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역[鐵原驛]
정의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외촌리에 있었던 철도역.
개설
경원선과 금강산선이 만나는 철도역이다. 철원역은 경원선 중심역이고 금강산 전기철도 출발점이다. 1914년 9월 16일 원산에서 전 노선 개통식을 가졌는데 총연장 221.4㎞ 중 철원역에서 서울 용산까지 97.3㎞, 2시간, 원산까지는 124.1㎞, 3시간이었다. 1931년 7월 1일 개통된 금강산 전기철도는 철원역에서 내금강까지 116.6㎞으로 4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일제 강점기 철원 동부 지역과 김화 지역 학생들은 금강산전철을 타고 통학하였고, 철원공립보통학교 수학여행은 주로 당일치기로 금강산에 다녀왔으며, 철원 읍내 장날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금강산 전기철도를 이용하였기에 철원역의 이용객은 상당하였다.
건립 경위
경원선은 한반도를 가로질러 서울과 동해안을 잇고, 함경선과 이어져 두만강에 이르며, 국경을 넘어서면 시베리아 대륙철도와 연결되어 유럽까지 진출할 수 있어 국가 전략적으로 중요하였다. 철원역은 1912년 10월 21일 경원선 연천~철원간 개통으로 문을 열었다.
변천
1928년 철원역사를 신축하였으며, 1934년 6월 9일 환승을 위한 구름다리를 설치하였다. 1937년 발행된 『철원군지』를 보면 철원역을 이용하는 승하차 연인원이 경원선은 26만 3047명이고, 금강산전철은 15만 3992명이다. 수하물은 경원선이 3만 9444개에 5만 3188톤이고 금강산전철은 1만 6420개에 1만 423톤이었다. 소요시간은 철원역에서 서울까지 1시간 59분, 원산까지 3시간 10분, 금강산전철 내금강역까지 4시간이 걸렸다.
구성
철원군 철원읍 외촌리 철원평야 한가운데 있었던 철원역 전체 부지는 16만 5289㎡[약 5만 평]이었고 철원역사(鐵原驛舍)는 적벽돌 2층 건물이었으며, 역장[서기관급]을 포함하여 80여 명의 역무원이 근무하였다.
현황
1988년 철원역 일부 승강장을 복원하였다. 현재 철원역사가 있었던 터에 표지판과 녹슨 철도 레일 일부만 남아 있다. 6·25전쟁 이후 60년간 줄곧 철원군에는 열차가 들어오지 않았다. 2012년 11월 20일 경원선이 경기도 연천 신탄리역에서 철원군 백마고지역까지 연장 개통되었다. 이후 철원 군민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2015년 8월 경원선 추가 연장[백마고지역~월정리, 9.3㎞ 구간] 복원 사업을 시작하였으나 2017년 중단되었다.
참고문헌
철원군지증보편찬위원회, 『철원군지』上·下(철원군, 1992)
『국사편찬위원회 구술자료 수집사업 최종보고서』(철원역사문화연구소, 2007)
철원역사문화연구소, 『철원군 지방행정 60년사』(철원군, 2013)
『철원의 장소기억에 관한 평화예술 프로젝트』(서울대학교·철원역사문화연구소, 2013)
김영규, 『38선과 휴전선 사이에서: 철원 주민 20인의 구술사』(진인진, 201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소이산[所伊山]
정의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에 있는 산.
개설
소이산(所伊山)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에 있는 해발고도 362m의 산이다. 고려 시대부터 외적의 출연을 알리던 제1로 봉수대가 있는 공간으로, 해방 이전 철원 역사의 중심이다. 고도는 높지 않아도 소이산 정상에 서면 백마고지, 철원역, 제2땅굴, 노동당사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6·25전쟁과 관련된 사연이 많이 있는 곳이며, 민간인 통행이 금지되었던 군사지역으로 곳곳에서 군사시설을 볼 수 있다. 해발고도가 낮기 때문에 정상까지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으면서도 정상의 전망이 빼어난 곳이다.
명칭 유래
소이산(所伊山)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소이산은 산정에 고려 시대부터 통신수단으로 이용된 봉수대가 설치되었던 곳으로 함경도 경흥·회령·길주·함흥·영흥·안변·철원·서울[남산]과 연결되는 경흥선 봉수로에 속하여 있던 산이다. 1253년(고종 40) 고려 몽고군이 동주[철원]을 침입할 때 방호별감이었던 백돈명의 지시에 따라 군민들이 소이산으로 들어갔으며 출입이 금지되었다. 추수기에 군민들이 교대로 추수할 것을 건의하였다가 방호별감에 의하여 처형되면서 혼란이 발생하였고 그 틈에 몽고군이 침입하였다. 이후 소이산의 성이 함락되고 김화와 금성까지 몽고군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전설이 있다.
자연환경
소이산은 산의 높이는 낮지만 철원평야가 잘 조망되는 곳이다. 소이산의 지질은 백악기의 화산암이며, 주변은 용암대지로 둘러싸여 있다. 6·25전쟁 이후에 지뢰지대가 설치되고, 민간인출입통제선 구역 안에 있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생태계와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다.
현황
강원도 철원군은 2012년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이라는 총 4.8㎞의 탐방 길을 조성하였다. 이들은 각각 지뢰꽃길[1.3㎞], 생태숲길[2.7㎞], 봉수대 오름길[0.8㎞]로 구성되어 있다. 해발고도가 낮아 정상까지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으며, 정상에서는 백마고지, 철원역, 제2땅굴, 노동당사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지뢰지대가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주의 표시가 있다.
참고문헌
『철원향토지』4(철원문화원, 2000)
『철원향토지』5(철원문화원, 2004)『한국 지명 유래집-중부편』(국토지리정보원, 2008)
철원군(http://www.cwg.go.kr)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철원역사문화공원[鐵原歷史文化公園]
정의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 소이산 앞에 세워지는 근대 철원의 복원 거리.
개설
소이산 주변에 지어지는 철원역사공원은 옛 철원 시가지가 번창하여 금강산을 갈 때 사람들이 들렀던 시기를 회상하며 만든다. 즉, 금강산으로 가던 사람들이 철원역에서 내려 물건을 사고 다시 기차를 타고 금강산으로 가던 시절을 재현하는 사업이다. 옛날 소설이나 자료를 보면 금강산으로 가면서 철원역에 내려서 시장을 둘러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건립 경위
강원도 철원군 지역의 관광 활성화를 위하여 철원 노동당사, 철원 농산물검사소, 철원경찰서, 빛의 사원, 철원DMZ마켓을 연계함으로써 소이산 앞에 100년 전 근대 철원의 시가지 모습을 복원하고자 건립하게 되었다.
변천
철원역사공원 조성의 목적은 통일이 되기 전에 옛 철원 시가지의 축소판을 만들어서 관광 활성화를 꾀하기 위함이다. 상징적으로 일제 강점기 당시 150m의 시가지 거리를 만들어서 거닐면서 물건도 사고 철원의 미래를 가꾸는 계획을 세워 가고자 한다. 공사 예정 기간은 2018년 6월 27일부터 2019년 11월 6일까지였으며, 철원역사공원 조성은 철원군청 관광문화체육과에서 담당하고 있다.
구성
철원역사공원은 크게 근대문화거리와 역사전시체험관으로 나누어진다. 옛 철원 시가지를 축소판으로 재현한다. 중앙 통로는 150m 거리이다. 거리 양옆으로 의상실, 은행, 소학교, 철원역 등이 있다. 길 중앙에 있는 시간의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에 기억의 정원이 있고, 길 끝에 미래로 가는 역사체험전시관이 있다. 현재, 과거, 미래라는 세 구획으로 나누어진다. 근대문화거리 옆에는 난전을 만들어서 옛 시장을 재현하고 일반 판매점과 식당도 만들어서 운영을 한다. 철원역을 재현하여 모노레일을 타고 소이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한다. 철원토성과 초가집 등을 조성하여 옛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특히, 옛 시가지를 걸으면서 철원에서 생산되는 물건을 살 수 있으며, 먹거리와 체험을 함께 할 수 있는 복합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현황
철원역사공원은 2019년 6월 현재 한창 조성 중에 있다. 대지 면적은 7만 1252㎡이다. 청사진은 이미 나와 있고, 터를 닦고 있는 상황이다.
참고문헌
인터뷰(철원역사공원 자문위원 김영규, 남, 58세, 2019. 6. 19.)
현지 답사(2019. 6. 19.)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2024-03-04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