평화롭게 모순 안에 머무는 것이며, 하나님 안에서 모순이 완전하게 해결되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 해결은 하나님의 신비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도 아는 것, 그래서 그것이 드러날 때까지는 절대로 우리 마음대로 생각하고 추정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열쇠입니다. 이 열쇠는 우리가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열쇠는 하나님 안에만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고 신뢰하는 한 우리는 그 열쇠를 갖게 됩니다. 스티로폼 같은 신앙이 아니라 빙산 같은 신앙은 바로 이 열쇠를 갖는데 달려 있습니다.
내년도 올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또 내년 말 송구영신예배 때는 다사다난 했고 고통과 아픔이 있는 한 해였다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매년 그럴 것입니다. 이것이 삶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노리치의 줄리안처럼 전혀 다른 차원이 이야기를 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고통과 죄는 여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