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레라는 이름의 옛 음식이 있습니다. 이름에서 서민적이며 향토적인 느낌이 풍겨 나는데 실제로도 그런 재료입니다.
어렵던 시절의 서민들은 고깃점 먹어 보기라는게 여간 어려운 노릇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소재의 부산물들이 식용으로 이용되었는데 도축장에서 벗겨진 소의 가죽은 가죽공장으로 보내지기 전의 처리 과정으로 가죽 바로 아래층에 붙어있는 지방과 피하조직들을 제거하였습니다. 그 방법은 수작업만으로 가능했는데 폭이 넓은 끌과 비슷한 얇은 철편으로 힘 주어 긁어내는 형식이죠.
심히 역한 냄새와 질긴 식감으로 수 차례 삶고 씻기를 반복해야만 사람이 먹을 수준이 되었는데 그러고도 냄새가 남아서는 강한 양념으로 조리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살림들이 나아지며 수구레의 가치가 사라지게 되었죠. 더 맛있고 부드러운 고기를 쉽게 구할 수가 있는데 어렴게 손질해야만 하고 맛도 떨어지는 수구레를 찾지들 않게 된 자연스러운 현상일겁니다. 시내 변두리의 달동네스러운 서민 주거지역 허름한 식당들에서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던 수구레도 구십년대 중반 부터는 도시에서 거의 다 사라지고 시골의 장터에서나 간간이 보이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죠. 서울에서는 그나마 이 집 하나가 남아 예전의 추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강서구 방화동의 버스 종점에 있습니다.
가건물로 지어진 탓으로 이런 구조였습니다. 공사장 함바집 분위기. (2002년 초의 촬영이었어서 지금은 다릅니다)
오도독은 오돌뼈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제는 수구레만으로 음식을 내기에는 역부족이라서 산낙지를 섞어서 조리를 합니다. 그만큼 가격도 아주 서민적이지는 않습니다.
김포공항 부근의 식당에서 모임을 갖고는 2차로 찾아갔었습니다.
주문과 함께 바로 무쳐서는 불판에 깔아 줍니다. 성능이 떨어지던 2002년도의 디카였어놔서는 화질이 나쁜 점 이해를...
냄새가 강하기에 양념이 세고 깻잎도 듬뿍 넣습니다.
1차 때 마시다 남은 몬테스 알파를 마저 비워 줬죠.
수구레 조각. 손질을 잘 해서는 부드럽습니다만 제 취향에는 아직도 거북한 수준의 향입니다.
낙지 투입. 제일 나중에 넣어야 질겨지지 않죠.
남는 양념에 면을 비벼 먹기도 합니다. 수구레 조각 외의 부재료와 양념에는 특유의 향이 그리 나질 않으니 상대적으로 편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수구레를 극찬하는 어느 분의 말씀으로 기억이 남는게 소에서 극히 적게 나오는 아주 귀한 부위라서 맛이 기가 막히다는 것이었죠. 적어서 귀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귀하기 때문에 맛있다는 것은 식당 주인의 장삿속으로 생겼을법한 논리죠. 식재료의 희소성이 맛과 비례한다는 어떤 근거도 통계도 없습니다. 고깃집에서 흔히 듣게 되는 뻔한 헛소리가 '한 마리 잡아 봐야 요만큼 밖에 나오질 않는 아주 귀한 부위라서 이것만 먹으면 한 마리 다 먹은 셈이다'라는게 있죠. 그러나 같은 재료라도 먹는 사람의 취행에 따라, 각자의 기억과 추억에 따라서 그 맛이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니 남이 맛나다 해서 나도 맛날 필요는 없고 남이 맛 없다 해서 나 까지 맛 없어야만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수구레는 그 오랜 역사와 수 많은 사연을 간직한 가치로서의 소중함이 있기에 어떤 식으로든 이 땅에 살아남아 있어줘야만 하는 서민들의 소중한 음식임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허황된 과대포장으로 기대감만 잔뜩 부풀려 놔서는 처음 맛보게 되는 이들에게 충격을 줘서도 안되겠죠. 요즈음 들어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며 맛이 너무 심하게 미화되고 있어서 우려감에 해 본 이야기였습니다.
소나 돼지 등의 가축 부산물 및 특수부위에서 풍겨나는 독특한 냄새에 민감한 분들은 드시려면 주의가 요망되는 재료입니다. 평소에 돼지껍데기 구이를 먹게되면 향이 영 거북하여 꺼리게 된다는 분이라면 특히 조심하셔야 할겁니다.
동네가 동네다 보니 저런 칠십년대스러운 곳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힘든 시절의 고된 하루 마무리를 저런 곳에서의 술 한잔으로 위로 받으며 지내셨겠죠. 오늘날의 아버지들은 더 좋은 곳에서 더 비싼 것을 먹고 마시며 그런 위로를 받으려 합니다만 냄새 나는 수구레 한 조각에도 미치지 못하고 맙니다. 소득수준이 높아진다고 인생이 그에 비례해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는 증거 중의 작은 하나가 될겁니다.
지금은 신방화사거리 부근의 건물로 옮겨서 영업중이며 메뉴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함바식당스러운 분위기를 기대하는 분에게는 아쉬운 소식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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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처음 듣는 음식이네요. 어려웠던 시절 추억의 음식인 거 같습니다. 기회되면 한번 맛봐야겠습니다.
저 역시 수구레, 오도독 이름도 듣지못헸네요 한수 또 배움니다
저가 알기로는 소가죽을 쓰기위해서 가죽밑에 붙은 약간은 꼬들하고 질긴 고기를 벗겨낸것을 수구레 라고 하는것으로 압니다. 저거 국을 끓여도 맛이 괸찮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