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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3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호명되지 않은 영웅’ - 1. 다마스쿠스 녀석 엘리에셀
본문 : 창세기 15장 2절(1~6절)
아브람이 여쭈었다.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에게는 자식이 아직 없습니다. 저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식이라고는 다마스쿠스 녀석 엘리에셀뿐입니다. <새번역>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우리는 1인자만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인자로서 모든 것을 대표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심과 존경심을 담기도 하지만 반대로 열등감도 가지고 1인자만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한 개그맨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라는 유행어로 시대를 풍자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최근에는 2인자까지는 기억해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1인자와 그 옆에 있는 2인자 그래서 2MC 체제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덜 유명했던 2인자가 1인자와 함께 함으로 1인자만큼이나 유명해 지는 경우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11월 한 달 동안 1인자도, 2인자도 아닌 아예 호명되지 못한 영웅들과의 만남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사실은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시선에 들어오지 않아 그냥 스쳐지나갔던 많은 인물들과의 만남이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던 인물들이 주는 새로운 감동과 은혜, 그리고 그들을 준비하시고, 그들과도 동일하게 함께 하셨던 공평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도 만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오늘 첫 번째로 만날 호명되지 않은 영웅은 주인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종, ‘엘리에셀’입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종이었습니다. 엘리에셀, 즉 ‘하나님은 도움이시다’라는 이름은 구약 성경에 많이 등장하는 이름입니다만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성경에 딱 한 구절에서만 이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한 구절에서도 그냥 엘리에셀이 아니라 다마스쿠스 녀석 엘리에셀입니다. 새번역이 왜 이렇게 번역했는지 궁금하지만 사람이라는 말보다 녀석이라는 말에서 오는 아브라함의 엘리에셀에게 느끼는 친근감도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등장하는 그의 호칭은 ‘종’입니다. 끝까지 엘리에셀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진 적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엘리에셀은 사실 아브라함이 생각했던 아브라함의 유일한 상속자였습니다. 75세까지 아니 99세까지 아들이 없었던 아브라함은 만약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지 않는다면 자신의 재산을 엘리에셀에게 모두 상속해 줄 예정이었습니다.
아브람이 여쭈었다.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에게는 자식이 아직 없습니다. 저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식이라고는 다마스쿠스 녀석 엘리에셀뿐입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셨으니, 이제, 저의 집에 있는 이 종이 저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2~3절, 새번역>
아브라함의 말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이 엘리에셀은 아마도 아브라함의 집에서 태어나 자랐던 종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어릴 적부터 데리고 있으면서 어떤 인물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만약에 아들이 없게 된다면 자신의 재산을 물려 줄 수 있을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건 보통의 종,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종이긴 하지만 정말로 아브라함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아브라함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엘리에셀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솔직히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태어나기를 바랐을까요?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기를 주인처럼 간절히 바랐을까요? 아들이 없다면 모든 재산은 앞으로 자신의 것이 될 터 인대 욕심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바로, 이 지점이 오늘 엘리에셀을 ‘호명되지 않은 영웅’으로 선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이 말을 듣고도, 결코 경거망동하거나, 아들이 태어나는 일을 방해하거나, 다른 마음을 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이 아브라함 집에서 종이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설사 재산을 상속받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입장은 조금도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종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 태어났어도, 드디어 사라에게서 이삭이 태어날 때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이름을 ‘종’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로 끔찍한 상상입니다만 엘리에셀이 조금만 다른 마음을 먹었다면, 이스마엘이나 이삭을 얼마든지 해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에셀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겸손함으로 아브라함의 종이었기에 아들 이삭의 종이라고 자신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리브가는 고개를 들어서 이삭을 보고, 낙타에서 내려서 아브라함의 종에게 물었다. "저 들판에서 우리를 맞으러 오는 저 남자가 누굽니까?" 그 종이 대답하였다. "나의 주인입니다." 그러자 리브가는 너울을 꺼내서, 얼굴을 가렸다. 그 종이 이제까지의 모든 일을 이삭에게 다 말하였다. <창세기 24장 64~66절, 새번역>
이삭의 아내가 될 리브가를 아브라함의 집으로 데리고 오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리브가가 먼저 이삭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가 엘리에셀에게 누구인지를 묻자, 엘리에셀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주인’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늙은 자신에 비해 새파랗게 어린 주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에셀은 자신이 누구인지 끝까지 잊지 않습니다. 그래서 리브가를 데려 오면서 있었던 모든 일을 가장 먼저 이삭에게 다 말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종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이삭의 종이기도 한 것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런 엘리에셀이었기에 아브라함은 자신을 대신하여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해오라고 한 것입니다. 얼마나 믿을만하면 이런 부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아버지가 종에게 며느리를 구해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엘리에셀이라면 자신의 마음에 꼭 맞는 며느리를 데리고 올 것이라는 믿음이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아 보는 늙은 종에게 말하였다. "너의 손을 나의 다리 사이에 넣어라. 나는 네가,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두고서 맹세하기를 바란다. 너는 나의 아들의 아내가 될 여인을,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가나안 사람의 딸들에게서 찾지 말고, 나의 고향, 나의 친척이 사는 곳으로 가서, 거기에서 나의 아들 이삭의 아내 될 사람을 찾겠다고 나에게 맹세하여라." <창세기 24장 2~4절, 새번역>
그러고 보니 충격적인 구절이 하나 더 등장합니다. 이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모든 소유를 맡아 보는 존재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 엘리에셀의 행동이 놀라운 것입니다. 모든 소유를 맡아 볼 정도면 사실상 아브라함 족장 아래에서 실권을 잡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적은 인원의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얼마든지 실권을 잡고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또한 아직 그 소유를 이삭에게 물려주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앞으로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모든 것에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소유를 맡아 보는 와중에도 자신의 주인인 아브라함이 시킨 아주 어려운 명령, ‘며느리 찾기’ 까지도 순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엘리에셀도 늙었습니다. 충분히 힘이 들어서라도 거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고향까지 가서 리브가를 데리고 오는 수고로움에 조금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하고,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제 아브라함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만나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순간까지 찾아오게 됩니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주님을 찬양합니다. 나의 주인에게 주님의 인자와 성실을 끊지 않으셨으며, 주님께서 저의 길을 잘 인도하여 주셔서, 나의 주인의 동생 집에 무사히 이르게 하셨습니다" 하고 찬양하였다. <창세기 24장 27절, 새번역>
엘리에셀은 주인이었던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어떻게 아브라함에게 행하셨는지 똑똑히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리브가를 데리고 오는 이 여정을 통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고, 그러자 오늘 자신에게까지 은혜를 베푸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에셀을 도우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엘리에셀을 믿어 준 것처럼, 하나님도 엘리에셀을 믿어 주고 계셨고, 도와 주셨고, 인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엘리에셀의 하나님이기도 하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으로부터 복이 흘러 갈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이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이라고 하는 1인자 라인으로만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고 예상하셨다면 우리는 착각을 한 것입니다. 가장 먼저, 이삭보다도 먼저, 그 복을 받고 누렸던 인물은 호명되지 않은 영웅 엘리에셀이라고 오늘 성경은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로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으로서의 삶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복이 되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종이지만 종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둘도 없는 동역자였으며,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들 이삭에게도 좋은 동역자가 되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정말로 멋진 사람, 이제는 호명해야 할 이름, 기억해야 할 이름, ‘엘리에셀’입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종의 삶을 원하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사실 종의 이름도 기억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의 이름은 기억할 필요도 없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이런 이이름들을 기억하기에도 부족한대 엘리에셀이라는 이름을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기까지, 이삭이 리브가라는 아내를 만나기까지, 곁에서 묵묵하게 섬기던 신실한 종 엘리에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아브라함 곁에, 이삭 곁에 이런 훌륭한 하지만 호명되지 않은 영웅을 두신 것입니다.
혹시 아브라함과 이삭이라는 주인공을 빛내기 위한 조연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으신다면 좁은 시야를 조금 더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아브라함과 이삭이라는 주인공을 빛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 또 다른 주인공이 엘리에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이건 한 배우의 시상식 수상 소감에서 그 이유를 한 번에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배우 황정민 씨는 2005년 11월에 있었던 제 2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너는 내 운명’이란 영화로 남우주연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 상을 받고 이런 수상소감을 밝히게 되어 당시에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나에게도 이런 좋은 상이 오는군요. 항상 마음속에서 생각하고 겉으로 표현하지 못했는데 하나님께 제일 감사드립니다. 사람들에게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나를 소개합니다. 60여명의 스태프들이 차려놓은 밥상에서 나는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나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죄송합니다. 트로피의 여자 발가락 몇 개만 떼어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60명의 스태프들이 그저 주인공을 빛나게 한 조연으로 끝난게 아니라, 한 영화의 캐릭터에 이름을 가지게 하여 그 이름을 가진 주인공으로 만든, 호명되지 않은 60명의 주인공들이 또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고백이 황정민 씨 이전에 아브라함의 고백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에셀과의 동역이 자신의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했는지 분명히 전달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주인공과 주인공의 만남을 통해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들 아브라함만 기억하기에 오늘은 아브라함이 숟가락만 얹어도 되도록 노력한 엘리에셀을 함께 살펴 본 것입니다. 그는 진짜 호명되지 않은 영웅입니다. 우리가 닮아가야 할 그리스도인이고, 신앙의 선배입니다.
엘리에셀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종이라는 것을 한 번도 잊어버린 적 없는 자아정체성이 분명한 존재였습니다. 그는 단 한 번도 주인인 아브라함에게 불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엘리에셀을 묵상하면서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자녀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순종의 삶을 다짐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아브라함과 동역했던 엘리에셀이었습니다. 교회가 엘리에셀의 연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브라함이라면 여러분들이 엘리에셀이 되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더 소망하는 것은 반대로 여러분들이 아브라함이 되도록 제가 기꺼이 엘리에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한 동역이 오늘도 이어져 갔으면 좋겠습니다.
실권을 잡고 있었고, 충분히 권력을 부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자였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부를 사람이 바로 엘리에셀입니다. 가장 높아지려거든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사실 가장 높은 사람은 엘리에셀입니다. 그는 평생에 섬기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닮고 싶습니다. 섬기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것도 기쁨으로 기꺼이 섬기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엘리에셀은 정말 믿을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일을 모두 대신 할 만큼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에게도 믿을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그의 평생에 보인 성실과 신실한 모습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모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 모두도 누군가에게 정말 믿을만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이 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4년 11월의 문을 열면서 우리 모두가 엘리에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한 달 누군가를 빛내 줄 수 있는 조명, 등대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호명되지 않은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히려 호명되지 않기에, 기억되지 않기에 더욱 기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룬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기억하시면 충분합니다. 세상이 당신을 모른다 하여도 주님은 여러분의 이름을 마음에 새기셨기 때문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만 기억하지 못할 뿐! 하나님은 이 시대의 모든 이름도 빛도 없이 섬기는 엘리에셀들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마지막으로 엘리에셀이 되기를 원하며 엘리에셀의 마음으로 이 말씀을 함께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누가복음 17장 7~10절, 개역개정>
결단 찬양 - 세상이 당신을 모른다 하여도 + 나를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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