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ques Offenbach : Les larmes de Jacquelineesterday
(쟈크 오펜바흐: 쟈클린의 눈물. Jacqueline's Tears)
Harmonies des bois, Op. 76: No. 2 Les Larmes de Jacqueline
(첼로와 오케스트라 버전)
애잔한 첼로음이 가슴을 후벼파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음악,
독일 태생의 프랑스 작곡가이며 첼리스트 이기도 한 '오펜바흐'
(Offenbach) 작곡의 '쟈클린의 눈물'(Les larmes de Jacqueline)...
이 곡은 독일 태생의 프랑스 작곡가이며 첼리스트 이기도 한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 1819~1880)가 작곡한 작품이라
알려져 있는데.. 이 곡은 사실, Offenbach의 작품 목록에도 없던
곡이었고 따라서 그 당시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의
곡이라 한다.
일설에 의하면.. 오펜바흐의 미 발표곡으로 남아 있던 것을,
10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독일 출신의 첼리스트인 '토마스
베르너'(Thomas Werner.1941~ )가 우연히 이 음악의 악보를
찾아내게 되었다고 한다.
'베르너'는 이 곡을 연주히고 음반을 내게 되는데, 베르너
자신과 동시대의 비운의 첼리스트였던 '쟈클린 뒤 프레'
(Jacqueline du Pré. 1945-1987)를 떠올렸고, 베르너 자신이
쟈클린에게 이 곡을 헌정하면서 이 곡에 <쟈클린의 눈물>
(Les Larmes du Jacqueline)이란 제목을 붙여 음반을 발표
했다. 그러나 검증된 사실은 아니라 하고...
작곡자인 '쟈크 오펜바흐'의.. 이름 중, '쟈크'의 여성형 이름이
'쟈클린'..이기도 했다.
자클린 뒤 프레 Jacqueline du Pre (1945-1987)
'자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e)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클린느는 3세 때 라디오에서 나오는 여러 악기 소리 가운데,
특히 첼로 음을 지적하며 그 소리를 내고 싶다고 졸랐다고 한다.
'제키'라는 애칭으로 불려진 그녀는 4세 때 첼로를 배우기 시작
하였다.
5세 때는 런던의 첼로 스쿨에 다녔고, 10세 때는 첼로의 명교수
윌리엄 프리스의 문하에 들어가 눈부신 성장을 보였다.
1961년 런던의 <위그 모어 홀>에서 리사이틀을 갖고 데뷔
하였는데 그때가 16세 때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파리에서 폴 토르텔리어에게, 모스크바에서는
로스트로포비치에게 각각 단기적으로 지도를 받게된다. 그리고,
이듬해 1962년에 첫 녹음을 한다.
뒤 프레의 명성이 드높아진 결정적인 계기는 1962년에 엘가(Elgar)의
첼로 협주곡을 협연함으로서 만들어 졌다. 17세의 소녀가 과연 이
대작을 어떻게 표현할지 사람들은 비상한 관심으로 연주를 지켜봤다.
뒤 프레는 충만한 자신감으로 이 협주곡을 연주했을 뿐 아니라 더할
나위 없는 서정성을 보태서 사람들을 감동 시켰다.
BBC 방송은, 지난 300년간 영국이 낳은 가장 뛰어난 기악가라고
평을 할 정도로 뛰어난 첼리스트라고 했다.
이후, 그녀의 음악인생에서 이 협주곡은 마치 운명처럼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뒤 프레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두 번이나 녹음했다.
이후 세계적인 첼리스트로서 각광을 받으며 활약하기 시작했다.
1966년 크리스마스, 파리에서 피아니스 겸 지위자인 '다니엘 바렌보임'
(1942~ )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다음해 유태교로 개종하고
예루살렘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 결혼은 슈만과 클라라 이후의 가장
아름다운 음악가의 결합으로 커다란 화제가 됐지만, 공교롭게도 이 역시
불행하고 애처로운 결과로 끝나고 말았다. 28세 되던 73년, '다중경화증'
이라는 희귀한 병으로 연주을 중단한다.
여기에 더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에게 동정의 눈물을 흘리게 한 것은
그녀 남편 바렌보임의 뻔뻔함 때문이었다.
바렌보임은 쟈클린이 음악가로서의 생명도 다 하고, 불치의 병으로 여자
로서의 매력도 잃어가자,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와 딴 살림을 차려
이미 쟈클린이 살아 있을 때에 애를 두 명씩이나 낳았다고 한다.
1987년, 쟈클린은 42년간의 생애를 마쳤다. 이때도, 이후에도 바렌보임은
쟈클린의 무덤에 한 번도 찾아간 적이 없다고 한다.
쟈크 오펜바흐 (Offenbach, Jacques , 1819~1880)
프랑스 제2제정시대의 대표적인 오페라 부파의 작곡가.
본명은 야곱 레위PJacob Levy Eberst)인데, 아버지 Issac Juda Eberst가
오펜바흐 암 마인 출신이어서 이 이름으로 불렀다. 유대인으로, 1883년
14세 때에 파리로 나가 파리 음악학원에서 첼로를 배웠다. 관현악단과
오페라코미크에 근무하다가 알레비에게 작곡을 배웠고 1855년엔 스스로
극장을 경영하여《천국과 지옥(지옥의 오르페우스) Orphe aux enfers》
(1858)《아름다운 엘렌 La belle Hlne》(1864) 《제롤스탱 공작 부인 La
Grande-Duchese de Grolstein》(1867) 등의 대표작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음악의 특징은 그것 자체로서 이해하기 쉬운 화성 ·선율 ·리듬 ·
악기법을 여러 가지로 맞추고 바꾸어서 큰 변화를 얻는 데에 있다.
특히 리듬은 독특하여 당시에 유행하던 왈츠와 캉캉 따위 무곡도 오페라
부파 속에 편곡되어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사회 풍자를 비롯한 ‘비꼼’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의 주요작품인《천국과 지옥 (지옥의 오르페우스) .1958》에서는
그리스 신화에 의하여 제2제정의 위정자와 사회를 풍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C.W.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 Orfeo ed Euridice》
도 음악적으로 비꼬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유작 《호프만 이야기 Coutes d’Hoffman》(1881)는 순수한 오페라
코미크이다. 오펜바흐의 영향은 F.주페, J.슈트라우스(아들), 영국의
W.S.길버트, A.S.설리번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 (발췌...)
첫댓글
쟈클린 뒤프 레..가여운 여자.
살아있는게 더 불행했던 여자..
그 남자는
인간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마치 연주자 본인의 얘기 같은..
중후한 첼로소리
이곡을 들을때마다
왠지 슬프게 들립니다.
한없이 기분은 다운 시키는..
그럼에도 자꾸 듣게 되는 곡입니다.
가여운 연주자 얘기 때문에
이런기분이 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듣게 해주셔셔
감사드립니다.
너~무.. 안타깝고...
한편으론 화 나는 이야기라
차라리.. 만들어진 얘기라면...
그러나 사실이라니..
더욱...
슬픈.. 연주라..
마음까지 갈아앉지 않으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