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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05. 1. 30. (일) 맑음
▶ <인원> 30 명 (대산사 정기산행)
▶ <산행 코스 요약> 휴식 시간 제외한 구간별 소요 시간
점마마을-(8분)-산길 시작-(24분)-첫번째 계곡 건너기-(59분)-샘터-(7분)-지능선 入-(30분)-상월봉-(15분)-국망봉-(5분)-초암사 갈림길-(51분)-어의곡리 갈림길-(8분)-비로봉-(10분)-샘터-(16분)-양반바위-(9분)-비로사 구등산로 갈림길-(13분)-달밭재/비로사 갈림길-(8분)-달밭재-(33분)-<국망봉 4.1 / 초암사 0.3> 이정표-(5분)-초암사-(29분)-매표소-(14분)-초암 주차장
<총 산행시간 ; 7시간 32분 = 산행 5시간 44분 + 휴식, 중식 1시간 48분>
▶ <산행거리> 1/50,000 지도 도상거리 ; 약 17 km
▶ << 산행기 >>
* 가는 길
서대구나들목(06*51)-안동휴게소(07*40~08*13)-풍기 나들목 나오자마자 (08*37) 5번 도로 풍기 行(우측)-931번 도로 따라 가면서 부석사 방면으로 계속 진행-읍내사거리에서 초암사 行(좌회전)(08*49)-초암 주차장 지나 교회 지나고...성혈사 입구 지나고... 도로 끝/점마마을 정류장(08*58)
▶ 점마마을~상월봉
- 석천폭포포골을 따라 상월봉 지능선까지 완만한 계곡 오름 길
- 석천폭포를 확인 못해 아쉬워
- 대체로 계곡을 좌측에 두고 계곡 상류 끝까지 오른다.
- 지능선 아래 샘터가 있어...
.도로 끝 지점이자 점마마을 버스정류장이 있는 조그마한 공터 앞에 마을로 건너가는 작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꺾으면 <산불조심> 현수막이 있는 곳부터 경운기 길이 시작된다. (09*10 出)
개를 키우는 농장인 듯 개가 요란하게 짖어댄다.
올 들어 가장 추울 거라는 예보를 비웃기라도 하듯 햇빛이 찾아드는 가운데 첨부터 웃옷을 벗고 출발하는 님들도 있다.
계곡을 좌측에 두고 넓은 길을 10여분 따라가면 넓은 길이 우측으로 갈리는데 (09*18) 곧바로 직진하자마자 약간 우측으로 산길이 시작되는데 이내 다시 넓은 길을 다시 만난다. (09*22)
넓은 길을 따라 좌측으로 진행한다.
<점마 정류장에서.. 뒷 배경이 겨울 같지 않은 소백산 날씨인데..
출발 전 단체사진.. 나 찾아봐라~~~~~~~ 어음다..^^>
.완만하게 이어진 길은 좌측에 있는 계곡과 제법 떨어진 채 진행하다가 계곡 가까이 접근하게 되고 (09*29) 길 우측으로 약간 떨어진 묘 1기를 지나 (09*35) 첫 번째로 계곡을 건너 (09*42) 이후 4~5차례 계곡을 지그재그로 건넌다.
계곡은 결빙된 채 숨을 죽이니 어디에 숨었나 하고 찾아보지만 석천폭포를 확인도 못한 채 그냥 지나쳐버리고 만다. *.*
(석천폭포는 소백산에서 희방폭포 다음으로 큰 규모의 폭포로서 폭 2m, 높이 15m 정도 되며 석천폭포 위에도 3단의 자그마한 와폭이 자리하고 있다고 함)
이후 잠시 휴식 (10*08~22)
.완만한 계곡 오름 길은 계속 이어지고 중간중간 결빙된 구간을 지나면서 서서히 계곡은 사라지고 상류로 오른다.
간간이 나타나는 1~2개의 표시기만 있을 뿐 아주 조용하기만 한데 상월봉 지능선(동릉) 아래 빨간 바가지 2개가 놓인 샘터를 만난다. (10*55)
여름철이면 반가이 맞이할 샘터지만 겨울철 샘터는 별 흥미가 없구나..
그래도 샘물이 마르지 않고 있는 게 용하다~
.지금까지 별다른 추위도 못 느낀 채 오르지만 선두에선 지능선상에 눈과 바람이 심하니 미리 준비 단단히 하고 오라는 무전교신을 받는다.
그럼 그렇지... 눈과 바람이 없을 리 없지..
상월봉 지능선(동릉)에 오르자 예상보다 강한 바람이 휙~ 몰아친다. (11*02)
왼쪽으로 가니 예상보다 눈이 제법 쌓여있는데 선두에서 러셀을 한 흔적이 역력하다.
.상월봉을 향해 완만하게 오르는 동안 나뭇가지에 묻어있는 설화는 아름답기만 하고 추워와 바람 따위는 참을 만 한 것 같은데... 역시나 장난이 아니구먼...*.*
커다란 바위군을 좌측으로 우회한 뒤 (11*28) 구인사 창건주인 상월조사를 기념해 세운 상월암('上月佛' 각자가 새겨진 바위)을 지나면 곧 상월봉 정상이다. (11*32~40)
('上月佛' 각자가 새겨진 것은 확인 못하고 바위만 쳐다보고 지나갔음..확인하고 싶었는데..*.*)
(국망봉에서 바라볼 때 상월봉 우측에 버섯모양으로 우뚝 솟아난 바위가 상월암이다.)
<상월봉을 내려와 찍은 모습.. 우측 바위가 상월암>
▶ 상월봉~국망봉~비로봉
-상월봉에서 국망봉 지나 초암사 갈림길까지 넓은 초원, 철쭉지대
-주능선 중 가장 편한 능선이나 소백의 칼바람을 맞아야...
<상월봉에서 바라 본 설화> <상월봉에서 바라 본 국망봉 능선 길>
.상월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과히 장관이다.
소백 주릉과 북동쪽으로 뻗은 대간 줄기가 설화에 만발한 흰 능선을 긋고 있다.
상월봉을 내려오자마자 우측으로 대간 길을 무시하고 설화로 덮인 나무터널을 곧바로 내려오면 철쭉군락을 지나 능선이 트이면서 완만하게 이어진 능선 길은 소백 특유의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바위군으로 이루어진 국망봉(삼각점 1420.8 m)에 이르게 된다. (11*55~12*18)
<해발 1420 m ; 비로봉 3.1 / 초암사 4.4>
*국망봉의 유래 ; (1) 국망봉(國望峰)은 조선조 선조가 승하했을 때 그의 성은을 잊지 못한 어느 선비의 충심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순흥면 배점리에 살았던 배순이라는 선비가 국상 후 매달 초하루와 보름날 이 봉우리에 올라 한양땅을 바라보며 읍소했다는 설과 (2) 신라 마지막 왕이었던 제56대 경순왕이 나라를 왕건에게 물려주고 명산 대찰을 찾아다니다가 제천의 백운면 방학리 궁뜰에 동경부를 짓고 머무를 때 덕주공주는 월악산의 덕주사에 머무르고 신라회복에 실패한 마의태자는 엄동 설한에 베옷 한 벌만 입고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이곳에 도달하여 신라의 도읍 경주를 바라보며 망국의 눈물을 흘리다가 월악산의 덕주공주를 찾은 후 개골산으로 향했으며 이후부터 국망봉이라 불렀다는 유래가 전한다.
<국망봉에서 비로봉 능선을 보며..> <눈꽃 터널을 지나며..>
.준비한 제물로 대산사 한 해의 안전한 산행을 기원하고자 약식이나마 시산제를 지낸다.
여기서 중식을 하기에는 넘 추워 진행 중에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중식하기로 하고 곧바로 진행하기로 하고 나무계단을 내려와 공터를 지나면 곧 초암사 갈림길에 이른다. (~12*23)
<비로봉 2.8 / 초암사 4.1 / 국망봉 0.3>
이정표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와 설화로 덮인 관목지대를 지나면서 적당한 자리에서 중식(12*44~1*25)을 하는데.. 추워 죽겠더라.. *.*
. <국망봉 2.2 / ..> 이정표를 지나면서 서서히 오름 길이 시작되더니 철계단을 3개 지나 (1*50) 어의곡리 갈림길 (1*55) <어의곡리 4.7 / 비로봉 0.4 / 국망봉 2.7>에서 좌측으로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는 동안 소백의 칼바람은 발걸음이 약간 흔들릴 정도로 세차게 불어온다.
겨울철 소백산 주능선에는 설화와 바람이 유명한데 지형적인 특징에서 비롯된 것으로 백두대간이 태백산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꺾은 다음 서진하면서 처음으로 높게 일어선 산이 소백산이라 겨울철 북서풍을 여과없이 그대로 받아내며 주능선에 화려한 설화를 피운다.
그러나 천상의 화원이라 불릴 정도의 초원지대와 주목군락을 이룬 평원을 거느린 소백의 정수리는 또 다른 모습을 갖는다. 비로봉이다. (2*03~17)
<비로봉 1439 m ; 비로사 4.0 / 국망봉 3.1 / 죽령 11.5 , 희방사 6.7 , 천동 6.8>
▶ 비로봉~달밭재/비로사 갈림길~달밭재
-비로사/달밭재 갈림길이 요주의 포인트
.많은 인원들이 정상에서 머물고 있는데 깜박깜박 눈만 보인다.
어찌나 차가운 바람이 부는지 거의 모든 이들이 모자 푹~ 눌러쓰고 방한마스크를 하고 있으니 그 모습도 또한 가지각색이라...
비로사로 가는 나무계단을 내려오니 <고 조광래 조난 추모비>를 지나 (2*21) 돌길이 이어지는데 차츰 소백 주릉에서 느꼈던 설화와 바람은 온데간데 없으니 또 다른 세상인가 ?
남동릉이라 햇빛이 찾아드는 이유겠지...
.<샘터 1250 m ; 비로봉 0.3 / 비로사 3.7> (2*27)를 지나 계단을 차례로 내려오면 <비로봉 0.8 / 비로사 3.2> 이정표를 지나면서부터 (2*35~37) 내림 길은 완만하게 이어진다.
<양반바위 1150 m ; 비로봉 1.2 , 샘터 0.9 / 비로사 2.8>를 지나 (2*45) <출입금지>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가면 다시 <출입금지> 길과 다시 만나면서 (2*50) 나무계단을 지나면 <탐방로 아님> 안내판이 있는 <비로사 구등산로 갈림길(쉼터) 1000 m ; 비로봉 1.9 / 비로사 2.1> 이정표를 지난다. (2*54)
이후 나무계단 3개를 내려오자마자 (3*06) 40~50m 정도 가니 좌측 나무 사이로 희미하게 길이 열려있다.
여기가 바로 오늘 산행 최고 요주의 포인트이자 달밭재/비로사 갈림길이자 원적봉으로 이어지는 비로봉 남동릉이다. (3*07)
.비로사로 가는 (우측)길이 워낙 잘 나타나 있어 자칫 스쳐지나가기 십상인 지점이자 특별히 구별되는 특징도 없는 지점이기도 하다.
앞 선두에 서신 성대장님이 알바까지 해 가면서 찾은 덕에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비로사 구등산로 갈림길(쉼터)에서 나무계단 3개 지나 여기까지 12~13분 소요>>
비로사 길을 무시하고 좌측 나무사이로 잠시 들어가면 이내 길은 뚜렷하게 나타나면서 소나무숲 내리막길을 가면 전봇대가 세워진 안부에 이른다. 달밭재이다. (3*15)
<달밭재 오거리> <달밭재에서 내려가는 길>
▶ 달밭재~초암사~죽계구곡~주차장
-조용하고 깨끗한 계곡
-월전마을.. 몇몇 농가만 남아 있어..
-죽계구곡은 주차장까지 도로 옆에 있어..
.진행방향 앞에서 좌측 뒤로 전봇대가 세워진 임도가 있으며 우측은 비로사, 직진은 원적봉, 좌측 좁은 길이 초암사로 가는 길이다.
좌측 좁은 길을 따라 가면 곧 계곡을 건너는데 (3*20) 계곡 좌측 너머로 농가 한 채가 보인다.
곧 통나무로 만든 다리를 건너 (3*22) 텃밭이 있는 농가 한 채를 지나는데 (3*24) 이 깊은 골짜기에도 사람이 살긴 사는구나...
또 다른 농가를 지나는데 (3*27) 이 부근이 월전마을인가 보다.
다시 통나무다리를 건너는데 (3*29) 좌측에서 내려오는 계곡이 순흥달밭골(혹은 월전계곡)인데 곧 죽계계곡과 합수되면서 죽계구곡을 만든다.
.계곡을 우측에 두고 깨끗함이 보존된 계곡을 따라가노라니 여름철 계곡산행이 생각난다.
비록 지금은 결빙에 의해 잠든 계곡이나 여름철 계곡수가 넘쳐흘러 내려올 때는 그 소리만 상상해도 시원하겠다.
전나무 숲길로 이루어진 또 다른 분위기는 소백의 숨어있는 비경의 계곡임을 실감하게되니...
결빙된 계곡을 건너 (3*35) 잠시 휴식한 후 (3*41~45) 좀 더 수량이 풍부해진 계곡을 건너니 좌측 너머로 나무다리가 보인다. (3*50)
곧 이어 T자형 삼거리를 만나는데 좌측으로 석륜암골을 거쳐 국망봉 가는 길이다. (3*52)
<← 국망봉 4.1 / → 초암사 0.3>
.초암사 가기 전 죽계구곡 <제1곡 금당반석 70 M →> 이정표를 지나 (3*55) 木門을 나오니 포장길이 있는 소형주차장이 마련된 초암사 입구에 이른다. (3*57~59)
<←국망봉 능선길 4.4 / →배점국교 3.5 , →초암사 500M>
* 초암사 [草庵寺]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에 있는 고찰.
종파 ; 조계종 , 창건시기 ; 신라시대 , 창건자 ; 의상대사
소백산 국망봉 남쪽 계곡 아래에 의상대사가 세운 조계종 사찰로, 의상이 부석사 터전을 보러다닐 때 초막을 짓고 수도하며 임시 기거하던 곳이다. 부석사를 지은 후 이곳에 다시 절을 세웠는데, 우람한 거석 축대, 주춧돌 등으로 미루어 규모가 큰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소백산의 절경 속에 자리잡은 청량도량으로 6·25전쟁으로 파괴되어 다시 지은 법당이 남아 있으며, 초암사 삼층석탑(경북유형문화재 126)과 초암사 동부도(경북유형문화재 128), 초암사 서부도(경북유형문화재 129) 등을 소장하고 있다.
.포장길을 따라 죽계구곡을 보는 것은 어쩜 계절에 맞지 않은 듯 별 관심 없이 무심히 포장길을 걷노라니 매표소를 지나 (4*28) <국망봉 7.3 , 초암사 2.3 / 초암주차장 1.1 , 순흥 4.5> 대형주차장에 이르니 (4*42) 우리의 발길은 또다시 화합의 뒷풀이로 이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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