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구이 최 건 차
요즘 들어 텔레비전에 생선요리의 맛집이 종종 방영되고 있다. 생선을 좋아하는 나는 특히 생선구이 화면이 뜨면 식욕이 발동하여 입안에 군침이 도는 것을 우선 달래게 된다. 육고기도 좋아하지만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생선에 익숙해진 입맛이라 생선요리를 다 좋아하지만 그래도 구이를 더 잘 먹는다. 내 손수 고등어자반을 사다가 자주 구이로 해 먹는다. 약간 타는 듯하게 기름이 자르르 배어나도록 노릇노릇하게 구이 해 먹는 게 맛있다. 생선 맛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부산 영도에서 살던 195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의 형편으로는 규모 있는 식당에서 먹는 경우가 거의 없고 시장바닥 자판에서 구이로 파는 고래고기와 고등어는 가끔 사먹었다.
6‧25전쟁으로 부산에는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때를 따라서인지 고등어가 늘 풍성하게 잡혀 값이 쌌고 갈치 오징어와 조기 등도 흔해서 늘 사다가 집에서 요리를 해 먹었다. 고래고기와 생선보다 쌀이 많이 부족하여 어려웠던 시절 우리는 영도 신선동 산비탈에 판자집을 짓고 살았다. 해안을 끼고 있는 아랫동네 남항동에는 군납용 통조림 공장이 가동되고 있었다. 무진장으로 잡히는 고등어를 싸게 사들여 가공하면서 대가리 부분은 넉넉하게 잘라서버렸다. 그것들을 수거하는 이들이 열 마리를 철사에 꿰어 남항시장에서 무더기로 팔고 있었다. 어려운 사람들은 고등어 대가리를 사다가 찌개를 해 먹고 볕에 바짝 말려서 구이로 먹었다.
고래가 흔하게 잡힌 탓에 돼지고기보다 훨씬 싸게 시장 거리나 바지게에 담아 동네를 돌며 팔고 있었다. 초여름이면 해안가로 구름처럼 밀려드는 멸치떼를 맨 바구니로 건져 올리고 덩달아 흘러 다니는 오징어도 잡아 회를 처먹고 돌담 벼락에 말려 구이 해 먹었다. 신선동 하꼬방 시절 우리 집은 봄 겨울에는 흔한 고래고기의 쇠고기 같은 부위를 사다가 구이로 해 먹었다. 시장통 길가에서는 고래고기를 구어 술안주로 팔고 있어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여름 가을에는 여러 종류의 생선을 많이 팔고 있어 생선찌개를 많이 해 먹었다. 통조림 공장에서 나오는 고등어대가리도 사다가 소금을 뿌려서 바짝 말려 숯불에 구이로 먹는 게 유행이었다. 그 시절 나는 생선찌개보다 고등어대가리 구이를 더 맛있게 먹었던 게 초롱초롱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생활이 어려웠던 때라 고등어대가리 구이는 내게 맛있는 밥반찬이었다. 지금껏 내 입맛에 최고의 생선구이 별미로 각인 되어 있어 요즘도 집에서나 밖에서나 고등어대가리를 더 잘 챙겨 먹는다. 당시 부산에서는 바다 생선이 흔했기 때문에 이면수와 물메기 같이 육질이 단단하지 않은 생선은 잘 먹지 않았다. 그런 연유로 나는 이면수와 물메기에는 관심이 없게 되었고 오래전 부산을 떠나 서울과 수원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육질이 단단하지 않은 생선보다 고등어와 갈치구이를 선호하고 있다.
영도에서 살던 시절과는 환경이 바뀐 후 70년대를 부산 대연동에서 살았다. 아내 역시 부산 충무동에서 자란 탓에서인지 조기나 갈치를 좋아했다. 아침 일찍 찾아온 단골 아주머니가 큼직한 조기가 아니면 ‘기장갈치’라며 은빛 나는 커다란 것을 대주어 찌개로 조림과 구이를 해 먹느라 고등어구이에 대한 맛을 한참 동안 잊고 지냈다. 생선 맛을 알게 해준 부산은 일본에서 나와 첫발을 딛게 된 제2의 고향이라 늘 그리워 발길이 닿는다. 어느 때고 부산에 가면 자갈치시장으로 달려가 점심을 생선모듬 구이로 시켜 먹는다. 그 다음은 중학생 시절을 보내면서 고등어대가리 구이 맛을 안겨준 영도의 해안 갈맷길을 트레킹하고 나면 해가 저문다. 저녁을 어디서 어떤 것으로 먹을 것인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잰발걸음으로 충무동 선창가로 달려가 부산의 명물 꼼장어구이 집을 찾아 얼큰하고 담백한 꼼장어구이를 행복하게 먹는다.
코로나 역병에 갇혀있다가 풀리고 있어 한국수필가협회 이사회가 인천에 있는 근대 한국문학관 탐방에 나섰다. 오랜만이라며 모두가 들뜬 마음들인데 모처럼 나들이라서 점심도 괜찮은 생선구이를 먹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시장기를 느끼며 침샘을 삼키고 있는 일행을 태운 관광버스가 도착한 곳은 무이도 앞 해안가의 유명 생선구이 맛집이다. 소나무가 우거진 해변가 철조망에 걸려 있는 생선을 보자니 부산에서 살던 시절이 아련하게 떠올려져 자갈치시장 생선구이 식당에 앉아있는 것 같다.
식당 안으로 입장한 일행은 식탁에 4명씩 조를 지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조금 늦게 입장한 나는 빈자리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다가 한 좌석이 비어있는 문간쯤의 식탁에 앉았다. 괜찮은 생선구이를 기대하며 안쪽을 살피는 중인데 이내 식탁에 차려진 것은 갈치, 서대 가자미와 큰 생선구이가 나오고. 돌솥밥에 홍합과 조개로 끓인 탕이 생선구이와 조화를 잘 이루어 주었다. 내 앞에는 늘 알고 지내는 분이고 다른 두 분은 여성분인데 바로 내 옆에 분이 생선을 못 먹는다는 통에 내가 더 먹게 되었다. 모처럼 맛있는 생선구이를 옆 좌석 때문에 포식했다는 말이 돌았다. 이에 다음 모임 때부터의 식사 때는 옆 사람을 잘 선택해야 된다고들 해 즐거움을 더했다. 2023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